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1)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49) 쌍용자동차 파업 2주년을 기념하며

“카메라 보고 웃으세요. 아버님, 웃으세요.”
“위스키~”

5월 7일, 레몬트리공작단에서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 가족들에게 가족사진을 촬영해주기로 한 날이다. 흰 티셔츠가 사진 잘 나온다는 말에 다들 옷도 맞춰 입고 나름 신경도 쓰고 왔건만, 어색한 표정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조합원들은 잘 웃다가도 카메라 셔터만 누를라치면 표정이 굳어진다. 사진 찍는 조합원들의 무뚝뚝한 표정을 보다 못한 이정아씨가 한마디 한다.

“오라버니! 웃으세요! 남자들은 어색해서 웃지를 못하니 저 어색함을 어떡해야 하는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고동민 조합원, 이정아씨 부부와 아이들

이번 한주는 계속 쌍용차의 기억들과 함께 지낸 한주였어요. 전 집에만 있으니까 애들 뒤치다꺼리 하면서 하루가 가는 거죠. 쌍용차의 기억들하고 부딪힐 일은 없거든요. 애들 이렇게 하다가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주는 일요일 날 구치소에 있는 지부장님한테 편지를 썼어요. 쓰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했죠.

월요일은 온양에 사는 시민 분이신데, 쌍용차 파업할 때 관심이 많으셔서 여러 번 오신 분이에요. 식사를 사주고 싶다고 하셔서 점심때 평택까지 가은이 업고 나가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다음날은 <오마이뉴스> 기자가 인터뷰한다고 방문을 해서 그러면서 또 기억을 꺼냈고요. 수요일엔 평택역에서 집회하는데, 애들을 데리고 나갔죠. 그러면서 예전 생각들, 사는 모습들 보고 계속 그랬던 것 같애요. 목요일 날은 어린이날이라고 쌍용차 가족들 만나서 놀면서 그간 안보고 지낸 언니를 만나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어제 같은 경우는 일 년 넘게 연락을 못했던 부산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친구가 “어떻게 지내냐?” 하다가 이렇게 이렇게 지내고,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얘기들을 쭉 하는데, 친구가 너무 가슴 아파 하더라고요. 친구하고 전화 통화하면서 많은 얘기들을 했어요. 이번 일주일은 기억이 그때 쌍용자동차 파업 때 일들, 이후 내가 살아왔던 일들을 계속 기억하며 지냈던 것 같애요.


“그 시간이 정아 씨한테 어떻든가요?”

예전에는 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눈물이 나왔는데, 놀랍게도 이날은 제가 계속 담담하게 얘기를 잘 했던 것 같애요. 기자하고 이런저런 얘기할 때도 “이런 일이 있었고” 이렇게 담담하게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친구하고 통화할 때도 친구는 너무 가슴아파하는데, “난 씩씩하게 잘 있다. 심리치료 받고 엄청 건강하게 잘 지내니까 너무 걱정하지마라” 얘기했어요. 나 스스로도 기억들에서 편안해졌다는, 너무 힘들어하지 않고 예전 생각을 꺼내는데 편해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랬군요. 지부장님한테 편지는 갑자기...”

그러다가 일요일 날 아침에 애들이 티브이 <동물농장>을 보고 있었는데, 거기서 음악이 자우림의 옛날 노랜데,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 한 구절이 흘러나오는데, 그 노래가 너무 좋은 거예요. 잠깐 들었는데, 기억해보니까 그 노래를 예전에 시청 앞에 올 때, 지영이가 불렀던 기억이 나는 거예요. 지영이가 흥얼거렸던 노래였거든요. 그게 너무 좋아서 ‘그게 무슨 노래지?’ 이렇게 하다가 지영이한테 아침부터 전화를 해서 “야, 이게 무슨 노래냐?”고, “누구 노래냐?”고 물어봤어요.

“잘 들어봐”

전화기에 대고 아는 구절만 불렀어요. 그런 노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가사가 계속 맴돌아요. 가사가 한 줄만 기억이 났는데. “눈을 감으면 지난날의 그리운 기억” 그 가사가 하루 종일 맴도는 거예요.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랑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와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그리고 그날 저녁에 제가 계속 그 부분을 부르는데, 애들도 외워서 같이 불렀어요. 남편은 노동절 집회 때문에 서울 간다고 없었고. 오랜 만에 애들도 집에서 편안하게 쉬고, 티브이 보다가 뒹굴다가 노래 부르고 했죠. 근데 그날 일요일이 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박혜경 씨가 불렀던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 그 노래를 애들하고 같이 불렀어요.


