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천안함이 침몰된 후 현재까지도 각종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침몰 원인을 두고 반잠수정, 인간잠수정 등 북한에 의한 격침설, 내부폭발설, 한미합동군사훈련 도중 오폭으로 인한 침몰설, 피로파괴설 등 각종 설만 모아 놓아도 10여 가지에 이른다.
또 군당국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사고함정의 생존 대원들을 격리시켜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차단시켰고 폭발음 청취 이후 8분이 지난 TOD 영상 이외에 어떠한 자료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사건발생시각을 최초 밤 9시45분이라 발표했다가 30분으로 정정했고, 다시 25분으로 말을 바꿨다. 지진파 확인 이후에는 22분으로 정정하는 등 다섯 차례에 걸쳐 사건발생시각을 수정해서 발표함으로써 의혹을 더 증폭시켜 왔다.
이처럼 사고 발생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나 증언들이 나오지 않자, 정치적 입맛에 맞게 가공된 정보들이 난무하고 있다.
언론, “북 개입설” VS “자체 사고로 인한 침수”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일찌감치 북의 개입가능성을 다소 저돌적으로 제기해 왔다. 동아일보는 처음부터 북한의 반잠수정에 의한 피격 가능성을 제기했고, 심지어 탈북자 증언을 바탕으로 인간잠수정의 공격가능성까지 보도한 바 있다. 조선일보 역시 지속적으로 어뢰 공격가능성을 보도해 왔다. 특히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회에 나와 ‘기뢰보다 어뢰’가 더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보도의 홍수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 개입가능성은 함미와 함수가 발견되고, 이후 TOD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신빙성을 점차 잃어 가고 있다. 절단된 부분이 C자형으로 깨끗하게 절단되면서 기뢰든 어뢰든 폭발에 의한 가능성이 제기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어뢰를 기뢰로 개조한 사출형 기뢰에 의한 폭발 가능성이 군내에서 급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천안함의 절단면이 이른바 버블제트(bubble jet·일종의 물대포) 현상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출형 기뢰로 버블제트가 형성되면 배가 깨끗이 절단된 채 두 동강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5일 <불교방송 아침저널>에서 해군 전문가인 김남부 예비역 해군 대령은 “북한이 버블제트어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한동안 언론에서 많이 취급했던 버블제트어뢰는 북한이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고요...절단면에서 발견된 시신의 경우 상태가 아주 깨끗했지 않습니까? 폭발에 의했을 경우엔 상당히 훼손되었을 것인데 너무나 깨끗한 것은 상당히 의문점이 남는 것”이라며 폭발에 의한 침몰 가능성과 버블제트 어뢰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했다.
한편, 한겨레, 경향신문은 물론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대부분의 개혁성향의 언론들은 모두 자체 결함 또는 기타 가능성에 의한 침수 및 절단 후 침몰을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 MBC가 지난 3일과 4일 이틀동안 군의 상황일지를 공개하면서 최초 사건발생시각이 9시15분이며 이후 7분 동안 천안함이 전속력으로 백령도로 항진 한 후 22분 침몰했다는 것을 단독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서 현재 모든 개혁언론이 MBC의 보도를 따라가고 있다.
군당국이 공개한 천안함장의 인터뷰와 TOD 영상을 제외하고 언론사 자체로는 이 보도만이 현재까지 유일하게 ‘팩트(사실)’에 근거한 보도다. 이에 대해 군당국은 9시19분 교신 사실이 있으나 일상적인 교신내용이라고만 밝혔을 뿐 아직까지도 적절한 해명을 못하고 있다.
청와대, 한나라당은 침묵..선진당은 북 공격가능성..민주당은 군당국 과실
천암함 침몰사태에 대해 정치권 대응도 제 각각이다. 먼저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조사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며, 조사 후 발언하겠다는 태도다. 특히 청와대는 북의 개입설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으며, 미국도 유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이회창 대표의 강경발언을 통해 북의 개입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인데, 남북정상회담의 성사가능성과 G20을 앞두고 안보 불안상황을 우려한 나머지 북의 개입에 대해 함구하고 침묵하며 이를 덮으려 한다는 것이다.
