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한 튀니지 청년들의 혁명”

[국제통신] 청년실업 분신으로 시작된 저항에 튀니지 대통령 도주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얻지 못해 채소를 팔며 전전하던 26세 청년 모하메드 보우아치치. 그가 경찰에 허가문제를 이유로 채소들을 빼앗기고 구타당한 후 “가난을 끝내라, 실업을 끝내라”라고 외치며 절망적으로 분신한 것은 12월 17일이다. 그의 절규에 동참하며 들불처럼 번진 젊음들의 봉기는 1월 14일 결국 독재정권을 끌어냈다.

[출처: www.taz.de]

14일 18시 50분. 튀니지 국영방송 TV7 프로그램이 갑자기 중단됐고 모하메드 가안노우치 국무총리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헌법에 따라 국가 권력을 이양했다고 밝혔다. 벤 알리 대통령이 튀니지에서 도망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는 과도 대통령으로서 재임할 것이고 선거 준비를 위해 모든 정치 세력과 만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튀니지인들에게 단합을 호소했다. 이미 13일 국무회의는 다양한 야당정치인들을 국가적 단합을 위한 과도정부의 가능성에 대해 그들과 논의하기 위해 초대한 바 있다.

벤 알리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튀니지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한 항공기장이 벤 알리 가족 6명을 태운 비행을 거부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가족은 수년동안 돈벌이가 되는 공공기관을 사유화한 데 대한 책임 때문에 더욱 비난받았다.

거리 민주주의에 고개숙인 독재정부

외신들에 따르면 애초 벤 알리 대통령은 시위가 격화되자 12일 내무부장관을 해임시켰고 연행된 시위자들을 석방하라고 알리는 등 회유 전술을 썼다. 그러나 13일에도 성난 시위대들에 의해 도시들은 불타올랐으며 저항은 계속 격화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13일 저녁 드디어 벤 알리 대통령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경찰에 통제 완화를 지시했고 재선출마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4번에 걸쳐 연임해온 74세의 그는 2014년 대선 출마를 위해 75세 상한선인 대통령 출마 연령 제한을 개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987년부터 수권해온 그는 애초 출마를 위해 법을 개정할 계획이었다.

이와 함께 그는 식료품비 인하 계획을 알렸으며 인터넷 검열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담화 후 유투브를 포함해 폐쇄된 웹사이트들이 다시 열렸다.

벤 알리 대통령은 방송담화에서 후회막심한 표정을 지었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처음으로 전통적인 아랍어 대신 지방어를 사용했다. 그는 그의 추종자들이 그를 속였다고 비판했다. “나는 튀니지인들을 이해하며 그들의 요구를 이해한다”며 “피가 계속 흐르는 것을 참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사과는 고맙다, 그러나 이젠 됐다!”

그러나 방송담화가 진행된 13일 밤에도 3백여 명이 거리로 나서 벤 알리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했다. 이때 경찰들의 폭력 진압으로 적어도 13명이 튀니스에서 사망했다고 병원 관계자는 확인했다. 사망자 전원은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찬가지로 시위가 벌어진 교외 도시 크람에서도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14일에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튀니스 정부청사를 둘러싸고 벤 알리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은 “벤 알리, 사라져라!” 그리고 “벤 알리, 고맙다, 그러나 이젠 됐다!”고 외쳤다. 이들 시위자들은 수많은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현수막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이와 함께 “벤 알리, 나가라” 또는 “벤 알리는 살인자” 등의 현수막도 걸렸다. 14일 노동조합은 튀니스에서 2시간 동안 상징 파업을 벌였다.

경찰은 이날 시위에 최류가스를 살포했으며 곤봉으로 진압했다. 그러나 시위자들은 민중가요를 부르며 계속 저항했고 몇몇은 권위주의 정부의 상징인 정부청사 건물로 올라가 시위했다. “우리는 독재자를 끝장낼 것이다”라고 한 여성 시위자는 말했다. “벤 알리 일당은 법정으로 보내져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가져갔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이날 시위중 경찰과의 대치에 의해 50여명의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현재 튀니지는 국가비상사태 아래에 있다. 수도 튀니스에 위치한 공항은 군대가 통제하고 있으며 영공은 폐쇄됐다. 공항에는 탱크가, 주요 건물에도 보호를 이유로 군인들이 배치됐다.

