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권리 :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 투쟁 ④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42) “간절히” : GM대우 원청사용자성 인정, 해고자 복직을 위한 3보 1배

험난한 삶은 꼭 그래야 하는가
“북 장단하고 목소리하고 맞춰보겠습니다. 날 더워집니다. 빨리 합시다.”
5월 27일 10시. 부평 소방파출소 앞에 도착하니 3보 1배를 시작하고 있다.

“비. 정. 규. 직.”
“철. 폐. 하. 자.”
“얼쑤~”
“원. 직. 복. 직.”
“쟁. 취. 하. 자.”
“얼쑤~”

‘둥둥둥둥’ 북 장단에 맞춰 연습을 해본다. 지금 이 순간이 오늘 하루, 아니 최소한 이후 며칠을 결정하게 될 거라는 걸 여기 모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장기투쟁 사업장들이 하는 ‘3보 1배’는 보통 ‘비정규직 철폐’나 ‘원직복직 쟁취’ 등 실질적으로 ‘6보 1배’를 많이 하는데, 여기는 ‘4보 1배’로 강도가 비교적 센 편이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라고 하지만, 더운 날씨에 걱정이다.

[출처: GM대우비정규직지회 곽동표 조합원 제공]


누구는 뺏고 누구는 잃는가
험난한 삶은 꼭 그래야 하는가
앞서서 산 자와 뒤쳐져 죽은 자
그 모든 눈에는 숨가쁜 눈물이
왜 이리 세상은 삭막해 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오만가지 소원을 다 빌게 되네
“비. 정. 규. 직.”
“철. 폐. 하. 자.”
“원. 직. 복. 직.”
“쟁. 취. 하. 자.”

“비정규직 철폐하자”, “원직복직 쟁취하자”는 구호와 북소리가 평일 오전 적막한 시내에 메아리친다. 부평 시내에 이들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평 소방파출소에서 출발한 삼보일배는 부평시장역과 부평구청역을 거쳐 갈산역 사거리에서 마무리 할 예정이다. 원래 계획은 GM대우자동차 공장을 한 바퀴 도는 것이었으나 지방선거도 있고 하여 시민들에게 요구를 알리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에서 1주일 전에 동선 변경을 했다 한다.

[출처: GM대우비정규직지회 곽동표 조합원 제공]

간혹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이나 영업을 하다 나온 상점 주인들이 안타까운 눈길로 3보 1배 행렬을 쳐다보기도 한다. “백날 해봐라. 되나!” 하며 짜증을 내고 지나가는 시민도 있다. 내용을 몰라서라고, 날씨 탓이라고, 다들 살기 힘든 탓이라고 위로한다.


‘대량해고’ ‘파견확대’ ‘비정규직’ 등의 목칼을 찬 동지들이 뒤를 따른다. 목칼을 많이 준비했는데, 3보 1배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다 사용을 못했다 한다. 목칼을 차고 행진하는 동지들과 북을 치는 동지, 차량 운행과 물 전달 등을 하며 진행을 도울 동지들도 하루 종일 고생이 많을 거다. 처음에 잘 안 맞던 참가자들의 절 박자가 잘 맞아가기 시작할 즈음, 잠시 쉬어간다.

  쉬어가는 시간 [출처: GM대우비정규직지회 곽동표 조합원 제공]

“잡생각이 나. 오만가지 소원을 다 빌게 되네.”
“뭐? 장가 가게 해달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술 먹지 말걸...”
“술기운에 하는 거지. 맨 정신엔 못하지.”
“힘들어서 살 빠지겠네.”

짧은 쉬는 시간이지만, 신발을 벗고 길바닥에 앉아 마시는 시원한 물 한 모금과 담배 한 대가 그렇게 맛있어 보일 수가 없다. 신현창 지회장이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하며 씨익 웃는다.

천막농성 1,000일을 앞두고
“숙연해져요. 지나왔던 것도 생각이 나고, 간절히 마음 속으로 바라게 돼요. 40살 먹기 전에 공장 가야 될 거 아니에요.”

금속노조 인천지부 부지부장이자 비정규직지회 해고노동자인 이대우 동지가 간단하게 소감을 이야기한다. 점심시간에 밥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부평시장역 부근 그늘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다들 고생하는데, 별로 한 일도 없이 먹기에 과분한 도시락을 나도 먹는다.


