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에 맞선 우리의 대응 방안은?

[연속기고](6) 겨울 대중강좌 - 녹색성장, 환경적인가 환경의 적인가 2강 ③

[편집자주] 2010년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겨울 대중 강좌 -녹색 성장, 환경적인가? 환경의 적인가?-, 2강 첫 번째 강좌로 “기후 변화에 맞선 우리의 대응 방안은?”이란 주제의 김종환(연세대지구환경연구소 연구원)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토론하였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먼저 간단히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 기온이 1800년 보다 섭씨 2 도 이상 상승하면 ‘임계점’을 벗어나게 되어 기후가 전혀 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임계점을 벗어나면 기후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현재의 예측보다 훨씬 파괴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겨울이 조금씩 더워지거나 얼음이 서서히 녹고 있지만, 단기간에 기온이 급격히 변하던가, 빙하가 평소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녹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피드백(feedback)이라는 현상 때문입니다. 피드백은 어떤 일의 원인으로 작용해서 생긴 결과가 다시 그 원인을 강화해서 더 큰 결과를 가져오고, 그것이 다시 원인을 더 키우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일종의 악순환입니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가 많아지면 해수 온도가 올라가는데, 그 결과 바다가 대기 중에서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줄어들게 됩니다. 사이다가 따뜻해지면 탄산이 다 빠지듯이 말입니다.

결국 온실가스 농도가 더 높아지게 되고 해수 온도는 더 오르게 됩니다. 또, 기후변화 때문에 남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원래 빙하가 반사하던 태양에너지가 고스란히 북극해나 남극대륙으로 흡수되어 극지방 온도가 더 오르게 됩니다. 그 결과 더 많은 빙하를 녹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바탕으로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과거에 실제로 이렇게 기후가 변해왔다는 지질학적 증거가 있습니다. 고기후학자들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 겨우 10년 만에 기온이 10도 가량 상승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를 2도 이내로 억제시켜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0.7도가 상승했습니다. 이산화탄도 농도를 400~450 ppm으로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많고 일부는 350 ppm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농도는 385 ppm이고 매년 2 ppm 정도 증가하고 있으므로, 짧게는 8년, 길게는 32년 정도가 남아있습니다. 최소한으로 1990년 기준으로 50%를 줄여야합니다. 이 때 1990년 기준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 각국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2020년까지 2005년 기준 4% 줄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이라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매우 보잘것없는 내용을 포장하기 위해 배출전망치를 인위적으로 높게 잡은 것입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과 교토의정서가 감축 기준으로 삼고 있는 1990년을 기준으로 하면 오히려 91%가 증가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턱없이 부족한 ‘감축목표’를 설정한 나라가 한국만이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교토의정서는 1990년 기준으로 겨우 5% 감축시키자는 내용이었는데도 당시 미국 등의 압력으로 강제조항이 삭제되고, 실제로 배출량을 줄이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는 온갖 틈새조항들이 생겼습니다. 언론에서 흔히들 ‘온실가스 모범국’이라고 불리는 유럽연합조차도 1990년 대비 20~25%를 감축목표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자신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최근 경제위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줄어서 달성이 불투명합니다.

미국 오바마는 아직 감축목표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현재 2005년 기준으로 17%를 감축하는 안이 상원으로 올라갔는데, 이는 1990년을 기준으로 하면 4% 감축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50%는 1990년 기준인데, 세계적으로 그 이후 계속해서 배출량이 증가한 결과 현재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을 포함한 주요 산업국들은 약 배출량을 80% 이상 줄여야합니다.

