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

[연속기고](5) 겨울 대중강좌 - 유럽중심주의의 세계사 서술 비판 1강

강사: 강철구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 저자

예전에 어떤 학생들이 어느 유명한 교수님에게 강연을 들으러 갔다 왔다고 해요. 무슨 얘기를 들었나 궁금해서 물어 봤더니 강의 내용을 적은 수첩을 보여주더군요. 그런데 수첩을 보니 ‘대학은 아름다운 곳’, ‘대학은 자유로운 곳’과 같은 미사여구로 가득하더군요.

그런데 실제로 대학이 그렇게 아름답고 자유로운 곳일까요? 그렇지가 않죠. 학문 세계라고 하는 곳은 생각하기보다 굉장히 완강한 면이 많이 작용하는 곳이에요. 왜 그러냐면 학문이라고 하는 것에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학문의 틀이 한 번 만들어지면 잘 깨지기 힘들죠. 어떤 때는 100년씩, 몇 십 년씩 가고 그래요. 그 틀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학문 측면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학문권력 측면에서도 그 틀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나 글을 쓰게 되면 학문 세계에 발을 붙이기가 어렵습니다. 잘못하면 완전히 배제되어 버리죠. 그렇기 때문에 이 학문적 틀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유럽중심주의를 주제로 얘기를 하게 될 텐데, 이것도 역시 학문적인 틀의 하나입니다. 학문적 틀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생각과 사고를 결정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틀이기도 합니다.

  강철구 교수의 '유럽중심주의의 세계사 서술 비판' 강의

그러면 독일의 예를 한번 들어보죠. 독일 역사학의 기초를 만든 사람은 레오폴트 랑케(L. Ranke)라는 사람이죠. 그래서 19세기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도길 역사학을 랑케 역사학이 주도했죠. 랑케 역사학이 뭐냐 하면, 국가주의적인 역사입니다. 여기서는 정치사, 외교사 이런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국내적인 문제들,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들, 계급적인 문제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1920년대에 아주 특이한 인물이 한 사람이 등장했어요. 바로 에카르트 케어(E. Kehr)입니다. 랑케 역사학에 반기를 든 사람입니다. 케어는 독일의 제국주의 밑바닥에 계급적인 이익이 깔려 있다고 보고 이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사람은 독일 학계에서 전혀 발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미국으로 가서 거기서 죽었죠. 독일 역사학은 2차 대전 끝난 후에도 변하지 않았어요. 1968년에 유럽 전체적으로 대학생들이 일으킨 68혁명 뒤에나 달라졌지요. 68혁명을 거치면서 젊은 세대들이 대학에 많이 들어갔고, 그때부터 독일 역사학에서 사회경제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독일 역사학에 변화가 왔어요. 이렇게 랑케가 만들어 놓은 틀이 100년이나 간 겁니다. 그만큼 학문적 틀은 한번 만들어지면 굉장히 강고하다는 얘기에요.

따라서 유럽중심주의라고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죠. 유럽중심주의라고 하는 것이 서양에서 만들어진 것이긴 한데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잘 먹혀 왔습니다. 해방된 지 60년 이상이 됐는데 말이죠. 해방 이후의 과정에서 남한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에게 절대적으로 의존을 해왔으니까요. 그래서 우리의 사고의 틀도 미국적인 틀을 그대로 따라왔습니다. 미국, 나아가서 서양적인 것은 선한 것이고 도덕적인 것이고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을 해왔다는 말이죠. 그래서 역사학뿐만 아니라 온갖 학문 분야가 다 미국적인 틀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사회 전반이 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작업은 만만치가 않은 작업입니다.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지요.