2009년, GM대우는 자신이 초래한 위기의 책임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여 1,0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급휴직 하게 한 후에 희망퇴직이라는 형식으로 사실상의 해고를 했다. 조합원들이 희망퇴직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사측은 해당 업체인 지아이텍과 대일실업을 폐업하고 조합원의 고용승계를 거부하여 해고자가 발생 하였다. 2010년 비정규직지회는 지난 4월 29일 금속노조 결의대회에서 지회 설립 당시 해고된 조합원을 포함하여 2009년 업체 폐업으로 사실상 해고된 조합원 20여 명의 복직을 취우선 과제로 제시하였다. 어느덧 비정규직지회의 천막농성이 7월 25일이면 1,000일이 된다. 오늘의 삼보일배는 천막농성 1,000일을 앞두고 GM대우의 원청사용자성 인정과 해고자 복직을 위한 조합원과 연대동지들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기획된 일정이다.

  대우차 정문앞을 지나는 3보1배 참가자들 [출처: GM대우비정규직지회 곽동표 조합원 제공]

기자들도 삼보일배 하지 그래요?
“이제부터는 다 똑같은 그림인데, 기자들도 삼보일배 하지 그래요?”
점심을 먹고 나자 이준삼 조합원이 볼멘소리로 이야기 한다. 대충 사진 촬영 해놓고 중간에 얼마간이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갑작스런 요청을 받고 얼떨결에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삼보일배를 한다. 영상 촬영을 하던 수목 동지도 함께 한다. 비정규직지회 곽동표 동지는 삼보일배 요구에 굴하지 않고, 모든 기록자들을 대표하여 홀로 꿋꿋하게 촬영을 계속한다.

“비. 정. 규. 직.” “철. 폐. 하. 자.” “원. 직. 복. 직.” “쟁. 취. 하. 자.”

[출처: GM대우비정규직지회 곽동표 조합원 제공]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가 올라온다. 참가자들의 절 하고 일어나는 속도가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삼보일배 한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고 편치 않았다. 안 그래도 아무 잘못 없이 고생하는데, 땅바닥에 엎드려 절까지 하는 게 속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투쟁하는 동지들이 하는 삼보일배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 동지들이 정말 간절한 염원을 담아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며 이후 투쟁을 결의하고, 연대를 호소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출처: GM대우비정규직지회 곽동표 조합원 제공]

세 걸음 걷고 한번 절하면서 자신이 지은 모든 나쁜 업을 뉘우치고, 깨달음을 얻어 모든 생명을 돕겠다고 서원(誓願) 하는 것이 삼보일배 수행법이라 한다. 1보에 이기심과 탐욕을 멸하고, 2보에 속세에 더럽혀진 진심(塵心)을 멸하고, 3보에 치심(恥心)을 멸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콜트악기지회 심자섭 조합원은 “힘들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꼭 쟁취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3보 1배를 했다.”고 했고, 멀리 서산에서 올라와 함께 한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심인호 조합원은 “비정규직 불법파견의 문제와 원청사용자성 문제를 공동투쟁을 통해 민주노조 운동의 과제로 만들어 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난 아직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아니, 도로 갈 걸 뭐 하러 왔대?”
어느덧 목적지인 갈산역 사거리에 도착한 삼보일배 참가자들이 마무리 집회를 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GM대우자동차 정문 앞으로 이동한다. 삼보일배를 마친 참가자들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볍다.

“올해의 투쟁 방향은 원청사용자성 인정입니다. 7월 25일 전에 현장 복귀 약속은 못 드리지만, 시민들에게 원청사용자성 문제와 파견법 확대 저지를 알려낼 것입니다. 우리 지회는 1000일 투쟁의 고비에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원청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책임이 있고, 정부 파견법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내겠습니다.”

  대우차 정문앞에서 마무리집회 하는 장면

땀으로 옷이 흠뻑 젖은 신현창 지회장이 마무리 발언을 한다. 어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2시간 동안 원청사용자성에 대한 논의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정문 앞 마무리 집회 때 참석한 전재환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장은 “열 걸음이라도 꼭 함께 하고 싶었는데, 선거 유세 때문에 못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렇게 해서 복직만 된다면 몇 바퀴라도 하지.”
농성장으로 떠나는 조합원들이 차에 올라타며 이야기하는데, 내일 아침에도 같은 마음일지는 의문이다.

내일 아침이면 모두들 온 몸이 쑤실 거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다리가 당기고 아파 쩔쩔 맬 수도 있고, 허리가 아파 오래 앉아 있기 힘들 수도 있을 거다. 또, 집회 시간 팔뚝질 할 때 팔의 통증 때문에 힘들 수도 있을 거다. 비록 며칠 안 되겠지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몸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아픔과 간절한 소망을 느끼는 시간이기를.....

[출처: GM대우비정규직지회 곽동표 조합원 제공]


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사람과
오늘도 여전히 불안한 사람들
모두들 제각기 제 길을 가지만
난 아직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내 할 수 있을 때 일하는 세상
내 일한 만큼만 받는 세상을

- ‘문화노동자’ 연영석님의 노래 <간절히>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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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GM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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