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또 달린다

[임성용의 달리고 달리고](1) 생일


[편집자주]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노동자 작가인 임성용 님의 글을 연재한다. 노동과 삶 속에 부닥치는 일상에 대해 특유의 담담한 필채로 그려 나갈 예정이다.
작가 임성용은 1965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으며 구로, 안산공단에서 공장노동자로 일했다. 지금은 가락시장에서 채소배달일을 하다, 건자재 배송일을 한다. 1992년부터 노동자문예 『삶글』에 시와 소설을 발표했다. 2002년 제1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하늘공장』이 있다. 연재 글들 중 일부는 <삶이 보이는 창>(samchang.or.kr)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점심밥을 제 때에 단 한 끼도 챙겨 먹지 못했다. 보통 저녁 일곱 시가 넘어, 늦게는 아홉시나 열시에 배송을 끝마치고 공장으로 들어오는 길에 화물차를 세워두고 아무 데서나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가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식당 밖 공터에 나와 담배 한대를 빨아 당기며 어둑지근한 하늘을 보면 왠지 내 자신이 무참해지고 한없이 허탈하고 쓸쓸하다. 그래도 하루 일을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이 나를 지켜주는 유일한 위안이며 힘이다. 그 꺼질듯한 안도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른바 노동의 의미를 알 수 없다.

내가 계속 점심을 굶고 일했다고 하자, 사무실 과장님이 그런다.
미쳤어? 밥 먹고 다니면서 해요.
출하부 기사들도 그런다.
밥 못 먹는 사람이 병신이지.... 난 죽어도 그렇게 안 해.

맞는 말이다. 곧 죽어도 먹어야 살지. 모두들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거니까. 내가 멀쩡하게도 미쳤고 병신인 것이 분명하다. 누구 하나 안쓰럽게 여기기는 커녕 혀를 끌끌 찬다. 일을 제대로 못하니까 그렇지. 노골적으로 말은 안 해도 현장에 납기 시간 못 맞추고 맨날 늦게 들어온다는 것은 곧 나에 대한 능력의 문제로 평가를 내릴 뿐이다. 아무리 쫒기면서 뛰어봤자 억울하지만 그게 냉정한 현실이다. 다른 사람을 챙겨주고 자시고 배려해줄 시간이 없다. 오로지 자기 일이 바쁘고 급할 따름이다.

일 할만 해?
아홉시 뉴스 시간에 모처럼 일찍이 집에 들어와 씻고 식구들하고 저녁을 먹는데, 아내가 물었다.
일이 너무 힘 들어......
맥이 탁 풀린 내 말에 아내는 식은 냉수같이 밋밋한 표정을 짓는다.
힘 들면 하지 마. 일을 안 하면 될 거 아니야!
나는 그 말 속에 깊이 박혀있는 가시를 익히 잘 안다.
먹고 사는 게 본래 힘든 거지 뭐.....
먹고 사는 거? 그럼 먹고 안 살면 될 거 아냐?
그 말이 명언이긴 하다. 일이 힘 들면 하지 말고 먹고 살기 힘들면 안 먹으면 된다. 언제 우리가 먹고 살았다고! 먹고 사는 노릇도 제대로 못했으면서 먹고 사는 타령을 넋두리처럼 풀어놓은 나는 갑자기 숟가락을 든 손이 무겁게 저려왔다.
이번 주 토요일엔 좀 빨리 와. 애들 도서관에 책도 빌려야 하고..... 어디 가까운 계곡이라도 가자.

우리는 서로 휴가 날자가 달라 가족들끼리 함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래도 친구들하고 하룻밤 야영이라도 다녀왔지만 아내는 일요일이 낀 휴가 삼일을 내리 잠만 잤다. 그래서 진짜 도망을 치더라도 빨리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온 토요일이었다.

낮 열 두시, 점심 때가 지나도록 상차를 하는데 아마 올 여름 들어 가장 무더운 날씨였다. 도저히 뙤약볕에서 그 숨막히는 더위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는 무조건 빨리 자기 짐을 싣고 배송을 나가버리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용차 물량이 대량으로 나오는 날에는 그럴 수도 없었다. 그날은 용차가 5톤 차로 다섯 대, 1톤 차가 석 대인가 떴다. 계속해서 차는 들어오고 계속해서 짐을 실었다. 모자에 머리에 상의에 물호수를 들이 붓고 땀인지 물인지 전부 온몸이 젖었다.

