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 어느 노동자의 꿈

[이윤엽의 판화참세상]



비가 왔다.
비가 오는데 이 골짜기에 모르는 어떤 가족이 왔다.

그냥 돌아다니다 여기까지 오셨다는 것과 행색이 나 처럼 잘사시지 않은 것 같아 반갑고 친근하여 커피 한잔을 대접 했다. 내 그림을 좋아하는 아주머니와 이것저것 신기해하며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과 나도 자기와 비슷하게 생각된다는 아저씨와 금방 친해져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형 아우 하기로 하고 해가 떨어지고 깜깜 하였다.

알고 보니 일가족은 맨 처음 얘기처럼 거저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시골 동네가 개발을 하기에 도시로는 갈 수 없어 변두리 그와 비슷한 살만한 곳을 물색 중에 나의 집까지 온 것이었다. 이 가족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기가 무지 싫은데 그곳에서 돈 없는 남편을 만나고 장가를 가고 자식도 낳고 집도 하나 장만 하엿고 동네사람도 좋아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꿈 때문 이라는 것이다. 배운 것 없고 돈 없고 기술 없었던 자기가 이렇게 땅도 사고 자기 집에서 가족과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을 그는 그가 장가 가기 직전 어느 날 그 터에서 꾼 ‘봉황 꿈’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가족의 이주는 곧 그 꿈에 대한 이주인 것이다.

그는 내가 들은 꿈 얘기 중 가장 구체적이고 세세히 그가 꾼 봉황 꿈 애기를 해주었다.


집 앞의 작은 둠벙 앞에
조금 작은 나무 하나가 있었단다.

그 나무 위로 아주 작은 새한마리가 앉았더란다.
아주 작았더란다.

그런데 그 새가 점점 커지더란다.
점점 커지더니 어마 어마하게 켜졌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이새가 봉황이 되더란다. 아무리 봐두 봉황새 더란다.

그러더니 새에게서 천천히 빛이 나더란다.
나중에는 눈이 부셔 더 이상 쳐다볼 수 없는 지경까지 황금빛이 나더란다.

그리고 작은 둠벙에서 다섯 사람이 나오더란다.
뒷모습만 보였는데 분명 다섯 사람이었고 아주 천천히 새에게로 다가가더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서더니.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한 명씩 차례로 새 등위로 올라 타더란다.

그러더니 봉황새가 높이 나르고
그가 살던 비닐하우스와 작은 나무주위를 크게 한 바퀴 돌더니 저리로 날라 갔단다.


그 후 그 때만해도 별 기술이 없어 막노동을 전전하던 그는, 지치고 힘들 때 마다 그 황금 새를 생각했단다. 그러면 힘이 생겼고 희망이 보이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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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엽 , 봉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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