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련 재판, 법정에서 ‘맑스주의’ 세미나

김수행, 강내희 교수...의회주의, 사유재산제도, 북한체제 등 설명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이 초급 마르크스주의 입문 강의가 됐다.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김형두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김수행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강내희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나와 검찰과 맑스주의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날 공판은 심리라는 형식을 빌어 자본주의 사회와 대안사회에 대한 이해정도가 부족한 검찰이 두 학자에게 질문을 던지면 대답하는 방식의 맑스주의 입문 세미나처럼 진행됐다. 두 교수는 의회주의, 사유재산제도, 북한체제와 맑스주의의 관계, 공황론 등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때론 담담하게 때론 검찰을 가르치듯 심리과정에서 설명했다.

이날 검찰은 사노련이 이적단체를 구성해 국가변란과 폭력혁명을 선전선동하려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사노련이 이러이런 주장을 했는데 아는가?”라고 주로 심문했지만 두 교수는 “사노련이 그런 주장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바로 맑스주의 이론이고 자본주의 모순의 대안을 설명 한 것”이라고 일관했다.

김수행 교수, 검찰에 공황론 설파

먼저 증인으로 나온 김수행 교수는 “자본주의가 태동한 영국은 노동당 안에 공산당원도 있고 트로츠키주의자도 있었다. 온갖 이념정당이 다 있지만 사상을 정부가 규제 하지는 않는다”고 소개했다.

‘노동시간단축,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의 주요 주장이 급진적이냐는 변호인의 질문엔 김 교수는 공황론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김수행 교수는 “제가 런던대학에서 공황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이 왜 생기냐면 노동자 계급의 힘이 약하다 보니 기업가 들이 이익만 추구하려고 자꾸 장시간 노동을 시키기 때문”이라며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을 나눠야 실업문제가 해결된 다는 것은 기본이다. 기업이든 은행이든 모두 공익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세계 조류”라고 설명했다.

김수행 교수는 “영국에서 62년 전인 1948년 무상의료를 시작한 것도 실업과 관련이 크다”며 “정부가 병원과 학교를 짓고 의사와 교사, 각종 관리인, 종업원을 늘려 일자리를 만드는 작업 이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저는 지금 금융기관도 전부 공익사업화 하라고 주장 중”이라며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주인이라는 의식을 빼 모든 이에게 일자리를 주고 이익을 나눠야 지금의 공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 생산관리나 국유화가 과격한 주장이냐는 질문엔 “기업이 자기의 사적 이윤만 추구하다 문제가 되어 공황이 왔다. 미국도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규제에 들어가고 있는데 규제라는 것이 국유화와 별 차이가 없다”고 대답했다.

검찰은 김 교수에게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 공산당을 엄하게 처벌한 판례가 있다’고 심문하자 김 교수는 “실제 그들이 공산당이라는 사상을 가져서 처벌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 처벌대상이 됐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자꾸 자본주의 체제만 좋다는 생각 버려야. 더 좋은 체제도 가능"

사노련의 주장이 북의 노선과 궤를 같이 하지 않느냐는 심문엔 오히려 검찰을 가르쳤다. 김 교수는 “자꾸 자본주의 체제만 좋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자본주의만 옹호해서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 더 좋은 체제가 있는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이 재차 ‘사노련 이념이 자본주의 타도,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하자는 것이 북과 같지 않느냐’고 묻자 “북한 체제와 같지 않다. 자본주의를 더 좋은 사회로 가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기본은 모든 사람이 잘사는 사회다”라고 설명했다.

검찰의 심문은 이어 의회주의와 맑스주의가 어떻게 조화할 수 있고,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위한 폭력 혁명론 등으로 이어졌다.

김수행 교수는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기본 같은 당이다. 이렇게 두 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민중의 이익을 반영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민중은 의회 밖에서 힘을 쌓아야 한다. 의회 안과 밖의 투쟁이 합쳐져야 한다는 것이 맑스의 기본 생각”이라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또 “경찰과 상비군이 기본적으로 기득권 층을 옹호하는데 이들을 강화하면 민중이 어떻게 사나? 모든 사람을 위한 세력으로 갈아치우자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폭력혁명론을 두고는 “혁명이라는게 급격하게 뭔가를 변동시킬 수 없다. 총을 들고 혁명해봐야 기반이 그대로면 변하는게 없다. 굉장히 장기적 혁명이고 의회 밖의 수단인 데모나 파업을 많이 하다보면 집권 세력이 양보나 타협으로 나아가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검찰이 재차 ‘의회 밖 방법으로 데모나 파업을 얘기 하셨는데 거기에는 폭력시위나 화염병, 무장봉기도 맑시즘에 포함되느냐’고 질문하자 “양 상대방에게 달려 있다”며 “권력이 총을 쏘면 가만히 앉아 있으면 죽는다. 87년에 사람이 죽고 그랬지만 총을 쓰지 않았다. 상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강내희 교수, "북은 변형된 국가독점자본주의"

김수행 교수에 이어 증인으로 나온 강내희 교수는 사노련 활동 중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두고 “경찰버스로 된 명박 산성 앞에서 실랑이가 있었지만 그 엄청난 규모의 집회가 폭력적 상황 없이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폭력시도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라 면서 “당시 대부분 운동권 조직도 촛불 안에서 영향력이 없었고 광우병 대책위도 겨우 행사를 진행하는 위치였다. 정말 미안하지만 사노련은 무능한 진보단체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강 교수도 검찰의 ‘사민주의, 민족주의, 노조 관료주의를 철저히 반대하는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에 바탕한 정치활동하는 당’에 대한 판단을 놓고 “사노련이 그런 내용을 제시 한 것은 잘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맑스주의적 주장이고, 사회주의 정당의 주장으로 알고 있다”고 짧게 대답했다.

사노련의 주장이 자유민주주의와 의회주의,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헌법과 합치되지 않는다는 검찰의 심문엔 “우리 헌법엔 사상과 표현의 자유 등이 들어 있어 해석에 따라 대안적인 사회를 얘기하는 것이 가능하다”면서 “의회주의 비판이나 여러 표현들도 자본주의 대안 사회 건설 모색 과정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유재산 문제에 대해선 “맑스주의가 개인적 재산을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부를 소수 개인이 독점하는 사적재산을 반대 한 것”이라며 “의회나 사유재산을 통해 현 자본주의 체제가 많은 이들을 빈곤과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의회주의라는 이름의 지배 전략을 바꾸려는 취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북 정권도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토대로 공산주의를 하지 않느냐는 말엔 “맑스주의 관점에서 북의 지배정권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변형형태”라며 “아마 사노련은 맑스주의 관점에서 북에 비판적이다. 제가 아는 북은 변형된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사노련의 맑스주의는 그 자본을 넘어선 대안사회를 얘기한다. 단어 상 중복 될 수는 있지만 내용상 완전히 다르다”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