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 Ⅱ

[연속기고](9) 겨울 대중강좌 - 유럽중심주의의 세계사 서술 비판 2강

강사: 강철구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 저자

오늘은 민족주의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비판의 차원을 넘어서 민족주의를 버려야할 것으로 생각하죠. 여기에 모인 사람 중에 혹시 민족주의에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 있나요?

요즘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신문과 잡지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많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인종주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요, 인종주의의 원인을 민족주의에서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종적 차별의 원인이 민족주의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즉, 한국 사람이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혈통이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차별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 사람들은 단일민족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더 나아가 ‘단군이란 개념조차 없애야 한다’ 혹은 ‘단군신화를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학문적 경향이 민족주의에 대한 한 가지 관점만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우파와 좌파 진영이 모두 민족주의를 나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파진영에서 민족주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 사이의 장벽을 없애기 위해 민족주의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선진국 자본이 국경에 제한 받지 않고 아무 곳에나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신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대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 이후 신자유주의를 전폭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이를 지지하는 우파 입장에서 당연히 민족주의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아이러니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좌파진영에서의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입니다. 좌파입장에서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유는 그것이 억압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 안에서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가져온다는 것이죠. 인종적 차별이 그것이죠. 또 민족, 국가를 강조하며 다른 나라와 사이에 불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억압성만 갖는 것은 아닙니다. 민족주의는 다른 나라의 억압에 저항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좌파진영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고 하면 당연히 신자유주의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민족주의를 옹호해야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나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거부합니다. 나는 그들이 도대체 누구와 무엇을 가지고 싸우려고 하는가를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최근에 와서 민족주의가 비판받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그 이론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근대주의적 해석 때문입니다. ‘근대주의적 해석’은 민족주의를 해석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1960년대부터 시작해서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20년 지난 지금에는 민족주의에 관한 이론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서양에서 민족주의 이론을 연구하는 사람은 대부분 근대주의적 해석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주의적 해석은 민족주의와 민족을 매우 낮게 평가합니다. 우리는 보통 민족이라는 것이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근대주의적 해석에서는 민족이 근대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대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민족의 기원은 2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민족의 역사도 200년밖에 되지 않게 되죠.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라고 느끼는 의식, 즉 민족정체성이라는 것도 200년밖에 되지 않으니 뿌리가 깊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으로 설정되죠.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부터 지구화(globalization)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민족주의, 민족의 시대는 끝나간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민족과 민족주의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민족과 민족주의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이러한 경향들은 모두 근대주의적 해석의 결과로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한국의 지식인들이 서양 학자들이 만들어낸 근대주의적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도 민족주의를 낫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생긴 것입니다. 외국의 이론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조건에 맞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때는 우리 사회에 적합한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하는데, 한국의 지식인들이 무분별하게 서양의 이론을 수용해서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 도서관에서 한국 사람이 민족주의 이론과 관련해서 쓴 책을 본적이 있습니까? 있다고 한다면, 그 저자가 민족주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까? 저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는 우리를 지키는 이데올로기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그렇습니다. 강대국들에게는 민족주의가 필요 없지만 약소국들에게 민족주의는 아직도 중요한 이데올로기입니다. 이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서양의 이론에 따라 민족주의를 폐기하자고 하는 주장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습니다.

