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의 역사는 우리나라 도시빈민의 역사

[낡은책] 성남지역실태와 노동운동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민중사, 1986.6)

‘분당’을 낀 성남의 유래

지금 성남은 남한 최대의 부촌(富村) ‘분당’을 낀 서울의 베드타운이지만 이 책 <성남지역실태와 노동운동>이 나올 당시만해도 수도권 주요 공단지역 중 하나였다. 동시에 철거민들의 가슴 저린 사연을 간직한 도시다. 1986년 6월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하 기사연)은 이 책을 내면서 원장 손학규(지금 민주당 대표)의 서문을 이렇게 실었다.

“성남시는 1971년 광주 대단지 사건으로 드러났듯이 ‘서울의 인구 분산정책’으로 생긴 위성도시다. 성남 주민 상당수가 경제활동을 여전히 서울에 의존하고 수도권 재배치 정책에 힘입어 성남시는 제조업 노동자만도 5만 이상인 전국 9위의 공업도시가 됐다.

기사연은 85년 공단지역 실태조사 결과를 이 책으로 묶었다. 조사결과를 경기도 광주와 영등포, 구로지역은 <지역운동과 지역실태> 총서로, 부산지역은 <부산지역 실태와 노동운동> 총서로 출판했다. 성남 주민교회의 이해학 목사님께 감사드린다.”

손학규 원장의 서문 뒤에 이어진 이해학 목사의 발문은 이 책을 쓴 주체를 김해성 전도사(현재 목사)로 밝힌다. “자료를 위해 헌신한 김해성 전도사에게 찬사를 보낸다.”

김 전도사가 성남지역 노동실태를 일일이 조사한 결과를 묶은 게 이 책이다. 김 전도사는 요즘은 이주민 사업을 한다. 인종차별적인 ‘살색’ 퇴치운동을 벌였던 인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금 김 전도사는 고용허가제를 둘러싸고 지지 입장이라, 노동허가제를 주창하는 분들로부터 비판받기도 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 직전 성남지역, 나아가 수도권 공단 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알기 위해 동원했던 조사방식을 참고할만하다. 예로 포커스그룹인터뷰(FGI)를 일반 현장노동자와 선진노동자, 활동가로 세분해 별도로 조사하는가 하면,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부문에 걸친 실태조사의 폭에 놀란다. 이 책 뒤에 붙은 30여쪽에 이르는 실태조사서만 봐도 당시 조사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아래는 책 내용을 요약해서 싣는다.

성남의 역사는 우리나라 도시빈민사

71년 8월 10일 ‘광주 대단지 민중봉기’ 사건 이후 사람들이 성남시에 관심이 높아졌다. 성남은 아직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 빈민 실태조사, 영세하청업체 실태조사, 일일 막노동자 문제 등의 조사가 시급하다.

성남의 역사는 우리나라 도시 빈민의 역사다. 68년까지 원주민 인구는 2600명이었다. 농업이 90% 이상이었다. 당시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소속이었다. 73년 성남시가 된다. 66년 서울인구의 1/3가량이 무허가 건물에 살았다. 철거민 50만을 수용 정착시킬 대규모 택지개발이 필요해 경기 광주 중부면 성남출장소의 10평방킬로미터를 선정했다.

69년 5월 이주 철거민 48세대 154명이 트럭에 실려 왔다. 무모한 ‘선입주 후건설’ 이주계획을 단행했다. 임시로 천막을 배정했다. 70년 봄엔 전염병까지 돌아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광주 단지 4박5일>, 월간중앙, 1971.10)

담당 공무원과 결탁해 부정 추첨으로 좋은 분양지를 차지하거나 부동산업자의 농간이 늘었다. 철거민 중 1/3이 택지분양증을 전매하고 서울로 되돌아갔다.

70년 7월 ‘전매금지 조치’를 발표하자 엄청난 파문이 일어 광주 대단지 사건(일명 8.10 사태)이 일어났다. 8월10일 오전 10시 비 속에서 3만여 주민이 모여 시장 면담을 기다렸으나 이유없이 지연되자 주민들은 마침내 폭발해 광주 대단지 개발사업소 난임을 시작으로 폭력으로 번졌다. ‘100원에 매수한 땅 만원에 폭리말라’는 구호가 나왔다. 소방차와 기동경찰대를 동원했다. 11월12일 주동자 21명을 구속하고 일단락했다. 73년 성남시가 돼 현재는 인구 40만을 넘어 인구 9위의 도시가 됐다.

성남공단의 분포 구조와 인구 특성

상대원 1,3동은 2, 3공단이 있다. 전자 섬유업종의 여성 노동자가 많다. 상대원 2동은 중하층 영세민 주거지다. 신흥동은 시청 앞이다. 신흥2동은 2공단으로 고용원수 1000명 이상 기업체인 대영상사, 삼영전자 등 12개가 있다. 중동은 공업단지에 인접해 여초 현상이 두드러진다. 영세업종이 발달하고 유곽도 있다. 태평동은 인구가 가장 많고 시청과 중앙시장이 있어 신시가지다. 단대동은 주택 밀집지로 영세한 가내업이 많다. 은행동과 창곡동은 빈민지역으로 속칭 ‘달나라’로 불린다.

