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의 밑바닥을 보고 겪었어요

[빛바랜 취재수첩 2] 2006년 5월 레이크사이드CC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손전화로 문자가 왔습니다.
‘외진 곳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레이크사이드 장보금’

정말 외진 곳입니다. 외딴 마을 시골길이 끊기는 곳이 골프장 정문입니다. 뒤로는 150만평 산을 깎아 만든 골프장이 있을 뿐입니다. 길옆으로 도랑이 흐르고, 십여 가구 남짓한 시골마을이 있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골프장과 대조적으로, 정문 앞 천막 앞에는 해를 가릴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합니다.

외지다 보니 외로워 보입니다. 덩그러니 세워진 천막도, 길옆에 걸린 구호도 외롭습니다. 아스파트 위에 천막을 치고, 그늘 한 줌 없는 도로 위에 펼친막을 든 레이크사이드 노동자가 보입니다. 고급 승용차가 줄을 지어 골프장으로 들어가지만 이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레이크사이드 노동자에게 이곳은 삶터입니다. 빼앗길 수 없는 일터. 이곳 천막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레이크사이드CC는 대부분 자신들의 첫 직장입니다. 십년 넘게 이곳에서 일해 온 사람도 있고, 스물의 청춘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외진 곳에서 고맙다는 문자를 보낸 장보금 씨는 227일째 파업을 이끌고 있는 레이크사이드CC노동조합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습니다. 장보금 씨는 자그마한 몸짓만큼이나 목소리도 가냘픕니다. 그의 눈은 선하다 못해 쨍하니 맑습니다.

카메라를 챙기며 차에서 내리자, 선전전을 하던 장보금 씨가 반갑게 달려옵니다. 외진 곳의 외로운 파업만큼이나 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이야기를 한없이 쏟아냅니다.

  당시 장보금 직무대행이 우는 조합원을 안아주며 달래고 있다.

너무나 안타까워요. 우리는 뭐 크게 개선해 달라고 하는 것 없거든요. 이쪽저쪽 눈치 보지 않고 편안히 일하는 직장을 갖고 싶었어요. 고용안정이 우리의 요구에요. 집안싸움 때문에 고용이 불안했거든요. 경영권을 둘러싸고 형제간에 서로 용역경호원을 2백 명씩 동원하여 싸운 거예요. 그러니까 형 아우 해서 큰 덩치들이 4백 명이잖아요. 이들이 골프장에서 판을 쳤어요. 용역들이 사장실은 물론 경리, 총무, 전산실 사무실 앞에 진을 치고 있다가 서로 치고 받고 야단이 아니었어요. 직원들 편 가르기를 했어요. 이쪽 편에 서지 않으면 절반은 물갈이를 하겠다, 뭐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했죠. 줄을 잘 서야지 너네가 편하지, 잘못하면 패가망신한다, 며 협박을 해요. 우리에게는 가정의 생계가 달린 일터잖아요.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에 희생물이 된 거죠. 그 와중에 전산실에서 근무하는 김도영 씨가 지금 사장의 명령을 어기고, 예전 사장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어요. - 장보금 씨 증언

고용의 위기를 느낀 직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회사에 교섭을 요구합니다. 경영진은 이런저런 구실로 교섭을 지연시킵니다. 회사 안에 조합사무실마저 만들지 못하게 하며 노조를 무시합니다. 11차례의 교섭은 노사를 인정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가지 못하고, 불신을 키웁니다. 결국 노동조합은 2006년 10월 16일 파업을 선택합니다. 안정된 일터에서 일하기 위해서. 그러자 회사는 11월에 직장폐쇄로 맞섭니다.

파업에 들어가니까 조합원 열한 명을 해고 했어요. 감봉 같은 징계는 셀 수 없어요. 영업을 방해했다며 손해배상청구도 했어요. 말도 말아요. 손해배상 청구한 돈이 305억 원이어요. 조합원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요. 부모한테도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대요.

직장폐쇄 된 레이크사이드CC는 아시아 최대의 골프장이라는 명성만큼이나 쉴 새 없이 고급 승용차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폐쇄된 곳은 골프장이 아닌 노동자의 생계처럼 보입니다.