박노자씨는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한국은 이미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민족주의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국은 불행히도 세계 4대 강국에 둘러 싸여 있습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둘러 싸여 있는 것이죠. 이런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약소국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를 이해한다면 한국을 제국주의 국가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민족주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억압적 성격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다양한 역할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근대주의적 해석만이 민족주의와 민족에 관한 담론을 지배하는 경향에는 상당히 문제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는데, 1) 영속주의 2) 원초주의 3) 근대주의입니다. 1)영속주의는 민족이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기원을 가지고 내려온 것이라고 보며 근대주의적 해석이 나타나기 이전에는 민족주의에 대한 주된 관점이었습니다. 2)원초주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성에서 민족이나 민족주의를 찾는 관점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지 않고 군집생활을 하기 때문에 민족을 형성하려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원초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영속주의자들에 속합니다. 그러나 영속주의자들은 반드시 원초주의자들은 아닙니다. 영속주의자들 중에는 역사가들이 많은데, 역사가들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 본성과 같이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힘든 요소들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이 있지만, 이를 구분하지 않고 두 가지를 뭉뚱그려 원초주의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3) 근대주의는 근대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상황, 즉 프랑스 혁명(1789), 자본주의 발전, 산업혁명, 근대국가 형성 등과 민족주의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은 18세기 말에 민족과 민족주의가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근대주의적 해석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영국 출신의 겔너(E. Gellner)라는 사회학자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앤더슨(B. Anderson)이라는 미국인 인류학자가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마지막으로 홉스봄(E. Hobsbawm)을 꼽을 수 있습니다. 홉스봄은 영국의 대표적 맑스주의 역사학자입니다. 겔너는 1983년에 『민족과 민족주의(Nation and Nationalism)』라는 책을 썼고 앤더슨도 같은 해에『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를 썼습니다. 홉스봄이 쓴 책이 1990년에『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Nations and nationalism since 1780)』입니다. 홉스봄의 책은 서양에서 민족주의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입니다. 홉스봄의 책이 많이 읽히는 것은 그가 역사학자라서 근대주의 해석의 논리를 역사과정 속에서 잘 녹여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겔너나 앤더슨의 책은 역사적인 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근대주의적 해석은 크게 다섯 개의 주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하죠. 첫째로 “민족, 민족주의는 근대의 산물이다”라는 것이고 둘째로 “민족과 민족주의는 산업화, 자본주의, 근대 국가의 형성과 관련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 주장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겔너의 논의를 참조해야 합니다. 겔너 이전까지 민족주의를 연구한 사람들은 민족주의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보았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형성되었가를 주로 살펴보았습니다. 한스 콘(Hans Kohn)이 그와 같은 경향을 대표하는 학자라고 할 수 있죠.

겔너는 이러한 태도와는 달리 민족주의를 사회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래서 민족주의를 산업사회와 관련시키는 관점을 제시했죠. 겔너가 민족주의를 산업사회와 관련지어 설명하는 점은 참신하지만, 여기서 서양 사회학이 갖고 있는 약점이 드러납니다. 여러분, “산업사회와 대비되는 사회/개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농업사회이죠. 산업사회는 근대 사회이고 그 반대 자리에 있는 농업사회는 전근대 사회입니다. 근대 사회는 합리적 사회이고 전근대 사회는 비합리적 사회이죠.

이렇게 근대와 전근대 사회를 엄격하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문제이죠. 이것은 사회학의 태생적 한계입니다. 왜냐면 고전 사회학자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 프랑스의 에밀 뒤르켐, 독일의 막스 베버에 의해 사회학은 근대 사회를 분석하는 도구로 정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근대 사회와 비근대 사회와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전제가 놓여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비유럽 사회를 전근대 사회로 보기 때문에 유럽 중심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논점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겔너는 민족주의를 왜 근대적 현상으로 볼까요? 그것은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필요하고 이들은 농업사회의 노동자들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산업 노동자들은 동력, 기계를 사용해야하니 기계의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원리를 이해하려면 최소한 지침서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죠. 따라서 산업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문자 해독, 최소한의 계산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산업 사회에서의 이러한 요구가 대중교육을 필요로 하게 합니다. 그 결과 산업사회에 오게 되면 문맹자들이 줄고 문화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겔너는 이렇게 만들어진 산업사회의 문화를 고도문화라고 부릅니다.

이점에서 근대의 문화는 농업사회의 문화와는 다릅니다. 왜냐면 농업사회는 기본적으로 지역 간의 교류가 원활하지 않았고 신분차별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문화가 동질적이 아니었고 신분에 따라서도 문화적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산업사회에는 문화가 상당한 동질성을 가지면서 높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겔너는 이점에 주목해서 산업사회라는 이 문화적 동질적인 사회를 지키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바로 민족주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공동체가 바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겔너는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근대주의적 해석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든다는 것이죠. 이와 달리 영속주의적 입장에서는 민족이 먼저 존재하고 그것이 민족주의를 만들어 낸다고 봅니다.