먼저 용어의 문제를 살펴봅시다. 유럽중심주의라고 하는 것은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서구중심주의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서양중심주의라고 하는 사람도 있죠. 서구(西歐)라는 말은 뭘까요? 서구의 구(歐)는 구라파(歐羅巴)를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유럽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구라파를 중국 발음으로 읽으면 '오조우'라고 하는데, 간자체로는 구주(歐洲)에요. 이렇게 ‘유럽’하고 비슷한 발음의 한자를 만든 것이 구라파인 거죠. 서구라고 하면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 미국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잘못된 것이죠. 서구라는 말은 미국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서구는 서유럽만을 말하는 것이에요. 미국을 포함한다면 서양이라고 하는 것이 옳아요. 그런데 미국문화라고 하는 것도 역시 서양문화에 속하죠. 왜냐면 미국문화의 뿌리가 유럽문화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자기네가 유럽 문화를 완성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국사람들도 유럽중심주의라는 말을 그냥 사용하죠. 그래서 내가 생각할 때는 유럽중심주의라는 말을 그냥 사용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서양중심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던가요. 서구중심주의라는 말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서구라고 하면 여기에 미국이 들어가는 것으로 오해를 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죠.

서양 사람들이 쓴 세계사 책들을 보면 유럽을 중심으로 해서 쓰여 있죠. 여러분들이 중고등학교 때 배운 책이나 대학에서 배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책들에 처음 나오는 것이 오리엔트 세계입니다. 메소포티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 나오죠. 그 다음에 그리스ㆍ로마가 나옵니다. 여기서 그리스ㆍ로마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리스에 더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중세사회죠. 그리고 근대로 이어지죠. 그런데 여기에서 비유럽세계, 그러니까 아시아라든가 아프리카라든가 이런 지역들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못해요. 분량 면에서도 그렇고 내용면에서는 더 합니다. 마치 세계사를 이끌어온 사람들은 유럽인뿐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죠.

이런 책들을 보고 공부를 하게 되면 그걸 진실이라고 믿게 되요. 유럽 내지 서양 사람들의 ‘우월’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만약에 정말 역사가 그렇다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아요.

이렇게 유럽이 우월하다는 관점에서 쓰인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18세기부터 시작됐습니다. 계몽사상아시죠? 18세기의 중심적인 유럽의 사상입니다. 유럽 사람들의 ‘내가 유럽인이다, 유럽문화다’ 라고 하는 자의식이 처음 나타난 것이 계몽사상시기입니다. 계몽사상이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근대 유럽사상의 기초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네가 우월하다고 하는 관점을 밑에 깔고 있다는 데 있죠.

2003년인가요? 부시가 이라크 침공할 적에 내세운 명분이 대량살상 무기와 이라크인들의 자유, 인권이었습니다. ‘쿠르드족 학살과 독재 정치를 했으니까’라고 말이죠. 그때 그것 외에도 또 하나 이야기한 것이 바로 문명이었어요. ‘문명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이라크에 전쟁하러 간다’ 이런 식이었죠. 그런데 이런 표현을 평면적으로 들으면 ‘이라크 사람들은 야만적이야’라고 생각하기 쉽죠. 특히 이라크 전쟁 때 미군 포로들을 참수했던 삥과들을 떠올리면 ‘이라크=야만’무기와 생각을 더 강해지죠. 그런데 이게 그렇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즉, 문명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간단한 단어가 아니라는 거죠.

문명이라는 개념은 16세기 때 프랑스 사람들이 만든 단어인데, 계몽사상 시기에 완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때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죠. 짝이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뭘까요? 문명의 짝은 ‘야만’입니다. 문명이 야만과 짝을 이루는 개념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얘기해볼까요? 보통 계몽사상의 핵심을 코스모폴리타니즘(세계시민주의)로 알고 있죠. 코스모폴리타니즘이라는 것을 보통 ‘이 세상의 모든 인류는 세계시민으로서 똑같다’라고 알고 있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세계시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유럽인, 그 중에서 특히 서유럽인이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정도의 나라만 해당되죠. 폴란드, 러시아 등의 동유럽이나 발칸반도 쪽 사람들은 계몽사상가들이 굉장히 낮춰봤고 서유럽사람들과 동격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유럽에서도 이런데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죠.