직장폐쇄 중에 불법대체인력을 고용해서 골프장을 운영하는 걸 조합에서 발견했죠. 이건 불법이다, 항의하려고 사무실로 갔어요. 그니까 용역 깡패들 삼사십 명이 몰려와요. 다짜고짜 발로 차고, 어깨를 짓누르고, 넘어뜨리고……. 한 조합원은 엄지손가락이 부러져 전치 6주의 진단을 받았고, 여성조합원 여러 명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어요. 회사가 고용한 용역깡패들이 폭력을 썼는데, 고소고발은 조합원이 당해요. 어처구니없게 우리가 대체인력을 감금했다고 고소를 했어요. 항의하러 간 우리는 대체인력을 보지도 못했는데. - 장보금 씨

회사의 폭력은 더욱 살벌해집니다. 하루는 조합원이 농성천막 안에 있는데 복면을 쓴 용역들이 쳐들어와 천막을 부수며 난장판을 만든 뒤 사라집니다. 2005년 12월 22일에 있었던 일은 몇 달이 지났건만 지금도 장보금 씨의 꿈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1층 로비에서 평화롭게 집회를 하고 있었어요. 갑자기 2층에서 소화기를 뿜어대는 거예요. 소화분말에 앞도 보이지 않는데, 소화기 통을 일층에서 집회하고 있는 조합원에게 던지는 거예요. 의자 같은 사무집기, 접시, 유리 할 것 없이 2층에서 마구 집어던졌어요. 새벽엔 소방호스를 끌어다가 잠자는 조합원에게 물대포를 쏘기도 하고, 잠자지 못하게 싸이렌을 틀기도 하고. 도저히 상상할 수없는 일을 겪은 거죠. 정말 살인적인 폭력이었어요. 그런데도 어이없게 조합원이 사무집기를 부수고, 망가뜨리고, 난장판을 만들어서 영업을 하지 못했다고 손해배상청구를 한 거예요. 그 날 눈이 무척 많이 왔거든요. 눈 때문에 골프장을 휴장 했던 날이거든요. 근데 조합원 때문에 휴장한 것처럼 뒤집어 씌워 손해배상 청구했어요. 용역들이 주로 여성조합원만 때려요. 치사하게. 지나가면서도 손등으로 얼굴을 툭 때리고. 말로 하자면 끝이 없어요. 머리채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아무 이유도 없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때리기도 하고, 아구창을 다 날리기 전에 입조심 해, 정말 들어본 적도 없는 끔찍한 말도 하고. 아침에 나설 때면 솔직히 겁이 덜컹 나요. 오늘 가서 또 깡패들과 부딪혀야 하나. 시간이 지나 몸에 배일만도 한데 아직도 올 때마다 두려워요. 어찌 보면 두려움이 지금까지 오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사람으로는 도저히 할 수없는 짐승 같은 행동. - 장보금 씨

2006년 5월에는 노조 위원장이 폭력혐의로 구속이 됩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골프장 밖에서 방송차를 틀고 선전전을 하고 있는데 관리자 한 사람이 다가와 방송 장비의 전선을 자르려고 합니다. 조합원이 전선을 자르지 못하게 말리자 관리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합니다. 곧바로 골프장에서 사람들이 달려 나오고 서로 간에 몸싸움이 일어납니다.

몸싸움이 일어나자 경찰들이 달려와 조합원 열한 명을 연행해 갔어요. 그러더니 또 여섯 명을 추가로 연행했어요. 심지어 다른 곳에 가느라 그날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조합원도 연행을 했어요. 위원장, 쟁의부장, 법규부장에게 영장이 발부되는데 영장실질심사에서 위원장만 구속 되었어요. 정문 앞에 고성능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요. 스물네 시간 기록돼요. 몸싸움 과정도 고스란히 기록되었겠죠. 회사에서 경찰에 제출한 CCTV자료는 회사에 유리한 부분만을 편집한 거예요. 몸싸움을 유발하고, 조합원을 폭행한 부분은 삭제하고, 회사에 유리한 부분만을 경찰에 제출했지요. 경찰은 앞뒤 정황은 빼고 그 자료로 위원장을 구속했고요. - 장보금 씨

장보금 씨는 위원장이 구속이 되자 조합원들이 위축되어 앞으로 싸움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조합원들이 스스로 앞장서서 뭉치기 시작합니다. 조합간부가 지시를 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들을 알아서 찾아합니다. 조합원들이 구치소로 면회를 가서는 “잘할 테니 걱정마라”고 위원장에게 큰소리도 칩니다. 장보금 씨는 이때 조합원들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고 말합니다.