세번째로 근대주의적 해석은 민족주의가 먼저 존재하고 민족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민족이 인위적 성격, 억압적 성격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죠. 겔너, 앤더슨, 홉스봄이 모두 이런 태도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앤더슨은 민족주의 형성을 특히 인쇄자본주의와 관계 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쇄물이 많아지며 하나의 동질성을 느끼는 집단이 탄생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19세기 후반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동질성 확보라는 사업을 국가가 주도하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라는 수직적 방향으로 민족이 만들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억압성을 갖는다는 것이죠. 홉스봄도 역시 근대국가의 형성, 산업화, 자본주의 등이 민족주의를 만들었고 그로 인해 민족이 탄생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인위적인 것이고 억압적인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이데올로기라고 판단합니다. 이런 점에서 근대주의적 해석은 민족주의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근대주의적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족적 정체성에도 크게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중 정체성을 이야기하기도 하죠. 즉, 사람은 하나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학생은 성적으로 여성이고 계급적으로 노동계층 출신이고 세대로는 청년층이고 종교가 없다고 한다면 이런 것이 바로 다중 정체성이죠. 이렇게 사람들이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족 정체성이 특별히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정체성이 학급의 정체성, 갱단의 정체성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근대주의적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족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따라서 쉽게 사라질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죠. 다섯째로 “지구화시대이기 때문에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민족국가가 해체되고 세계가 하나가 되는 과정이므로 민족의 운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홉스봄도 자신의 책에서 당분간 민족은 의미를 갖겠지만 곧 사라질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대주의적 해석에서 제기하는 이런 주장들은 모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근대주의적 해석의 문제점은 민족이라는 역사적 실체에 대해서 비역사적 접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족이나 민족주의라는 것을 18세기말 이후에 한정시키기 때문에 그 이전에 나타나는 민족이나 민족주의적 현상을 외면한다는 것이죠. 어떤 역사적 현상이라도 할지라도 역사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없던 것이 어떤 순간을 기점으로 나타날 수는 없습니다. 역사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단절로 보이기도 하지만 단절이란 없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인데 근대주의적 해석은 이점에서 문제가 많죠. 그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근대 사회만을 중시하는 사회학자, 정치학자와 같은 사회과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들은 실제로 전근대의 역사를 볼 능력도 없습니다. 근대 이전의 사료를 검토하기 위해서 필요한 각국어(vernacular)의 이해같은 언어능력 등의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역사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의 훈련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러나 많은 역사학자들은 전근대 사회에서도 민족 혹은 민족주의와 비슷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특히 중세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중세시대에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영국의 예를 들어보죠. 영국의 경우는 이미 8세기에 잉글랜드 민족의 형성을 볼 수 있습니다. British는 영국의 섬 전체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 안에는 여러 종족들(English, Welsh, Scottish)이 있는데 English의 경우에는 8세기에 민족 형성이 이루어 졌다는거죠. 또한 아브로스 선언(The Declaration of Arbroath 1320년)에서도 민족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로스 선언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교황에게 보낸 탄원서입니다. 14세기에 잉글랜드 인들이 자꾸 침입하여 괴롭히자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하게 해달라는 내용을 담아 교황에게 보낸 것이죠. 거기에서 스코틀랜드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쓰고 있습니다. 자기의 민족도 스키타이로부터 유래해서 스페인지역에 오랫동안 살다가 스코틀랜드에에 정착해서 왕통이 130대나 이어져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 서명한 사람들은 고위 성직자, 자유농, 대토지 소유자등의 소수이지만 이 사람들이 스코틀랜드 사람들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문서에서 우리는 민족정체성, 민족주권, 민족자결권을 불완전한 형태이지만 다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웨일즈 사람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의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14~15세기에 이르러 또 달라집니다. 민족의식이 강화되고 더불어 각국어가 발전하게 됩니다. 라틴어(Latin)가 유럽 공동어라면 각국어(vernacular)는 지역어입니다. 각국어가 발전한다는 것은 각 나라별의 문화가 생성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16세기의 종교개혁도 이 과정에서 중요합니다.

영국의 경우에는 헨리 8세(Henry VIII)가 수장령(Acts of Supremacy 1534년)을 발표하며 종교개혁을 본격화합니다. 중세부터 로마 교황은 보편권력이었는데, 이는 유럽의 각 국가들의 국경과 상관없이 교회 전체를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수장령은 이제 영국교회가 로마교황에게서 벗어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죠. 그 후 엘리자베스 여왕(Elizabeth I) 때에 와서 영국 프로테스탄트교(Anglican church)가 완전히 성립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교회라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회라고 하죠.