용차를 보내고 나서야 기사들은 송장을 분류하고 지역별로 상차를 시작했다. 내가 맡은 지역은 경기북부와 철원, 화천 등을 포함한 강원지역인데, 송장 배정이 그날따라 이상하게 서울을 나에게 잡아 놓았다. 서울에서 삼년 여 식자재 배달을 했던 나는 서울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서울은 무엇보다 차가 막히고 골목이 좁고 사람들이 깐깐하다. 연천, 포천, 철원 이런 곳은 길도 넓고 산수 좋고 차도 막히지 않고, 더군다나 사람들이 좋다. 서울 사람들하고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주말에 가뜩이나 차 막히는 데 왜 서울을 나가요?
내가 안 가겠다고 송장을 바꾸려고 했더니, 배송 담당 대리(나보다는 두 살 위인, 입사 두 달 동안 거의 한 달은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신 형님)이 살짝이 귀뜸을 했다.
야, 임마. 오늘은 서울이 나아. 지금 휴가철에다 주말이라 서울 외곽도로 전부 장난이 아니야. 아까 오전에 나간 용차가 가평 들어가는 데만 두 시간 반 걸렸단다.
듣고 보니 그럴만 했다. 서울이 나에게 떨어진 이유는, 경기도 어디 학교공사 후레임 납품 급물량을 처리해야 하는데 A다이가 없는 김기사 차에 그걸 먼저 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못 이기는 척,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으로 서울 물량을 찾았다.

의정부 인근 도봉구 판넬공사 현장에 납품을 하고 나오면서 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시내 쪽 명륜동과 동대문 현장에서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오전에 온다고 해놓고선 왜 아직까지 안 와요? 인부들 기다리고 있는데.....
그 정도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시해도 좋다.
아, 씨팔! 사다리차 불러놨는데, 지금 어디야?
이건 문제가 약간 심각하다.
아니, 씨팔. 어디냐고? 석고하고 덴조를 못 치고 있다니까.

하는 수 없이 천호동을 들렀다 가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사다리차가 와 있다는 현장부터 부리나케 가야만 했다. 혜화동 로타리 꽉 막힌 도로를 겨우 빠져나와 명륜동에 갔더니, 이런 쌍놈의 새끼들이 글쎄 안양으로 오란다. 알고보니 명륜동은 사무실이고 사다리차가 있다는 시공 현장은 안양이었다. 일단 네 시까지 갈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앞에 실린 물건을 내려야만 안쪽에 실린 다른 곳 납품을 할 수 있었다. 다시 안양까지 나갈려면 양재에서 과천으로 나가거나 서부간선도로를 타야하는데, 사통팔달 모든 길들이 다 틀어막혔다. 대학로에서 부터 시내 곳곳에 경찰버스가 늘어서 있고 광복절이라 너도 나도 몰려나와 데모를 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간혹 데모하는 데 기웃거려도 봤지만 정말이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근 한 시간만에 남산 터널을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무섭게 달렸다. 다섯시 반에야 안양 호계동에 도착했다.

서울로 올라와 다시 동대문구청에 왔을 때가 일곱 시였다. 현장이 경동시장 부근이라는 것만 아는데, 정확한 위치를 알려고 전화를 해도 사장이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니에미 좃같네! 라는 욕을 퍼부을 만치 퍼붓고는 당신 맘대로 하라고 아예 전화도 받지 않는다. 나도 니에미, 좃같네! 좃이 갓 같으면 쓰고 다니면 될 거 아냐? 그나저나 현장을 알아야 하차를 하든가 말든가 할텐데..... 무거운 물건을 혼자서 내릴 수도 없고, 배는 고파온다.

