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춘을 아십니까?

[쿡!세상꼬집기21] 개처럼 싸워야 개같은 세상 바꾼다

한 시대를 웃기고 울렸던 코미디언 서영춘 말고 허영춘을 아십니까? 그럼 허원근 일병은 아시나요? 허영춘은 허원근 일병의 아버지입니다. 뜬금없이 웬 군인의 아버지 이야기냐고요. 오늘 민주주의를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권리를 말하고 싶고, 국가의 폭력을 말하고 싶고,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어 허영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지난 2월 3일 서울지방법원은 허원근 일병이 같은 부대 군인에게 사살되었고 제7보병사단 헌병대는 사고를 은폐하고 조작하였기에 유족들에게 국가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1인시위에 나선 허영춘(故허원근 일병 아버지)님의 모습 [출처: 군의무사 유가족연대]

허원근 일병이 군대에서 죽은 것은 지난 1984년입니다. 26년 전 한 군인이 자살을 하였습니다. 다음날 새벽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 허영춘은 전남 진도에서 아들이 근무했던 전방부대로 한달음에 달려갑니다. 무슨 정신이 있었겠습니까? 그저 죽은 아들의 몸뚱이를 부둥켜안고 넋을 놓는 일말고요.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어느 부모가 따질 겨를이 있겠습니까? 그저 사랑하는 아들의 주검을 보며 함께 죽고 싶은 생각만 들었을 겁니다.

1980년에서 1988년 사이 군대에서 죽은 사람은 6,500명입니다. 이 가운데 자살한 사람은 2,500명입니다.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가 집권하던 시절입니다. 민간인도 의문의 죽음을 당하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군에서 자살을 했는데, 누가 감히 의문을 제기하겠습니까?

하지만 아버지 허영춘은 달랐습니다. 아들이 결코 자살하지 않았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허영춘의 스물여섯 해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국가배상 판결이 있기 전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어떻게 내가 눈 감을 수 있겠냐?” 그리고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이런다고 내 아들이 살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시는 군대에서 우리의 아들들이 죽는 일이 없도록, 나 같은 아버지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고 싸우는 거다.”

아버지는 모내기철에는 진도에서 모내기를 하고 나면 단걸음에 서울로 달려왔습니다. 추수할 때는 진도에서 수확을 마치고 나서 서울로 옵니다. 기독교회관에서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해 100일이 넘는 농성을 하였고, 국회 앞에서 3년 동안 1인시위를 하였습니다. 밤에는 법의학서를 공부하여 이제는 어느 부검의에 부족하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26년입니다. 그 싸움 어찌 여기에 주저리 늘어놓겠습니까. 그렇게 26년을 싸우며 진실을 위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갔습니다.

민주주의는 무엇일까요? 이명박 정권 나쁘다고, 한나라당 못됐다고 기자회견을 하는 걸까요? 하루 도심에 모여 머리띠 묶고 구호 외친 뒤 흩어지는 걸까요. 나는 이 땅의 민주주의는 허영춘과 같은 사람의 힘에 의해 차곡차곡 쌓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위한 끈질긴 투쟁에 의해. 세상은 이토록 지독한 싸움을 하지 않고는 바뀌지 않습니다. 보여주는 싸움이 아니라 한번 물면 놓지 않는 ‘개’처럼 싸워야 ‘개’같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김우룡의 큰집 조인트 발언이 나왔을 때, ‘사퇴해야한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 ‘김우룡 사퇴는 안 된다’였습니다. 이건 이미 사퇴가 예견된 일인데, 그걸 주장할 때 싸움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명 발표하는 것보다 앞서서 할 것이 있었습니다. 만약, 9시 뉴스에서 앵커가 방송인으로 부끄럽습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언론인 저희 자신에게 있습니다. 국민 앞에 사과하고 권력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겠다고 약속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최소한 자신의 자존심이 달린 방송에서 누군가는 절치부심하며 저항하는 게 맞지 않는가. 김우룡 나가고, 김재철 사장도 나가면 누구랑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누구에게 무슨 진실을 찾을까? 새로운 사장 맞이하여 또 출근저지 싸움이나 할 것인가?

민주주의는, 저항은, 권리는 명분이 아닙니다. 진정성입니다. 나를 버리고 싸울 줄 아는 진정성.

언론법 통과될 때 책임지고 국회의원 사퇴하겠다는 정치인 중 배지 정말로 버린 사람이 있나요? 4대강 망가지고 있는데, 책임지고 싸우겠다고 말한 사람들 지금 몸으로 저항하고 있나요? 노동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총파업 하라는 말,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모습 보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근심위(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인가? 참여하지 말라는 것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야무지게 저항하라는 말입니다.

민주대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후보단일화가 한나라당 독주 막는 길이라는 것 다 압니다. 그럼 민주대연합에서 지금 보이는 민주당의 횡포를 막으려면 어찌 해야 합니까? 없는 놈이 민주당에게 양보하는 게 방법입니까? 아니면 민주대연합을 기필코 이루기 위해 지금가진 작은 기득권도 마저도 버리며 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을 견인하는 게 방법입니까? 진보정당이고 민주노총이고 시민단체고 선언만하지 말고 현실의 싸움을 하며 끝까지 시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남에게 책임 돌리지 말고. 더 이상 무능력만 한탄하지 말고.

내가 쿡, 하고 꼬집는 세상은 바로 나입니다. 세상은 대안으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대안은 눈앞에 보이는 게 아닙니다. 길이 있기에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걷다보니 길이 생긴 겁니다. 이명박 정권, 한나라당, 민주당, 그리고 재벌들을 말하기 전에 내가 솔직해지는 것, 내가 진정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그것을 몸 밖으로 꺼내고 이야기할 때, 아프지만 한발 나가는 겁니다. 양심과 진정성에 손을 얹을 때, 고통 받고 소외받는 이의 목소리와 연대할 수 있습니다. 허원근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의 싸움이 높은 담을 무너뜨리고 보이지 않는 세상의 창을 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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