정아 씨 울다...


근데 너무 마음도 편안해지고, 그날 하루가 너무 좋더라구요. 애들하고 오랜만에 평온한 느낌을 가진다, 평온한 하루. 이런 느낌이었어요. 애들하고 같이 거실에 앉아서 눈 마주치고. 저희가 일층이니까 같이 공도 차고 그날 너무너무 오랜만에 행복한 느낌을 제가 받았어요. 엄마랑 같이 이렇게 노래 부르는 걸 애들도 너무 편안해하고. 그러고 애들이 잠들고 뒷정리 좀 해놓고 났는데, 잠이 안 오더라고요. 저 혼자 또 그 노래를 흥얼흥얼 거리다가 가슴이 갑자기 막 답답한 거예요. 막 무슨 얘기가 하고 싶단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날 일기를 썼어요. 너무 오랜만에 공책 하나를 꺼내서 그날 일기를 막 쓰고. 그래도 뭔가 자꾸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지부장님한테 편지를 썼어요.

갑자기 두 장을 앞뒤로 빽빽하게 해서 쭉 써 내려갔는데, 하나도 글이 막히지가 않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심리치료 받고 있는 얘기를 썼어요. “예전에는 내 속을 들여다보기 과거를 기억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무서워서, 너무 억울해서 돌아보지 않으려고 그랬었다. 저 스스로 닫고 지냈던 것 같다. 근데 지금은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분노가 일면 화도 내고, 기억나는 모든 것들을 그냥 담아보려 한다. 그러다가 너무 눈물이 솟구치면 바닥에 주저앉아서 소리 내어서 울겠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살겠다.” 이런 얘기들을 했어요. 지부장님 건강하시라고, 또 편지하겠다고 했죠. 계속 쌍용차 기억과 함께 한 일주일이었지만,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주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상담이 시작되고, 이정아씨가 한 주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랬군요. 네. 지부장님이 참 좋았겠네요.”

정혜신 박사가 언제나처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한 마디를 건넨다.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 가족들의 심리치료 6주차. 평택시청 마당에 목련이 흐드러지게 필 때 시작했던 심리치료는 벌써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봄날은 간다>의 한 구절이 흘러나오던 <동물농장>은 10년 동안 자신을 버리고 간 주인을 기다리며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개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일하랴, 집안일 하랴, 아이들과 남편 챙기랴, 가대위 활동하랴 ‘초특급 슈퍼 울트라 맘’으로 사는 자신들의 모습이 ‘구겨진 빨래감’ 같다고 했던 조합원의 아내들은 “버스 지나치듯 감정을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했다. 여기 있는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너무 짠하고, 소중한 언니이자 친구들이라고 했다.


목련이 지는가싶더니 금방 분홍빛 벚꽃이 만개했다. 그 벚꽃 아래를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과 가족들은 명진스님, 가수 박혜경 씨와 함께 걸었다. 그 날, 방송인 김제동 씨가 와서 행복한 웃음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 벚꽃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나는 시청 마당 곳곳을 메우고 있는 연분홍빛 진분홍빛 철쭉꽃 본다. 그 빛깔이 무척 직설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철쭉꽃잎들마저 질 무렵이면 쌍용자동차 파업 2주년이 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3월에도 4월에도 5월에도 문득문득 그 사실을 떠올리며 그 날이 오면 특별한 기억 의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한번쯤 지는 꽃잎을 보며 눈을 감고 그날의 떨림과 희망과 아픔을 느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흘 뒤, 희망퇴직을 하고 분사업체에서 근무하던 조합원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이틀 뒤,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그 조합원을 떠나보내는 노제를 지냈다. 그리고 지는 꽃잎을 애도할 틈도 없이, 2009년 5월 22일 그 날의 떨림과 희망과 아픔을 느낄 틈도 없이 봄날은 가버렸다. 5월 21일 오후에 조합원과 가족들을 보면서 ‘내일이구나...’ 생각했던 것이 전부였나 보다.

정혜신 박사는 정신의학에 ‘기념일 우울증’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특별한 날이 되면 그 증상이 악화되거나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고 했다. ‘전쟁 같은 경험’을 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한’ 쌍용차 조합원과 가족들은 괜찮다가도 해마다 5월이 되면 그 끔찍한 기억이 다시 올라올 거라 했다.

“여러분은 앞으로도 계속 힘들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았습니다.”

봄날은 이렇게 간다.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와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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