85년 인구 44만 7839명의 급조된 인공도시였다. 성남은 67-68년 2만5700명으로 다소 인구가 줄었다. 81년 성남인구는 13만9,367명이다. 이 가운데 원주민은 4,770명에 불과했고 철거민이 41,596명, 일반 전매 입주자가 68,623명, 세입주가 24,378명이었다.

성남에서 노동자계급은 약 20%를 점하는 8만 명이다. 이 가운데 공단 노동자는 3만 명이고 공단 외 영세제조업 노동자가 5만 명이다. 공단 노동자수는 구로, 인천에 이어 3번째다.

주택 보급률은 49.7%에 불과해 은행동, 모란동, 창곡동 등에 불량주택 소유주까지 포함하면 60~65%가 도시빈민이다. 성남시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집결지다. 지역의 자립적 경제구조 부재로, 서울과 종속관계 속에서 상당량의 부가 서울로 유출되는 것과 지역내 도시 비공식 부문 인구, 공단과 공단 외 지역 제조업부문의 영세성에서 말미암았다.

지역 주민의 수준 높은 정치의식 고양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정치의식은 구체적 경제문제와 쉽게 결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뜻한다.

80년대 성남의 산업구조와 특성

83년 현재 1,2,3공단에 176개 업체에 32,435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공업단지로 급성장했다. 성남공단 내 노동자는 섬유가 5,513명, 기계금속이 4,171명, 고무피혁이 5,720명 등이었다.

제2공단은 성남공업의 핵이라고 볼 정도로 전체공단에서 가장 큰 규모다. 2공단의 주요 업종은 남성 중심의 기계금속업이 가장 많아 2공단 내에서 24.1%를 차지했다.

성남의 섬유완구업은 국제간 하청구조가 국내 하청구조를 통해 연쇄적으로 하위업체로 전달되면서 영세 소제조업체까지 연결됨을 뜻한다. 외국자본 → 국내 무역업자 → 중소기업(완제품 하청) → 영세기업(부분 하청)이란 하청구조로 국내의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한다.

노동집약적이고 경공업 중심의 소비재를 만드는 중소업체가 대부분이다. 여성 노동자가 매우 많다. 작업환경과 임금, 노동시간 등이 기업주의 임의대로 이루어져 많는 문제를 안고 있다.

성남의 고용구조와 노동조건

경제활동 참가율은 전국 평균보다(56%) 낮은 50%에 지나지 않는다. 제조업에 총 취업자의 81%인 75,360명이 취업해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이다. 취업률도 저조해 고용구조가 매우 불안정하다.

경기도 실업률이 4%인데 비해 성남은 3배에 달하는 12.4%로 심각하다. 85년도 최저임금선인 10만원도 못받는 노동자 수가 전체의 44%(89명)에 달했다. 남녀 임금격차도 매우 심했다. 노동강도는 높고 작업환경 등이 열악해 산재가 빈번하다. 장시간 노동은 저임금과 실업자 양산의 주원인이다.

회수 설문지 분석 : 출신지, 임금, 노조 가입의사, 주택 등

성남공단 내외에 248매를 수거해 비생산직 노동자를 빼고 205매(남자 73명, 여자 132명)를 분석했다. 조사기간은 85년 3~6월까지였다. 20-21세가 28명으로 가장 많았다. 중졸 이하가 77.5%로 가장 많았고 고교 이상이 22.5%였다. 출신지는 전남이 20%로 최고였다. 전남북을 합치면 30%가 전라도 출신 노동자였다.

임금은 8~11만원이 전체의 40%였다. 평균은 11만3,100원이었다. 여자는 10만6,200원, 남자는 12만5,300원으로 2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 52%의 노동자가 근속 1년 이하라서 높은 이직율을 보였다. 이직 원인은 더 나은 보수를 받기 위해서다.

주택은 기숙사가 22%, 전세 30%, 월세 15%, 자취 8%로 자기 집이 아닌 사람이 75%였다. 현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은 18%에 불과하고 불만족이 26%였다. “회사는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동등하게 대우하느냐”는 직물에 아니다가 60%, 그렇다가 36%였다. 임금이 만족하게 인상됐다는 사람은 12%였고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58%였다.

회사내 노조가 없는 경우 ‘새로 생기면 가입하겠느냐’는 질문에 3%만 가입치 않겠다고 했다. 대다수는 가입하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익이나 권리주장을 위해 노조가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여성이 86%로, 남성 58%보다 더 높은 가입의사를 보였다. 노조가 있는 경우 조합장 이름을 아느냐는 질문에 69%가 모른다고 했다. 성남시의 노동자 중 76%가 지방 출신이고 그 중 30%가 전라도 출신으로 가장 많았다. 중졸 이하가 79%였다.