배출권 거래

제가 맡은 발표제목이 “우리의 대응 방안은 무엇인가”인데요, 먼저 현재 정부와 기업들에서 어떤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는 지를 살펴본 뒤, 저는 그러한 방안에 왜 반대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탄소 시장을 통한 배출권 거래입니다. 한국기업들이 이에 반대하며 죽는 소리를 워낙 많이 해서, 한국에서는 탄소 시장 도입을 주장하는 것이 꽤 괜찮은 주장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명박 역시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선 탄소 배출권 거래제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탄소 배출권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배출권 거래제도(cap and trade)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업들에게 이러한 권리를 지급한 뒤 매년 그 권리의 총량을 줄여나가는 동시에(cap) 기업과 국가들끼리 그 권리를 사고 팔 수 있게 해주는 것(trade)을 말합니다. 이 제도의 주창자들은, 정부의 일괄적 규제가 아닌 기업들의 ‘자율적 혁신’을 통해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효율성이 더 높고 복잡한 의사결정과정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A와 B 모두 100만큼 배출하고 있었고 둘 다 10씩 감축하기로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A와 B 모두 90만큼의 배출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년 동안 A는 5만큼만 감축하고 B가 15만큼 감축했으면, A는 5만큼 감축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고 B는 5만큼을 초과 감축한 것이 됩니다. 이를 시장은 B가 혁신을 통해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방법으로 배출을 줄였다고 인정해줍니다.

또 A에게 B가 ‘남긴’ 배출권을 사들이도록 함으로써 비록 혁신을 이루지 못한 A에게도 비용 상의 절감을 도와주겠다는 것이 바로 배출권 거래입니다. 배출권 거래에는 이뿐만 아니라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CDM)과 공동이행(Joint Implement, JI)까지 포함되는데 이 둘은 뒤에서 다루겠습니다.

배출권 거래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인 탄소 배출권을 기업들에게 지급해야 합니다. 여타의 상품과 달리 무형의 상품을 사실상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단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기준으로 지급될까요? 현존하는 가장 큰 배출권 거래 시장인 유럽연합의 배출권 시장(EU Emission Trade Scheme, EU-ETS)과 교토의정서의 모델이 된 것이 과거 미국의 아황산가스 배출권 거래인데, 이 두 개의 거래 모두 “현재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가장 오염을 많이 시키는 기업들에게 오히려 더 많이 배출권을 줍니다.

기존의 환경 및 보건 법규에 따른 제재는 오염자 부담원칙에 입각해 오염을 더 많이 시킬수록 더 큰 부담과 비용을 징수했는데, 배출권의 경우에는 오히려 오염을 많이 할수록 사실상 더 많은 돈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언제나 최악의 경우, 배출을 가장 많이 하겠다는 시나리오를 제출할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자신이 현재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부풀려서 보고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배출권을 얻어갑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를 규제하거나 감시할 강력한 세계정부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각국과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이 때문에 EU ETS의 경우, 기업들이 한해 실제 배출하는 것보다 배출권을 10% 더 많이 지급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배출권 가격이 60분의 1로 폭락해서 시장 자체가 사실상 붕괴하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시장이 기대한 혁신은, 엉터리로 배출권을 청구하는 서류 조작의 ‘혁신’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지금도 EU는 “좀 더 정직하게 말해 달라”는 호소 이상으로는 실질적인 제재 수단이 없는 실정입니다. 현재 EU 배출권(EU emission Allowance, EUA)의 가격은 15 유로(22달러) 정도인데 IPCC는 배출권이 100달러는 되어야 수십 년 안에 배출량 감소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배출권 거래의 문제점

우리는 여기서 나아가, 배출권이 왜 권리이자 상품이어야 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는 오염물을 배출하는 것은 규제 대상이었는데, 앞으로는 하나의 권리이자 상품으로 인정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상품이자 권리이기 때문에 정부가 함부로 그것을 줄이거나 취소시킬 수 없습니다. 마치 한 개인의 자동차를 정부가 함부로 압류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기후변화를 2도 이내로 막기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현재의 20% 수준으로 줄여야 하는데, 어떤 자산이 몇 년 이내로 80%가 사라진다면 기업들은 배출권에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배출권 자체를 거부하겠다고 협박할 것입니다. 이는 이미 현실에서 감축목표를 높게 정하려할 때마다 기업들이 취하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민주적으로 결정해야할 내용이, 배출권을 인정해줌으로써 기업들과의 흥정 대상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구의 대기는 모두의 공공재이어야 할 텐데 기업들이 그것을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인정해준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봤던 A와 B의 경우를 다시 봅시다. 현실에서 A와 B는 상대방과 무관하게 각자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 다음 막판에 ‘뚜껑을 열고’ 각자의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A는 B의 배출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배출을 늘려도 될 것이라는 계산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배출권 가격과 배출을 줄이기 위한 비용을 저울질해가며 가장 수지타산이 맞는 수준으로만 배출량을 줄일 것입니다.

