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살림살이 : 노동자의 임금과 생활실태조사

[낡은책] 노동자의 살림살이(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풀빛, 1985.4.25, 159쪽)

이 책은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가 1985년에 펴냈다. 우리에겐 ‘산선’으로 더 알려져 있다. 산선은 당시 행정구역으론 영등포인 구로공단 일대의 전자산업과 섬유산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수십 명의 임금, 노동시간, 주거환경 실태를 근거로 이 책을 만들었다.

요새 말로 하면 조사통계방법 중 전형적인 FGI(포커스그룹인터뷰)다. 산선은 조사 결과를 82년 정부 통계치와 비교분석해 가면서 당시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의 노동환경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단순히 임금만 주목한 게 아니라 방과 부엌의 크기 등 주거환경까지 조사해 책 이름 그대로 ‘노동자의 살림살이’를 제대로 드러냈다.

요즘 우리의 실태조사가 30년 전의 이 보고서보다 포괄적이지도 못하고 깊이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 책은 임금과 생계비, 노동시간과 생활시간, 주거환경 등을 분석했다. 여기서 사용한 임금은 대부분 일당을 중심으로 작성됐고, 모집단은 전자와 섬유로 나누었다. 전자는 구로공단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나은 업체와 그러지 않은 열악한 업체로 나누었다. 임금조사 이후엔 여성노동자의 한달 가계지출 현황을 분석해 생계비의 크기를 파악했다.

조사 당시 한국은 최저임금제도를 실시하지 않아 대안으로 최저임금제 실시를 내놨다. 정부의 저임금 해소정책과 경계기획원의 82년 도시가계연보와 비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임금과 노동시간을 뛰어넘는 노동자의 주거 환경까지 주목한 게 이 책의 장점이다. 구로공단의 주거 환경을 시계열로 분석해 해마다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주택부족률이 높아지는 모순도 잡아냈다.

이 책은 임금을 노동자 개인을 넘어 국민경제로 시각을 확장한 성과에도, 구매력 확보를 통한 내수기반 확충이라는 케인지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는 산선의 계급적 한계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그래서 인명진 목사 등 산선의 주역들이 21세기 들어 한나라당의 이데올로그로 진화하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한계에도 이 책은 현재 노동운동 진영의 퇴행적 조사통계를 개선할 좋은 교과서다. 아래는 책의 주요 부문을 요약했다.

구로공단의 형성과 현황

임금은 노동자 개인의 입장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적 측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 자본은 노무비에서 적정수준을 보장해 시장수요를 확대할 바탕을 마련하고, 민간소비수요의 구매력을 확보해 내수기반을 확충해야만 자율적 경제구조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구로공업단지는 67년부터 74년 사이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인지구 1~6단지를 통틀어 말하지만 편의상 1~3단지를 구로공단이라고 한다. 구로공단의 총종업원 58,061명 중 65% 이상이 여성노동자이며, 대부분 전자와 섬유계통에 취업하고 있다.

80년대 초 구로공단 임금

80년대 초 구로공단 전자업 가운데 상대적으로 임금조건이 나은 곳은 아래 다섯 곳이다. 이들 업체의 초임 일당과 평균적 주당노동시간은 아래와 같다. 초임 일당은 3천원대 초반이고 주당 노동시간은 50시간 정도에 이른다. 많을 경우 주당 60시간의 노동시간을 가진 업체도 적지 않다.

- 롬코리아 (300인 이상) : 초임 3300 보통 4000 주당 48시간 3교대
- 세진전자(300~1000인) : 초임 3400 보통 3700 최고 5000 주당 48시간
- 남성전자(1000명 규모) : 초임 3200 보통 3800 최고 6000 주당 60시간
- 유니전자(300~1000인) : 초임 3200 주당 54시간
- 한국전자부품(300~1000인) : 초임 3000 주당 60시간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열악한 아래 다섯 개 업체의 초임 일당은 2천원대로 떨어졌고 주당 노동시간도 60시간이 넘었다.

