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신간안내] 『인권의 대전환』(샌드라 프레드먼, 교양인, 2009)

왜 ‘인권의 대전환’인가?

1. 이 책은 인권의 개념 자체에 근본적 전환을 가져왔다. 시민과 국가가 서로 권리와 의무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것이 근대 민주 정치의 기본 전제이다. 그런데 전통적 인권 담론에서는 권리의 주체인 개인은 강조되었지만 개인의 권리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는 또 다른 주체인 국가는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인권의 대전환』은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인권 개념의 근본적인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오랫동안 인권은 억압적인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해주는 것으로만 이해되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인권은 국가에게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라고 요구하기보다, 개인의 삶에 간섭하지 말라는 식의 ‘소극적’ 의무만 부과하는 것이 된다. 저자는 의무 주체인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인권 개념 속에 ‘권리의 논리’와 ‘의무의 논리’가 똑같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2. 인권은 규범력이라는 뼈에다 구체적 실현 방안이라는 살을 입혀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인권의 대전환』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모든 ‘인권’은 국가의 자기 억제 의무(소극적 의무)와 적극적 의무를 동시에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의무는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상호 작용을 하면서 특정한 인권을 실현한다. 예를 들어, 주거권은 국가가 개인의 가정사에 간섭하지 말고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할 자기 억제 의무와, 국가가 그 사람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주거 공간을 제공해야 할 적극적 의무를 동시에 발생시킨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취하게 되면, 전통적인 인권 개념을 비롯해 자유권과 사회권의 구분, 국가의 의무를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할 필요가 생긴다. 이 책은 앞으로 한국 사회의 모든 사회권 논의의 출발점이자 토대가 되는 논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3. 『인권의 대전환』은 인권을 뒷받침하는 자유, 평등, 연대(우애), 민주주의라는 가치들이 인권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입증하였다. 그동안 인권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기보다는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보조적 수단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이 책은 기존의 그러한 인권 인식을 정면으로 뒤집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대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직접행동 민주주의, 심의민주주의 등 수많은 민주주의 실천 방식 중에서 어떤 방식을 옹호하든 간에 민주주의의 목적은 인권을 중심으로 하여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를 강화하고 실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권을 옹호한다는 것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한다는 말과 같다. 인권은 민주주의의 ‘먼’ 친척이 아니라 공화주의적 민주주의 전통을 강력하게 옹호할 수 있는 최고․최적의 원군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인권을 국가 정치 공동체의 핵심 구성 원리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새로운 인권 개념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논쟁에도 큰 의미를 지닌다.

사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인권의 대전환』은 인권을 실현하는 데 법률과 사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를 명확히 규명하였다. 저자는 법과 정치를 나누는 통상적인 이분법을 배격하고, 국가가 인권을 보장하도록 촉구함으로써 민주주의 체제를 보존하고 지원하는 것이 법원의 궁극적 역할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저자는 사법부가 어떤 정치적 의도를 품고 적극적으로 법 창조를 시도하거나 사법부가 행정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법부는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국가가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관찰하고, 국가가 스스로 내세웠던 바를 제대로 실천하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일종의 ‘민주적 사법 적극주의’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이런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최근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정치의 사법화, 사법부의 정치화 논란을 뛰어넘어 ‘진정한 법의 지배’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사법부가 넓은 뜻에서 ‘인권 운동’의 한 축이 되어야 하고, 민주주의 체제의 파수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권의 대전환』은 법원의 적극적 행동주의를 인권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엄밀하게 도출해냄으로써 진보적 인권법 이론의 이정표를 세움과 동시에 법률이 넓은 의미의 인권 운동에 기여할 수 있음을 명확하게 밝혔다.