법으로 규제를 했으면 A와 B 모두 배출량을 감축했겠지만, 배출권을 권리로 인정하고 거래를 허용했기 때문에 A는 상대적으로 배출량 감축에 신경을 덜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배출권을 사는 것이 아예 금지되어 있다면, A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배출량을 더 많이 줄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배출권 거래제는 애초에 감축한 목표가 있으면 절대로 그 이상은 줄이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배출권 거래를 통한 환경 개선이, 정부의 직접규제보다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1980년대 산성비가 문제시되면서 각국이 아황산가스를 줄이기 위한 규제를 도입했는데, 석탄과 화력발전 자본의 입김 때문에 미국‘만’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독일에서는 이미 1998년에 아황산가스 배출량을 90% 줄였지만, 미국에서는 2010년까지도 35%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휘발유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납(Pb) 성분을 제거한 무연휘발유를 보급하는데 있어 중국과 일본은 각각 3년과 10년이 걸렸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미국이 무려 23년이나 걸린 것도 배출권 거래제 때문이었습니다.

교토의정서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A와 B의 비유를 다시 들자면, B가 아예 파산하면서 그가 갖고 있던 배출권 전체가 고스란히 남아버린 것이 바로 교토의정서입니다. 배출권은 권리이자 상품이기 때문에 B가 이전의 생산 상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어도 배출권을 다시 회수할 수단이 없고, 대신 창고 정리하듯이 B가 배출권을 팔아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교토의정서는 1990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5%를 감축하기로 했는데 소련과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경제가 1990년 이후에 폭삭 망해버렸습니다. 교토의정서에서 배출권 거래 제도를 둘러싼 협상은 1990년대 후반에 진행되었는데, 배출량을 줄여야할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은 동유럽 국가들의 이 남아도는 배출량을 염두에 두고 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환영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왜 탄소 배출권이 기업들에게 할당되어야 할까요? 어째서 각 지자체 정부나 시민단체에 할당되어서 기업들이 그것을 사도록 하지는 않을까요? 또는, 더 원천적으로 석유를 생산하는 기업들에게 그들이 사들인 배출권만큼만 석유를 생산하라 요구하지는 않을까요? 이는 탄소 배출권 거래제 자체가 등장한 배경과 맞물려 있습니다. 애초 교토의정서 초안에는 탄소 배출권 거래제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일본, 호주 등 교토의정서에 소극적인 국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포함시킨 것이 바로 미국이 요구한 탄소 배출권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배출권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기업가들과 일부 환경단체들은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합니다. 기업들의 부담해야 할 비용을 줄임으로써 기업들의 참여를 유인하는 점에서는 효율적일지 모릅니다. 미국에서 아황산가스와 납 휘발유를 줄이는데 그토록 오래 걸린 대신, 미국 기업들은 다른 나라 기업들보다 수년 동안 비용을 절감하며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고, 수년이 지나 최신 기술 도입 비용이 내려갔을 때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미국에서 특히 지역사회와 시민들, 특히 배출권을 팔기 위해 공장을 유치하는데 앞장섰던 곳에 사는 시민들은 다른 나라들보다 더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살아야했고, 결국 보건상의 피해가 너무나 심각해서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당 지역에서는 배출권 거래가 더 이상 적용되는 것을 금지할 정도였습니다. 시장이 기대했던, 비용절감을 위한 ‘혁신’이 이번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 받고 오염물을 몰아주자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BP, Shell 등의 석유 기업들은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초과 할당받은 배출권을 팔아서 수백만 파운드의 이익을 남겼지만, 영국의 무상의료체계를 따르는 병원들은 이들로부터 배출권을 사들여야 했습니다.

