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일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이준규 씨. |
더불어 대학시절 교수에게 당했던 비상식적 폭행도 생각을 바꾸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그는 석 달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어쩌다 겨우 잠들면 교수를 죽이거나 자신이 죽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그만큼 분노가 컸고 그것은 다시 군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내가 당한 건 살인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폭행이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끔찍한데 내가 군인이 돼서 누군가를 죽이게 된다면, 죽임당한 그와 그 주변 사람들의 분노에 나는 용서를 구할 수조차 없을 것 같더라고요. 총을 드는 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죠.”
예비교사인 그에게 ‘어린 친구들’의 한마디가 확신을 주기도 했다. “얼마 전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할 때 아이들에게 ‘어떤 폭력도 있어서는 안 된다, 폭력은 누군가를 상처받게 한다’고 말하니까 한 아이가 ‘그럼 군대는요?’ 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군대도 마찬가지야’라고 말해줬어요. 교생실습 갔을 때는 아이들이 군대 다녀왔냐고 물어보기에 아니라고, 가기 싫다고 말했더니 ‘나도 가기 싫다’고 하대요. 누구나 군대에 가기 싫어하고 평화를 원한다는 확신이 보태졌지요.”
그는 그렇게 알게 된 ‘약함의 소중함’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학교에서도 살기 위해 강해야 하고 남보다 앞서야 한다고 가르치잖아요.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교사가 그런 아이들을 예뻐하니까 아이들도 그걸 알아요. 그래서 약해보이거나 우는 아이가 있으면 놀리고 잘못한 것처럼 여기죠.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위로해 주는 건 강하거나 잘난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아파본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얘기해줬어요. ‘약한 건 나쁜 게 아니다. 우는 게 잘못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잘 울어야 다른 사람이 아픈 걸 더 잘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아프면 아파하고, 울고 싶은 만큼 울어도 된다. 그리고 너희가 아픈 사람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내가 그런 걸 알게 된 다음에 아이들을 만나게 돼서 이런 이야기도 해줄 수 있었어요. 참 다행이죠.”
올해로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이 10년을 맞았지만 이 순간에도 약 900여명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있다. 이 씨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함에 따라 실형을 받게 될 경우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이후 5년 동안 교사로 임용될 수 없다. 앞서 헌법재판소의 대체복무제도 개선 권고, 법안 상정,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유엔의 반복된 권고,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허용발표 등이 있었지만 병역거부자를 범법자로 만드는 관련법 개정과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이에 전쟁없는세상과 국제엠네스티 대학생네트워크 등은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앞둔 이날 이준규를 시작으로 13일까지 2주 동안 병역거부권 인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일인시위를 진행한다. 일인시위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한 향토예비군설치법 15조 8항, 병역법 88조 1항 1호의 위헌 여부 결정을 앞두고 있는 헌법재판소 앞, 대체복무제 법안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 앞, 그리고 국방부 앞 세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며, 홍세화, 한홍구 교수 등도 참여한다.
그 시작을 알린 이준규 씨는 “평화를 위해 나처럼 지금 당장 총을 들지 않아야 한다는 사람이 있고, 결국은 총을 놔야 하지만 일단은 들어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 둘 다 똑같은 평화를 원하는 건데 누군가는 처벌받는 게 온당하지 않다”며 “대체복무제가 두 그룹의 화해의 시작이자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길을 지나던 한 아주머니는 그가 들고 섰는 피켓을 가리키며 ‘이게 뭐야?’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제가 병역을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군대 안 가겠다는 거야?” 날 세운 물음에 설명할 말을 찾던 그가 입을 뗐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평화를 위해서 군대나 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두 명이 싸울 때,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 주먹을 쥐지 않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건 이론이지!” 아주머니는 그렇게 외치고는 곧장 자리를 떠버렸다.
그는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이 시점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생각들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자신의 역할임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앞서 여러 병역거부자들이 죽이지 않아도 살 방법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또 그런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준 것처럼 나도 남에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병역거부를 함으로써 “나처럼 이렇게 특별한 시민사회단체 경험이 없는 사람도 단지 죽이고 싶지 않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어찌할 바 모르다가 상처 입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씨의 병역거부 소견서 전문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http://www.withoutwar.org)에 공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