거꾸로 민주당은 “군이 작전수행 도중에 무리한 과실로 인하여 침몰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즉, 군당국의 과실로 인해 천안함이 침몰했고 이를 정부가 은폐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책임있는 조사를 위해서 국방장관과 해군함모총장이 해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청와대가 사고발생 직후 4차례나 대통령이 주재하는 긴급안보관계장관회의를 열었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이 토의되고 결정되었는가도 관심사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사고발생 후 청와대 보고까지 30여분 가까이 걸린 시간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관심사로 남아 있다.
정치권의 대응을 종합해 보면, 한마디로 뒷북치기에 다름 아니다. 여야가 국회차원의 진상조사위 설치에 합의한 것이 전부다. 민주당도 이제까지 생존자 가족들을 만난 것 외에 특별히 한 것이 없다. 하다못해 생존자들이 외부와의 접근이 차단된 상태에서 이들에 대한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이 무능력한 정치적 대응이 국민적 의혹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천안함 미스테리와 시간끌기
천안함은 의혹투성이다. 사고발생시각과 장소, 침몰시각은 언제인지, 사고가 발생한 9시15분 후 침몰되기까지 천안함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천안함이 왜 백령도 근해로 접근했는지, 왜 속초함은 구조활동을 하지 않고 함포사격을 했는지, 천안함과 함대사령부, 해작사와의 교신내용은 무엇인지, 연평해전 때는 생존자 인터뷰를 했으나 지금은 격리시켜 놓고 있는지, 군당국은 어떤 이유로 TOD 영상을 공개하지 못하는지, 대통령이 언제 최초로 보고를 받았는지, 4차례의 대책회의에서 어떤 대책들을 토의했는지 등 모든 것이 의문부호로 가득하다.
어찌되었건 40여명이 넘는 희생자가 예상되는 속에 무엇보다 진상규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자면 청와대와 군 당국의 의심의 여지없는 정보공개가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발생한 용산참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당국이 모든 정보와 상황을 통제한 후 원인규명에 대해서는 시간을 질질 끌면서 정확한 진상규명을 어렵게 만들고, 유족과는 조속한 합의로 사건을 무마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
용산참사의 경우 이번 천안함 침몰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대통령은 사건조사 후 입장을 발표하겠다는 것으로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강호순 사건으로 철거민 사망사건을 덮으려고 여론 조작을 시도했고, 철거민 사망자의 시신을 검찰이 강제로 부검하여 사망원인을 덮어 버렸다. 사망자 중 일부가 불탄 망루에서 탈출한 영상이 잡혔음에도 당시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은 도심테러라는 것으로 사태를 호도했다. 결국 대통령의 사과 한마디 없이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의 사퇴로 마무리 하려고 했다. 용산참사는 아직까지도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로 법정공방 중에 있다.
이 상태로 가면 천안함 침몰에 대한 진상규명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생존자들의 정확한 증언이 나오지 않는 이상 선체를 인양한다하더라도 공방이 오갈 뿐 정확한 침몰 원인을 규명해 내기란 쉽지 않다. 특히 군의 특성상 생존자들의 증언도 어렵고, 보안이라는 이유로 정보공개도 쉽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진상규명 작업은 매우 지지부진해 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언론노조 민실위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천안함 사태로 인해 방송에서 4대강 문제가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한명숙 전총리 재판과 봉은사 명진스님의 안상수 외압 문제도 점차 시들해지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태가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침몰사태의 후폭풍도 거셀 전망이다. 이렇든 저렇든 국방비는 증액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정치상황상 신무기 구입비용을 줄여 재래식 무기 또는 중고무기를 손질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빨리 신무기로 대체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 침몰원인이 어뢰나 외부폭발로 확인될 경우 한반도 전체가 경직될 가능성도 있다. 또 원인규명을 늦어지거나 미궁 속으로 빠질 때는 정치적인 갈등이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 개입문제와 군당국의 대응과 관련해서 보수진영 내부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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