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는 파업

[전노협20년] 노동자는 오직 하나의 이름일 뿐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원래 정착했던 임실과 진안을 오가며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 다시 생각해 봐도 잘 한 결정이다.

주변엔 한 때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던 친구들이 있다. 같이 명상모임도 하고, 한 번씩 어울려 전주까지 조조상영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아이들의 생일 때면 집에서 직접 만든 피자에 초를 꼽아놓고 생일파티를 하기도 한다. 김장 채소도 같이 심고, 김장도 같이 담는다. 우리 집 고구마를 수확할 때면 어김없이 이 친구들이 와서 함께 캐준다. 경제적으로 조금 쪼들리긴 하지만 기쁘고 어려운 일을 함께하는 이웃이 있어 우리 가족은 지금 이 생활에 아주 만족한다.

전노협을 떠올려 보니,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모든 일들이 다 소중했다. 그 중 하나를 집어내자니 참 어려운 일이었다. 20년을 쭉 돌아보고서야 내 가슴을 가장 뜨겁게 했던 게 무엇이었나 정리할 수 있었다.

사람 ‘人’자가 지푸라기 두 다발이 서로 기대고 서있는 모습이란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그 한자가 학창시절 처음 배운 한자 중 하나인데 그 때는 그 뜻을 몰랐다. 아니 그때만 모른 게 아니라 그 이후로도 한 참을 모르고 살았는데 20대 후반 노동운동을 하면서 몸으로 알게 되었다.

[출처: 한내]

93년 나는 부산에 있는 신일금속노조(지금 금속노조 비엠지회)위원장이었다. 그 해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했고 문민정부 이데올로기로 세상이 얼어있을 때, 어용노조가 만들어준 일방중재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치 없이 투쟁을 했다. 그리고 위원장인 나를 비롯해서 간부 6명이 연행되었다.

다음날 조합원들은 전면 파업에 돌입했고 부양노련을 포함해 부산지역 노동자들은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그동안 못 잔 잠이나 실컷 자자며 뒹굴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우리보고 나가라고 한다. ‘어? 이놈들이 왜 이러지?’ 했는데 현장에 와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동신금속, 한독병원, 대우정밀, 메리놀병원, 성요사, 그리고 ‘마찌꼬바’라고 불렸던 작은 하청공장에 다니는 활동가들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함께 하고 있었다.

그때의 감격이란...

생각해보니 금속 제조업종은 물론 병원, 언론, 화학(신발, 섬유) 등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가 오직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생산직과 사무직, 학력과 생활수준 등 사회적 간극을 넘어서 함께 싸웠다.

내가 처음 징역을 산 것도 이런 연대 투쟁 관련해서다. 부양노련 조직국장으로 동래봉생병원 노조를 지키는 투쟁에 함께 하다 제3자 개입으로 엮인 것이다.

그 당시 매일 수 백 명의 노동자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 앞에서 집회를 했다. 매일 저녁 일을 마치면 저녁도 거른 채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병원 앞으로 모였다. 74일간의 파업기간동안 지역 내에서 함께 싸워주었던 동지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동래봉생병원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은 이기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는 게 그런 것 같다.

내가 똑똑해서 혼자 헤쳐 나가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동료, 친구, 친지들의 도움과 격려 속에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어우러져야 살아진다는 것을. 그래야 잘 사는 거고. 운동도 마찬가지고.

중학교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철없이 놀다가 포기한 학업으로 인해 내 안에 가득했던 열등감, 패배감이 노동운동을 통해서 극복되고 긍정적인 인간이 되었다면, 부양노련, 전노협 활동으로 함께 할 때 커지는 힘과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동지애의 희열을 실감했다.

그리고 지금 농사지으며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밑거름은 다름 아닌 바로 젊은 날의 노동운동과 그때 함께 했던 동지들임을 새삼 확인한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덧붙이는 말

이정영 님은 전 신일금속노조 위원장으로 부양노련, 민주노총에서 일했고 지금은 임실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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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투쟁 , 전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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