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운동의 새로운 길 찾기

[우리사회의 빈민운동사](16) 마지막회

들어가며

이제 마지막으로 대안을 이야기할 차례다. 고민 끝에 몇몇 활동가를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하였다. 그리고 오래된 선배들과 대화를 자청하고 나섰다. 빈민운동의 현안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인지? 하지만 오히려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더해갔다. 결국 나의 생각은 이러저러한 정책과 대안도 중요하지만 빈민 활동가들의 지속가능한 활동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운동의 미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실천이야말로 빈민운동 혹은 반 빈곤 운동의 희망이라는 결론이다. 이들이 대중들과 교감을 갖고 미래를 조망할 수 있을 때만이 운동의 발전 전망이 마련될 수 있다.

필자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빈민 활동가 약 30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15개 문항의 질문을 요약하면, 개인의 신상과 더불어 활동경력과 소속 단체 및 조직 그리고 빈민운동을 하게 된 동기를 먼저 살펴보았고, 우리사회의 반 빈곤 또는 도시빈민을 둘러싼 의제 중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와 최근 떠오르고 있는 정치권과 정부의 복지정책을 둘러싼 주장들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밖에도 반 빈곤 또는 빈민운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사항과 시급히 보완해야 할 문제들, 개개인의 문화생활과 재충전을 위해서 어떤 취미활동을 갖는지 그리고 빈민운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경험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반 빈곤 또는 빈민운동의 정의와 반 빈곤 또는 빈민운동의 방향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이들을 통해 빈민운동의 길 찾기를 떠나보자.

빈민 활동가 약 30여명에게 물은 빈민운동의 길 찾기

우선 필자가 조사한 빈민 활동가들의 연령은 2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다양하게 형성이 되어 있었으며 평균연령은 30대 중반이 가장 많았다. 빈민운동 활동경력은 5년 이상에서 7년 사이였으며 이중에는 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오랜 활동경력을 내오는 사람도 몇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80년대 초 중반 빈민운동의 태동기부터 최근까지 빈민운동의 경험을 갖고 있는 활동가는 전무한 상태였다. 따라서 이들은 첫째, 90년대 중반 또는 IMF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빈곤문제가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빈민운동을 시작하거나 둘째, 2천년대 들어 기초법을 중심으로 반 빈곤운동이 사회적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시점에 빈민운동에 뛰어든 사례로 구분 될 수 있었다.

이들이 소속된 단체와 동기는 노점상, 철거민, 노숙인 단체, 자활센터, 등의 대중조직 당사자나 활동가들이었으며 금융피해자 해오름, 노숙인 주말배움터 자원활동가’로부터 출발한 경우도 있었고, 대학생 혹은 대학원 전공자 가운데 ‘빈학연대’ 활동을 계기로 인연을 맺으면서 빈민 활동가로 나서게 된 사례도 있었다. 이들은 ‘빈곤사회연대’로 대표되는 반 빈곤운동의 연대체 활동을 통해 상호 교류하고 공동의 실천을 내오는 경우가 많았다. 빈민운동을 하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처음부터 자신의 신념에 입각해 사회운동을 선택하면서 빈민운동을 시작하였고 주변의 권유나 가난한 이들과 평생 함께 동고동락 하겠다는 결의가 동기가 되었다고 답한 경우도 있었다.

빈민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많은 활동가들이 비정규직으로 비롯한 불안정 노동의 문제와 일하면서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뿐만 아니라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비공식 노동자의 권리보장 문제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리고 기초법 전면개정과 보편적 복지 구현을 들었으며, 의료 공공성 보장과 적정한 주거의 보장을 들었다. 이밖에도 사회적 안전망을 유지, 강화하기 위한 제도개선의 활동인 실업부조의 확대, 사회보험 재편, 저소득층 지원아이템 및 규모의 확대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직접세 비중의 강화와 간접세 최소화를 위한 세제개편 노력과 누진적 직접세 확대로 부자 증세 및 저소득층 감세, 유류세/담배소비세 등 역진적 간접세 비중 감소를 통한 저소득층 및 일반 서민의 세 부담 경감, 법인세 확대를 통한 재벌 증세 등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무상급식 전면 확대를 위한 일부 개혁적 지자체 및 교육감 지원과 투기적 개발사업 저지, 노점상 등 도시빈민에 대한 생존권 탄압저지’ 등을 지적하였다.