젊음들의 저항과 선동

  알제리 청소년과 청년들이 시위중이다. [출처: http://www.indymedia.org]

청년실업에 맞선 분노로 시작해 독재자 벤 알리에 맞선 사회적 저항으로 확산된 튀니지 젊은이들의 봉기. 이는 청소년과 대학생 그리고 청년실업자, 가난한 청년노동자 등 젊지만 일자리도, 집도, 돈도 없는 절망적인 젊음들이 촉발한 혁명이다. 30%에 가까운 청년실업률과 일자리 알선 부패, 가난과 불안정한 어두운 미래는 분신으로까지 청년들을 떠밀었고 이들은 경찰의 살인진압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나서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이런 그들에게 관공서, 경찰서, 도로, 상점 그리고 주택들로 이어지는 공공의 질서는 무의미했다. 이들은 지배체제의 외현에 불을 지르고 파괴하고 약탈했으며, 거리를 정치화했고 결국 자신들의 미래를 빼앗는 정권을 향해 퇴진 구호를 외쳤다.

애초 청소년과 청년들은 동맹휴업과 평화적인 거리 행진에 나섰지만 정부는 살인진압을 자행하며 봉기에 불을 질렀다. 이후 시위자들은 경찰초소들을 불태웠고 상점들을 부쉈으며 진열장을 깼고 상점을 약탈했다. 거리는 돌로 뒤덮였고 잿더미가 된 버스는 거리에 방치됐다. 처음으로 여행지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튀니스 남쪽으로 60킬로미터 떨어진 해수욕장 함마메트에서도 수많은 상점들을 약탈했고 경찰서도 공격했다. 튀니스에서 45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 가프자에서는 경찰이 시위자들을 피해 달아났다. 이곳에서도 여러 개의 상점들이 약탈됐다. 교외 도시 엣타하멘에서는 체계적인 약탈이 벌어졌고 저항은 23년간 통치해온 알 아비딘 정권을 목표로 점점 더 향했다.

이러한 청년들에 주부와 노동자들 그리고 예술가들이 가세하며 청년들의 봉기는 전 사회적 저항으로 고조돼 튀니지를 장악했다. 그러나 인권활동가들에 따르면 이때 경찰과 군인들의 발포에 의해 모두 79명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저항을 사회화한 사회적 네트워크

이들 청년들의 혁명은 트위터, 페이스북 그리고 유투브 등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됐다. 시위 소식과 부상자 그리고 사망자의 소식은 관련 동영상과 함께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정부가 유투브를 차단시킨 11일 이후 시위자들은 다시 비메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동영상은 친구와 동료들이 얼마나 잔학하게 살해됐는지 전했고 공분을 싣어 날랐다.

특히 트위터에서는 정부가 계정을 계속 해킹하고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의견과 토론이 오갔고 국제사회에 대한 지원 호소 그리고 부상자에 대한 수혈 지원 메세지 등이 전해졌다. 수년전부터 야당이 운영하는 인터넷라디오에서는 누구나 자발적으로 기고문과 기사를 보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 적어도 4명의 블로거가 구금됐다.

아라비아 국가들의 변화

현재 프랑스에 망명한 튀니지 야당정치인 몬세프 말쪼우키(MONCEF MARZOUKI)는 독일언론 [타쯔]와의 14일자 온라인 인터뷰에서 현재 확산되고 있는 북아프리카 민중봉기에 대해 “눈덩이효과는 이미 작동하고 있다. 우선 독재자에 맞서 이집트인들이 봉기했었고 이제 튀니지와 알제리에서 벌어지고 있다. 봉기가 내일 요르단과 시리아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제외될 수 없다. 똑같은 독재자들에 똑같은 정권들이다. 아라비아의 민중은 충분히 견뎠다. 모든 국가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라비아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의견을 나타냈다.

그의 말처럼 알제리 뿐만 아니라 이미 모로코 그리고 요르단에서도 시위는 확산 중에 있다. 심지어 14일 세네갈 대통령은 튀니지와 알제리에서의 사회적 곤경에 맞선 시위를 이유로 식료품 가격을 빠르게 인하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특히 급격하게 인상된 식용유, 우유 그리고 설탕과 가스 등 연료 가격 인하를 강조했다. 세네갈에서는 11월과 12월 사이 가스비가 약 25% 이상 인상된 바 있다.
태그

청년실업 , 혁명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은희(객원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