우리는 흔히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고 얘기합니다. 왜 검은 대륙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땅이 검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검은 대륙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계몽사상 얘기를 더 해야 되요. 계몽사상을 영어로 하면 enlightenment죠. '밝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네 유럽문명은 빛이라는 거죠. 아프리카가 검은 대륙인 것은 빛이 없기 때문이에요. 유럽 다른 언어로도 계몽사상은 ‘빛’이나, ‘밝게 함’이라는 뜻이에요. 유럽문명은 높은 수준에 있고 다른 문명은 낮은 수준에 있다는 생각, 야만적이라고 하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계몽사상에서부터 시작된 겁니다.

이런 문제는 근대 학문에서도 나타납니다. 사회학하면 아무래도 막스 베버가 유명하죠? 베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개념이 뭐죠? 합리성입니다. 베버는 평생 동안 유럽 문명에서 합리성을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합리성의 반댓말은 비합리성이죠. 합리성=유럽이고 비합리성=비유럽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낸 거죠. 이렇듯 유럽 근대 학문이라는 것도 유럽을 우월하게 보고, 비유럽을 열등하게 보는 관점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럽중심적인 태도라고 하는 것이 계몽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고, 또 굉장히 깊은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학문이라는 틀로 짜져 있기 때문에 깨뜨리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유럽중심주의를 만들어낸 3대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살펴봅시다. 우선 독일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헤겔입니다. 독일인들의 사상을 지배한 사람이죠. 헤겔은 『역사철학강의』라는 책을 썼습니다. 헤겔 책들은 굉장히 난해한데, 『역사철학강의』는 그나마 나아요. 헤겔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세계사’라고 하는 것은 오리엔트적 세계/그리스 ․ 로마적 세계/게르만 세계로 구분이 되고, 역사란 이러한 역사과정을 통해서 자유라고 하는 것이 점점 확대되어 나가는 과정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게르만적 세계라고 하는 것이 그 당시의 근대 유럽 문명을 얘기하는 것이죠. 유럽문명이 세계사의 최고 단계에 올라있는 것으로 생각한 거죠. 오리엔트적 세계라고 하는 것은 고대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을 말하죠. 그러나 그것은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근대의 비유럽세계 전체를 포함하죠. 이걸 잘 알려면 다시 계몽사상 얘기를 조금 더 해야 하죠. 계몽사상의 중요한 개념의 하나가 진보에요. 진보도 우리가 흔하게 쓰는 말이죠. ‘진보’하고 짝을 이루는 말은 ‘정체’입니다. 진보는 앞으로 나아가는 거고, 정체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머무는 것이죠. 계몽사상가들은 유럽문명은 진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잘 사는거다라고 생각한 거죠. 반면 비유럽문명은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유럽은 고대에서 근대까지 그대로라고 생각한 겁니다. 이제 헤겔이 한 얘기가 무슨 소린지 아시겠어요? 헤겔에 따르면 오리엔트적 세계라고 하는 것은 고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정체된 상태로 그대로 남아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면 아시아나 아프리카는 별 볼일 없는 곳으로 되어 버리고, 유럽만이 최고의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돼 버리죠. 이게 바로 헤겔의 역사철학이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역사철학강의』는 19세기 계몽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책이죠. 19세기 사상가들이 헤겔적인 생각을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말이죠.

다음은 사회주의 사상을 만들어낸 칼 맑스입니다. 맑스는 세계를 앞으로 진전시키려고 큰 노력을 한 인물이죠. 매우 중요한 인물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맑스가 세계사에서 아시아/아프리카를 놓는 방식은 별로 관계가 없어요. 맑스가 생산양식에 따라서 세계사를 몇 단계로 구분한 것 알고 있죠? 원시공동체사회-고대노예제사회-중세봉건사회-근대자본주의사회-사회주의사회. 이렇게 다섯 단계로 구분을 합니다.

한 생산양식에서 다른 생산양식으로 넘어가는 것은 필연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죠. 그러니까 반드시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주의사회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되고, 이게 바로 19세기 노동자들에게 매력적인 부분이었던 겁니다.