잉글랜드에서 이렇게 국교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카톨릭과의 지속적인 투쟁을 동반했습니다. 로마 교황, 스페인, 프랑스 국왕이 카톨릭이었으므로 잉글랜드에서는 이들과 대적하면서 민족주의가 강화되었습니다. 이 민족주의는 프로테스탄트와 결합되었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 내셔널리즘(protestant nationalism)이라고 부릅니다.

네덜란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네덜란드는 1581년에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데 연합주들은 프로테스탄트였으므로 잉글랜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페인과의 투쟁에서 프로테스탄트 내셔널리즘이 강화되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내셔널리즘의 저변이 넓다는 것은 당시 간행된 신문과 팜플랫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640년대의 영국 혁명 당시 간행된 신문 종수가 700종 가량 되었습니다. 가장 적게 나온 해에도 400개 정도가 유지되었고, 팜플랫은 1000개 정도 발행되는데 이것들을 통해 프로테스탄트 내셔널리즘이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 지반이 결코 좁다고 할 수 없죠.

프랑스의 경우에도 경로가 다르긴 하지만 17, 18세기에 민족주의가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1756년에서 63년까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7년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양국의 사람들은 이 전쟁을 왕조간의 싸움이 아닌 민족 간의 싸움으로 생각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이렇게 프랑스 혁명 이전에 민족이란 말이 자주 사용되었고 민족의식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민족의식이 더 강해지고 그 사회적 저변이 더 넓어진것 뿐이죠. 근대주의자들이 이점을 경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론에 결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근대주의자들이 근대 민족주의의 요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1)민족주권 2)민족자결권 3)강력한 민족주의 세 가지 입니다. 근대주의자들은 이 세 가지 요건이 18세기 말부터 생겨났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개념규정을 가지고 전근대 사회를 바라보면 민족이나 민족주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민족주권이라는 것은 그 사회의 일부 계층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에게 주권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민족자결권은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외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강력한 민족주의라는 것은 왕조나 종교와 분리가 되는 세속적 정치이데올로기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개념 규정에 비추어보면 전근대의 민족주의라는 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이것은 너무 엄격한 규정이라 근대 민족주의도 잘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먼저 민족주권 문제를 봅시다. 전근대의 잉글랜드나 네덜란드의 경우 자신을 민족의 주체고 여긴 사람들도 분명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프랑스 혁명 당시는 어떨까요?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민족주권이 달성되었을까요? 프랑스 인권 선언에서 주권은 민족에게 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배울 때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고 써있는 것으로 배우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고 ‘민족’이 맞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일본 사람들이 nation이란 단어를 그렇게 번역할 것을 우리가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문서에는 그렇게 민족주권이 규정되어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별로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소수의 부르주아에게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물론 전근대의 잉글랜드나 네덜란드보다 그 사회적 범위가 넓어졌겠지만 아직도 소수의 생각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은 농민들은 민족주권 자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민족주권이라는 것은 프랑스 혁명 당시의 프랑스 사회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는 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개념을 가지고 전근대 사회를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프랑스에서 전체 프랑스인의 민족의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1880년대 초등교육이 확산된 이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민족 자결권의 문제는 큰 쟁점이 아니니 시간상 빼놓읍시다. 세 번째 세속적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민족주의를 봅시다. 민족주의의 원형을 보여주는 영국의 경우 프로테스탄트 내셔널리즘은 분명히 왕조, 종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와 그 관련성이 약화되기는 했으나 영국 민족주의의 밑바탕에는 19세기에도 종교적 성격이 강하게 깔려있습니다. 19세기 미국 민족주의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민족주의 역시 왕조나 종교와 결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세속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즉 근대주의자들의 개념은 근대 사회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좁은 개념 규정입니다. 따라서 많은 문제가 있는 셈이죠.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든다고 하는 주장도 역사의 일면만을 보는 것입니다. 물론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든 경우도 있습니다.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이 근대에 들어와서 특히 프랑스혁명 이후에 전 유럽으로 확대, 나중에는 아시아, 아프리카로 확산되었습니다. 동유럽 지역의 경우 19세기에 민족주의가 확산되며, 민족이 형성된 예가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제 3세계 국가들 중에도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든 경우로 볼 수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이전에는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든 경우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봐야죠.