최근 복지정책을 둘러싼 정치권의 다양한 주장에 대해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이데올로기 폭탄에 맞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것이 빈민조직의 문제라는 의견과 정치적으로 제기되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빈민조직들은 파편화된 대응을 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이 선별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의 추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으며 건설자본을 위한 4대강 강행, 이를 위한 복지예산 감축 등을 공격하면서 기만적인 복지포퓰리즘 논란에 정면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복지정책이 도시빈민의 형편과 그들의 언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논의되고 있으며, 시혜적 차원이 아닌 권리 당사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차원이여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이밖에도 한 응답자는‘ 보수 기득권세력의 복지 포퓰리즘 논란은 대한민국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을 부정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기만적인 대중호도전술이다. 빈민운동 및 변혁운동진영에서는 이에 대한 수세적 방어논리로 대응하기보다는 복지의 인권개념을 공세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하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반 빈곤 또는 빈민운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점에 대해서는 약 70% 이상이 빈민운동을 하는 스스로가 빈곤을 해결하기 힘들다며 경제적인 문제를 첫손으로 꼽았다. 이밖에 활동가와 일반대중들 간에 관계에 초점이 모아지기도 하였다. 단체 안에서 평등하고 진보적인 관계가 구축되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행복해서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으로 상처를 받고 떠난다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또 활동가와 대중과의 정서적 간극과 차이 등 활동 과정 속에서 겪는 어려움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밖에 조직 및 개인의 장기적인 비전을 찾지 못하고 있는 활동가들도 있었다. 현안에 대한 대응과 투쟁들이 이후 정치적 각성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때 힘들다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빈민조직들과의 조율, 연대체 운동의 한계와 직접 대중조직을 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위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안정적인 재정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을 첫 번째로 꼽았다. 그리고 개인과 소수의 활동 역량에 크게 의지하는 조직 시스템 극복과 정책역량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마련 활동가들의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많이 하였다. 현재 정책 역량과 교육 사업은 많은 반 빈곤 또는 빈민운동 조직 간의 노력이 진행 중에 있으나 안정적인 재정마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기획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도 ‘빈민단체 소속이 아니면 반 빈곤 활동을 찾기가 어려운데 범국민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사업계획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또한 ‘개별 조직의 이해를 넘어 보편적 이상과 이익에 기반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직을 운영하는 기본적인 방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다양한 실천을 통해 자기 조직에 적합한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대답하였다. 또한 단순하게 ‘민주적 중앙집권제라는 대의를 넘어 조직 가치를 둘러싸고 구성원들과의 소통과 공유를 높여내며 조직비전의 수립, 대중조직에서 멤버십을 유지, 강화할 수 있도록 조직운영을 위한 행정적 수단(업무분담과 인사, 상벌, 소통구조 등) 에 대한 점검’ 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활동가들의 휴식과 문화생활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비교적 다양한 취미와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이를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가령 구립도서관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휴식을 하거나 틈틈이 운동단체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역사기행이나 등산 연극보기 등의 행사에 참가하는 방식의 문화생활을 하고, 축구모임을 하거나 헬스와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등, 의식적으로 건강을 챙기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 평균 10시간 가까이 근무를 하고 있었으며 업무상 잦은 뒤풀이를 갖거나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행사와 집회가 집중되어 휴일 날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억에 남는 경험이나 활동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활동가들이 최근의 용산참사를 첫 번째로 꼽았다. 용산참사는 많은 활동가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청계천 복원 개발로 주변 도시빈민들의 문화와 삶이 파괴된 것에 대하여 충격을 받았다는 대답과 노숙인 이 운명하는 사건을 들었다. 반면 조직 내부에서 전개되는 사업들인 상담 사업을 통해서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그리고 소모임 활동을 하거나, 학습모임을 전개하면서 느꼈던 보람을 이야기하는 활동가들도 있었다. 이밖에도 조직 내부적으로 부조리한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분열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횡포와 폭력 그리고 이를 수수방관하는 운동진영이라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빈민운동 또는 반 빈곤 운동을 한마디로 정의하거나 운동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간추려 보면 ‘사람이 사람으로 살기 위한 대항운동’, ‘다양한 주체의 발굴과 조직, 후세대 발굴과 조직을 위한 프로그램과 담당 부위 구축’, ‘반 빈곤 단체들의 경험 및 올해 주요 계획 공유와 공동 활동 모색’, ‘범국민적 운동으로서의 반빈곤운동 실천방안 마련’, ‘인권운동이자 변혁운동이다. 변혁운동으로서의 가치는 유지되어야 하며 이것이 없다면 타 단위와 연대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원칙을 목숨처럼 지키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빈민들은 운동의 최종목표이며, 최초 근거이기도 하다.’ ‘대중들의 이해에 복무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혹은 소수 패권그룹의 전망을 우선시하는 운동은 더 이상 운동이 아니라 빈민을 활용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냉정한 평가를 하는 운동 그리고 냉정한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활동가가 칭찬받기 위해서 혹은 출세하기 위해서 하는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화자찬으로 끝나는 평가나 견제가 목적인 평가가 아니라, 정말 적절한 방식이었는지, 정말 올바른 방향이었는지, 정말 성실했는지, 정말 순수했는지를 수시로 평가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빈곤을 심화하는 사회구조에 맞서 연대운동이 되어야 한다. 빈민주체의 생존권 투쟁이 피착취 계급의 권리와 배치되지 않도록 조직하고 투쟁하고 연대하는 거’ 라고 응답하였다. 이밖에 ‘평등과 정의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연대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모든 평등과 정의를 위한 활동에 연대하는 열린 태도를 견지되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이밖에도 개량주의 운동(사회 민주주의 확대운동)이다’ 라고 정의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의 질문을 요약하면 많은 활동가들이 비교적 도시빈민을 둘러싼 과제와 빈민운동의 방향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잘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사회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 스스로는 불투명한 경제적 조건과 함께 다양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특히 조직 활동 과정 속에서 겪는 갈등과 불합리한 구조로 인해 일부 활동가들은 의욕을 상실하거나 동기를 잃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 용산참사와 같은 사건과 자신의 현장에서 겪었던 철거나 단속과 같은 문제들은 활동가들의 의식에 커다란 동기를 부여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운동에 대한 신념과 확신이 생겼다고 응답하는 반면 운동의 한계도 절실하게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활동가는 활동가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활동가