이처럼 사회와 시민들이 받는 피해와 그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은 배출권 거래제도의 ‘비용’으로 집계되지 않습니다. 배출권 거래제가 이른바 ‘효율적’인 이유는 이처럼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사회의 다른 부문들로 전가시키기 때문이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집중됩니다. 불평등을 보전해준다는 점 때문에 애초부터 기업들을 유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출권 거래제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기업들에게 배출권을 나눠주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석유, 자동차 기업들은 화석연료와 자동차를 공급하는 기업이 아니라 그것을 소비하는 기업들이 배출권 거래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이 없기 때문에 중앙정부에 의한 규제보다 효율적이라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우선 효율 때문에 기업들에게 지구 대기에 관한 결정을 맡길 근거도 없지만, 탄소 시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복잡한 ‘탄소 회계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이는 거짓말입니다. 이 문제는 CDM과 JI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납니다.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은 우리말로 ‘청정개발체제’라고 번역되며, JI(Joint Implement)는 ‘공동이행’이라고 번역됩니다. 둘 다 대상의 차이만 있을뿐 핵심은 똑같으며 다음과 같습니다: 한 나라에 투자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 투자한 나라에서 그만큼 배출권(CER, certified emission reduction)을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때 투자를 받은 나라가 감축의무가 없는 개발도상국이면 청정개발체제, 감축의무가 있는 선진국이면 공동이행으로 나뉘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제도입니다.

CDM의 가장 큰 문제는 실제로 배출량을 감축하기 보다는 앞서 말한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을 통해 사실상 무에서 유로 배출권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인도와 함께 청정개발체제로 가장 많은 투자를 받는 나라인데 그곳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03년 중국 정부는 아시아 개발 은행으로부터 샤오구산(Xiaogushan) 댐을 짓는 투자를 이끌어냈고 2006년에 완공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2005년 6월에 선진국의 투자자가 완공을 앞둔 댐을 사들인 다음에 “외국 투자가 없으면 사실상 공사가 시작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내용을 서류로 꾸며서 제출했고, 이들 투자자를 고객으로 여기는 세계은행이 그 주장을 뒷받침하면서 그는 배출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공동이행을 따라 체코에서 16개의 소형 수력발전을 만들었지만, 절반이 넘는 10개 이상은 사실 원래 지으려던 것이라는 점이 다른 곳도 아닌 세계은행 보고서에서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CDM은 추구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기업인 골드 스탠다드(Gold Standard) 사에 따르면 CDM의 절반 정도가 새롭게 추가 투자 된 것이 전혀 아니고 사실상 이미 진행 중인 사업에 녹색딱지만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엉터리인 이유는 “그 투자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학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기술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기술의 영역에 속하지만, CDM과 JI가 만들어내는 배출권(CER)은 전문가들이 얼마나 서류를 잘 꾸며내고 그럴듯하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낸 다음, 그것과 비교해서 온실가스를 감축시켰다고 주장하느냐에 달린, 사실상 ‘문학’이나 창작의 영역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CER은 기업들에게는 온실가스 의무감축에 따른 배출권보다 편리하고 값싼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는 동시에, 환경단체들로부터는 엄청난 회계부정으로 파산한 엔론(Enron)을 산업계 전체가 답습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 이러한 조작과 날조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CDM이 원래 목표했던 재생가능에너지로 투자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왜냐하면 시장원리에 따라 가장 가격이 저렴한 기술적 처방으로 돈이 몰릴 텐데 친환경적인 재생가능에너지는 여기서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투자가 몰리는 곳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수백 ~ 수천 배 크다고 알려진 프레온가스 누출을 소량 막는 기술입니다. 애초에 규제대상이 되어야할 이 프레온가스들의 누출을 막도록 도왔다는 이유로, 이산화탄소로 산출했을 때 수백~수천배나 많은 배출권을 챙기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 어찌나 ‘비용 대비 효율’이 좋았는지, 전체 2006년에는 전체 CDM의 70% 이상이 이런 누출 방지 기술에 투자한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그해 재생가능 에너지에 투자한 CDM은 2%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가격경쟁 때문에 서류상으로 그럴듯하고 기후변화 방지에는 사실상 아무런 효과도 없는 사업에 돈이 투자되면서, 그 대가로 선진국 본토의 온실가스 배출의 면죄부를 주고 있습니다. 화석기업들은 CDM을 통해 자신의 생산시설을 유지할 명분을 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의무감축에 따른 배출권 거래제든, 청정개발체제든 모두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인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기업들의 경쟁과 이른바 ‘혁신’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전제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압력에 의해 감축목표가 왜곡되고,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배출권이 쌓이는 등 위에서 말한 온갖 문제에도 불과하고 “차차 하다보면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자유 시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입니다.

