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봉기, 도약하는가

[국제통신] 이집트, 꺾이지 않는 저항...2월11일 100만인 행진 예고

“무바라크가 떠나야 정부와 대화한다”
2월 11일, 계속되는 100만인 행진 예정


두 번째의 “백만인의 행진”이 8일 거행됐다.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계속적인 양보안 발표에도 불구하고 정권에 맞선 이집트 시위자들이 다시 정점을 기록했다.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포르트 사이드, 수에즈 그리고 이집트의 다른 도시들에서 다시 백 만명의 사람들이 무바라크 정권에 반대하여 거리에서 시위했다. 이들은 여전히 무바라크가 떠나야 비로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출처: 하스나인 카짐(Hasnain Kazim, http://www.spiegel.de/fotostrecke/fotostrecke-64450-12.html)]

이날 사람들은 무엇보다 해방의 광장으로 불리는 타흐릴 광장과 가까운 의회 앞으로 방향을 세우고 시위했다. 이때 시위자들은 무바라크의 즉각적인 사퇴, “조작된” 의회 해산, 30년 이상 지속중인 국가비상사태 해제 등 이들의 요구를 외쳤다. 수천의 공공부문 노동자들도 퇴근 후 시위에 합류했다.

8일에는 또한 많은 사람들이 웹사이트인 ‘크할레드 사이드(Khalid Said)’의 운영자며 1월 25일 거센 봉기가 된 시위를 발의한 웰 그호님(Wael Ghonim)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집트 구글 운영자이기도 한 그는 경찰들에게 강제로 끌려갔고 12일간 구금됐으며 대부분 눈이 붕대로 가려졌고, 6일 저녁 석방됐다. 그는 석방 후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진짜 영웅은 모든 시위자들이다”라며, “우리는 정권 퇴진을 향한 우리의 요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시위자들은 4일 퇴진의 날, 6일 순교의 날에 이어 무바라크 정권에 맞서 새로운 “백만의 행진”을 2월 11일 열자고 발의했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천 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바라크의 양보와 회유

지난 1월 25일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후 무바라크 정부는 부단히 봉기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협상도 진행되었다.

그러나, 일부 언론보도와는 다르게 “정부와 반정부측의 협상”은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번 “만남은 협상이 아닌 정부 태도를 알기 위한 계기였다”고 <가디언>은 보았으며, <융예벨트>도 5일 “대부분의 언론이 보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는 협상이 아닌 오로지 대화 용의를 알리기 위한 만남이었다”고 보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헌법 개정사항과 폭력 조사를 정리하고 대화를 지속할 입장이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8일 국영방송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헌법개정을 준비하는 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는 6일 반정부측과의 대화 중 약속된 것이다. 지난 주 무바라크는 9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며, 무제한적인 집권을 허용하게 했던 헌법조항 76조와 77조를 토론에 부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술레이만은 현재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위한 이행표를 계획하고 있으며, 무바라크는 이외에도 시위자들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무바라크는 시위자들에 대한 폭력을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이다. 위원회는 지난 2일 타흐릴 광장에서의 “끔찍하고 동의될 수 없는” 폭력을 조사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은 지난 주 무바라크 지지자들에 의해 죽임 당했다. 이때 사람들은 무바라크 지지자들이 돈을 받고 살인과 폭행을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이미 7일에는 대중적 시위에 의해 다시 구성된 새 내각의 첫 번째 회의 후, 아흐메드 샤피크 총리는 공공부문 노동자의 임금과 연금을 4월 1일부터 15%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는 6백만 공공부문 노동자에게 해당되며, 65억 이집트화(7천만 유로)가 집행될 예정이다. 무바라크는 이미 2008년 공공부문 파업 시 임금 30%를 인상한 바 있다.

새 내각은 선거조작과 부패를 조사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와 동시에 사법관청은 장관직을 맡았던 3명과 여당 NDP 고위 인사를 부패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무바라크 정부는 정치적 수감자 34명을 석방했으며 앞으로도 30년 이상 붙잡혀 있는 수감자들을 포함하여 정치수들을 석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현재 감옥에 있는 정치적 수감자는 수 천명에 달한다.