사회주의 사회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먹고 사는 사회죠. ‘자본주의 착취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가 오는데, 그것은 필연적으로 온다’.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그래서 맑스주의가 19세기 후반 20세기에 걸쳐서 가장 중요한 사상 체계로 등장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맑스의 사상 체계에서 아시아라는 것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요? 맑스는 소위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고 하는 것을 따로 떼어내서 이것을 유럽의 고대노예제 사회의 하나의 변종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유럽에서는 고대 노예제 사회가 극복이 되어서 중세 봉건사회로 넘어가고 19세기에 자본주의사회까지 도달했는데 아시아는 아직까지도 노예제사회에 해당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죠. 이걸 보면 맑스 자신이 아시아나 아프리카지역을 굉장히 낮춰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맑스의 사상이 사회주의자들에게 굉장히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그냥 받아들이게 됩니다. 심지어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요. 맑스주의라고 하는 것이 20세기 들어와서도 역사학에서 굉장히 큰 힘을 갖고 있었어요. 사회경제사 같은 것은 물론이고요. 프랑스혁명 같은 것도 기본적으로 맑스주의적 해석이 지배적이었죠. 70년대까지도 그랬습니다. 즉, 이렇게 맑스는 유럽중심주의를 전파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에요.

세 번째가 앞에 말한 막스 베버입니다. 막스 베버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독일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입니다. 사회학자지만 역사학자이기도 해요.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한 사람이라서 굉장히 논리가 치밀하죠. 이 사람이 기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서양문명의 근대성 문제, 그리고 그 밑바탕의 합리성이었어요. 그래서 서양문명과 비서양문명을 구분해서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뚜렷하게 부각을 시키게 되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도시, 국가, 봉건제 등 온갖 주제들을 다 다뤘습니다. 종교는 물론이고 음악까지도 다루고 있죠.

베버에 따르면 서양의 모든 문화는 합리적이고 비서양의 것은 합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아마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유명한 책을 알고 있을 거예요. 책 내용은 16세기 유럽에서 발전한 칼뱅주의 윤리 속에 자본주의의 핵심이 될 수 있는 합리성이 존재한다고 하는 주장이죠. 서양의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을 합리성 위에 세우려고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러나 실제는 어땠나요? 16세기에 서양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진출하면서 서양의 자본주의는 시작되죠. 그런데 그것은 도덕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인 것도 아니에요. 아메리카에 대한 착취, 노예무역, 해적질 등 돈이 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한 게 바로 서양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서양의 자본주의를 합리적인 것으로 미화하려는 뜻이 막스 베버의 배경 속에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베버는 2차 대전 이후에 미국 사회에서 고평가되면서 미국 사회학에도 큰 영향력을 미쳤어요. 그래서 베버는 지금도 굉장히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학자에요. 유럽중심주의는 이 세 사람의 ‘뛰어난’ 인물들에 의해서 틀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뒤를 수많은 서양학자들이 따라간 것이죠.

유럽중심주의는 두 개의 개념이 합쳐진 거예요. 하나는 유럽예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오리엔탈리즘이지요. 유럽예외주의는 유럽문명이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예외적인 문명이라는 생각이에요. 유럽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생각이지요. E. L. 존스의 『유럽의 기적』같은 책이 그런 대표적인 책이지요. “유럽에서 어떻게 이런 뛰어난 문명이 생겨났을까?”, “이거 기적 아니야” 아주 낯간지러운 이야기지요.

이렇게 유럽 내지 서양문명을 찬양하는 서양학자들은 아직도 많아요. 그런데 우리 지식인들 가운데에는 그런 것이 쓰인 문맥을 잘 살피지 않고 그대로 번역하는 경우도 꽤 있죠. 그런 식으로 우리가 유럽중심주의에 오염되는 겁니다.

오리엔탈리즘은 이와 반대로 비유럽세계가 열등하다는 주장이지요. 비유럽세계는 비합리적인 미개한 세계로 그리고 있지요. 그리고 그것을 인종주의하고도 결합시킵니다. 워낙 사람들이 모자라다는 것이지요.