3분류한 34명의 노동자 의식실태 면접조사

생산직 노동자를 일반노동자 19명(남8, 여11), 의식화된 노동자 10명(남7, 여3), 현장활동가 5명(남3, 여2) 등 모두 34명을 면접조사했다. 조사기간은 1985년 9월 27일부터 10월 20일까지 23일간 조사했다.



임금인상을 회사의 시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 노동자 가운데 남자는 차등임금 등 개인주의와 기회주의 속성을 보였다. 여자는 오히려 집단 실력행사를 생각하는 응답이 많았다.

선진적 민주노조의 임금 인상률이 높은 이유를 대부분의 일반 노동자는 인식하지 못했다. 단순히 열심히 싸웠기 때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투쟁 사례를 소개하고 의견을 묻는 방식

성남 2공단의 협진화섬은 유급인 연차수당과 17세 연소자 수당을 노동부 성남지청에 고발한 끝에 받았다. 노동자들은 협진화섬 노조 투쟁을 대체로 알고 있었다. 이런 사례에 권리의식이 약한 패배주의가 많았다. 노동부와 노총, 노동조합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상당수였다.

성남 2공단 광명전기 노동자 150명은 임금인상을 내걸고 작업거부와 농성 끝에 이를 해결하고 노조를 결성했다. 협진화섬노조는 85년 3월 26일 미지급 추석 보너스 지급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해 이틀 만에 받아냈다. 성남 2공단 라이프(주)는 85년 5월말 작년도 미지급 구정 상여금 50%를 받으려 횃불 시위해 해결했다. 역시 성남 2공단 (주)신생은 노동부와 싸움 끝에 미지급 수당을 받냈다. 협진화섬, 광성화학, 광명전기 등의 일상투쟁은 지속적인 출근 싸움, 지역내 선전물 배포로 지역 문제화됐다.

대우어패럴에 동조한 구로연대파업의 인지도를 파악해 봤다. 일반 노동자와 의식화된 노동자들은 언론으로 사건을 알았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반 노동자는 “정치 투쟁화되어서는 안된다”고 부정했다. 대학생과 연대투쟁도 일반 노동자는 부정적이었다.

이번 조사는 설계 때부터 문제가 있었다. 표본(대상자)을 인맥으로 선정했고 일반 노동자의 실태와 의식구조의 파악에 대표성이나 신뢰도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협진화섬 노조결성과 어용화 과정 (84년 12월 ~ 85년 8월)

지역 노동운동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협진화섬 노조는 84년 12월 15일 결성돼 미지급 추석보너스, 임금지불 정상화 등 일상투쟁으로 단결력을 보였다. 그러나 전체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학출과 노출을 분리시키고 노조원과 비노조원을 이간해 협진도 학출을 매도하고 노조 탈퇴를 강요하고 무더기 해고해 220명 사원에서 120명으로 줄었다. 노조는 회사의 매수 협박 회유에 어용화됐다. 어용화 이후에도 노민추 활동을 벌였다.

협진 어용화 이후 상일가구, 조광피혁, 광성화학, 광명전기도 두 달 만에 노조 결성 붐이 일어났다. 그러나 대량 해고와 탄압으로 간부 중심의 노조관리로 전락해 버렸다. 학출의 대량 해고와 노조갈등, 어용화, 노조 파괴 공작이 이어졌다.

8.8 공단시위 이후 (85년 8월 ~ )

광성화학은 85년 8월 8일 회사의 협박과 회유에 위원장이 사직하고 쟁의부장은 해고됐다. 해고자 3명은 유인물을 돌리며 격하게 출근투쟁했다. 경찰은 조합원 전태희를 사문서 도용으로 구속시키고 각개격파해 들어왔다. 회사는 결국 노조해산 총회를 열어 노조를 해산했다.

광명전기는 노조 간부를 폭행했다. 노조 간부만의 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는 노조 상층의 의식이나 지도력이 아직 성숙하지 못해 조합 운영이 일반 조합원에게지지 받지 못했다.
85년 8월 8일 성남 노동자 생존권 확보 투쟁위원회(생투위)를 구성했다.

설문지 주요 구성항목

회사명, 대표자명, 공장 주소, 원청/하청/관계사 이름, 회사 연혁, 회사지분 소유구조, 전년도 순익과 대차대조표, 공장 규모, 직원 수(남/여), 관리자 수, 주 거래은행, 주 생산품목, 생산품 판로

경영관리 편제를 그려보시오. 중간관리자로 승진하는 경로, 작업 공정을 그려 보시오. 주요 직원 모집 방법, 이직율, 임금 명세서, 공단(공장 주변) 지도를 그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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