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책소개] 『도시에 대한 권리』(강현수, 책세상, 2010)

지난 2010년 12월 1일, 용산 참사의 현장인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이 해체되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재개발 과정에서 “주거권을 보장하라”며 점거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 5명과 이를 진압하던 경찰특공대원 1명이 숨진 참사가 일어난 지 22개월여 만이다. 법원은 주거권 시위 중 불법 행위를 한 농성자 대부분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사회적 약자라고 해도 불법 행위는 결코 보호받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작은 용산’이라 불리는 ‘두리반’의 실태는 어떠한가. 홍익대학교 앞에 위치한 칼국수 집 두리반에서는 지금도 재개발을 위한 강제 철거에 맞선 점거 투쟁과 문화 공연이 벌어지고 있다. 이 두 사건의 핵심 쟁점은 특정 도시 공간을 이용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이다. 그리고 용산 참사의 농성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의 판정이 보여주듯, 주거민의 생존권이나 영업권보다는 국가의 개발권이 우선시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도시 공간을 이용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도시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국가인가, 거주자인가? 그리고 ‘도시에 대한 권리’는 무엇이며, 어디까지 유효한가?

『도시에 대한 권리』는 도시의 거주민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도시에 대한 권리’의 개념과 그 발전 과정을 토대로 해외에서의 사례와 국내의 현실을 돌아보고 우리 도시의 미래를 모색하는 책이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국내 독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다. 프랑스의 진보적 지식인 앙리 르페브르가 68운동 당시 처음 주장한 ‘도시에 대한 권리’는 도시 거주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로, 국가 단위가 아니라 도시 단위에서 보장되며 시민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권리 개념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식수, 음식, 위생에 대한 권리는 물론이고 적절한 주거와 직업, 대중교통, 안전, 의료, 복지, 교육에 대한 권리가 포함되며, 주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도시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된다. 광장이나 거리 같은 도시의 공공 공간에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 그곳에서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펼칠 권리 또한 ‘도시에 대한 권리’에 속한다. 이 같은 ‘도시에 대한 권리’는 열띤 토론과 사회 운동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확장되며 진화하고 있다.

‘한국공간환경학회’에서 활동 중인 저자는 이 책에서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를 중심으로 그 이후 생겨난 다양한 도시권 이론들을 소개하고 브라질의 도시법, 일본의 혁신 자치체 등 주민들의 참여로 이뤄낸 실천 운동과 정책들을 설명하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 도시 권리 운동의 발전 가능성과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본다.

‘도시에 대한 권리’의 탄생 배경과 의의

현대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로 모이는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것이 아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망라해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삶의 터전이 바뀌었다는 의미를 떠나서, 사람들의 존재 방식, 사고방식, 행동 방식이 도시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도시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단위가 되었고, 도시가 어떤 곳이냐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는 이 같은 현실 인식을 전제로 제기되었다.

68운동이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에 르페브르는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책을 출간해 도시 거주자 누구나 도시가 제공하는 편의를 누릴 권리, 도시 정치와 행정에 참여할 권리, 자신들이 원하는 도시를 스스로 만들 권리를 주장했다. 르페브르의 주장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도시를 정치적 개념으로, 권리를 공간적 개념으로 바라보며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해체를 지향했던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이 자본주의적 도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르페브르의 뒤를 이어 많은 지식인들이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을 계승했고, 그 결과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은 점차 넓은 의미로 발전해 나갔다.

사실 ‘도시 공간’과 ‘일상성’에 대한 르페브르의 오랜 관심과 연구는 그가 필생의 과제로 삼아온 비판이론적 ‘사회기획’의 일부일 뿐, 91년간의 생애에 70권이 넘는 저술을 내놓은 이 정력적 이론가의 유일한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공간’과 ‘일상’의 범주를 비판이론에 도입하여 관심을 촉발시킨 사람이 바로 르페브르이고, 이 진부해 보이는 ‘산문적’ 범주(헤겔은 일상을 ‘세계의 산문’이라 불렀다)를 통해 비판이론의 관심 영역을 넓혀온 사람도 르페브르이다. 비판이론의 현대적 전개에서 르페브르가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도 거기에 있다. 그가 장장 30년이나 몸담고 있던 프랑스 공산당에서 1958년 탈당한 것은 당내 스탈린주의자들과 작별한 것이지 마르크시즘과 결별한 것이 아니었다(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당의 오른쪽 문으로 나가지 않고 왼쪽 문으로 나갔다”). 오히려 그 탈당 이후부터 그는 마르크시즘을 현대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일상의 삶’과 ‘공간’이라는 범주는 의런 의미에서 그가 마르크시즘에 보탠 새로운 어휘들이고 개념의 확장이며 이론의 새로운 전개에 해당한다.

