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요청서와 라면: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투쟁 ②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40)

"계속 사먹자니 비용이 만만치가 않아서요. 하루 세끼 다 먹으면 그것만 만 오 천 원인데..."


7월 12일 오후,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라면을 끓이던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심인호 조합원이 이야기한다. 이백윤 지회장이 쌀을 씻어와 앉힌 밥통에서 구수한 김이 올라온다. 전기가 없어 발전기로 밥을 하고 있다. 라면이 익자 조합원들이 바닥에 빙 둘러앉아 종이컵에 라면을 덜어 먹는다. 인근 마트에서 사온 얼마 안 되는 김치를 봉투에서 덜어 먹고, 밥도 먹는다.


"안 드세요?"
"밥 먹고 왔어요."
"남아서요~"
"정말 남아요?"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냉큼 종이컵에 담아준 라면을 받아먹는다. 현대에서 고용한 용역들이 농성장의 모든 것을 보고하고 있다. 용역들이 계속 늘고 있다 한다. 점심때 기자회견을 하고 용역들과 실갱이 끝에 어렵게 마련한 농성장의 위치가 그만이다. 시민들에게 홍보를 하기도 좋고, 낮엔 그늘까지 있어 많이 덥지는 않을 게다.


"몸은 여기 와있지만, 현장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걱정이에요. 신차 생산에 들어가고 있거든요. 그거에 대한 선전활동도 하고, 인원배치 문제도 고민해야 하는데 여기 있으니 아쉽죠. 여기요? 일단 모기가 걱정이죠. 근데 사람이 닥치면 다 하잖아요. 고생스럽더라도 해낼 수밖에 없잖아요."
해고된 지 1년 4개월 되었다는 김주원 조합원은 객지에서 노숙하는 것이 담담하다고 한다.
"낮에 교섭 요구 할 때, 용역들이 막았는데 어떠셨어요?"
"누구나 알고 있던 상황이잖아요. 모르셨어요?"
할 말이 없다. 이럴 땐 뭐라고 얘기해야 하나? "정몽구 회장이 우리의 명백한 사용자인데, 문전박대를 해서 정말 서러웠어요."라고 이 조합원이 이야기했다면 내 마음이 편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다. 문득 올려다본 현대기아차 건물이 무척 높다. 사측과 소통을 하기 위해 이른 아침 지방에서 올라와 노숙을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응답은 수많은 용역과 버스를 배치하는 것이었다. 비정규직 투쟁에서 감시와 폭력의 형태로만 드러나는 '원청사용자성'이 서글프기만 하다.


어둠이 깊어질 무렵, 이갑용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선옥 작가 부부가 먹을거리를 챙겨 갖고 농성장을 방문했다.
"어떤 생각이 들긴. 서글프지..."
16년 째 해고자 생활을 하고 있는 이갑용 전 위원장은 “10년 정도는 괜찮았는데, 노조가 완전 어용이 된 후로 힘든 점이 있다”고 했다. 80년대 현대 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와 그때 썼던 전술 중 한 두 가지를 동희오토 동지들에게 추천도 해준다.
"본사 앞에서 첫날밤이네. 원래 첫날밤은 손만 잡고 자는 거야. 그래서 잠을 한숨도 못 자지. 힘들 내."
이갑용·이선옥 부부가 떠나자 동희오토 동지들은 농성장 정리를 하고, 회의를 한다. 내일 일정과 이후 투쟁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모기장 치는 거 보고 가려 했는데, 회의 하시니까 그냥 가야겠네요."
"모기장 지금 칠게요."
착한 동지들이다. 농성장을 떠난다. 7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배치한 용역과 버스들 속에 자본 자신이 갇혀있는지도 모른다.
이날 밤, 이갑용 동지의 예언대로 동희오토 동지들은 침낭을 빼앗고, 헤드라이트를 비추고, 싸이렌 소리에 물대포까지 쏘아대는 용역들의 폭력 때문에 밤새 잠 한 숨 자지 못했다. 다음날 연행되어 유치장에 들어간 조합원들은 전 날 못 잔 잠이라도 푹 잤는지? 조합원들이 연행되고, 밥통 속에 가득 들어 있는 밥은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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