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주체형성과 실천방식이 필요하다

[신간안내] 문화과학 63호(2010년 가을, 문화과학사)

2010년 가을 『문화/과학』63호의 특집은 ‘세대의 정치경제학 비판’이다.
이번 특집은 지난 62호 ‘세대의 문화정치학’에 이어 또 한 번 세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세대’ 문제와 연동시켜 사회변동의 문제를 짚어봄으로써 앞으로의 사회 변혁에 있어 새로운 실천 주체 형성과 실천 방식을 고안해 내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향후 우리 사회가 처하게 될 객관적 정세와 이에 대한 주체적 대응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을 특집의 주제로 잡았다는 말이다. 일단 우리는 청년들이 다시 사회적 주체가 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고, 이들이 앞으로 한국사회의 진보를 어떻게 결정지을 것인지 ‘희망 섞인 진단’을 해보고자 한다.

올해 2010년은 젊은 세대가 다시 우리 사회의 역사적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또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가 무척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동시에 젊은 세대들이 그에 항거하기 시작했다는 지표이다. 고려대 김예슬 학생의 자퇴 선언, 청년유니온(청년노동조합) 결성, 중앙대 노영수 학생의 학문단위 재조정 반대 고공시위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이 전개하고 있는 ‘자기교육’ 운동이 이런 변화의 전조로 보인다. 작년 한예종 사태 이후 시작된 ‘자유예술캠프’, 이공계 전공 학생 연합 학술동아리가 조직한 ‘3차원 지식포럼’, 예술 전공 대학생들이 만든 ‘철학하는 예술가 포럼’, 수도권 대학생들이 조직해서 진행한 ‘대학생 대안포럼’ 등이 그런 예다.

이런 움직임은 각기 수백 명이 참여하는 자기 교육과정이라는 점에서 실질적 영향력이 클 것이다. 청년세대의 ‘출현’은 지난 6월 2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도 확인되었다. 여당의 대패와 야당의 승리로 끝난 선거결과도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동안 주요 선거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해오는 것만 같던 젊은 세대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예를 놓고 2010년 한국사회는 바야흐로 새로운 역사적 주체의 등장을 보기 시작했다고 하면 지나치게 희망 섞인 진단이 될까?

특집의 총론격인 심광현의 「한국 자본주의의 압축성장과 세대의 정치경제/문화정치 비판」에서 필자는 ‘계급분석과 세대분석의 변증법 지도’를 그려내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한국현대사에서 계급갈등과 여타의 사회적 갈등들이 어떻게 다양한 세대 차이의 리듬을 통해 전개되었는지 살펴봐야만 그동안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맑스주의와 각종 포스트주의 사이의 비생산적 대립과 정체, 그리고 노동운동과 (신)사회운동 간의 분열과 대립을 넘어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심광현이 분석하고 있듯이, 오늘 세계자본주의는 실물팽창을 대체하는 금융팽창을 위해 가동해온 신자유주의 축적 전략이 위기를 맞음에 따라 진퇴양난에 빠졌다. 20세기 초반에 현재와 비슷한 위기에 빠졌을 때 대규모 전쟁을 일으켜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했던 것과는 달리 자본주의 시장이 거의 포화된 지금은 세계대전과 같은 위험을 자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세계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 전쟁은 피하면서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형태의 본원적 축적 방안을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심광현에 따르면 최근 결성되어 올 가을 한국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인 G20을 바로 그런 것으로 보고 있다. G20은 지역적 경계를 넘어서 지구적 차원에서 강탈을 통한 축적을 수행하고 그 이득을 내부에서 분배하는 초국적 컨소시엄으로서 앞으로 자본주의적 세계체계가 우리에게 강요할 ‘객관적 정세’로 작용할 전망이다. 각국의 지배 상황도 세계자본주의의 이런 기본적 구도와의 관계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손낙구는 그의 글 「부동산 격차와 교육격차」에서 밝히고 있듯이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부동산이 부의 원천으로 작용해 왔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1963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 땅값은 1,176배, 대도시 땅값은 923배가 올랐다. 그 사이에 소비자물가 43배, 도시노동자가구 실질소득 15배가 오른 것과는 엄청난 격차다. 손낙구는 부동산 가격은 특정 시기에 급상승했다며 2001년 1월부터 2005년 5월까지 기간에 아파트에 투자했을 때 거둔 수익률은 71%로서 주식(28%), 정기예금(37%), 회사채(47%)에 투자했을 때보다 훨씬 더 높았다고 지적한다.

알다시피 이것은 수도권에서 더욱 첨예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서울(110%)과 한강이남 지역(149%)에 투자했을 때는 수익이 주식 투자나 저축에 비해 무려 3-5배나 난 것이다. 이런 사실은 한국에서는 금융팽창이 부동산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손낙구는 이에 더하여 부동산과 연관된 교육 격차 문제를 다루는데, 서울시 25개 구별 아파트값과 서울대 합격률과 같은 장에서뿐 아니라 모든 장에서 자세한 통계와 분석을 곁들이는데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 재산이 많은 집안 자식이 높은 소득과 그보다 더 높은 부동산 자본이득을 배경으로 엄청난 사교육비와 공교육비를 들여서 ‘투자한 만큼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는’ 새로운 법칙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계급재생산의 지점을 바로 교육으로 보는데 그 원천은 ‘부동산’임을 재차 보여주는 탁월한 분석이다.

