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힘빼고 대중과 소통하자

[상상나누기] 인터넷의 오랜 약속: 진보에게 트위터는 무엇인가

한국의 IT관련 보도에서 종종 애용하곤 하는 단순한 스펙 중심의 서술로 풀어보자면, 트위터는 실로 보잘 것 없다. 게시판 서비스인데 한번에 140자 밖에 못 쓰고, 바로 리플을 엮지도 못하고, 이미지든 뭐든 외부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곳.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큰 히트를 치고, 사람들이 모이고, 점점 더 소통창구로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왜 트위터인가. 그리고 특히 진보진영이 트위터에 주목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사실 여기에는 두 가지 질문이 섞여있다. 하나는 왜 단문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가 떴는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왜 다른 서비스는 못해낸 방식으로 트위터만 떴는가다.

우선 첫째 질문부터. 물론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붐을 이룬 다음에는, 단지 많은 이들이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도 더욱 많은 이들이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끌어들였을까. 다른 사용자들과 제한된 사회연결망을 만들어 소통하되 그 수단으로는 짧은 문장을 사용하는 방식은 누구나 보도록 뿌리며 긴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방식보다 열린 소통에 불리할 것 같이 느껴지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모든 것이 균등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보다, 정보가 빨리 도는 좁은 연결망이 있고 외부 정보가 유입되는 경로가 일정 부분 함께 있는 방식이 정보 유통에 있어서 훨씬 효율적이다. 특히 연결망의 구성을 비교적 쉽게 바꿀 수 있다면 원하는 정보의 성격에 따라서 늘 유연하게 최적화할 수 있다. 그것을 매우 명쾌한 서비스 기술로 구현하는 것이 바로 트위터의 팔로워/팔로잉 방식이다. 자신이 누구의 게시물들(‘타임라인’)을 읽을지 정하고, 자신의 것을 누가 구독하고 있는지 항상 알 수 있도록 하여, 사용자로 하여금 연결망을 자신이 잘 파악하고 있고 또한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짧은 문장 역시 중요하다. 원래 140자라는 제한은 미국에서 전화기로 단문메시지를 보낼 때 160자가 한계라는 것에서 착안, 추가정보를 빼고 140자를 허용한 기술적 문제였다. 하지만 140자는 이내 소통을 위한 룰로서 매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게 되었는데, 바로 적은 부담감과 높은 평등감이다. 140자를 올리는 것은 원고지 140매를 올리는 것보다 부담감이 적고, 압축하면서 더 솔직하게 결론을 말할 수 있다는 느낌을 부여한다. 그래서 더 자주, 더 즉시 생각나는 대로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 더 많은 기업 계정이라고 해서 혹은 더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지면을 더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한 트윗에 140자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평등한 상태에서 소통을 시작한다는 느낌을 주기 쉽다. 물론 140자라는 제한이 그래도 너무 답답하게 느껴져서 더 긴 글을 올릴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해주는 외부서비스들도 있지만, 그 경우 역시 트위터 기본엔진에서는 여전히 140자로 표시되고 외부링크가 삽입되어 그냥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링크를 건 것과 차이가 없다.

두 번째 질문, 왜 다른 단문SNS서비스보다는 유독 트위터에 주목하고 있는가. 네이버에 인수되기 전의 미투데이도 뜨지 못했고(인수 후 스타 마케팅으로 잠시 반짝했다), 트위터 성공 이후 여러 유사 서비스들이 국내외로 난립했으나 별반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트위터가 외국 기업이다보니 정권의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서? 그런 면에 주목하여 트윗을 하는 이들도 물론 있겠지만, 대다수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그냥 세계적으로 대세니까 한국도 따라가는 것일까? 고개를 들어 국내에서 네이버와 구글의 점유율을 보시길. 그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꼽는 그럴듯한 이유는, 트위터가 다른 어떤 서비스보다 가장 헐겁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에서 제공하는 것은 딱 게시판과 네트워킹 기능이고 다른 것은 스스로 아는 만큼씩 더 외부 툴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사용방식을 만들어나가는 자유도가 다른 어떤 서비스보다 크다. 박제된 공원과 열린 광장의 차이다. 여타 서비스들처럼 소소한 기능에 직접 욕심을 내지 않고, 그저 연결망을 편리하게 가꾸는 것에 최적화를 해온 것이 트위터다. 그 결과 하나의 서비스라기보다 일종의 축소된 인터넷 인프라로 기능하게 된 셈이다.