그러나 기업들, 특히 세계 최상위 기업들은 모두 현재의 화석연료 중독을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2009년 세계 10대 기업은 1. 로열 더치 쉘, 2. 엑슨 모빌, 3. 월마트, 4. BP, 5. 쉐브론, 6. 토탈, 7. 코코노필립, 8. ING 그룹, 9. 시노펙(중국 정유회사), 10. 도요타 였습니다. 중국 정유회사인 시노펙을 포함한 7개가 정유회사이고 2개는 자동차 회사와 거대한 주차장이 없으면 안 되는 대형 슈퍼마켓 기업입니다. 이마저도 2007년 경제위기 이후 GM과 크라이슬러가 빠진 결과입니다. 이러한 거대기업들은 단순히 상품 경쟁만이 아니라 사회를 구조적으로 자신에 맞게 바꾸어 놓음으로써 이러한 지배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이 지난 몇 년간 에너지부문에 투자한 금액의 변동을 살펴보면, 세계에서 돈이 가장 많은 기업들에게 세계은행이 돈을 투자하며 화석연료 생산을 도와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재생에너지(환경파괴가 큰 대형수력을 제외한)에 대한 투자는 많이 상승했는데도 여전히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2008년에는 화석연료에 대한 지원은 102% 늘어난 데 반해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은 11% 늘어나는데 그쳐서 격차는 더 커졌습니다. 10년째 미국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으며 벌이고 있는 이라크·아프간 전쟁이 석유와 천연가스, 송유관을 둘러싼 전쟁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또, 교토의정서가 이처럼 구멍투성이가 된 이유도 석탄기업(Peabody)과 석유기업(Exxon) 파견자들이 미국 대표단 옆에서 협상문구를 낱낱이 뜯어고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문제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설상가상으로 화석연료에 사활적 이해를 건 거대기업들이 시장경쟁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경쟁에 의해 구조가 바뀔 것이라는 것은 몽상에 가깝습니다.

우리의 대안

지금까지는 배출권 거래제도의 한계를 살펴봤는데 그러면 어디서 대안을 찾아야할지 제 생각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가장 분명한 대안 중 하나는 재생가능에너지입니다. 전력생산은 모든 나라에서 주요한 온실가스 배출요인 중 하나이고, 한국의 경우 에너지 부문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에서 84%를 차지합니다. 재생가능에너지 중 기술이 가장 많이 개발되었고, 가격도 가장 싼 풍력 발전을 살펴보겠습니다. 현대의 풍력 터빈이 작동하는 원리는 예전 풍차의 원리와 같습니다. 바람이 불면 잘 깎여진 프로펠러 날들이 공기 중에서 돌면서 프로펠러 중앙 금속 상자 안에 위치한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풍력 터빈이 거대해야하고 또 바람이 강한 곳에 세워져야 하는 까닭은 전적으로 산수의 문제입니다. 생산되는 전력은 풍속의 세제곱에 비례하고 프로펠러 날 길이의 제곱에 비례하는데, 이 말은 바람이 2배 강해지고 프로펠러 날의 길이를 2배로 늘리면 32배나 많은 전력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술은 단순하고 유지보수 또한 쉽습니다. 어느 한 곳에 풍력 터빈이 일단 세워지면 대부분 스스로 알아서 작동하고 연료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덕분에 풍력 발전은 적은 비용만으로도 30년 이상 운행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투자금의 대부분이 초반에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개인들의 선택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투자해서 커다란 풍력 단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한국에는 대관령과 제주도 해안에 시범적인, 또는 연구용으로 조성된 풍력단지가 있을 뿐 정부나 대기업은 풍력발전에 본격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3면이 바다이기 때문에 지면과의 마찰이 없어 바람이 더욱 강한 해상풍력발전을 추진하기에 최적의 조건입니다. 자동차 주행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인천대교처럼 바다를 가로지르는 구조물은 만드는 지금, 그 기술로 덴마크에서 하듯 바다 위에 풍력발전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를 강제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발전부문뿐만 아니라 교통과 수송 또한 중요한 배출원입니다. 버스와 지하철은 승용차보다 승객 1인당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훨씬 적기 때문에 이를 늘려야 합니다. 승용차를 버스로 교체하면 온실가스 배출을 70 %나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지구를 살리라고 광고를 해봐야 대중교통의 질이 나아지지 않으면 현실이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지하철, 버스를 타고 출퇴근해본 사람이라면 현재의 대중교통은 이미 포화라고 느낄 것입니다. 대중교통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하고 반대로 가격은 내려야 합니다. 버스전용차선을 늘리고 24시간 운행해야 합니다. 당연히 그에 따라 발생하는 택시기사들의 실업을 정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택시기사들은 IMF 이후 부쩍 늘어난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서민이고 다수는 노동자입니다.

