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없는 현장은 돌아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져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43) ‘금속노조 구미지부장 김준일동지 쾌유 기원, 구미 KEC투쟁 승리 문화제’

나을라카면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지부장님 말씀은 하시나...?”
엘리베이터 안에는 다시 적막이 흐른다. 금속노조 구미지부 김준일 지부장은 지난 10월 30일, 구미 KEC 공장 점거농성 중에 사측과 경찰의 교섭을 가장한 연행에 항거하여 분신을 했고,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11월 9일 저녁, 상경투쟁 중에 김준일 지부장의 쾌유를 기원하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병원 앞에 온 구미지부 KEC지회 조합원 5명이 김준일 지부장을 만나러 가는 중이다.

[출처: 연정]

“앉으세요.”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얼굴과 손에 붕대를 칭칭 감은 김준일 지부장이 침대 위에 앉아 조합원들을 맞이한다. 조합원들이 엉거주춤 맞은 편 의자에 앉는다.
“날도 추운데, 집회하러 왔다갔다 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바깥이 많이 추워 보이는데.”
지부장이 쉰 듯한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이야기한다.
“음식은 드세요?”
“나을라카면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내가 공장 안에서 마무리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조합원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다.
“발 받는 학생들처럼 왜 그래?”
“죄인이야...”
“제가 제일 죄인입니다.”
“내가 미안해 죽겠어. 내가 공장 안에서 마무리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이런 개같은 경우가...”
동료들에 대한 의리와 약속을 지키는 게 ‘죄’가 되는 세상이다. 조합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지부장이 눈치 챘나보다.
“죽으라는 그런 건 아니고. 돌아가려면... 힘들고, 고통스런 과정이라도 이 세상 살아가려면... 벌써 11일이 흘러서 내일 드레싱을 한다네. 안 좋긴 여기가(손이) 안 좋고, 감아 안보이니까 얼굴도 좋은 축은 아닌데. 그래도 11일이 지나니 나도 적응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피부 재생약 발랐어요.”
“하.....”
한 조합원이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쉰다.
“이제 술담배는 싹 끊으시겠네요.”
“다 나을 때까지는 입에 대지도 말아야지.”

여기 있는 내가 죽은 거 같은 거야
김준일 지부장은 공장 안에서 점거 할 때, 밖에 나가지 못하는 환경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분신하고 3일 동안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정말 간절했다 한다.
“호흡기 떼고 3일이 지나니 한 평도 안 되는 중환자실에 혼자 누워있는 게 무서운 거야. 사람이 죽은 것만 같았어. 여기 있는 내가 죽은 거 같은 거야. 그래서 못살겠다고 병실로 보내 달라 해서 3일 만에 여기로 왔어요.”
지부장은 지금도 스트레스 때문에 진통제와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못 잔다고 한다. 말을 많이 해서 목이 타는지 물을 마신다.
“목소리 참 씩씩하네.”
밖에서 발언하는 조합원의 목소리를 듣는 지부장의 목소리에 웃음이 배어나온다.
“얘기 좀 해.”
지부장을 만나러 온 조합원들끼리 서로 이야기하라며 눈치를 준다.

[출처: 연정]

빨리 나아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어요
“안에서 단식을 하셔서 체력이 못 따라 줄까봐 걱정했습니다.”
“지난 1주일 동안 복식을 했어. 음식이 넘어가질 않아서. 죽 좀 먹고, 이번 주부터 음식을 먹어요. 먹긴 먹어야 한다는데, 밥 한 그릇 먹는데, 1시간이 걸려. 숟가락 드는 것부터 모든 게 힘들어.”
조합원들이 발그레해진 볼로 고개를 숙이자 지부장은 괜한 말을 했나 후회하는 것 같다.
“상처 입은 사람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어야 피부가 빨리 살아난다고 하네. 빨리 낫고 싶어서 회복에 좋은 음식은 먹어. 마음 같아선 단식을 이어가고 싶은데, 그건 안 되고. 빨리 새 살 돋아나야 되니까. 빨리 나아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어요.”
지부장은 면역력에 자신이 없어 병원 밖은 못나가지만, 아침저녁으로 병원 로비에서 사람들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고, 보기만 해도 새롭다고 했다. 마치 마을 시장 나가는 것 같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원래 그렇다
“다들 2박 3일 동안 있나?”
“네.”
“공장 안에서만 보다가 밖에서 보니 색다르다.”
“가는 곳마다 다 막아요. 버스 문 앞에도 못 내리게 합니다.”
“그렇다. 대한민국이 원래 그렇다..... 7남맨데. 큰누나, 둘째누나 다 서울에 있다. 평소 얼굴도 못 봤는데, 내가 분신해가 있으니까 매일 찾아온다. 아까 낮엔 큰누나가 왔다갔다.”
“서울시민 다 돼서 내려오겠네요.”
.........................
“얘기해.”
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기념품은 다 갖고 나왔어요? 뺏겼어요?”
“갖고 나온 데도 있습니다.”