흑색선전, 봉기에 대한 왜곡과 매도

무바라크 정권은 양보안들을 밝히는 동시에 시위자들을 혼란시키고 비시위자들과 구분하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타즈> 8일자는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은 시간 게임을 하고 있고 선동도구로서 국영방송을 사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이집트가 다시 보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시위자들의 책임지우고 있다. 여기서는 임금지불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이 중요하게 논의된다. 사람들을 동요시킨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그들의 가정들이 어떻게 한 달을 생활할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타즈>는 이집트 국영방송이 공개적으로 외국인들을 비방하며 이들이 이 봉기를 꾸몄다고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24시간 동안 계속되는 프로그램편성은 세뇌를 시도하고 있다. 아랍 위성케이블은 이와는 반대로 보도하고 있다. 정권은 외국인 대 내국인, 가난한 이들 대 부자, 시골 대 도시를 대적하게 하고 있다.

폭력과 통제

미국에 있는 <인권감시> 단체는 최근 이집트 내 병원 기록을 토대로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대규모 봉기가 발생한 첫 주인 1월 25일부터 30일까지 총에 의해 카이로에서 살해됐으며, 2월 2일과 3일에 15명이 타흐릴 광장의 시위자들을 공격한 정권지지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밝혔다. 알렉산드리아 52명이, 수에즈에서는 13명이 희생됐다. 이집트 보건장관은 2월 4일 당일에만 적어도 5천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UN 또한 3백명이 국가에 의한 폭력으로 사망했다고 추정했다.

한편, 이집트의 한 인권단체는 시위가 시작된 후 적어도 1,275명이 연행됐다고 평가했다. 대부분은 연행된 후 풀려났으나 몇몇의 경우 경찰에 의해 구타당했고 고문도 자행됐다. 그러나 행방불명의 “사라지는 이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고 전해졌다.

외국 언론인들에 대한 통제와 폭행도 지속중이다.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이집트 봉기에 대한 언론인들의 보도 활동은 계속해서 방해받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8일 적법한 허가증이 없는 외국 기자들은 타흐릴 광장 접근이 거부됐다. 또한 언론인들에 대한 공격은 1월 30일부터 적어도 140번 이상 벌어졌다.

시위자들은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이전에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행동의 지지 기반으로 끌고 있지만 시위자 중의 일부는 그들이 저항의 규모가 다시 폭력적인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한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은 9일 보도했다.

이집트군은 타흐릴 광장 통행을 통제하고 있으며 통행자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게 하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음식물 공급까지 통제하고 있다.

숨죽인 독재의 지원자, 군대

[출처: 하즈나인 카짐(Hasnain Kazim, http://www.spiegel.de/fotostrecke/fotostrecke-64380-15.html)]

6일 저녁, 군인들은 타흐릴 광장 근처 이집트 미술관 앞에서 시위했던 사람들을 향해 전진했다. 총소리도 다시 들렸다. 군인들은 공중으로 총을 쏘았고 굴복하려 하지 않았던 3명의 젊은 사람들을 연행했다.

그러나 언론들에 따르면 많은 군인들은 그들의 투입에 회의적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탱크를 사진찍거나 시위 구호 등의 낙서를 허용한다. 어떤 군인들은 단지 평화롭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융예벨트> 9일자에 카이로의 의학교수 유세프 Z.(Youssef Z.)는 현재 군대 입장과 이집트 정치경제를 배경으로 군대와 이집트 봉기와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우선 이집트 군대 규모는 세계에서 10번째이며 468천명의 군인과 479명의 보충병을 갖고 있다. 군대예산은 현재 24억 달러에 달하며 이 중 반 이상인 13억 달러를 미국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또한 그는 시위가 발생한 처음에 군대는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주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이 무바라크가 퇴임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군대는 그의 뒤에 섰다. 그들은 무바라크가 가면 그들 또한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군대는 60년 이상 독재정권들을 지원해왔고, 모든 대통령이 군 출신이다. 군대는 이 과정에서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많은 권력을 쌓아왔다.

군대는 그의 군인을 사회의 모든 부분들에 뻗게 했으며, 이들은 호텔연쇄점, 건설회사, 공장을 경영하고, 거리와 공항을 짓고, 식료품을 생산한다. 이집트 경제의 10% 이상이 군대에 의해 통제된다. 전 장관은 오늘날 국가의 금융특권계층으로 간주되며 정부로부터 군대를 떼어내고자 종종 헛되이 시도하고 있는 전통적인 경제인들에 의해 불신되며 주시되고 있다. 오마르 술레이만 또한 정보기관에서 일하기 전에 장교였다. 새총리 또한 퇴직한 공군장교다.