요즘 조합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힘을 얻습니다. 서로 웃으며 남을 먼저 챙겨줍니다. 골프장 일은 근무시간이 서로 달라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워낙 바쁘게 고객을 상대하느라 직원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습니다. 소통할 시간이 없다보니 동료애를 느낄 여유도 갖지 못합니다. 때론 오해도 생깁니다.

함께 있을 때 웃고 있다가, 집에서 전화가 오면 멀리 가서 전화를 받아요. 전화로 다투는 소리가 들려요. 그러다가 전화를 끊고, 동료 곁으로 돌아오면 신기하게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다시 웃는 거 있죠. 악이 오르며, 조금만 더하자, 조금만 더하자하며 왔어요. 집에서 미친년 소리 들어가며. 하지만 내 옆에 동료이자 동지가 있다는 생각에 할 수 있었어요. 힘이 들 때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힘이 된 것 같아요. 동지애가 없었으면 오늘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 장보금 씨

128명의 조합원 가운데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은 40여명. 생계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는 조합원이 있습니다. 장보금 씨는 이들을 얼마든지 이해한다고 합니다. 현장에 복귀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도 이해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용서할 수없는 사람도 있어요. 구사대가 되어 심지어 우리에게 폭력을 쓴 사람들. 물론 알아요. 그 비인간적인 행동을 누가 시킨 것인지는. 하지만 용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조합에 삼백오억 원을 청구했잖아요. 하지만 제가 평생 가져가야 할 불신, 배신, 인간성의 밑바닥을 보고 겪었어요. 이에 대한 심리적인 치유는 어떻게 하죠? 무엇으로 보상받죠? 삼천오억 원을 받아도 치유될 수 없을 거예요. - 장보금 씨

  2006년 당시, 레이크사이드 노동자들의 모습

밤을 생각해봅니다. 인적도 없는 곳에 세운 천막. 그곳에서 돌아가며 밤을 샙니다. 언제 들어 닥칠지 모를 용역들의 폭력에 떨면서 밤을 지새울 천막. 그 천막이 고맙다고 장보금 씨는 말합니다. 천막 안 전기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납니다. 법규부장이 어머니한테서 얻어온 부추김치와 파김치가 익어 제 맛이 납니다. 김치 덕분에 오늘은 호화로운 밥상이랍니다.

라면은 이제 신물이 나요. 반찬 없어도 라면대신 밥만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장보금 씨

모두들 밥 한 공기를 후딱 비웁니다. 아직 해는 머리 꼭대기에 있습니다. 외딴 곳이라 더욱 외로워 보이는 싸움. 227일째. 오늘은 2006년 5월 30일입니다. 아직 밤은 쌀쌀합니다.

판교IC를 빠져나와 무조건 앞으로 가다보면 더 이상 앞으로 갈 곳이 없는 능골 삼거리가 나옵니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가면 골프장 안내 표지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좁은 길로 2KM. 길이 끝나는 곳.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 레이크사이드가 있습니다.

그 곳에 가면 외딴 곳에서 사랑의 모닥불을 지피는 아름다운 노동자들이 뛰어나와 반겨 줄 것입니다.


● 취재 이후 - 파업 317일째인 2006년 8월 28일에 노조는 회사와 합의서 조인식을 갖았다. 9월 11일 장보금 씨는 출근을 하였다. 숱한 시간이 흘렀다. 장보금 씨의 생채기가 이제는 아물었을까?

[경기보조원]골프장 캐디도 노동자인가요?

골프장 사업주들은 경기보조원이 자영업자라며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단체협상이나 단체행동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수원지법 민사9부는 “경기보조원과 회사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더라도 종속적인 근로를 제공하고 있고 회사의 지시와 일정한 근무시간, 캐디마스터의 총괄관리 등에 비춰 업무내용, 근무시간 및 장소를 정하고 있다”며 회사의 지휘 감독 통제를 받고 있는 점 등을 들어 경기보조원을 노동자로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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