[출처: 연정]

병실을 나와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는 병원 앞으로 나왔다. 김준일 지부장의 간병을 하고 있는 이석준 조합원이 조합원들에게 지부장의 건강 상태를 전하고 있다. 전 주보다 상태가 좋아졌고, 치료를 잘 받고 계시니 큰 걱정 말라고 이야기한다. 조합원들이 이 투쟁을 어떻게 마무리 하느냐에 따라 지부장의 심경도 안정될 수 있으니 열심히 투쟁하자는 이야기도 한다.

지부장님과 같이 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지부장님! 김준일 동지! 김준일 아저씨! 힘내세요!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이 싸움 반드시 승리해서 지부장님과 같이 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지부장님, 보고 싶습니다. 지부장님, 사랑합니다.”
조합원들의 함성으로 촛불문화제가 마무리 되자 김준일 지부장이 로비로 내려왔다. 지부장은 유리문 뒤에서 떠나는 조합원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하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작별 인사를 한다. 병원 앞에 놓여있는 피켓에 뭐라고 써 있는지를 묻자 이석준 조합원이 “김준일을 지켜내자”라고 설명해준다.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돌아가는 조합원들을 바라보는 김준일 지부장 [출처: 연정]


“얼굴은 보고 가야지. 밖에서 손짓만 하고 가나.”
김준일 지부장이 밖에서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조합원을 부른다.
“지부장님 얼굴 못 보겠어요. 밖에는 걱정마세요. 지부장님 충분히 하셨어요.”
지부장은 일정이며, 오늘밤 조합원들의 숙소 등을 꼼꼼하게 챙긴다. 구속 중 뇌경색 발병으로 병원 치료 중인 조합원에게 안부 전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드시고 싶은 건 없으세요?”
“먹고 싶은 건 많은데, 힘들어서 못 먹겠어.”

부끄러워서 하지 못 하겠습니다
“투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뒤에 빠져있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원래 공장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마무리는 내가 하겠다고 조합원들하고 약속을 하고, 굳은 각오로 들어갔었습니다. 회사와 협상 카드가 통하지 않게 되는 어느 시점에 가게 된다면 그런 자본과 공장은 문을 닫게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제 분신으로 사태가 다른 쪽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생겨서...”
“조합원들에게 힘내라는 말씀 한 마디 해주시겠어요?
“.....힘들 내겠죠. 알아서 써주세요. 그런 미사여구는 저 자신이 부끄러워서 하지 못하겠습니다.”
수첩에 메모를 하고 있는 내 손이 부끄러웠다. 김준일 지부장은 다른 걸 더 물어보라 했지만, 나는 더 물을 수가 없었다.
“빨리 나으시라고 기도할게요.”
“예. 저도 빨리 낫고 싶습니다.”
인사를 꾸벅 하고 병원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나오면서 마음이 허전했다. 정작 KEC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보지 못했다. 김준일 지부장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이야기였을텐데, 나는 그 마음을 읽지 못했던게다.
몇 시간 뒤, 상경투쟁 중인 금속노조 구미지부 차광호 수석부지부장으로부터 “KEC지회 조합원들이 처음부터 많은 것을 요구했던 것이 아니다. 단순한 임단협에서 시작한 사안인데, 청와대 개입 등 정치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난항에 빠졌다. 우리가 정말 바라는 것은 조합원들이 민주노조의 기본 틀 속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이 사태가 잘 마무리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독해져야 합니다
돌아와서 지난 여름에 기록했던 수첩들을 뒤져보았다. KEC지회 조합원들이 양재동 KEC홀딩스 앞 집회에 왔을 때 기록했던 내용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7월 30일, 사진 폴더를 클릭하니 제일 처음 김준일 지부장의 사진이 나왔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 근처를 헤매다가 집회 시간에 늦게 도착했는데, 마침 김준일 지부장이 발언을 하고 있었다. 발언 중에 앞에 가서 명찰을 살짝 보고 ‘지부장 김준일’이라고 적어놓은 흔적도 있다. “꼭 승리해서 돌아가 조합원으로 노동조합과 함께 회사에 다니고 싶다.”던 KEC지회 한소정 여성부지회장의 목소리도 담겨 있다.

  7월 30일 양재동 KEC홀딩스 앞 집회에서 김준일 지부장 [출처: 연정]

“나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에 회장 곽정소는 단 1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회사 오너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묻기 위해 한남동에 갔습니다. 또, 조합원들이 밖에 있는데도 구미공장이 100% 정상가동 된다고 선전해서 주가를 오르게 한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선전전을 하기 위해 여의도 증권가에도 갔습니다.”
김준일 지부장은 당시 상경투쟁 내용과 함께 조합원들에게 사측의 회유책을 경계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 투쟁을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독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없는 현장은 돌아가지 않는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가져야 이 투쟁 승리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말>
김준일 지부장님의 쾌유와 KEC지회 투쟁 승리를 기원합니다.
태그

김준일 , k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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