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좌파의 무능함은 실천과 이론 진영 모두에게 동일하면서 조금은 다른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노동계급의 의식변화는 현실적으로 현장에서나 이에 너무 둔감한 이론 진영 모두에게는 커다란 고민거리이자 돌파해야할 절대적인 과제이다. 그런 측면에서 <진보평론>과 <문화과학>으로 대표되는 진보좌파 진영의 계간지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표류하는 사이 <마르크스21>의 등장은 한편으로는 반가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웠다. 그것은 ‘다함께’라는 특정 조직의 이론지이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연구와 내용이 풍부해져야할 상황에서 오히려 협소해 질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르크스21>이 진보좌파의 활성화에 기여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번에 발행된 <마르크스21> 6호는 천안함 사건을 통해 본 동아시아 질서 변동과 한반도, 유럽의 위기와 저항, 낙태 윤리 논쟁과 낙태권 운동을 <초점>에서 다루고 있다.
김하영의 ‘천안함 사건을 통해 본 동아시아 질서 변동과 한반도’는 천안함 사건이 긴장을 부추겨 온 이명박 대북정책의 무능과 실패, 미국의 상대적 패권 위축과 중국의 부상, 그리고 이런 변동이 낳는 지정학적 효과, 동아시아에서 패권 위축을 만회하려는 미국의 전략과 그 전략에서 ‘북한 위협’ 카드의 용도 등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글은 최근 미국발 금융 위기가 미중 간 세력관계 변동에 미친 영향, 경제 위기로 중미 간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 준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유럽의 위기와 저항’은 과연 좌파가 최근의 세계 자본주의 위기에 서투르게 대응하다가 중대한 정치적 기회를 놓쳐 버렸는가 하는 질문에 흥미롭게 답하는 글이다. 캘리니코스는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지 못할 것이며, 민간 부채의 엄청난 증가에서 시작된 이번 경제 위기가 이제 공공 부채의 위기로 전이된 국면을 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규진의 ‘낙태 윤리 논쟁과 낙태권 운동’은 최근 우파들의 낙태 시술 병원에 대한 형사 고발과 정부의 낙태 단속으로 촉발된 낙태 공격에 반대하고 나아가 낙태 합법화 운동에 기여하고자 쓴 글이다. 우파들이 낙태를 공격할 때 핵심 무기로 사용하는 윤리 문제, 태아 생명권 문제 제기를 정면으로 하나하나 반박한다. 또, 낙태 공격이 시작되고 있는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국의 낙태권 쟁취 운동의 사례에서 교훈을 이끌어 낸다.
<특집>에서는 중국 경제를 분석한 글 두 편과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쓴 신자유주의와 대학 구조조정을 다룬 글이 실렸다.
이정구의 ‘갈림길에 선 중국 경제’는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빠르게 회복한 중국 경제가 과연 앞으로도 그 추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분석한다. 미국발 경제 위기와 그에 대응하면서 중국 정부가 시행한 정책이 중국 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중국 경제 위기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도 소개한다.
김용욱의 ‘중국 모델을 둘러싼 최근 좌파들의 논의’는 2000년대 중반부터 좌파 사이에서 증대하고 있는 ‘중국 모델’ 논의를 검토한다. 김용욱은 중국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하거나 중국의 국제적 부상에 기대를 거는 국내외 좌파 논자들의 광범한 저작을 추적해 그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비판한다.
그 외 최일붕의 ‘정의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 존 롤즈 ≪정의론≫ 읽기’는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다양한 개혁주의적 논의의 바탕에 깔려 있는 롤즈 <정의론>의 핵심적 주장들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비판한 글이다.
한규한은 ‘한국전쟁, 누구의 전쟁인가?’에서 한국전쟁은 분단이 고착화된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거니와 민족 성원의 가슴에 상흔을 깊이 남기고 군국주의를 부추긴 비극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진보적인 성격이 못 되고 그저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다툼이 한반도를 제한된 무대로 해서 격화된 것인지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