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의 정설을 다시 세운 획기적 저작

[신간안내] 『혁명의 시간』(알렉산더 라비노비치, 교양인, 2008)

냉전의 절정기인 1976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혁명의 시간(The Bolsheviks Come To Power)>은 10월 혁명을 ‘극소수의 무자비한 혁명가들이 권력을 찬탈한 쿠데타’라는 서구 역사학계의 통설을 뒤집어엎고 10월 혁명의 정설을 다시 세운 획기적 저작이다.

이 책은 대중의 요구를 유연하고도 민감하게 포착한 볼셰비키의 현실적 안목, 토론과 논쟁이 거침없이 이루어졌던 이 당의 민주적 성격이 승리의 궁극적 요인임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이런 논증은 볼셰비키당의 집권 요인을 음모적 성격과 철저한 권위적 위계에서 찾던 서방의 보수적인 10월 혁명사는 물론이고 강철 같은 규율과 레닌의 탁월한 영도력을 강조하던 구소련의 10월 혁명 공식 해석을 일거에 뒤집는 대담한 결론이다. <혁명의 시간>은 소련에서 최초로 번역 출간된(1989년) 서구 학자의 10월혁명사 연구서이기도 하다.

“르포르타주 형식에 담아낸 가장 학술적인 연구”

기념비적인 역사적 의의를 지닌 사건인 10월혁명을 엄정하고 학술적으로 다루면서도 마치 눈앞에서 혁명을 직접 목격하는 듯한 생생한 필치의 르포르타주 문학 형식에 담았다는 데 《혁명의 시간》만의 독특한 강점이 있다. 저자는 혁명의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는 1917년의 페트로그라드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임박한 파국을 앞에 두고 혁명 전략가들이 벌이는 숨 막히는 논전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혁명의 주인공이었던 무수한 노동자, 병사들의 열망과 함성, 혁명가들의 거친 논쟁과 숨 가쁜 결단의 순간들을 목격할 수 있다.

“사실이 스스로 말하도록 했다.” - 라비노비치, 프롤로그

혁명의 격전지였던 페트로그라드에 초점을 맞추고 7월에서 10월까지 120일간 벌어진 혁명 과정을 세밀하고 충실하게 재현한 <혁명의 시간>은 섣부른 해석이나 일반적 결론을 내리지도 않고, 추상적 이론을 적용하는 것도 거부한다.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하는 저자는 당대의 신문 기사와 문서, 회고록 등 1차 사료들을 능숙하게 활용하여 기존의 학설이나 편견에서 벗어나 10월 혁명의 실제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충실하고 정확하게 재구성한 10월 혁명의 모습은 이 역사적인 사건을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한다. 라비노비치는 “밑으로부터의 혁명”의 발전과 볼셰비키당의 활동을 재구성하여 볼셰비키의 궁극적 승리의 요인을 규명한다.

소수파 볼셰비키는 어떻게 다수파를 제압하고 권력을 손에 넣었나?

라비노비치는 볼셰비키당의 1917년 10월 무장봉기를 보는 기존의 통설을 뒤집어버리는 묵직한 학술적 주장을 내놓는다. 그렇지만 그 묵직한 주장은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라비노비치에게 이끌려 1장부터 15장까지 본문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어쩔 도리 없이 수긍하게 될 이 책의 근본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다.

“볼셰비키의 경이로운 성공은 적잖이 1917년에 당이 띤 성격 덕택으로 돌릴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 레닌의 대담하고도 결단성 있는 지도력이나 …… 흔히 언급되는 볼셰비키 조직의 통일과 규율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 전통적인 레닌주의 모델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 내부적으로 비교적 민주적이고 관용적이며 분권화한 당의 구조와 작동 방식,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개방적이고 대중적인 당의 성격을 강조하고자 한다.” - 에필로그(516쪽)

1917년 혁명기의 볼셰비키당은 ‘민주적인 대중 정당’이었기에 다른 경쟁 상대를 물리치고 권력을 잡아서 노동자 정부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정권을 세계 최초로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17년에 모든 수준의 볼셰비키 조직 안에서는 기본적인 이론과 전술상의 쟁점을 둘러싸고 자유롭고 활기찬 토론과 논쟁이 계속 벌어졌다. 다수파와 의견이 다른 지도자들이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분투했으며, 이 싸움에서 레닌이 패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1917년 내내 볼셰비키의 중요한 결의문들 가운데 레닌의 견해만큼이나 우파 볼셰비키의 견해가 반영된 결의문이 많았던 것을 보면 의견 차이에 대한 관용과 토론을 통한 합의의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당 구조가 비교적 자유롭고 유연하고 당 전술이 대중의 분위기나 요구에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9월 후반기에 나타난 것이다. 이때 당 지도자들은 레닌의 시의적절하지 못한 즉각적인 봉기 호소를 못 들은 체했다. …… 트로츠키가 이끄는, 전술 면에서 신중한 페트로그라드 당 지도자들은 권력을 장악하는 데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기관들을 이용하고, 대정부 공격을 소비에트를 위한 방어 작전으로 가장하며, 할 수 있다면 정부의 공식적인 전복을 제2차 소비에트 대회의 활동과 연계하는 전략을 짜냈다.” - 에필로그(518-519쪽)

라비노비치의 이런 해석은 10월 혁명을 대중과 전혀 교감하지 않는 소수 음모 집단의 쿠데타로 보는 서방 역사학계의 보수적 해석에 반발해서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른바 수정주의 해석의 만개를 가져온 선도적 연구였다. 기존의 주류 학설을 단번에 뒤집은 라비노비치의 연구는 그 뒤로 협소한 정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러시아 혁명사 연구의 지평을 넓혀 사회사 연구의 태동을 부추긴 산파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영미권의 러시아 혁명사 연구에서 배출된 뛰어난 사회사 연구서들은 거의 모두 다 라비노비치의 이 독특한 10월 혁명사 해석에 일정한 빚을 지고 있다.

