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촛불이 그립다

[진보논평] 비겁한 지식인의 사회

자본주의는 늘 위기에 처하지만 그럴수록 노동자 민중들에 대한 탄압은 도를 넘어 간다. 이 명박 정권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패거리 정권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시장주의자도 아니요 신자유주의자도 아닌 그들은 그저 장사치들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죽도록 기를 쓰고 강행하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특정 집단의 건설 자본에 돈을 몰아주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4대강 사업을 일러 물 부족 운운하는 것도 알고 보면 물장사 하자는 것이고 그것을 포장하느라 물 산업 진흥 운운하는 것일 뿐이다.

2014년 경 전 지구적으로 1600조에 이를 막대한 시장 규모를 보고 장사는 역시 물장사가 최고라며 진작부터 군침을 흘렸을 터이다. 멀쩡한 4대강에 여객선 터미널이 들어서고 2000톤 급 크루즈 호를 띄워 카지노 도박판을 벌이고 강 주변에 자전거 전용도로, 요트 경기장, 말 사육장 등을 만드는 일도 따지고 보면 다 돈 되는 일이다. 금융을 건드리는 것보다야 규모가 작겠지만 장사꾼들이 큰 돈 작은 돈 가리겠는가. BBK든 운하 장사든 물장사든 돈 되는 일이면 두 눈 까뒤집고 달려드는 이 무대포 집단들에 대해 진보 진영의 대응은 너무 점잖고 너무 인간적인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짐승들에게 반신자유주의 논의는 무슨 필요이며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또 무엇일 수 있는가. 4대강 사업 강행하면 활동가들처럼 보에 올라가 점거 농성하면 될 일이지 생태 파괴는 웬 말이고 생명 평화 운운은 무슨 필요란 말인가. 엉덩이는 무겁고 목숨 걸고 싸우지 않으면서 목으로만 고래고래 외쳐대는 싸움이 무슨 필요 있겠는가 말이다. 주체가 형성되지 않았으면 주체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볼멘소리를 내는 사람들부터 투쟁의 주체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노인들 돈 몇 푼도 안 주겠다 하고 기초 생활수급자도 동결시키며 복지고 뭐고 안중에도 없이 그저 배춧잎에 광분하는 장사치들에게는 백약이 무효 아닌가. 착취와 억압과 차별이라는 이 시대의 온갖 문제들을 구슬 서 말 꿰듯이 꿰차고 앉아 있은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차라리 촛불이 그리워진다. 소시민운동이고 다중이며 한계가 무엇이고 간에 87년 이후 거리로 나온 각각의 주체들이 높이 들었던 촛불이 차라리 그립다. 그 많던 주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얼마 전 현장에 들어가겠다던 학생들과 만나 이야기하다가 가슴이 미어진 적이 있다. 가슴은 불길이 치밀어 오르듯 공감하지만 그 많던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기에. 그리고 그 많은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보수성향대학생연합은 출범했는데 그 많던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운동이 분과 학문적으로 흘러가서일까, 아니면 쪽수 탓일까. 그도 아니면 운동 주체들 사이의 수많은 이해관계 탓일까. 요즘 ‘변혁’이란 말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먹물근성일 뿐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말이 변혁이지 죽은 사람 살려낼 정도로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 변혁이다.

이 시대는 도대체 지식인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사르트르처럼 지식인을 위한 변명의 변죽을 울릴 때가 아닌 듯하다. 지식인들이 펜과 플래카드만 부여잡고 다닐 때가 아니다. 그 자체가 의미 있는 행위라고 할지 몰라도 다른 한 편에서 보자면 무의미한 일이기도 하다. 집회 앞자리에 다른 사람이 깔아준 멍석위에 앉아 한 자리 차지하는 것으로 진보적인 지식인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디외나 푸코처럼 대중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반신자유주의의 실천을 감행했던 지식인들이 참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선비정신이 실천가의 자리를 억압하는 것인지 스스로 주체로 나서지는 않으면서 진보적인 지식인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시대가 얼마나 비상한 상황인지는 누구보다 지식인이 잘 알 것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이포보와 함안보에 올라간 사람들은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었다. 좌파들은, 진보세력들은 그들의 입과 손만 진보적이고 좌파적이었다. 보를 점거 농성하는 발은 그들에게 없었다. 쌍차 노동자들이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도장 공장 바깥에서 탄압 규탄 기자회견이나 한 것 아닌가. 낯이 뜨겁고 뜨거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차라리 촛불이 그립다. 미치도록 그립다. 명박산성을 넘어갈 수도 있었을 그 시절이 벌써 아스라하다. 촛불이 꺼지고 노동자 민중들은 호주머니 탈탈 털리고 잃을 것 다 잃었다. 신자유주의, 아니 철두철미 돈벌이에 광분하는 시대다. 이 미친 세상에서도 우리들은 건물 속으로 기어들어가 빵빵한 에어컨 쐬며 워크샵하고 세미나만 할 일인가. 누가 주체이고 주체는 누구인가? 폭염이 정신을 녹이는 탓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실타래는 꼬여만 간다. 더 잃을 것도 없는데, 목숨 하나 덜렁 푸른 하늘에 걸려 있다.

태그

지식인 , 촛불 , 4대강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이득재(진보전략회의)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아줌마

    동감!!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