차가운 열정과 치밀한 논리를 겸비한 인권 분야의 석학

『인권의 대전환』의 저자 샌드라 프레드먼은 옥스퍼드 대학 법학부 역사상 최초의 여성 정교수이다. 여성을 옥스퍼드 대학 법학부 정교수로 임용한 것은 옥스퍼드 대학이 12세기에 법학부를 개설한 이래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당시 옥스퍼드 대학의 결정은 세계 법학계에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프레드먼의 학문적 역량이 다시 한 번 크게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프레드먼은 특히 법학과 철학 두 영역을 포괄하는 시야를 확보하고서 자유, 평등, 연대, 민주주의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차가운 열정과 치밀한 논리로 파헤치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인권의 대전환』에서 저자는 인권의 가치와 민주주의 이론을 직접 연결하기 위해 존 롤스, 로널드 드워킨, 제러미 월드런, 캐스 선스타인, 한나 아렌트, 위르겐 하버마스, 데이비드 헬드 같은 현대 법철학과 정치 이론 분야의 기라성 같은 사상가들을 섭렵하여, 대담하고 획기적인 인권 이론을 창출하였다. 법철학과 사회과학 이론의 양대 분야 최고봉들의 사상을 새로운 인권론의 주춧돌로 삼은 것은 인권 이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대단히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저자는 인권 개념의 전복적 재정립을 위한 새로운 이론적 틀을 확립함과 동시에 인권 변호사이자 유럽 각국의 인권 정책 자문역을 맡았던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권의 실천을 위한 사법적․정책적 방안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인권 실현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이 있어도 인권이 구체적인 정책의 형태로 표현되지 못한다면 그 법은 죽은 법이나 다름없다. 저자는 10개국(미국,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아일랜드, 체코, 벨기에, 유럽연합,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의 약 100여 개 인권 관련 주요 판례들과 인권 실현을 위한 각국의 정책적 활동을 소개한다. 북미,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주요 사법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은 우리 사법부도 국내 적용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연구해야 할 내용이다.

『인권의 대전환』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적극적 의무란 무엇인가’에서는 인권을 위해서는 국가의 소극적 의무뿐 아니라 적극적 의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법철학과 사회 이론의 측면에서 규명한다. 인권의 토대가 되는 자유, 평등, 연대, 민주주의의 가치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가치들로부터 발생하는 의무가 적극적 의무이자 동시에 소극적 의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밝히고, 인권이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임을 설명한다.

2부 ‘법의 지배와 사법부의 역할’에서는 어떤 것이 적극적 의무가 될 수 있는지 그 성격과 구조를 밝힌다. 그런 다음 인권과 관련해 사법부의 역할에 대해 고찰한다. 여기서 저자는 법원은 국민에 대한 정부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민주적 정치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며, 시민들의 참여를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 소송 사례를 통해 법원과 정치권, 시민운동 등이 힘을 합쳐 적극적 인권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도 제안한다.

3부 ‘인권 실현의 권리와 의무’에서는 앞에서 논의한 이론 틀을 실질적 권리에 적용한다. ‘인정의 평등’과 사회적․경제적 권리에 나오는 ‘분배적 평등’의 상호 작용을 검토하고, 모든 인권 이론을 동원하여 주거권, 교육권, 복지권 영역에서 실제 사례 분석을 시도한다.

차 례

1부 적극적 의무란 무엇인가

1장 인권의 가치를 다시 생각한다 - 자유, 평등, 연대

1. 시민의 적극적 자유와 국가의 적극적 의무 / 2. 개인주의와 공동체
3. 좋은 것과 옳은 것 : 국가는 중립적일 수 있는가? / 4. 누가 비용을 내야 하나? 책임 개념을 다시 생각한다 5. 인권은 국가의 적극적 의무다

2장 국가의 역할
1. 시민의 적극적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대
2. 전 지구적 시장 자유화와 국가의 적극적 의무 / 3. 민영화와 국가의 적극적 의무 : 누구의 책임인가? / 4. 적극적 인권 보호는 지구화의 핵심 의무다

2부 법의 지배와 사법부의 역할

3장 적극적 의무의 구조
1. 의무는 나눌 수 없다 / 2. 적극적 의무란 무엇인가 / 3. 법이 해야 할 일

4장 사법 심사와 법원의 역할
1. 국가의 의무와 사법 심사 / 2. 소극적 의무와 적극적 의무 구분의 어려움
3. 사법 심사 재구성과 민주주의의 강화 / 4. 적극적 의무의 사법 판단 사례 / 5. 법원의 민주적 역할

5장 사법부의 재구성
1. 사법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 2. 인도의 공익 소송 : 세기적 사법 실험
3. 법원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보루

6장 법을 넘어선 적극적 의무
1. 비사법적 의무 준수 메커니즘 / 2. 비사법적 조정 이론의 도전 / 3. ‘적극적 의무 준수 메커니즘’ 모델의 적용
4. 국가 · 사법부 · 시민사회 · 국가인권위:상승 작용적 접근

3부 인권 실현의 권리와 의무

7장 평등의 실현
1. 인정 평등과 재분배적 평등 / 2. 평등과 사법부 / 3. 사법부를 넘어서 : 평등을 신장할 적극적 의무
4. 평등 - 민주주의의 진정한 변화를 위하여

8장 사회적 권리와 적극적 의무 : 몇 가지 핵심 사례들
1. 주거와 피난처 / 2. 교육받을 권리 / 3. 복지를 누릴 권리 / 4. 인권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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