- 협진전자(300~1000인) : 초임 2450
- 대한광학(1000인 규모) : 남성 초임 2270 여성 초임 2000
- 한국아메리아(300~1000인) : 초임 2750 보통 2800 최고 3200 주당 68시간
- 일신통신기(100~300인) : 초임 2670 보통 2800 최고 3200 주당 60시간
- 한국마벨(1000인 규모) : 초임 2800

구로공단의 섬유업 임금과 노동조건은 아래 9개 업체를 놓고 볼 때 전자업보다 열악하다. 초임 일당은 대부분 2천원대이고 노동시간은 대부분 60시간을 넘어 최고 70시간도 있었다.

- 부흥사(1000인 이상) : 초임 2240 보통 2500 최고 3600 주당 64시간
- 코오롱(1000인 이상) : 양성공 초임 2200 보통 2800 최고 3600 주당 54시간
- 효성물산(300~1000인) : 초임 2280 보통 3200 최고 3750 주당 66시간
- 성도섬유(1000인 이상) : 초임 2750 보통 3500 최고 4000 주당 66시간
- 대우어패럴(1000인 이상) : 초임 2040 보통 2850 최고 3200 주당 60시간 이상
- 상영산업(100~300인) : 초임 2300 보통 2500 최고 4000 주당 63시간
- 프로맥스(100~300인) : 초임 2700 보통 3000 최고 4200 주당 60시간
- 동국실업(300~1000인) : 초임 2000 주당 70시간
- 우미나이론(300~1000인) 초임 2450 주당 65시간

월 10만원 안팎의 임금

월급 총액과 세부 임금구조를 3명의 여성노동자 사례를 통해 살폈다. 기본급에 잔업수당, 교통, 직책, 물가, 월차, 생리휴가 등의 각종 수당을 합쳐도 1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경력이 낮은 노동자의 월급 총액은 8만원대에 불과했다. 당시 노동부가 발표한 10만원 미만 노동자 비율은 9.5%에 불과했는데 이 책의 분석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A양 : 섬유, 일당 2800원 경력 3년
기본급(2800×30=84000)+잔업수당(총 잔업시간 72×시간당 임금 350×1.5=37800)+교통, 직책, 물가, 기타 수당(0)+월차.생리수당(2800×2=5600) = 12만7천4백원

B양 : 전자, 일당 4050원, 경력 6년
기본급(4050×30=121500)+잔업수당(총잔업시간48×시간당 임금 506.25×1.5=36450)+월차.생리수당(4050×2) = 16만6천50원

C양 : 전자, 일당 2810원, 경력 1년
기본급(2810×30=84300)+월차.생리수당(2810×2=5620) = 8만9920원

위 사례에서 기본급 수준이 너무 낮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월 10만원(일당 3340원)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었다. 노동부가 발표한 10만원 미만자 9.5%는 상여금, 잔업을 포함한 평균임금을 산정했다고 해도 그 통계가 의심스럽다. 동아일보 특별기획기사에 따르면 구미공단의 중졸 월 본봉 평균액은 78,750원이고 고종은 92,000원, 연장근로를 합한 평균임금이 전자는 13만원 선, 섬유는 11만원 선이었다. 구로공단도 비슷할 것이다.

수당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법정수당인 시간외 근무사당, 휴일특근수당, 심야수당이 주종이다. 낮은 기본급으로 생활하기 어려워 대부분의 노동자가 시간외 연장근로를 할 수밖에 없다.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월 10만원 미만 근로자 28만명’은 임금총액을 말하며, 기본급으로 계산하면 훨씬 많은 노동자가 더 포함된다.

81년 한국노총 조사결과 임금구성에서 기본급 구성은 44.8%에 불과했다. 83년 12월 1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10만원 이하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총 269만2천명으로 전체의 42%에 달했다. 올해(84년12월) 발표에서 그 숫자가 28만명으로 줄었다 해도 임금인상에서 기본급 인상보다는 초과급여를 올리는 경향이 많았다.

A양은 섬유 여성노동자의 전형이다. 총 임금액 12만7400원 중 기본급 비율은 65.9%이고 나머지는 월 72시간의 연장근무로 얻었다. A양의 한 달 총 노동시간은 264시간으로 1981년 ILO가 조사한 한국 제조업 평균 214.8시간(주당 53.7×4)보다 무려 50시간이나 많이 일하고 이웃 일본의 163.6시간보다 한 달에 100시간 이상 더 일했다. 섬유업종의 장시간노동은 거의 체질화돼 있다. 하루 10시간 노동이 기본이다.