비록 소수이지만 우리 사회는 젊고 열정적인 활동가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헌신적으로 실천을 하고 있으며, 빈곤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가난한 이들을 주체로 세워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들이 있기에 빈민운동의 전망은 결코 어둡지 않지만 사회를 예리하게 바라보는 만큼 현장에서 느끼는 빈곤과 고통으로 인해 커다란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설문에 응답한 어떤 활동가는 ‘투쟁할 때는 손 안에 가득 찬 모래를 느끼지만 손을 펴면 모두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다’고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정서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는 활동가들은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내면적 고통과 어려움을 취미생활로 풀려는 의지는 있지만 사실상 그 방법을 쉽게 찾지는 못하는 거 같다. 지난 2011년 3월 11일 홍대 앞 두리반 토론회에서 있었던 자리에서 기륭전자 조합원과 전철연 소속의 철거민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장기사업장이다보니, 오랫동안 농성을 하고 일상적으로 용역반들과 싸우다보니 정신적으로 많이 황폐해졌어요. 오랜 친구들을 만나면 잘 대화도 되지 못하고 다들 저보고 이상해 졌다고 합니다.”

“문득문득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습니다. 투쟁을 할 때는 정말 몰랐는데 투쟁이 끝난 후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껴 병원에 갔더니 특별한 병명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입니다.”

“철거투쟁으로 아이들에게 소원했던 것이 가장 미안합니다. 한참 사춘기로 예민할 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겪고 있으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입니다”


운동의 전망을 논의할 때 정책과 방향 못지않게 빠트릴 수 없는 것은 빈민 활동가들의 안정적인 활동이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특히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것이 간과한 상태에서 전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공허할 수 있다.