여기에서 한국이나 일본, 중국의 경우를 한 번 생각해보죠. 한국은 20세기 초에 들어와서 조선왕조실록에 친일파 이용구가 ‘국가’와 ‘민족’을 언급한 예가 나옵니다. 일반 신문에 나오는 것은 19세기 말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 민족은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에 형성되었을까요? 이 문제와 관련해 생각해 볼 것이 종족성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민족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것인데 근대주의자들은 이 점을 경시합니다.

종족성은 무엇일까요? 종족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언어, 관습, 혈통, 역사적 경험 등 여러 가지를 포함합니다. 먼저 혈통을 살펴봅시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이후부터 28세대가 흘렀다고 칩시다. 그러면 계산상으로 우리 조상은 모두 2억 7천만이나 됩니다. 이렇게 보면 현재 우리는 거의 혈연으로 묶여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므로 혈통이라고 하는 것은 간단하게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언어도 종족성을 설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귀화인들의 경우도 언어만 습득하면 2세대 정도 지나면 이주한 사회에 동화되어 같은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 같은 민족에 넣기가 힘들지요. 관습, 종교, 의식주 생활등도 모두 뿌리 같은 것입니다. 쉽게 바뀌지 않지요. 이렇듯 종족성은 아주 뿌리 깊은 것입니다. 유럽 내부에서도 계속 종족적 분리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카탈루냐, 캐나다, 벨기에 등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죠. 서양사회는 민주주의가 잘 자리 잡고 잘 사는 사회라서 차별이 거의 없는데 왜 분리주의 운동이 일어날까요? 이런 분리주의 운동은 종족성으로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련 붕괴 이후 종족주의가 분출되어 유고슬라비아에서는 학살도 일어났습니다. 평등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종족문제가 없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죠. 따라서 종족성도 당연히 민족의 요건으로서 중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단일종족으로 된 민족으로 훈민정음이라는(한자에 대한) 각국어가 15세기에 만들어졌고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으므로 충분히 15세기부터는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민족의식이나 민족주의 같은 것을 사료 속에서 찾는 작업이 진행될 필요가 있겠죠. 이것은 일본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로 봅니다. 시간이 많이 갔는데 이제 민족주의를 비윤리적으로 보는 견해에 대해 살펴봅시다.

근대주의적 해석은 민족주의가 비윤리적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민족주의를 파시즘과 결부시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파시즘은 민족주의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건한 민족주의도 존재합니다.

제 3세계에서는 식민지 해방운동이 민족주의 형태로 나타났고 해방 이후에도 강대국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 국가 내에서 소수 종족에 대한 억압이 생기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조건 비판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저항이 더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이데올로기이든 윤리적 문제가 없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의 신자유주의를 보세요. 이것은 약한 나라에 대해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고 미국 같은 나라 안에서도 과도한 빈부차이를 정당화합니다. 사회주의도 광포한 독재와 결합해 있습니다.

근대주의적 해석이 민족주의를 유독 비윤리적 이데올로기로 비판하는 근원은 겔너와 홉스봄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개인사를 통해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겔너는 체코 출신의 유대인으로 나치 지배하에 영국에 망명해서 귀화하였습니다. 홉스봄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이고 역시 유대인입니다. 이 사람들은 나치즘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홉스봄의 책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증오가 여기저기에서, 객관성을 추구하는 학문의 영역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곤란하죠.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이제 민족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진 쓸모없는 이데올로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실제로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강대국에서는 민족주의를 이야기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전부 핵을 가지고 있고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즉 자신들이 하고 싶은 행동을 모두 할 수 있는 나라들이죠. 이와 반대로 약소국들은 계속 강대국들의 억압에 시달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최근에 전 세계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것도 미국이 자기네에게 유리한 경제 질서를 전세계에 강요하는 것으로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강요당했던 중남미 경제의 경우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중남미 경제가 미국의 강요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후 어떻게 되었나요? 80년대 이후에 한마디로 초토화되었습니다. GDP에서 노동계급이 받는 임금이 그전보다 절반으로 줄고 나머지는 부유층의 주머니에 들어가거나 많은 부분이 선진국으로 유출되었습니다.

지구화라는 것은 이렇게 악질적인 이념인 신자유주의를 호도하는 이데올로기입니다. 따라서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의 강대국의 지식인들이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비 서양세계 사람들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반성적인 태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학생들도 민족주의 문제에 대해 거부 반응만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다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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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 민족주의 , 근대주의 , 민족정체성 , 종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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