C양은 연장근무가 전혀 없어 낮은 기본급만 받았다. 전자업은 섬유보다 노동시간이 짧고 환경도 낫다. 그러나 10만원 미만의 기본급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

노동자 가계부는 늘 적자

3명의 여성노동자 지출구조는 아래와 같다.

A양은 총임금 12만7400원이다. 기숙사에 산다. 비소비지출 = 세금(1500)+의료보험료(1500)+조합비(1200)+회사의 국민저축(1000)+저축(70000) = 7만5200원이다. 소비지출은 모두 5만2200원이다. 세부항목은 1) 기숙사비 = 식대(한끼 130원 × 30일 × 하루 2끼 = 7800) + 기숙사 방값(하루 90원 × 30일 = 2700) = 1만500원 2) 피복비 = 의류(1년에 4만5000원 정도 ÷ 12 = 3750) + 장신구(1년에 5만원 정도 ÷ 12 = 4200) = 7950원 3) 보건위생비 = 화장품(5000) + 미용(2000) + 목욕(5000) + 병원약값(3000) = 15000원 4) 교통통신비 = 5000 5) 나머지 1만3750원으로 군것질, 책값, 교제비 등으로 사용

B양은 총임금 16만6050원이다. 동생과 같이 방 1, 부엌 1의 전세방에서 자취한다. 비소비지출 = 세금(1300) + 의료보험(2200) + 조합비(2400) + 방범오물세(1100) = 7000원이다. 소비지출액은 모두 14만7600원이다. 세부항목은 1) 음식비 = 쌀은 시골서 가져옴 + 부식비(15000) = 15000원 2) 주거비 = 대부금(전세비 6만원) + 수도세(2400) = 6만2400원 3) 광열비 = 전기세(5000) + 연탄값(1만6000) + 석육(2000) = 2만3000원 4) 피복비 = 의류(1만원) + 장신구(1만원) = 2만원 5) 보건위생비 = 화장품(5000) + 미용(2000) + 목욕(3000) + 약값(3000) = 1만3000원 6) 잡비 = 교제비(1만원) + 군것질(2000) + 기타(6000) = 1만8000원 7) 교통비 = 7750원

C양은 총임금 8만9920원이다. 집은 30만원 보증금에 월 4만5000원 월세방에서 혼자 자취한다. 비소비지출액 = 월급봉투에서 떼는 돈(4200) + 방범오물세(500) = 4700원이다. 소비지출액은 9만1700원이다. 세부항목은 1) 음식비 = 주식(3500) + 부식(1만원) = 1만3500원 2) 주거비 = 임대료(4만5000) + 수도세(500) = 4만5500원 3) 광열비 = 전기세(2000) + 연탄(5000) + 석유(1200) = 8200원 4) 피복비 = 의류(3000) 5) 보건위생비 = 화장품(2000) + 목욕비(2000) = 4000원 6) 교통통신비 = 1만원 7) 잡비 = 교제비(5000) + 군것질(2000) = 7000원이다. 결국 C양은 매달 5980원씩 적자 가계를 운영했다.

정부 통계와 비교분석

최소한의 주거면적은 채광, 통풍 등의 조건을 고려하면 1인당 주거 면적이 2평이다. 그러나 월세는 4~5만원 수준, 전세는 2백~3백만원의 임대료로도 이 최소한의 기준에 못 미친다. 따라서 재정 여건 때문에 기숙사를 택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82년 도시가계연보>에 따르면 월 소득 15만원 이하에서 전 수입의 30% 이상을 셋돈으로 내는 사람이 51.9%였음. C양은 총소득의 51%를 주거비로 사용하고 B양도 전세금 대부금 상환을 위해 총소득의 36%를 지출하고 있다.

A양은 직접 비싼 옷을 만드는 미싱사인데도 정작 자신은 입지도 못하고 최저수준에 절대 미달하는 피복비를 지출하고 있다. 가계생계비와 임금을 비교해 볼 때 79년을 고비로 생계비 충족율이 점차 떨어져 50~70% 수준이었다가 80년 이후 40% 선으로 떨어져 가계적자율 폭이 커지고 있다.