“과거에는 조직 내 일들을 모두 모여서 함께하는 협력적인 방식이었지만 최근에는 개별개별 전문화 되면서 협력적인 거 같지만 어찌보면 배타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상호 관계 맺기가 안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이런 때는 잠깐 멈추고 돌아보는 계기를 만드는 게 필요할 거 같아요. 그리고 이를 혼자서 풀기보다는 전문적인 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교육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1)

‘민주노점상 전국연합’는 2011년 3월 25일‘한국심리검사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외향성 또는 내향성, 감각형 또는 직관형, 사고형 또는 감정형, 판단형 또는 인식형’등 중앙활동가들에 대한 성격유형과 삶의 양식이라는 주제로 강의와 심리 검사가 있었다. 이를 통해 각자의 성격을 파악하고 원만한 역할 분담을 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사례가 있었다. 운동단체의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과 심리치료 프로그램은 최근 많이 소개되고 등장하는 거 같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현장에서 느끼는 활동가들의 고통과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보는 것이 필요하며 협력관계와 관계 맺기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이밖에도 정책을 중심으로 한 활동가 교육 못지않게 빈민운동의 출발선에 있는 초보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빈민운동 교육과, 대중조직의 상층의 지도력을 중심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모색할 수 있다.

운동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자신을 찾는 길이다. 그러나 빈민운동의 현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대중조직의 특성상 자신의 경제적 이해를 위해 모인 별별 사람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커다란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특히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조직이 상식적으로 문제가 있는 결정을 내리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수록 더욱 굳건히 버텨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인내심을 가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조직 내 어떤 일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 그리고 목표를 이루는 등은 그 과정을 둘러싸고 많은 변수들이 존재 할 수 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안팎의 모순에 맞서 때로는 관조적으로, 때로는 치열하게 이 과정을 즐기는 것이 필요하다. 이속에서 단계적인 목표를 가지고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며 이 모든 것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진행해야 한다. 이를 좀 더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활동가간의 별도의 대안 그룹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를 공통의 과제로서 조직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개별 활동가들이 평생 어떤 특정 지역과 현장 그리고 역할에 치중하기 보다는 상호 간에 활동영역을 바꿔서 실천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봤다.

빈민운동과 반빈곤 운동은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활동 방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각자의 입장과 이해가 높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3,4년의 주기로 서로의 활동공간을 바꿔가며 실천을 해 본다면 운동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러한 실천들은 잘 네트워킹 할 수 있는 조직 속에서 개인들의 결집이 선행되어야 한다. 조직과 활동가들의 오류에 대해서도 이러한 실천 속에서 평가를 통해 극복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 이상을 만들어 내는데 있어 문화운동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은 자본주의로 끝없이 치닫는 이사회의 허구와 병폐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작품으로 도시빈민문학의 커다란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이밖에도 지난 용산참사와 최근 홍대 앞 두리반으로 이어지는 투쟁은 다양한 문화운동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과정 속에서 충분히 보여주었다. 문화운동이 일반적으로 미치는 대중적 파급력은 또 얼마나 놀라 운가? 빈민활동가들은 일상적으로 문화적 역량을 갈고 닦아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가령 적극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시와 수필로 사진과 그림으로 다양한 음악적 기능과 역량을 닦아 내는 것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동시에 함께 현장에서 맞닥트리는 일들에 대한 여유로움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 있다 보면 시각이 갇히거나 숲만 볼 수 있지만 미래를 향한 여정에 균형감각을 키우고 그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가 아니라 방향을 정하고 가는데 있어서 문화운동은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기존의 전문적인 문화역량들과의 적극적인 관계 속에서 도시빈민의 도시적 감성을 접목시키고자 안팍으로 노력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동안 빈민운동을 이야기하면서 계급성이라는 말을 종종해 왔다. 계급의식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인 독점재벌 위주의 불평등한 산업구조를 통해 잉태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러한 경제적 모순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현실은 자신을 억압하는 구조적인 모순으로부터 탈출하기 보다는 오히려 보수적인 사고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문제는 선거 시기 투표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래서 저들은 정치적 일정을 앞두고 민중의 불만과 빈곤한 상태를 은폐하고자 사회안전망과 복지정책을 내오며 안정적 권력 유지의 기반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이 앞서는 조건에서는 위와 같은 정책들은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사회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대중은 생활 속에서 감성적으로 느끼면서도 좀 더 이성적으로 빈곤의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오랫동안 ‘가난은 개인의 문제’로 학습 받아 온 결과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말처럼 집단적인 활동과 실천 속에서 계급적으로 자각한 활동가들의 노력을 통해 빈민당사자들을 주체로 만들어 내는 질기고 끈질긴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계급성을 확립해 나간다는 것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계급의식이 고양되는 것은 매우 작은 계기를 통해 발현 될 수 있다. 왜냐면 이들의 의식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토대는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따른 결과물이지 기득권자들이 주입시킨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튀니지의 중부 소도시 시디부지드라는 곳에 벌어진 사건은 작은 사례가 어떻게 역사의 수레바퀴가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것이다. 직장이 없어 과일 노점상을 하던 대졸 청년은 생계용 좌판을 빼앗긴 것에 대해 죽음으로 항거하였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가난, 독재, 인권, 석유라는 단어들이 뒤범벅된 아프리카와 중동의 독재국가들에서 민주주의 봉기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세상의 극한에 내몰려 스스로 목숨을 던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 그래서 빈곤은 당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정말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비록 철거민이 되어보지 못해도 노숙인이 아니더라도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의 치유하지 못한 상처를 내 자신의 것으로 아파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조금 더 좋은 생활을 꿈꿀 수 있지만 그마저도 벗어 던지고 빈민들과 빈곤해결을 위한 마지막 선택에 우뚝 선 이들이 도시빈민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공동체 회복에 나서야 한다.