마지막으로 그는 군대가 시위자들을 해산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며 시간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고, 광장으로 조금씩 나아가며 주도권을 가지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군대가 민주주의운동에 총을 든다면 대부분의 군인들은 투항할 것이다. 그런 다음 지금 거리에 있지 않는 백만이 빈민가로부터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혁명의 선동가이자 배후, 미국

미국정부는 처음으로 분명하게 무바라크의 즉각적인 사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위자들의 핵심적인 이 요구에 대해 미국은 민주화 과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의미했다.

<타즈> 8일자에 따르면 크로울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7일 워싱턴에서 60일내 대선은 어려운 모험이라고 말했다. 이집트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를 수 있으려면 여전히 많은 것들이 이행되어야 하며, 대선은 향후 8개월 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그는 정부측과 반정부측 간의 대화가 보다 포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협상에서 대표되지 않는 여전히 많은 집단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또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오래전부터 부통령 술레이만을 82세의 무바라크를 이을 후계자 일순위로 지목해왔다. 술레이만은 이스라엘에 질문할 것도 없이 가장 만족스런 인물이라고 미국대사는 2008년 8월 기록했다. 또한 이집트 정보기관과 이스라엘 국방부는 핫라인을 통해 매일 접촉하고 있다고 <위키리크스>는 밝혔다.

그러나 시위자 중의 한명은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외국,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어떠한 조언도 필요없다. 그들은 우리를 도운 것이 아니라 오용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무바라크도 결코 30년 동안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고 비판했다.

타흐릴 광장, 해방과 저항의 공동체

봉기를 잠재우기 위한 반혁명 공세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광장에서 다시 타오르고 있다.

이집트 봉기의 거점인 카이로 타흐릴 광장에는 “우리는 빵과 존엄성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구호가 7일 나타났다. 시위들이 시작됐을 때는 무엇보다 가난한 지역 출신의 청소년, 청년들이 경찰을 쫓았고, 식료품비 인상과 같은 문제들이 얘기됐다. 그 후 중산층으로부터 많은 이들이 타흐릴 광장에 모였고 이들은 무엇보다 정치적 자유를 요구했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은 이 정권을 이용하고자 시도했다. 이 때문에 이 같은 구호가 등장했다고 8일 <타즈>는 시위 지형과 흐름을 평가했다.

이러한 타흐릴 광장의 “분위기는 긴장과 자유로운 놀이 사이를 오갔다. 많은 사람들은 ‘무바라크는 떠나라!’를 외치며, 또 다른 곳에서는 노래하며 춤추며 선거를 요구한다. 광장은 작은 시위들의 모음집 같다”고 <슈피겔>은 8일 보도했다.

이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수 천명의 시위자들은 타흐릴 광장에 농성 중이며 천막 아래서 생활 계획과 수칙을 만들고 이에 따라 살고 있다. 이들은 대화하고, 웃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새로운 계획에 대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한다. 애초 몇몇 사람들이 탱크의 진입을 막기 위해 탱크 주위에서의 야영을 제안했으며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며 저항 중이다.

[출처: 하스나인 카짐(Hasnain Kazim, http://www.spiegel.de/fotostrecke/fotostrecke-64380-5.html)]

탱크 앞에 사람들은 담요를 깔고 그 위에 앉아서 신문을 보거나 서로 대화를 한다. 어떤 이들은 탱크 바퀴 위에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러나 탱크에 시동이 걸릴 경우 이들은 바로 일어나 대응하기 시작한다. 소리를 지르고 보강을 외치며 땅에서 돌을 집어 든다. 한 시위자는“이것은 전형적”이라며 “그들은 광장을 접수할 때까지 타흐릴 광장 방향으로 몇 미터라도 더 오기위해 매일 이렇게 시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배웠다. 우리는 그들에게 1센티미터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슈피겔>에 말했다.

광장 외곽에는 깨어진 돌들이 쌓여있고 쇠구조물들로 바리케이트도 세워져 있다. 이집트 국립미술관 옆과 같은 많은 장소에 시위자들은 탱크 이동로를 차단하기 위해 불에 탄 자동차로 바리케이트를 만들어 세우기도 했다.

대부분의 시위자들은 일자리가 있고 부패는 없는 보다 나은 미래를 원하는 젊은 사람들이며, 붕대로 상처난 부위를 감싼 사람들이 많았다. 부상당한 사람들은 타흐릴 광장의 임시병원에서 치료를 받지만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타흐릴 광장의 많은 곳에서 지원자들은 사람들에게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다. 상인들은 빵과 팝콘 그리고 차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쪽 현수막에는 희생된 이들의 사진이 걸렸다. 한 시위자는 “세계는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봐야 한다. 우리는 폭력을 사용한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타흐릴 광장 근처에는 시위자들이 피로 얼룩진 옷을 걸어두기도 했다. 이들은 살인당한 활동가들의 옷이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희생자들이 있는지는 확인될 수 없다고 한다. 살해된 이들이 쓰러져 있었다는 진술에 따라 거리에는 분필로 칠해진 희생자들의 윤곽이 그려져 있다.

