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정(巨正), 크나 큰 올바름을 얻다

[임성용의 달리고달리고] (3) 꺽정이와 호떡장수

강원도 철원은 평강에서 흘러나와 점차 격랑을 이루고 흐르는 한탄강을 중심으로 신철원과 구철원으로 나뉜다. 동서울에서 버스를 타면 포천을 거쳐 약 두 시간 만에 신철원 터미널에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니, 그리 먼 곳은 아니다. 북으로 금화, 화천으로 까지 이어지는 넓다란 도로와 현대식 아파트까지 들어선 신철원이 행정구역의 중심지라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겨울 철새의 도래지인 철원평야에 자리한 동송읍 일대는 구철원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바로 궁예가 태봉국을 건국한 도읍지이기도 하다.

철원에 들어서면 ‘태봉국의 수도 통일시대의 중심’이라는 홍보 문구가 고구려의 옛기상을 떨치려고 했던 궁예의 웅지를 엿보게 한다. 그러나 통일시대의 중심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는 순간, 갑자기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것처럼 눈이 아프다. ‘통일은 내일 안보는 오늘’이라는 현수막이 문득, 눈앞을 가려서일까. 철의 삼각지, 제2 땅굴, 백마고지 전망대, 안보전시관, 그리고 흉물처럼 총탄 자국이 그대로 박힌 노동당사 건물... 민족상잔의 비극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최북단 접경지대의 싸늘한 총구 앞에서 과연 어느 곳에 발길을 멈추어야할지 난감하다.

나는 경기북부와 강원지역 배송을 나갈 때면 으레 포천보다는 경원선이 끊긴 연천의 대광리를 거쳐 올라간다. 제2 땅굴과 노동당사가 있는 대마리 쪽으로 동송을 들어가는데, 그 길은 인적이 거의 없고 지뢰지대 철조망을 통과해야 한다. 아니면, 관인을 지나 한탄강을 굽어볼 수 있는 고석정 지방도가 훨씬 마음에 든다. 조선 명종대의 도적 임꺽정이 석성을 쌓고 활동한 무대가 고석정이다. 고석정은 비록 각종 위락시설과 숙박업소, 래프팅 장소가 되어 한낱 행락객들이 오가는 유원지로 전락한지 오래지만, 깍아지른 협곡 사이를 세차게 요동치는 한탄강의 풍광이 워낙 장관이어서 철원팔경에서도 으뜸으로 통한다. 주변 전시관에는 탱크와 장갑차, 전투기, 각종 대포들이 늘어서서 실전을 짐작케 하는 전투상황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안보관광지가 있다. 아울러 한쪽에는 상투머리에 짚신을 신고 우람한 몸짓으로 떡 하니 버티고 선 임꺽정 동상도 있다.

의적 임거정[林巨正]의 무리들은 주로 경기도와 황해도, 강원도를 근거지로 웅거하였기에 그 유적이 고석정 말고도 많다. 경기도 양주 고을의 백정 태생이라고 알려진 그의 생가터가 양주별산대놀이 전수관과 동헌이 붙어있는 불곡산 밑에 아직도 남아있고, 불곡산 중턱에는 임꺽정 바위가 있다. 여기서 다시 파주 못미처 적성 쪽으로 올라가면 감악산에도 임꺽정 바위가 있다. 하지만 그가 은신했다는 자연 동굴과 석성까지 쌓아놓고 할거한 고석정이야말로 임꺽정의 본거지라 할만하다. 그런데 왜 임거정이 임꺽정으로 불렸는지, 그 이유를 고석정의 전설과 유래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석정은 건너편에 석성을 쌓고 함경도에서 상납되는 조공을 탈취하여 서민에게 분배해준 의적의 근거지로도 알려지고 있다. 조정에서는 임거정을 생포하려고 별별 수단을 다 썼지만, 그때마다 꺽지로 변신하여 고석정 및 한탄강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여 훗날 사람들은 임거정을 임꺽정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임꺽정은 ‘꺽지’라는 물고기를 이른 말이다. 바위나 자갈 틈에서 사는 꺽지는 입과 주둥이가 무척 크고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우리나라 토종의 육식어종이다. 민물매운탕 중에서도 꺽지탕은 그 맛이 일품이다. 밤고기를 잡을 때, 자갈밭에 숨어있는 꺽지를 맨손으로 잡으면 꺽, 꺽,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한다. 나는 꺽지를 잡으면서 그 울음소리를 들어보진 못했지만 임꺽정 하면 왠지 꺽, 꺽, 하고 우는 꺽정이의 울음이 들리는 것만 같다. 창칼을 맞고 꺽, 하고 피범벅으로 꼬꾸라지는 그 단발마의 울음이 마침내 꺼이, 꺼이 울어대는 통탄으로 번져 서늘한 등골을 떨리게 만든다.