자본의 무한경쟁에 치를 떨며 운동을 선택했지만 본인의 운동공간 조차 크게 다르지 않다면 우리는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인가? 활동가들은 이성적으로 계급성을 확립하는 문제와 더불어 구체적인 공동체를 일구어 내고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진리와 펄펄 뛰는 민중들의 감성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이 누구도 누려보지 못한 활동가만이 갖는 행복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흔들리지 않고 나가는 게 어찌 보면 지금의 전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빈민운동과 반빈곤운동의 결합을 꾀하자

  노점상과 철거민이 함께 공동의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출처: 빈민해방실천연대]

그동안 도시빈민 운동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전개 되었다. 하나는 개발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철거민운동과 노점상 운동이다. 우선 철거민 운동은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전설처럼 전해 오는 경기도 광주지역의 철거민, 88년 올림픽 기간에 벌어진 철거민 등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뉴타운과 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밝혀지지 않은 사건과 사고를 안고 이어져 왔으며 최근 용산참사를 통해서 또 다시 촉발된 것이다. 불에 그슬린 용산참사 현장에 섰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세상에 꼭 이래야 했는지 사람이 먹고 자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꼭 이런 식으로 밀어붙여 하루아침에 불타오르고 무너지게 했어야 했는지’ 말이다. 최소한의 공간을 보장받을 권리마저 빼앗기고, 세상에 밀려 삶이 전쟁이 되어 버린 사회인 것이다. 그만큼 가난하고, 없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가혹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용산참사를 보면서 정부의 잘못된 진압을 탓하면서도 왜 이들이 망루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제기 하기도 하였다. 사실상 주택과 부동산 부문 역시 손쉽게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였고, 전체 사유지의 절반 이상을 1%의 소수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발은 인간의 욕망을 부추겨 왔다. 개발은 진보이고 발전이라는 인식아래 집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세입자나 철거민들의 처절한 투쟁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거나 외면하는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철거민들의 투쟁은 죽음도 불사하는 처절한 투쟁이었지만 막상 철거를 당하는 사람은 소위 세입자중 미 해당자(정비구역 지정에 대한 주민공람 3개월 후 부터 해당자가 됨)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이 이루어 지지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개발 사업이 진전이 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후에야 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최근 들어 상가세입자를 중심으로 철거민의 대상이 새롭게 넓혀지고 있지만 상가세입자의 권리금을 둘러싼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역시 대책 마련이란 게 쉽지 않은 상태다. 그동안 철거반대 투쟁은 오랜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인내심과 철거 용역반과의 일상적으로 대치되어 있는 상태에서 끊임없이 폭력에 노출되어왔다. 철거민들의 격렬한 저항은 많은 이들의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 냈지만 사망으로 이르는 커다란 사안을 제외하고는 직접적인 연대관계에 있어서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학생운동권의 지지와 연대를 통해 지역별 철거현안에 대처를 해왔지만 최근 학생운동이 침체되어 있는 조건 속에서 과거와 같은 지원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용산참사 이후, 강제퇴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용역반원의 폭력과 그에 대한 자치단체 및 경찰의 책임방기를 근절하고자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을 비롯한 다양한 주거권 운동으로 그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그리고 가수용 단지 쟁취 및 임대아파트 입주 이후의 운동에 대해서도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철거민 운동은 주민조직에 기초를 둔 지역운동으로의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철거민은 노동자라는 기치아래 철거투쟁이후 이들이 대부분 비정규직 또는 비공식 부문의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을 감안하여 지역노동운동으로의 전망도 모색하고 있다. 이미 기존의 빈민운동은 지역을 기반으로 구축이 되어 있기에 지역의 상황에 따라 지역노동자들 그리고 빈곤당사자들과 연대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음으로 80년대 이후 발전해온 노점상운동의 전망이다. 노점상운동은 다른 나라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이사회의 민주화운동에 커다란 기여를 하면서 발전을 해왔다. 80년대는 시대적 격변기였기에 다른 모든 대중조직과 부문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운동들이 성장을 하던 시기였고 이에 편승하여 빈민운동도 발전을 하였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이후에도 절대금지구역과 상대금지구역을 실시하거나, 최정환 열사, 이덕인 열사, 윤창영 열사 투쟁 등등을 전개하였으며, 이시기 운동이 전반적으로 침체되는 양상을 보였지만 노점상들은 강력하게 조직을 결집해 왔다.