볼셰비키는 대중의 마음을 읽었다

저자는 당대의 문서들에 나타난 공장 노동자와 병사와 수병들의 열망을 연구하면서 이들의 관심사가 볼셰비키가 내놓은 정치, 경제, 사회 개혁 강령과 일치했던 데 반해, 다른 모든 주요 정당은 의미 있는 대내적 변화와 러시아의 즉각적인 종전을 추진하지 않은 탓에 불신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대중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볼셰비키의 목표는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1917년의 악화된 경제 사정, 물자 부족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견디기 힘들었던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들, 승산 없는 전쟁터로 전출될 처지에 빠진 수비대 병사들은 볼셰비키당의 슬로건이 마음에 들었다. “평화, 토지, 빵”이라는 단순하면서도 결정적인 주장, 그리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표어는 임시정부를 신뢰할 수 없었던 수많은 대중들을 볼셰비키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볼셰비키의 강령만이 가난한 대중들의 열망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볼셰비키는 지면을 통해, 모임을 통해, 집회를 통해 자기들의 강령을 소리 높여 외치고 대중이 가장 시급하게 바라는 것들을 표현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1917년 2월에 페트로그라드에는 볼셰비키가 2,000명쯤 있었다. 4월협의회가 열릴 때에는 당원 수가 16,000명으로 불어났다. 6월 말 무렵에는 32,000명에 이르렀고, 수비대 병사 2,000명이 볼셰비키 군사조직에 가입했으며 병사 4,000명이 “프라우다 클럽”에 가입했다.

“1917년에 볼셰비키의 증대하는 힘과 권위의 주요 원천은 “평화, 토지, 빵!”과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으로 구체화된 당 강령이 뿜어내는 자력이었다. 볼셰비키는 페트로그라드의 공장 노동자와 병사, 크론시타트 수병의 지지를 얻으려는 운동을 아주 힘차고 능숙하게 벌였다. …… 8개월이라는 기간에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위치에 이른 것은 전후방 부대의 지지를 얻는 데 당이 쏟은 특별한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 오직 볼셰비키만이 권력 투쟁에서 군대가 필연적으로 지니는 결정적인 의의를 간파했다.” - 에필로그(515-516쪽)

왜 볼셰비키가 1917년 페트로그라드에서 벌어진 권력 투쟁에서 승리했는가란 간단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저자는 볼셰비키 지도부와 대중의 역동적 관계가 볼셰비키가 성공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지적한다.

임박한 파국,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혁명 전략가들의 숨막히는 논전을 현장에서 듣는다


“싸워서 얻어낸 러시아 혁명을 훼손하려는 그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 힘든 시련의 나날에 조국을 배반한 자들에게 저주를 내려라!" - 케렌스키(7월 6일)․2장 포화 속의 볼셰비키(92쪽)

“러시아인이여, 우리의 위대한 조국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임종 시간이 가까이 있습니다. 모든 러시아 국민에게 조국을 구하라고 호소합니다.” - 코르닐로프(8월 27일)․7장 케렌스키 대 코르닐로프(242쪽)

“권력에 관한 문제는 비켜가서도 제쳐놓아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혁명의 발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본 문제이기 때문이다.” - 레닌(9월 8일)․10장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310쪽)

“안 됩니다. 인민은 단 하루라도 더 질질 끄는 것을 참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연장하려고 코르닐로프류의 지주 출신 장군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케렌스키 정부를 타도하십시오!” - 레닌(10월 1일)․11장 볼셰비키에 맞선 레닌(345쪽)

“권력이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권력을 잡으면, 우리는 나중에 우리 편이 될 세력을 떨구어 내버리게 될 것입니다. 레닌 동지가 내놓은 전략 계획에는 허술한 구석이 아주 많습니다. 동지 여러분,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 라셰비치(10월 5일)․11장 볼셰비키에 맞선 레닌(351쪽)

“우리와 부르주아 사이에 프티부르주아라는 엄청난 제3의 진영이 있음을 우리는 잊지 않았고 지금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지금 이 진영은 우리보다는 부르주아에 훨씬 더 가까이 서 있습니다.” - 카메네프(10월 10일)․11장 볼셰비키 맞선 레닌(359쪽)

“권력을 즉시 잡아야 합니다. 그냥 지나가버리는 하루하루가 파멸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권력을 잡지 않는다면, 역사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 레닌(10월 16일) ․12장 봉기의 장애물(383쪽)

“우리 동무들 가운데 몇 사람은, 이를테면 카메네프와 랴자노프는 상황 평가에서 우리와 견해가 다릅니다. 그러나 현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노선을 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날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인민의 진정한 의지가 드러납니다.” - 트로츠키(10월 24일)․14장 전야(432쪽)

“멘셰비키 국제주의자 대의원단은 범민주 정부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현재의 위기를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결의를 채택할 것을 대회에 제안합니다.” - 마르토프(10월 25일)․15장 볼셰비키의 승리(492쪽)

차 례

프롤로그 - 2월에서 7월까지

1장 7월봉기
2장 포화 속의 볼셰비키
3장 혁명의 후퇴
4장 허약한 임시정부
5장 볼셰비키의 귀환
6장 코르닐로프의 등장
7장 케렌스키 대 코르닐로프
8장 반혁명군의 패퇴
9장 소비에트 혁명 전략
10장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11장 볼셰비키에 맞선 레닌
12장 봉기의 장애물
13장 트로츠키와 군사혁명위원회
14장 전야
15장 볼셰비키의 승리

에필로그 - 왜 볼셰비키가 승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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