바닥에는 작은 돌로 “자유로 온 것을 환영”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또 한편에는 “무바라크는 떠나라”란 글귀도 돌로 그려졌다. 탱크에는 분필이나 스프레이로 적혀있다.

한편, 교사였던 애만 압둘라흐(Ayman Abdullah)는 타흐릴 광장을 자유화된 영토로 본다고 8일 <가디언>에 말했다. “이곳은 새로운 이집트의 첫 번째 지역이다. 무바라크는 이곳의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다. 슐레이만 부통령은 이곳을 지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에 있을 것이고 이집트의 모두를 이끌 것이다”

그처럼 사람들은 무바라크가 물러날 때까지 타흐릴 광장을 지킬 계획이다. 이들은 견디며 희망한다. 8일자 <유로뉴스>에 한 여성은 “이곳에 온 지 3일째다. 나는 아픈 나의 어머니에게 갔다왔고 그 다음 이리로 왔다. 나는 독재자가 물러날 때까지 이곳에 있을 것이다. 그 독재자는 결국 떠날 것이다 ”고 말했다. 또 다른 남성은 “나는 부당한 정권을 끝내기 위해 순교자로서 죽을 각오가 돼 있다. 이것은 이집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의 모든 우두머리들은 부정하다”고 밝혔다.

확산되는 노동자들의 파업

노동권과 정권퇴진을 위한 노동자들의 파업도 확산되고 있다. 이미 2월 1, 6일 시위자들은 이집트 전국 노동자 총파업을 주창한 바 있다. 조직된 노동자들의 파업시위에 대한 외신들의 보도들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가디언> 9일자 이집트 현장 중계에 따르면 텔레콤 노동자들이 파업시위를 시작했으며 수많은 파업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8일에는 수에즈, 포르트-사이드 그리고 이스마일리아에 위치한 수에즈운하당국 소속 5개의 서비스회사 6천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시작했다. 2천명의 섬유노동자들도 노동권을 요구했다. 시위에 참여한 알리 푸아드는 8일 <아흐람온라인, http://english.ahram.org>에 “우리는 노동법에 있는, 경영자들이 우리에게 주길 거부하는 매년 임금 인상의 권리 등 우리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오늘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연좌시위는 3일째다.

<아흐람온라인>에 따르면 카이로에서는 또한 1천 5백명 이상의 공공부문 청소노동자들이 지역 독기 정부 중앙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마할라에서는 엘-사바 회사의 1천 5백명의 노동자가 8일 오전에 집회를 가졌고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이것이 첫 번째가 아니라고 말하며 길을 차단했다. 도시 쿠에스나에 위치한 의약품회사의 2천명 이상의 노동자들도 임금인상과 몇 년 동안 보류됐던 수당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또한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처우한 경영진 해임도 요구했다. 토라 시멘트공장 노동자들도 파업을 벌였다. 약 5천명의 청년실업자들이 아스완 지방정부청사 앞에서 8일 오전에 집회를 갖고 청사에 진입하려고 시도했다. 시위자들은 아스완 시지사가 해임돼야 한다며 합창을 했다.

한편, 지난 1월 30일에는 역사적인 이집트 독립노동조합연맹이 건설됐고 이들은 민주주의 원칙과 완전히 투명하게 운영되는 조직에 기초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집트 노동조합연맹(ETUF)는 노동자에 반하는 친정부 조합이었으며, 부정한 수단으로 선거에서 이겼고, 국가정보기관의 지시에 따랐다고 평가된다. 이들은 건설과 함께 즉각적인 총파업 조직을 발의한 바 있다.

2월 3일 “노동자들은 혁명의 열쇠를 갖고 있다”(http://prekaer.info)라는 글에서 제프 카에(Jeff Kaye)는 “서구 언론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지만 타흐릴 광장의 군중들 사이에서는 이집트 노동조합연맹(FETU)이라는 새로운 노동조합이 결성됐고, 즉각적으로 총파업을 발의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이들의 발의는 즉각 받아들여졌고, 무엇보다도 국가경찰에 맞선 격렬한 투쟁이 벌어졌던 수에즈에서, 이제 노동자들과의 동행과 함께한 봉기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이집트 봉기는 이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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