대중교통 악화의 주범은 그들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대중교통에 대한 투자를 줄여온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화물 수송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철도를 늘려야 합니다. 철도는 트럭보다 화물 1톤당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1/8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철도를 민영화하기 위해 철도노조를 길들이려 하고 있는데, 철도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철도 노동자들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미국 LA에서는 전철과 기차를 민영화했는데, 이를 자동차와 타이어 기업들이 인수해서 사실상 해체시켜 버렸습니다. 미국은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철도 민영화가 대부분 철도 수송의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수익이 아니라 인간과 지구의 필요를 우선하기 위해 철도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비용은 탄소세 같은 간접세 형태로 걷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환경단체들이 혼잡세나 통행세, 유류세 인상에 찬성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택시 기사들처럼 자동차와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대중교통이 불편하거나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처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버스와 지하철이 자기 집 5분 거리에 있고 붐비고 또 막히지 않는다면 주차비와 기름 값을 감수하며 차를 몰고나갈 사람은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또, 2008년 촛불투쟁 한 가운데에서 온 국민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면 투쟁한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경유 값 보조금을 요구했는데 이를 통해 화물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세금을 더 많이 걷자는 주장을 환경단체들이 한다면, 이는 사실상 코너에 몰린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이 될 것이고, 기후변화의 책임을 엉뚱한 사람들에게 묻는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한국인의 97%가 기후변화를 심각하다고 여기는데 그런 지지기반을 스스로 날려버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자동차·석유 기업들이 반대 캠페인에 서민들을 동원하도록 해줌으로써 투쟁 전술로서도 맞지 않은 것입니다. 특히나 이명박 정부처럼 부자들에게 수조원이 넘는 세금을 감세해준 마당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동차와 도로 건설 등으로 떼돈을 번 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대중교통과 철도를 늘려야 합니다.

실천적 행동

대안을 간단히 몇 가지 말씀드렸습니다만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들은 하나같이 재벌들과 이명박 정부가 보기에는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그들은, 왜 다른 나라보다 먼저 풍력발전에 ‘성급하게’ 돈을 투자해야 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보다, 조금 더 기다리면 풍력발전 비용이 더 내려갈 것이라는 점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또 이명박 정부는 지금도 대중교통이 적자인데 이를 확대해야 한다니,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오히려 돈을 더 높게 받는 대신 이를 감당할 수 없고, 차도 없는 사람은 서울을 떠나라는 식으로 말할 것입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가 보여주듯이 이명박 정부에게는 돈 없는 서민들이 서울에서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성격은 그렇다 하더라도 과연 정부가 이런 일들을 감당할 능력이 애초부터 있는 것인지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독하게 마음먹고 사업을 벌여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꾼 경우는 수도 없습니다. 당장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라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사업에 수십조 원을 투자하려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이미 진행된 더 극적인 변화들을 살펴보면 2차대전 당시 미국 정부를 들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미국은 자유 시장을 떠들었지만, 전쟁이 터지자 정부가 산업의 구석구석까지 모든 것을 총괄했습니다. 정부가 명령을 통해서 자동차 공장에서는 탱크를, 타자기 공장에서는 기관총을 만들었고, 롤러코스터 공장에서는 폭격기들을 수리했습니다. 단지 공장들에 명령만 내린 것이 아니라 매주 철강, 석유 같은 핵심 산업물자가 어디에서 얼마나 생산돼서 어디로 공급되는지를 다 정부가 정했습니다. 처음에는 생산이 더뎠지만 정부가 노동자들과 산업계를 설득하고 투자한 결과, 조선소에서 구축함 하나를 짓는데 걸리는 기간을 2년 만에 245일에서 39일로 단축시킬 수 있었고 일부 조선소에서는 19일 만에 만들었습니다.