2천년대 들어서도 경제위기와 비정규직 증가라는 악순환과 맞물려 전국의 노점상들은 계속 증가하였다. 노점상운동은 빈민운동의 영역뿐만 아니라 한미 FTA 반대 투쟁과 각 부문의 연대운동에 적극적으로 결합을 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역량과 사업 작풍도 도시빈민운동사에서 가장 커다란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용산참사가 터지고 나서는 하루아침에 그 연대의 힘과 역량이 발휘되지 못하고 무기력해 져 버리고 말았다.

최근들어 이와 같은 원인이 나타나게 된 것은, 각 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노점관리대책에 편승하여 타협주의 노선을 걸었던 것이 결과적으로 노점상운동을 약화시킨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노점상운동은 서울시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노점상 관리대책의 회유와 유혹을 떨쳐버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노점상관리 대책이 초기에 집중적으로 진행된 서울 종로거리의 노점상들이 최근 이를 거부하고 나서는 것은 이제 이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도 있다.2)

마지막으로 노점상운동의 고질적인 병폐인 소위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상층의 비민주적이고 관료주의적 사업 작풍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판단된다. 다시 말해서 아래로부터 대중의 의식이 변화되는 운동이 아니라 상층의 판단에 따라 생존권을 담보로 한 일방적 동원위주의 운동이 빚어낸 결과였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빈민운동 뿐만 아니라 소위 운동진영전체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특정 대중조직 상층의 부패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유지하거나 해당 조직의 내부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결국 관료주의적 기풍과 서로 조응해 나가며 고착화시키고 있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이밖에도 노점상운동은 최근 경제의 악화로 늘어나는 노점상의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며 자신들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한다면 국화빵의 건강한 거리 문화를 일구고 과거처럼 사회를 발전시키는 작은 단위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이 철거민 운동과 노점상운동은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도시빈민 운동의 한축을 이루며 성장해 왔다. 이러한 빈민운동은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빈곤문제와 정책적 대응을 중심으로 반 빈곤운동 등과 결합을 모색하고 있다.3) 이제 빈민운동은 정책적으로 반-빈곤 운동, 그리고 지역운동과의 결합과 함께 빈곤의 정책적인 접근을 기반으로 한 운동방식이 병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스스로 빈곤하다고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실질적으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한미 FTA의 추진에 따른 생존권 박탈의 위기에 놓여 있는 농민들에게 얼마 전 구제역파동은 이들의 시름을 더하고 있다. 비공식부문으로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노점상, 그리고 강제철거로 누울 자리조차 찾지 못하는 철거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애인들과 노숙인,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노동자들은 외환위기 이후부터 여전히 고용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고, 젊은 패기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야할 청년들은 실업이라는 그물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직장을 다니는 수많은 이들도 항상 해고의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기에 하루하루를 술에 찌들어 살기도 한다. 이들은 언제나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거나 이미 도시빈민이 되어 있는 상태다. 사회적으로 출산율은 줄어들고, 고령화된 인구가 계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지만 이 사회는 최저 수준의 생활에 미달하는 이들에게 일반적 수준의 경제적?문화적?사회적 혜택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빈곤의 그림자는 언제든 우리 곁을 서성이고 있으며 빈곤인구 8백만을 넘어서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시대는 더욱 빠른 속도로 변해 가고 있다. 빈민운동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에도 도시빈민과 빈곤문제가 사회적으로 문제였지만 최근과 같이 다양한 영역에서 빈곤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빈민운동은 자본의 빈곤관리 전략의 일부로 언제든지 편재될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다.