노동자 1/3, 월급 타고 보름 뒤 바닥

이번 조사에서 대상자 총 65명 중에서 월급이 바닥나는 시기를 살피면 월급 타고 15일후가 24명, 다음 월급 10일전이 11명, 일주일 전이 12명, 3일 전이 3명이었다. 어떤 여성노동자는 11만3천원 가량의 월급에서 적금 7만5천원, 곗돈 2만원을 저축한 뒤 2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한 달을 살고 있었다.

주거비나 식생활비를 줄이려고 친구나 이성 등과 함께 동거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거비와 식생활비를 공동부담해 지출을 줄이는 취지였다.

임금을 최저생계비 보장 수준까지 인상하는 것은 임금총액이 아닌 기본급 자체의 인상이어야 한다. 정부가 <85년 임금조정지도지침>에서 내세운 저임금 개선과 임금격차의 완화를 달성하기 위해 1) 월 10만원 미만 저임금 일소 2) 학력간 직종간 남여간 임금격차 완화 3) 자율적 임금교섭의 보장 등의 방침은 노동자의 단결에 기반하지 않으면 자본으로부터 양보를 얻을 수 었다.

한국노총의 <85년도 노총임금지침>에 따르면 조합원 임금조사 결과 83년 9월 현재 통상임금이 월 10만원 미만인 경우가 섬유 69.1%, 화학 13.8%, 금속 15.3%를 차지했다. 결국 정부의 83년과 84년 저임금 행정지도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정부의 행정지도가 기업에게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80년 현재 94개국에서 실시중인 최저임금제를 실시하되 단순한 행정지도 선상을 넘어 전국적 통일성을 갖고 강제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의 최저임금제 도입을 강력히 요구한다.

노동시간과 주변 생활환경

얼마 전 서독에선 하루 7시간, 주 5일근무로 주35시간 근무제도를 쟁취했다. 우리나라는 80년대 이후에서 노동시간이 계속 늘어났다. 장시간 노동의 근원은 저임금으로 인한 생계비 보충을 위한 잔업과 특근이다. 84년 6월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 월평균 근로시간은 230.4시간이고 근로일수는 25.1일이므로 매일 9시간12분씩 일한다.

도시인구가 60년 28%에서 70년에 41.1%, 80년에 57.2%로 크게 늘었다. 특히 서울의 인구집중은 60년 9.8%에서 70년 17.5%, 80년 22.3%로 세계 최고의 집중성을 띠었다. 80년도 국민 전체인구 3744만9천명 가운데 도시인구는 2144만1천명, 농촌은 1600만8천명으로 도시의 인구집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가구원 수는 60년 5.71명, 70년 5.36명, 80년 4.69명으로 줄어들어 도시지역 주택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70년에서 80년까지 10년간 인구증가는 전체인구가 19% 증가한 데 비해 도시인구는 66%, 농촌인구는 -14%를 기록했다. 주택부족률은 전체로는 오히려 7.9% 늘어났다.

구로공업단지는 67년부터 74년 사이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인지구 1~6단지를 통틀어 말하지만 편의상 1~3단지를 구로공단이라고 한다. 81년 6월 현재 구로공단의 전체 근로자수는 58,061명으로 37,889명(65.3%)가 여성이다. 기숙사가 설치된 사업장은 225개 입주업체 가운데 78개로, 수용인원은 14,390명이다. (노동부, ‘구로공단 근로자 주거환경 개황’, 1981.6) 김영기의 ‘구로공단 인근의 근로자 및 저소득층 주거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서울대 건축학과 석사논문, 1983.1)가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구로공단의 방 크기는 평균 1.75평이었다.

구로공단 쪽방촌 주거환경


부엌의 크기는 평균 0.8평으로 방 크기의 약 1/2이다. 방과 부엌밖에 없는 주거환경은 인간답게 살아가기엔 매우 협소하다. 대변기 하나에 65명이 이용하는 곳도 있었다. 대변기 하나당 평균 사용인원 수는 26명이었다. 닭장집의 경우 월세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보증금은 20만원에서 50만원까지였고 월 3.5~5만원이 72%(82년 10월 현재)로 분포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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