트위터에서 그렇듯 자유롭게 만들어내는 소통 연결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장점들이라면, 혁신적 보편성, 신속하고 거대한 집결 기능, 새로운 활용가능성의 지속적 발견 등이 있다. 누구나 부담 없이 뛰어들 수 있고, 사안에 따라서 빠르고 자유롭게 널리 모일 수 있으며, 새로운 발상도 종종 어디선가 나온다. 여기에 기존 소통망의 강자들도 같은 선에서 출발하는 좀 더 평등한 소통의 장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점까지 결합하면, 트위터는 바로 ‘쌍방향 온라인매체’의 오래된 낙관적 약속인 분산된 네트워크, 열린 소통과 대화 같은 이상향들을 이루어줄 것 같은 희망을 준다. 진보 진영이 트위터에 대해 종종 거는 듯한 높은 기대는 바로 이런 지점들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진보진영이 그런 희망을 걸었는데 그들이 충분히 창조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지부진해진 이전의 여러 소통경로들(수많은 PC통신 게시판, 웹포럼, 블로그들 외)과 트위터 역시 같은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 매체 자체에 어떤 진보적 속성이 있다고 쉽게 낙관해버린다면 분명히 그렇게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트위터에서 정치지지성향 설문이라도 돌리면 진보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것은 트위터가 본연적으로 진보의 요람이라서가 아니다. 어떤 매체든 초기 기술에 먼저 뛰어드는 것은 생각이 열려있기에 신기술 수용도도 높은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정치사회적으로 관심이 있는 경우, 그 역시 수구 꼴통은 아닐 가능성이 좀 더 높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술이 더 사회적으로 보편화되면 결국 사라지는 메리트인데, 얄궂게도 어떤 매체가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신기술이 아니라 확실하게 보편화되어야 한다. 게다가 보편화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체제에서 기득권을 확보한 ‘강자’가 창발하기 마련이고, 상업적 세력 역시 자신들의 역량을 동원해서 그 매체에서 영향력을 상당 부분 장악한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충분히 겪은 일이다. 90년대 중반 하이텔이 그랬고, 블로그는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설치하는 것이었던 초창기의 블로고스피어가 그랬듯 말이다.

즉 매체 자체에서 진보를 찾는 것은 곤란하다. 그보다는 진보 담론을 사회적으로 보편적 일상으로 흡수시키기 위해 뛰어들만한 중요한 소통 경로가 하나 늘어났으니, 그 곳에 온전히 참여한다는 접근방식 정도가 적합하다. 예를 들어 트위터 같이 사람들이 메시지 중심의 연결망을 스스로 관리하는 재미에 빠진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배리 웰먼의 용어를 빌려옴)의 공간에서라면, 진보 역시 조직체로서 구호를 외치기보다는 함께 140자 단위로 끊어서 잡담하듯 질문하듯 대화하듯 일상으로 파고들어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좋은 자료들을 링크로 소개시켜주고, 개인 대 개인으로서 관심을 서로 나누며 또 반대급부로 지나친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구식 조직화의 도구로 생각하며 접근할 때 트위터의 모든 특성은 한계로 다가올 것이고, 반대로 어깨에 힘을 빼고 불특정 다수 개인들 사이 소통의 쾌감 자체를 온전히 끌어안으며 진보담론의 자연스러운 유통 그 자체에 강세를 둘 경우 트위터의 (거의) 모든 것이 장점이 다가올 것이다. (상상나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