고석정을 지나 중리초등학교 부근의 사거리에서 동송으로 들어서면 나는 늘 기분이 좋다. 철새도래지를 알리는 두 마리의 두루미 상이 금방이라도 춤을 추며 하늘로 날아오를 듯 나를 반겨준다. 그렇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철원지역은 항상 마지막 배송지라서 도착하자마자 시간에 쫓긴다. 어느 때는 저녁 여섯 시, 일곱 시가 다 돼서야 현장에 갈 때도 많다. 그래도 사람들이 남아서 왜 맨날 늦게 오냐고 욕이나 타박을 들으면서 짐을 내리기도 하지만, 부아가 있는 대로 치밀어 내려놓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고 두말없이 가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하는 수 없이 혼자서 낑낑대며 하차를 해야 한다.

그날도 늦었다. 동송 입구에 있는 이평리라는 아파트 현장인데, 점심 지나서부터 기다리던 업자가 더 이상 거래 않겠다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일단, 아파트를 찾아갔다. 배송 일정과 그날의 납품 사정을 이야기 하고 몇 번의 통사정 끝에 업체 사장이 왔다. 그런데, 그는 아파트 10층 까지 물건을 올려놓으라는 것이었다. 일찍 왔으면 일꾼들을 불러서 했을텐데 지금은 어쩔 수 없단다. 나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바쁜 볼 일이 있다며 휑하니 차를 몰고 가버렸다.

어떻게든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올려보려고 별 수단을 다 써봤지만 엘리베이터의 문과 천정이 너무 좁고 낮았다. 결국은 10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꺾고 돌고, 내렸다, 쉬었다 하면서... 날이 무척 쌀쌀했는데도 나중에는 온몸이 땀에 젖었다. 마지막 문짝을 내려놓고 긴 한숨과 함께 복도에 서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꺼이, 꺼이- 멀리 장흥리 들판에서 수많은 철새들이 떼로 몰려 밤하늘을 날아오르고 있었다. 사방에서 무리 지어 울리는 새떼들의 울음소리. 그 울음이 꺽, 꺽, 가슴을 치고 삽시간에 꺼이, 꺼이, 처연한 메아리로 울려퍼졌다. 고석정 푸르디 푸른 물줄기를 굽어보며 밤새 울었던 꺽정이의 마지막 울음 소리가 저랬던 것일까.

마침내 텅 빈 화물차를 몰고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아파트 앞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노변에서 영업 중인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무럭무럭 김이 오르는 오뎅 냄새가 코를 찔렀고 달콤한 호떡이 나도 모르게 군침을 돌게 했다. 포장마차에서 호떡을 굽고 있는 주인은 의외로 젊은 사람이었다. 이제 갓 서른이 될까 말까. 여자는 생긋 웃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달랑 플라스틱 의자가 너댓 개 놓인 비좁은 공간에는 아마도 학원공부가 끝났는지 여중생들이 대여섯 몰려 있었다. 나는 호떡 한 개를 집어 들고 슬그머니 비닐 포장 밖으로 나왔다. 호떡을 반쯤 베어 물고, 꼬치 오뎅과 국물도 한 컵 따라왔다. 급하게 그걸 먹고, 다시 오뎅과 호떡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내가 국물을 더 채우고 오뎅을 간장에 찍으려고 비닐 천막 사이를 들락거리는 사이, 더 많은 손님들이 줄을 섰다. 그들은 인근 상가 사람들이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떡을 사려고 온 아파트 주민들이었다.

점차 기다리는 손님들은 많아지고 호떡은 이미 동이 났다. 그럴수록 주인 여자의 손길이 더욱 바빠지고 신이 나야 할 일인데, 그녀는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연신 훔치며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애기 아빠 좀 나오라고 해!”
“미용실에 배달 갔어요. 금방 올 거예요.”
서로 아는 사이인 듯, 옆에서 기다리던 손님 중에 한 중년의 여인이 호떡 굽는 것을 거들어주었다. 그때, 마침 그 애기 아빠라는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얼굴이 곱상하고 주인 여자의 남동생 뻘이나 될성 싶게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다. 남편인 그가 호떡 반죽을 동그랗게 말아 철판 위에 올리면 그녀가 호떡을 눌러 익혔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들 부부의 솜씨가 영 미덥지가 않고 어딘지 모르게 갈팡질팡했다. 크고 작고 들죽날죽인 호떡은 그나마 굽는 족족 없어지고 봉투에 담아줄 물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아파트 10층까지 죽을 힘을 써서 배가 굉장히 고픈데도 딱 호떡 두 개를 먹었을 뿐이었다.