1979년에 에드워드 사이드(E. Said)라는 사람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은 이전에도 사용되던 말인데, 사이드가 폭을 넓히면서 개념을 뚜렷하게 했지요. 이 책을 보면 18세기 이후 서양 사람들이 비유럽세계에 대해 어떻게 이런 부정적 고정개념을 만들어 냈는가를 잘 알 수 있죠. 한번 보세요.

이제 서양사에서 유럽중심주의와 관련해 중요한 주제를 얘기 해보죠. 그런데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니까 주로 고대 그리스 이야기만 하겠어요. 서양 사람들은 그리스문명이라고 하는 것을 서양문명의 기초라고 생각해서 굉장히 중요하게 평가를 합니다. 왜냐면 그리스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이성적이고 그래서 합리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또 그리스 문명이 세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중요해요. 서양문명은 19세기 전까지는 세속성보다는 종교성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19세기 와서야 세속성이 나타나기 시작하죠. 그래서 세속성의 근원을 19세기 유럽지식인들은 그리스에서 찾으려고 한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그리스 문명을 오리엔트 문명과 단절을 시켜버린다는 겁니다. 19세기 유럽지식인들은 그리스 문명을 오리엔트 문명과 전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B. C. 3500년부터 시작됐다고 하고 이집트는 B. C. 3000년 정도에 시작됐다고 하죠. 그런데 그리스는 빨리 잡아도 B. C. 1800년 정도에요. 또 그리스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는 지리적으로 인접해있기 때문에 안 받을 수가 없는 위치문명이었죠. 그럼에도 그리스는 오리엔트와는 다르게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얘기를 해요. 이건 왜 그러냐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그리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어요. B. C 5세기문명페르시아 전쟁이 벌어졌죠. 당시 페르시아라는 나라는 지금의 터키 지역과 이란 ․ 이라크 ․ 이집트 지역까지 장악하고 있는 대제국이었어요. 그에 반하면 그리스는 아주 작은 보잘 것 없는 지역이었죠. B. C. 79년에 페르시아가 쳐들어오고, 그리스는 막아낼 재간이 없었던 상황이었죠. 하여튼 전쟁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그리스가 망할 상태에까지도 가지만 결국 그리스의 승리로 끝났죠. 그런데 전쟁 승리 후 아테네 사람들이 굉장히 기분이 좋아서 도시(陶器)에 페르시아 전쟁을 내용으로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그 그림들을 보면 항상 아테네 사람들은 위에서 내리 누르는 형세를 취하고 페르시아 사람들은 항상 밑에 있고 비굴한 모습을 하고 있죠. 승리감의 표현이지요. 또 B. C. 5세기 후반에 가면 아테네의 희곡에도 페르시아 사람들을 굉장히 우습게보고, 폄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봐도 페르시아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내용이 나와요. 그 무렵부터 영어나 서양의 언어에서의 야만(barbaroi)이라는 표현이 나오게 되죠. 페르시아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보는 거예요. 계몽사상의 문명/야만 이분법은 사실 그리스에서 시작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계몽사상가들이 이걸 확대한 거라고 볼 수 있죠. 그리스만 문명이고 그리스가 아닌 곳은 모두 야만이라는 식이죠. 그러나 실제로 페르시아는 굉장히 문명이 발달된 곳이었습니다. 그리스 역사책들은 페르시아의 역사책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러나 불행히도 페르시아 역사책들이 남아있질 않아요. A. D. 5세기까지만 해도 남아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말이에요. <300>이라고 몇 년 전에 나온 헐리우드 영화를 봤죠? 그걸 보면 페르시아 사람들을 완전히 괴물이나 비정상적이고 매우 야만적인 사람들로 그리고 있어요. 그리스 사람들의 문명/야만 개념을 극단적으로 과장하고 있는 것인데 매우 나쁜 태도죠. 이런 것이 사실 지금도 서양 사람들의 속마음이라고 할 수 있죠.

