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 이르는 또 하나의 디딤돌, 스스로 읽어라!

[신간안내]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강의>(강신준 옮김, 창비, 2011)

맑스주의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자본』 첫 장을 열면서 마지막 장을 닫을 때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경험했을 것이다. 그만큼 『자본』은 자본주의 분석에 대한 심오함과 통찰력 그리고 명쾌함을 통해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반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맑스경제학의 대가이자 세계적 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가 40년간 진행한 『자본』 강독이 한권의 책으로 집대성되었다는 희소식이다. 하비는 197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40여 년간 다양한 부류의 일반인들과 함께 『자본』을 강독해왔고 2007년 봄 학기에는 『자본』 제1권 강의를 녹취해 자신의 사이트(www.davidharvey.org)에서 공개했다.

맑스 자신의 방식대로 『자본』을 읽는다

“우리에게 밀어닥친 역사적‧지적 환경이 전대미문의 문제나 위험을 제기한다면 우리가 『자본』을 읽는 방식도 새롭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35쪽).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세계경제를 뒤흔들면서 그 원인과 해법을 찾고자 전세계적으로 『자본』 읽기 열풍이 불었을 때 하비가 던진 말이다. 하비가 언급한 전대미문의 문제나 위험은 비정규 노동자의 일상화와 불안정노동의 확대를 말한다. 『자본』 제8편 ‘기계와 대공업’에서 맑스는 이를 “각 노동제도간의 경쟁이 빚어내는 끔찍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즉 자본가들이 이윤을 얻기 위해 공장을 대규모화했다가 기술변화나 노동조합 반발 등을 이유로 영세사업장‧가내노동‧외주‧하청 등의 형태를 다양하게 도입해 공장제와 경쟁시킨다는 뜻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자본』의 통찰이 여전히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하비는 곳곳에서, 『자본』을 맑스 자신의 방식대로 읽자고 당부한다. 그런데 생각처럼 간단치 않다. 맑스에 대해 안다고 하는 이는 많으나 정작 『자본』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자본』 읽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맑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때문이다. 하비는 맑스가 “자본주의의 변덕스러울 정도의 역동성”을 너무나 잘 이해한 학자였음에도 여전히 그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구조주의적 사상가로 묘사하는 기존의 평판”이 득세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한국의 경우 1980~90년대에 맑스가 운동가나 사회주의자로서의 이미지로만 소비된 탓에 정작 그의 이론의 정수나 본질이 폄훼되거나 곡해된 바 크다.

이에 하비는 충고하기를 “무엇보다도 먼저 맑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가능한 한 모두 옆으로 밀쳐둘 것을 부탁드리고자 한다”. 하비의 당부를 따라 『자본』의 문장을 주의 깊게 하나하나 되짚으며 읽다보면, 어느새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와 방식에 대해 힌트를 제공해주는 엄청난 양의 자료들”과 마주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자본』 제1권이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자본』은 본래 총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상품·화폐·잉여가치(Ⅰ-1, Ⅰ-2), 이윤율·공황(Ⅱ, Ⅲ-1, Ⅲ-2) 등을 다루고 있다. 하비는 이 책에서 제1권(Ⅰ-1, Ⅰ-2)에 국한해 이야기를 펼쳐간다.

제1편에서는 사용가치, 교환가치, 추상적 인간노동, 가치 등 수많은 개념어가 등장한다. 그중 사용가치, 교환가치를 해설하기 위해 하비는 주택을 예로 든다. 즉 주택은 거주하기 위한 용도가 있고(사용가치), 그와 동시에 장기저축 형성수단 등의 용도가 있기도 하다(교환가치). 하비는 맑스가 『자본』 첫 페이지를 ‘자본’이나 ‘화폐’가 아니라 상품으로 시작한 탓에 일반 독자들이 수많은 개념어에 질려하지만, 이처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면 이 개념어들을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화폐’를 다루는 제2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척도로서의 화폐와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저자는 금을 예로 든다. 금은 그 불변성과 고유성으로 인해 가치척도로서 인정받는다. 다만 극히 소량 유통이 불편해 유통수단으로서는 적합지 않다. 화폐가 지니는 가치척도 대 유통수단으로서의 이러한 긴장관계는 새로운 화폐의 탄생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야흐로 자본이 등장할 차례다.