이제까지 살펴봤듯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찾는 실천에 머물게 된다면 이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정부의 기만적인 시혜적 복지정책에 편승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고, 이 사회를 위한 작은 진보뿐 아니라 어떤 변화조차 이끌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본의 이데올로기 통제아래 정부가 혹은 일부 정치권이 선별적으로 베풀어주는 혜택을 단순히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다양한 영역과 재생산영역에서 작동하는 빈곤을 양산하는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빈민운동과 반 빈곤 운동은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반대 운동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 계급과 협력하는 운동,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글을 정리하며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빈민운동은 반 빈곤운동과 결합하여 새롭게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제의 범위가 더욱 다양화되는 상황이어서 하나의 흐름으로 빈민운동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이 글을 쓰면서 노숙인 운동이 빠졌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너무 주관적으로 정리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정 단체에 대해 날선 비판을 둘러싸고 핀잔도 들었다. 그럼에도 이 글의 목적은 우리 사회 반 빈곤운동의 주동력이었던 철거민운동과 노점상운동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 과정에서 숨을 거둔 열사들의 희생과 빈민활동가들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다루고 싶었다. 나아가 이 운동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반성과 평가의 기회를 마련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아무튼 작은 출발이 이후에 더 큰 발전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가난이란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노랗게 부황 뜬 얼굴로 자기 몸 하나 지탱하지 못하는 기아상태에 내몰린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가난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절대적 빈곤상태에 놓인 가난이라는 말 대신 사회적 양극화라는 그럴 듯한 표현으로 가난을 이야기 한다. 눈으로 봤을 때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었다 하여도 여전히 자고 일어나면 가난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끓었다거나 가난과 빈곤을 둘러싼 엽기적인 사건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부산 서면의 롯데백화점 지하분수대 일대에서 박모씨(32,여)가 담요를 껴안고 배회하고 있다는 백화점 경비원의 신고가 있었다고 한다.

“안돼요, 우리 아기 데려가면 안돼요.”

저항하는 박 씨에게서 담요를 떼어놓고 안을 들여다본 경찰은 그야말로 황당했단다. 시커멓게 숨진 아이의 시신이었다. 20일이 족히 지난 것으로 보이는 부패된 아이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한다. 정신장애의 30대 노숙 여성이 숨진 아기를 안고 부산시내 한복판을 배회했던 것이다.4)

담요에 쌓여 아이가 울부짖으며 우리 곁을 지나쳤을 탠데... 우리 모두의 무관심이 더욱 두렵다. 이 모든 게 빈곤 때문이다. 하루 먹고 살기 바쁘니 남에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이런 일은 자고 일어나면 들려오는 소식이 되었다. 과장하지 말라고? 세상에 어두운 면만 보지 말라고?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모습을 보면서 이 사회가 진정 빈곤에 휘둘리지 않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라고 말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가 빈곤에서 탈출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세상에 맞서 하루하루 싸워 나가는 길, 그 길이 아마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아침마다 다짐한다.” 보건복지부 앞에서 개최된 집회에서 만난 ‘4 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소속의 한 장애인의 목소리는 오늘도 가슴을 저미게 한다. 1년 동안 연재한 빈민운동사를 마친다.


각주)---------------------------------

1)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일상평화센타 이권명희 소장
2) 노점관리대책에 대해서는 참세상 빈민운동사 9 를 참조
3) 때문에 이글은 초기 빈민운동으로 서술이 되다가 후반부에는 반 빈곤운동이라는 표현을 함께 쓰고 있다
4) "숨진 아기 품고 노숙… ‘안타까운 모정’" (한겨레 신문, 201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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