르페브르는 삶의 공간을 문제삼음으로써 문화에 접근했다. 그는 ‘일상의 삶을 벗어나서는’ 오늘날의 문화를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현대 문화 현상은 욕구와 소비, 광고와 매체, 욕망과 무의식, 육체와 상품, 모방과 유행 등을 포함하는 일상적 삶의 지평 안에서 전개된다. 또 이 삶은 지배적으로 도시 공간의 것이다. 르페브르는 오랫동안 사소하고 진부한 것으로 간주되어온 일상 세계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환기시킴으로써 비판이론의 지도 속에 인식되지 않은 땅으로 방치되었던 광대한 한 영역을 개봉해 보인 셈이다.

브라질과 선진국에서의 ‘도시에 대한 권리’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은 특히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국가들은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지나치게 넓어진 무허가 정착지와 도시 빈곤층의 주거 문제 때문에 고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1997년, 마침내 오랜 사회 운동과 정치적 압력 끝에 콜롬비아를 필두로 많은 국가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을 명시한 법률이 통과되었다. 특히 브라질의 도시 포르투 알레그레는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또한 200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도시에 대한 권리 헌장이 발효됐다. 이 헌장은 도시 단위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대표적인 권리 헌장으로, 몬트리올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은 국적과 무관하게 몬트리올 시민 자격을 갖는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몬트리올의 사례는 이후 많은 선진국가의 도시 헌장에 영향을 미쳤다. 유럽 연합에서는 2000년 <도시에서의 인권 보호를 위한 유럽 헌장>을 제정했으며 현재 유럽의 350개 이상 도시들이 이를 비준한 상태다. 2010년 현재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은 많은 나라에 도입되어 새로운 도시 발전의 기반으로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서의 움직임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도시에 대한 권리’와 관련된 논의가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지만 인권 문제는 안타깝게도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랜 독재 권력에 의해 우리나라 국민의 기본권은 끊임없이 침해당해왔으나 민주화 이후 주요 국제 인권 협약에 가입하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설립하면서 점차 인권 탄압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1년의 광주 대단지 강제 이주 주민 시위, 2002년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지하철 선로 점거 시위, 2003년 이주 노동자 강제 추방 저지와 체류 합법화를 위한 명동 성당 농성 등 도시에 대한 권리와 관련된 주요 사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한 2003년 전라남도에서 시작된 학교 급식 조례 주민 발의 운동은 대표적인 도시에 대한 권리 운동 사례에 속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도시에 대한 권리 운동은 아직 미미하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도시를 바꿔라, 인생을 바꿔라!

‘도시에 대한 권리’의 확장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권리가 인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주거권뿐만 아니라 도시의 발전에 스스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이는 근대 국가의 선거권과도 많은 연관이 있다. 또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개인의 재산권 등이 침해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는 자본주의 사회관계 개혁의 새로운 대안이 되었다. 역으로 말하자면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가 완전히 실현되려면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과거 여성의 참정권 운동과 동성애자의 권리 운동은 저항적 성향을 띤 소수의 움직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권리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도시에 대한 권리가 ‘진짜 권리’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시의 미래와 시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프랑스 68운동 때 가장 유명했던 구호는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적 조건과 각 주체들의 역량을 고려한 상상력은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이 책은 그런 상상력에 날개를 다는 데 일조하고, 인권과 도시가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비록 200쪽에 불과한 소책자이지만 세세한 설명과 풍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완성도를 높인 책으로서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감히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목 차

들어가는 말

제1장 68년 파리와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

제2장 도시에 대한 권리의 실천 운동

제3장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의 유용성과 한계

제4장 우리나라 도시 권리 운동의 가능성과 과제

맺음말

태그

르페브르 , 도시공간 , 일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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