자본은 교환의 매개(화폐)인 동시에 사고팔 수 있는 물건(상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고파는 행위에서 남는 수익 즉 잉여가치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노동자 개개인의 노동력이다. 제3편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노동력은 다른 어떤 상품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상품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상품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노동은 도대체 어떤 특성이 있기에, 잉여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하비는 제4편에서 꿀벌과 건축가의 예를 들어 인간의 고유한 노동을 해설한다. 즉 인간은 아무리 서툴더라도 꿀벌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는데, 바로 “그것(집)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짓는다”는 것이다. 특히 하비가 기존의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맑스의 명구에 대해 깊이 따지고 들면서 노동과정에 개입하는 관념과 자의성을 해설하는 부분(212~218쪽)은 그 주장이 꽤 흥미롭고 논쟁적이다.

제5편에서는 주로 법정 노동시간이 정해진 연원을 되짚어본다. 하비는 4시간 노동일을 넌지시 제안하면서 이를 자본가들이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면의 뜻을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이 문제제기는 과연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사용하는 것인가, 생산수단이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즉 공장에서 노동자가 기계를 이용해 생산하는 광경은 말 그대로 표면적 현상일 뿐이다. 자본가들이 자신의 기계(생산수단)의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오로지 ‘살아있는 노동자’라는 사실!

제6편~제7편은 자본주의가 어쩌다 산업혁명이라는 동료를 만났는지, 즉 자본주의가 자신의 유통법칙과 잘 맞는 기술적 토대를 과연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지를 6가지 주요 키워드를 통해 설명한다. 기술, 사회적 관계, 자연과의 관계, 생산양식, 일상생활의 재생산, 세상에 대한 정신적 개념 등이다. 하비가 한국의 한 신도시 디자인 심사위원회에 참가해 건축가들과 나눈 토론(355~356쪽)은 6가지 키워드들이 현대의 기술과 인간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데에도 유용하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흥미로운 일화이다.

제8편에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비판을 통해 미래의 대안적 생산양식을 엿볼 수 있다. 제8편의 한 구절처럼 “노동수단(기계)은 노동자들을 때려죽인다”. 하지만 저자는 맑스가 당대의 과학과 기술에서 어떤 진보성을 발견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그런 진보가 어떻게 가능할지, 또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생산양식에 적합한 기술은 과연 무엇일지를 파고든다.

제9편~제11편은, ‘성장만이 살 길이다’라는 신자유주의의 신화에 대한 현대인의 반응을 다룬다. 우리는 자본이 끊임없이 쌓이고 유통되어야 한다는 명제 아래 잉여가치를 얻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고 그 결과에 노심초사한다. 곧 자본축적 모델에 대한 열정은 자본주의 태동기 나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에나 변함없다.

맑스가 구축하여 분석하고 있는 고도로 단순화된 자본축적 모델은 놀라울 정도로 최근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요컨대 우리는 지난 30년간 『자본』 제1권에서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살아온 것이다.(444쪽)

여기 『자본』이 있다. 이제 마음껏 즐겨라!

2008년 세계적 공황을 겪었음에도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건재한 듯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해법이나 분석틀로 여러가지 경제학 이론이 거론되고 있음에도 맑스 『자본』의 메시지를 대안으로 진지하게 검토하는 분위기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옮긴이 강신준 선생이 던지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마이클 쌘델의 정의론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이미 시효가 끝난 경제학인 케인스주의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하준의 책이 베스트쎌러의 반열에 오른 것에 반해 정작 맑스의 『자본』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은 그다지 높아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 무엇보다도 이 책이 아직 우리나라 대중과 거리를 좁히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 「역자 후기」에서(6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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