미쳤어? 밥도 못 먹고 일하게?
아내는 똑같은 말을 나에게 여러번 했었다. 그래.... 밥이나 먹자! 마침, 동대문에 살고 있는 친구 생각이 났다. 친구랑 밥을 먹고 짐을 내려달라고 해야겠다.
다행이도 친구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고시원을 얻어 혼자 생활하고 있는 건설현장의 일당 잡부였다. 방수공사 나갔다 일 마치고 금방 들어와 막걸리 한잔 마시고 있는 중이라고,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당장 나가겠다고 했다. 한걸음에 달려나온 친구와 식당을 찾아 들어가기도 전에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동대문 물건을 매장으로 갖다 달랜다고, 무슨 공업사 앞에 내려놓고 오라는 것이었다.
공업사가 어딘데요?
경동시장 로터리에서 좌회전 해서..... 마트 지나서, 골목 안에 횟집 건너 편에......
어쩌고 저쩌고, 아뭏튼 그 근방 어디에 있다고 찾아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친구를 조수석에 태우고 제기동 로터리와 경동시장 로터리를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차를 시장통에 세워놓고 걸어서 골목길을 뒤졌다. 어떻게든 찾고야 말리라. 나중에는 끈질긴 오기가 생겨났다.

시간 반이 넘어서야 기어코 공업사를 찾았다. 후유, 한숨을 돌리고 겨우 친구의 도움으로 짐을 내렸다. 그리고 식당에 들어간 시간이 밤 열한 시였다. 나는 밥을 먹고 친구는 술을 마셨다. 간절히, 술을 한잔 하고 싶었지만 아직도 배송을 끝내지 못한 짐이 차에 그대로 실려있었다.
다음에 갖다 주면 안 되는가?
친구는 나랑 같이 술잔을 부딪치고 하룻밤 새도 좋지 않겠냐는 눈빛을 던졌다.
가지고 나온 물건을 무조건 내려줘야 해. 안 그러면 다음 날 짐을 못 실어. 굳이 내리고 실어도 되겠지만..... 그러면 배송도 제대로 못하는 능력없는 기사가 되는 수 밖에. 난, 그런 소리는 절대 듣고 싶지 않거든. 날밤을 까더라도 반드시 빈차로 들어가야지. 그게 배달의 기수들에게 주어진 임무야.
아, 그런가? 우리 같은 노가대는 하기 싫으면 안 하고 나와버리면 돼!
그렇지.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일하기 싫으면 안 하고, 살기 싫으면 살지 말고 죽으면 되지. 그 간단한 것을 못하고 이렇게 힘들게 기를 쓰며 살아야 하나.

배달 끝날 때까지 따라오겠다는 걱정스런 친구를 보내고, 강동 다리를 건너, 중랑천을 거슬러, 눈깔 부벼대고 바라본 양주 불곡산 머리가 보이는 순간, 하늘에 진 달무리처럼 하얗게 밀려드는 그 긴 안도감! 집을 나선지 스무 시간 만에 식구들 깰새라 조용히 문을 닫고 거실 대자리에 모로 누웠다.

얼핏 잠에서 깰 무렵, 핸드폰 문자수신음이 울렸다. 시간을 보니 다섯시 반이었다.
'오늘 특근 가능하세요?'
개학 전에 학교공사 납품건이 밀려있어 기사들이 모두 나와 일하기로 한 것은 알고 있었다. 나갈까, 말까. 세 시간 밖에 못 잤는데..... 그러다가 나도 몰래 다시 잠이 들었다.
미역국 먹어!
아내가 밥상을 차려놓고 생전 안 쓰던 유기그릇에 국을 내왔다.
미역국?
그래.... 오늘 당신 생일인 것도 몰라?
그렇구나. 음력 유월 스무 엿새, 내 생일이었구나.
애들하고 방학 끝나기 전에 계곡이나 가자니까!
알았어. 비암리 골짜기가 좋다던데.....
핸드폰 벨이 또 울렸다. 나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밧데리를 빼버렸다.

농협마트에서 수박 한덩이 사고, 맥주하고 먹거리 좀 챙기고, 주섬주섬 애들을 태우고 발랑저수지 위에 있는 비암리 계곡으로 갔다. 비좁은 산길에 차 한 대 주차할 틈이 없이 사람들이 들어찼다. 군사보호시설 철조망이 쳐진 꽤나 높은 축대 밑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입이 댓발이나 나와 있던 아내는 한참만에야 그다지 깨끗하지도 않은 물가에 발을 담궜다.
아이! 짜증나. 물이 너무 시원해.
아이! 진짜 짜증나. 하늘이 너무 파아래.
아내는 이미 치맛단을 허벅지가 보이도록 걷어 올렸다. 그러면서 물살을 헤치고 물속으로 첨벙첨벙 걸어들어 갔다.
은설 아빠! 정말 짜증나지 않아? 매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