한국을 돌아보면, 얼마 전에 부도가 난 쌍용차 공장에는 일하겠다는 노동자와 멀쩡한 설비가 그대로 다 있었습니다. 팔아치우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상하이 자본에게 책임을 묻고 쌍용차를 국유화해서 버스와 철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합니다. 60년 전에 타자기 공장에서 기관총도 만들었는데 SUV 만들던 공장에서 버스 만드는 것을 못할까요? 로봇 물고기를 4대강에 띄우겠다는 생각 따위가 아니라 이런 대책이 필요합니다.

다시 미국 사례로 돌아가자면, 미국 정부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GNP 전체와 맞먹는 예산을 의회에 요구했고, 재정적자가 2700억 달러로 늘어날 때까지 글자 그대로 돈을 찍어냈습니다. 참고로 전쟁이 시작될 당시 미국의 GNP는 55억 달러였습니다. 그러고도 미국과 연합군 진영이 합심해서 경제를 이끌었기 때문에 각국이 막대한 부채 때문에 파산하기는커녕 오히려 경제공황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돈은 이전 경제공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모두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임금 또한 50% 이상 올려주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식량 배급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다수의 노동자들은 오히려 전쟁 이전보다 영양상태가 더 좋아져서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노인사망률이 40 %나 감소하고 학생들의 평균 신장과 체중이 모두 늘어났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전쟁을 통해 수천만 명을 죽이기 위해 이런 일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수억 명을 살리기 위해 이런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부에게 의지만 있다면 산업을 뜯어고치고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복지를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 완전히 가능합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은행 소유주의 자산을 살리는데 퍼부을 것이 아니라 녹색 일자리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즉, 지구를 위해 더 많은 불편함과 비용을 지불하는 희생을 감수하라고 사람들을 설득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이윤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돈을 쓰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 아니라 정치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들어맞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에 코펜하겐 총회는 제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물론 회담장 안에서는 분명히 말장난뿐이었고 아무런 성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덴마크 경찰이 수백 명을 연행하는 와중에도 회담장 밖에서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후가 아니라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라고 외치며 환경단체, 농민단체, 노동조합 등이 연대해서 시위를 벌이는 것을 보며 앞으로 기후변화 문제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직감했습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언론은 늘 그래왔듯이 “일부 아쉬움은 있지만 성공적 회담이었다”고 우리의 눈을 속일 것입니다. 단적으로, 교토의정서 협상이 진행 중이던 90년대에는 미국의 횡포나 이에 타협하는 EU를 비판하며 회담장 밖에서 시위하는 단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지난 12월의 시위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정부들의 입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겠다는 거대한 기후정의 운동의 정치적 진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 기후변화 총회는, WTO나 G8 정상회담이 과거 그랬듯이 신자유주의와 기업권력, 그리고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서 압력을 행사하는 그런 자리가 되지 않을까 전망해봅니다. 1999년 시애틀에서 벌어진 WTO 각료회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기업권력과 자본주의 폐해에 맞서 싸우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후 계속 성장하여 동유럽 붕괴 이후 “역사의 종말”을 운운하던 당시 사회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었습니다. 2009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기후정의 운동 역시 장차 기업과 그들만을 대변하는 정부들이 독식하는 기후정치에 맞설 중요한 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한국에서도 기후정의 운동이 NGO들만의 단일쟁점 운동을 넘어서 사회단체, 노동조합 등이 참가하는 더 큰 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정리하자면, 기후변화를 위한 시간이 우리에게는 많이 남지 않았고 현재 각국 정부들의 대책은 사실상 전무한 것과 같습니다. 주류언론에서 말하는 배출권 거래 제도를 비롯한 시장원리를 도입하자는 것은 겉만 요란할 뿐 제대로 된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제가 소개해드린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기술과 대안이 이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어디까지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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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 온실가스 , 배출권 거래 , 탄소배출권 , C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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