19세기 유럽인들이 그리스와 오리엔트를 구분하는데 작용한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바로 인종주의에요.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람들은 샘계, 이집트 지역은 햄계죠. 이것은 인도-유럽계와 다른 인종입니다. 이런 인종적인 차이도 있지만 종교적인 차이도 있어요. 이 지역은 전부 이슬람지역이죠. 기독교 세력은 중세 이래 이슬람 세력과 계속 갈등관계에 있었잖아요. 그러니 자연스레 그리스 지역과 오리엔트 지역을 구분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되면서 오리엔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종교적, 인종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가 돼 버리는 거죠. 그러면서 완전히 두 지역을 차단해버리게 되는 겁니다.

1987년에 『블랙 아테나』(Black Athena) 라고 하는 책이 나옵니다. 마틴 버낼이라는 영국학자가 쓴 책이에요. 이 책이 고대사에서 요새 제일 중요한 책으로 꼽힙니다. 그리스 문화가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비판하기 때문이에요. 이 사람은 아테나 여신의 신격이 이집트에서 왔다고 주장해요. 이집트의 나일 강 삼각주에 사이스라는 지역이 있는데 거기서 믿는 신이 네이트(Neith)입니다. 네이트의 신격이 아테나가 되었다는 거죠. 네이트를 그리스 식으로 읽으면 아테나가 된다고 해요. 그리스 신들 가운데 토착적인 신도 있지만 많은 신들이 외래종이라는 거죠. 이 뿐 아니라 법이나 제도 등 다른 많은 문화도 받아들였다고 주장해요. 즉, 버낼이 얘기하는 것은 그리스 문화라고 하는 것이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에요. 그런데 19세기 유럽학자들이 이것을 인종주의적 입장에서 부인했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블랙 아테나』를 통해 처음으로 제기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 거죠. 번역도 되었으니 읽어보면 도움이 많이 될 거에요. 이 책을 보면 서양고대사를 어떻게 봐야하느냐를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을 겁니다.

다음에는 그리스 과학 얘기를 좀 해볼까요. 서양 사람들은 자기네 과학에 대해서 굉장한 자부심을 많이 갖고 있죠. 특히 근대에 와서 서양과학이 아주 우월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과학이 세계를 지배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때에도 서양학자들은 서양과학은 기본적으로 그리스 과학에서 발전했다고 보고 그리스 과학이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처럼 이야기 하지요. 그러나 실제로 보면 그리스 과학은 이집트 과학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탈레스나 피타고라스 같은 사람들은 전부 이집트 유학생이에요. 그 뒤에도 많은 그리스 과학자들이 이집트 유학을 갔고요. 그리고 그리스 시대를 지나서 헬레니즘적 시대(hellenistic age)가 있죠. 이 시대는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난 이후의 시대를 말하죠. 그래서 이 시기의 문화를 헬레니즘적 문화라고 부르죠. 이는 오리엔트+그리스문화이죠. 그런데 오리엔트 문화가 들어갔으니까 19세기 유럽지식인들 생각에는 뭔가 질이 낮은 것이 되겠죠? 그래서 19세기 유럽 사람들이 이를 낮춰 부르기 위해서 뒤에 -istic이라는 어미를 붙여버리는 겁니다. -istic은 ‘~비슷한’이라는 의미인데, 이 어미가 붙으면 진짜(오리지널)보다는 저급한 것이 되어버리는거죠.

그런데 실상은 어땠을까요? 헬레니즘적 시대 과학의 중심지는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지금의 이집트죠. 알렉산드리아가 과학의 중심지였다는 것은 고대 이래로 이집트가 과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가 그리스 문화를 떠올리면 마치 굉장히 수준 높고 뛰어난 문화처럼 생각되는 경향이 있죠. 이는 19세기말부터 그리스 역사책들이 나오면서 서양학자들이 그리스 역사에서 안 좋은 부분들을 많이 빼고 미화했기 때문입니다. 미화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민주주의 같은 것이에요. 세계사 책을 읽으면 민주주의의 근원을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찾아요. 그런데 서양 사람들이 아테네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자기네 것으로 생각해왔느냐하면 그건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리스 사람들 자신이 아테네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을 중우정치라고 생각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죠. 그래서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유럽사람들은 아테네 민주주의라는 것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어요. 그때까지 유럽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정치형태는 로마의 공화정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갑자기 아테네 민주주의와 근대 유럽의 민주주의를 결합하기 시작한 거죠. 그때부터 아테네 민주주의를 칭송하기 시작했어요. 근대 민주주의를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아테네를 끌어들인 거죠.