다음, 김세균은 한국의 정치지형을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누며 자본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사회주의 세력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보면서, 진보적 흐름의 실현 여부는 결국 청년세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진보정치 운동의 성공 여부는 비정규직 청년노동자층, 특히 여성 비정규직 청년노동자층이 얼마나 진보운동의 주체로 등장할 것인가에 달릴 것으로 전망한다. 문제는 오늘 청년층이 ‘경제주의적’으로 정향되어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체현하고 있다는 것인데, 김세균은 청년들 다수가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로 내몰려 사회 하위계층으로 편입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재정치화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김세균은 청년층 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역할이 클 것이라 예상하는데, 이는 촛불집회를 촉발한 것이 여고생들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이명원의 「세대연합과 감정혁명」에서도 확인된다. 이명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상이한 세대들의 투표성향이 20-40대와 50-70대로 크게 나뉘었다며, 이런 현상을 ‘세대연합의 양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원은 이 연합의 결합 강도나 지속 여부를 이미 정해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세대연합을 기왕에 ‘구성된’ 것이라기보다는 ‘구성되어야 할 목표’로 보고, 향후 한국의 진보정치는 30대가 보수화되고 있는 40대(부동산 문제에 기인한, 따라서 자식 교육문제와도 연관되어서 보수화될 가능성이 농후한 386세대)를 어떻게 재정치화하고, 아직 선택지를 찾지 못한 20대를 어떻게 견인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처럼 이명원은 ‘30대 강화론’을 적극 펼치고 있다.

김세균이 여성 비정규직 청년노동자층에, 이명원이 IMF세대인 오늘의 30대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오찬호 (「88만원세대를 읽어내는 딜레마」)가 주목하는 세대는 ‘88만원세대’다. 그의 세대론은 그러나 다른 입론과는 다른데, 그것은 그가 하나의 세대 전체를 단일한 시선에서 보려하기보다는 세대내 차이들을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가 88만원세대 내부에서 패배자로 내몰린 개인들의 ‘동일한 상황에 대한 상이한 반응’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런 관점을 취한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88만원세대의 비극은 그런 상이한 반응이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세대에 대한 오찬호의 평가는 그래서 씁쓸한 것이다. 같은 세대에서 패배자가 된 개인들이 자신을 패배자로 내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수용하고 마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반전은 없다’고 결론짓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에 대한 전망과 평가가 모두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김세균은 88만원세대의 선배에 해당하는 IMF세대가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을 지지했다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지지로 급선회했다는 점을 들어, 이들이 혁신자유주의나 사민주의로 정향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더욱 급진화되거나 아니면 역으로 파시즘으로 경도할 가능성도 있다는 양가적 진단을 내린다. 반면, 이명원의 IMF세대 평가는 훨씬 적극적이다. 젊은 세대가 전반적으로 탈정치화된 모습을 보인 2007년 대선에서 진보적 경향 또는 반이명박 경향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 세대는 세간의 주장처럼 오늘 40대인 386세대가 아니라 30대 IMF세대이며, 정동영 후보에 대한 지지율도 이 세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가 ‘30대 강화론’을 펼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 대한 이 같은 기대는 이번 특집의 마지막 글로 실리는 이광석의 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 글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트위터(Twitter)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한 ‘2030세대’와 이들의 뒤를 잇는 ‘촛불세대’의 문화정치적 가능성을 살핀 것이다. 이광석은 여기서 모바일 또는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지배권력으로 등장한 ‘삶권력’에 저항하는 ‘삶정치’ 혹은 ‘삶활력’을 제공할 유력한 방안의 하나로 소셜 미디어, 그중에서도 트윗문화가 지닌 실천적 긍정성에 주목하고 있다. 트위터를 포함한 소셜 미디어, 그리고 지금 끊임없이 제공되고 있는 다른 미디어와 이것들의 출현을 가능케 하며 오늘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은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의, 젊은 세대에 의한, 젊은 세대를 위한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갈수록 인류문명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한 요인이 될 것임을 생각할 때 젊은 세대가 더욱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광석의 글은 매체기술 및 매체문화 환경을 주도할 젊은 세대가 앞으로 더욱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차례

특집 _
자본주의의 압축성장과 세대의 정치경제/문화정치 비판의 개요ㆍ심광현
한국의 정치지형과 청년세대ㆍ김세균
부동산 격차와 교육격차ㆍ손낙구
세대연합과 감정혁명―386세대에서 촛불세대까지 은폐되거나 억압된 것들ㆍ이명원
88만원세대를 읽어내는 딜레마: 세대‘내’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유.오찬호
선거와 뉴미디어―포스트386세대의 트위터 반란, 그리고 촛불세대의 부재증명․이광석

사회운동_
2010년 교육감 선거 이후 교육운동의 방향 모색ㆍ강내희
운동으로서의 실천인문학을 위하여ㆍ고영직
자유예술캠프의 현황과 전망ㆍ이윤이

문화연구_
상하이의 새로운 ‘삼위일체’: 부동산 시장을 중심으로ㆍ왕샤오밍/고윤실 역

문화/과학-STS_
현상학과 인지과학ㆍDan Zahavi/이득재 역

현실분석_
월드컵을 말한다. 축구와 유럽 안의 민족주의ㆍ이정우
‘사회적 사실’인 연예인의 자살 ―셀레브리티는 동시에 공인일 수 없다ㆍ노명우

문화비평_
역사소설이란 무엇인가? 근대문학 속의 역사소설ㆍ조영일
큐레이팅의 현실과 이상: 창조적 큐레이팅이란 무엇인가ㆍ조선령
<인셉션>의 가책 게임ㆍ이창우
태그

정치경제학 , 세대연합 , 감정혁명 , 주체형성 , 실천방식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배성인(편집위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