불어터진 오뎅을 꺼내들고 호떡이 빨리 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호떡 봉투를 손에 든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더니 비닐 천막을 홱 걷어 올렸다.

“이거, 호떡! 안에 든 꿀이 왜 이 모양이야?”
파마를 말아올린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쓴 아주머니는 반으로 가른 호떡의 속을 내보이며 호떡을 굽느라 정신이 없는 주인 부부에게 따져 물었다.
“꿀이 없고... 그냥 설탕이야. 설탕이 그대로 녹지 않고 씹힌다니까. 이거 봐, 호떡이 아직 익지도 않았잖아?”
남편이 조금 전에 미용실로 배달해준 호떡이 형편없는 불량품이 되어 되돌아온 것이었다.
“본래... 꿀은 안 넣고...”
남편이 호떡을 살피며 머뭇머뭇 말끝을 흐렸다.
“꿀호떡이라고 써놨잖어!”
“흑설탕을 넣은 건데요. 그게 왜 안 녹았을까?”
“호떡이 안 익었으니까 그렇지. 전부 바꿔줘요. 못 먹겠어!”
“이것도 설탕 뿐인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막 호떡을 베어 물던 여학생 하나가 호떡을 내밀었다.
그러자, 파마머리 아주머니에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던 주인 여자가 여학생을 노려보며 괜히 큰소리를 쳤다.
“설탕이 굳어서 그래. 이번에 받은 설탕이 이상하게 잘 안 녹고 금방 굳어버린다니깐. 제대로 녹으면 꿀처럼 되는 건데... 먹기 싫음 관둬!”
“그럼, 꿀을 넣으면 되잖아요?”
“누가 꿀을 넣어서 호떡 장사해? 에잇, 참! 호떡 장사 하면서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보네.”
그녀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여학생도 파마머리 아주머니도 주춤하니 꼬리를 내리고 물러섰다. 새로 구운 호떡을 싸들고 먹고, 어찌됐든 손님들이 나갔다. 나는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가장 크게 구워진 호떡만 골라 연거푸 몇 개를 꾸역꾸역 먹었다. 역시, 입 안에서 맨 설탕이 서걱서걱 씹혔다. 호떡을 먹다가 뜨거운 꿀물에 입천장을 자꾸 데이기도 하건만, 이집의 호떡은 도무지 그럴 걱정이 없었다.
“아저씨도 호떡 이상해요?”
주인 여자가 생긋, 예의 그 풀어진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아뇨! 무지하게 맛있는데요. 설탕맛이 다 이렇죠, 뭐. 사람들이 호떡 먹으면서 웬 꿀타령이여?”
“글쎄, 누가 아니래요? 꿀이나 설탕이나 그냥 단맛으로 먹는 거지... 고작 천원짜리 호떡 사 먹으면서 별 걸 다 따지고 지랄이야!”
내 말을 위안 삼아 제 풀에 깔깔거리며 웃는 그녀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장사꾼다운 입심이 묻어났다.
“애기 아빠가, 겨울이 코 앞인데 갑자기 직장을 놔서... 호떡장사나 해보려고 나섰는데 생각보담 쉽지가 않구만요.”
그녀는 비닐장갑을 벗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귀에 거슬린 눈치로 고개를 돌리더니, 물을 떠온다고 얼른 물통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까 말이예요. 미용실에서 온 아주머니랑 꿀이니 설탕이니 하면서 따질 때, 호떡장사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하시던데...”
“진짜, 첨이래요.”
“장사한 지는 얼마나 됐는데요?”
“이틀 됐어요! 엊그제부터...”
그녀의 말은 실제로 거짓말이 아니었다. 호떡 장사를 수십 년 해온 사람으로 말귀를 잘못 알아들은 건 바로 나였다. 호떡 장사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 그게 이틀이건 십 년이건 손님들은 그 말 한마디에 두 말 없이 입을 닫고 말았으니까.

거정(巨正). 크나 큰 올바름!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지만, 그녀는 생활 속에서 최선을 다해 거정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선입견이 그녀의 말과 행동을 거짓으로 몰아부쳤을 뿐이다. 그녀는 설탕을 설탕이라고 했고 꿀은 꿀이 아니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들 부부는 세상에 대한 적개심도 없고 불의와 부정에 대적할 만한 영웅도 아니다.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자신들의 힘으로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는 탈취할 욕심이 없다. 그들이 곧 우리시대의 힘없고 서글픈 임꺽정이가 아니고 무엇이랴.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강원도 철원 땅, 고석정을 지날 때마다 한탄강 이름처럼 꺼이 꺼이 울고 있는 임꺽정의 의분을 떠올리며, 이평리 호떡 장수 부부가 이제는 제대로 된 손맛이 올라 맛있게 구워내는 큼직한 호떡을 마음껏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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