그런데 실제로 아테네 민주주의는 그렇게 민주주의적이지도 않아요. 고대 세계는 어디나 그렇지만 왕정이었거나, 규모가 조금 작은 나라에서는 귀족과두정이었죠. 마치 신라 초기의 화백제도 같은 거죠. 몇몇 귀족 가문 사람들이 모여서 정치를 논의하는 거예요. 아테네 민주주의라는 것도 토대는 귀족과두정이고 거기에 하층 사람들의 권리가 조금 신장된 형태로 봐야 해요. 아테네 민주주의의 상징이랄 수 있는 민회도 실제로는 참여인원도 생각만큼 많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고, 별로 자주 열리지도 않았어요. 결정 방식도 거수가 아니라 함성 같은 것으로 결정되었고, 따라서 선동정치가 유행할 우려가 있었던 거죠. 다른 중요한 기구인 500인 회의라는 것도 추첨에 의해서 각 마을에서 대표를 뽑았다고 하지만, 여기에도 정치와 돈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커요.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운 아테네 민주주의와 그 실상이 많이 다르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그리스 문화라고 하는 것이 19세기 유럽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서 상당한 정도로 왜곡이 되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을 잘 살펴서 볼 필요가 있죠.

그리스뿐만 아니라 서양 역사 전체가 미화, 왜곡됐어요. 프랑스 혁명 하면 우리는 보통 자유, 평등을 떠올리죠. 서양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우리도 그렇게 배웠기 때문인데 그러면 프랑스 혁명을 높이 찬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또 이렇게 되니까 프랑스 역사 자체가 높이 평가될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프랑스는 과연 자유와 평등을 사랑하는 나라일까요? 프랑스는 영국과 더불어 식민주의에 목을 맨 나라죠. 식민주의는 식민지를 지배하면서 식민지인들을 노예처럼 착취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과 자유와 평등이 매치가 될 수 있을까요? 자유와 평등은 식민지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6년부터 베트남에서는 프랑스 식민지배에 대항한 베트남인들의 싸움이 시작됐죠. 프랑스는 끝까지 싸우면서 끝내 베트남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전쟁에 져서 어쩔 수 없이 인도차이나를 내놓고 물러난 거죠. 알제리 문제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런 나라가 프랑스에요. 요새 우리나라에 똘레랑스라는 불어가 유행 이예요. 관용이라는 뜻이지요. 나는 이 똘레랑스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똘레랑스라는 말을 씀으로써 프랑스=좋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주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중요한 사건이긴 하지만 서양학자들이 지금까지 주장해왔던 것만큼 대단하게 내세울만한 것은 아니에요.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맑스주의적 해석이 비판 받으면서 프랑스 혁명의 이미지가 상당히 깨지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역사 공부를 다시 할 필요가 있어요.

오늘은 이정도로 얘기를 하죠. 다음 시간에는 ‘민족주의’의 문제를 다루고. 3강 때는 ‘신자유주의’ 문제를 다루도록 하죠. 요즘 젊은 세대는 민족주의를 굉장히 나쁘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왜 그런고 하니 1980년대에 민족이 근대의 산물이라는 담론이 서구에서 직수입된 탓이 크죠. 그런데 그 담론에 허점이 많아요. 그래서 그걸 비판적으로 다뤄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삶의 어려움을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인데 그 문제를 다루게 될 겁니다. 신자유주의를 세계사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국 사람들의 논리에요. 일종의 제국주의적 흐름의 연속이죠.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에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해요. 그 얘기는 3강 때 자세하게 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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