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무서운 현실

[새책] “9·11의 희생양”(마이클 웰치, 갈무리, 2011)을 읽고

나의 직업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늘 새롭고 창의적인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교육관이다. 이 교육관에 따라 산지도 어느덧, 4년이 지났다. 아이들에게 늘 새롭고 창의적인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매일 공부하는 교사,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적합한 곳은 바로 대형서점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서 서점에 들르는 편이다. 그 날도, 나는 수업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서점을 찾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9.11의 희생양>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몇 년 전, 비말라 필라리(Vimala Pillari) 박사의 “가족희생양이 된 자녀의 심리와 상담”(임춘희, 김향은 옮김, 학지사, 2008)을 읽었기 때문일까? 이 책을 읽을 당시, 아이들이 가족 체제 혹은 이데올로기 아래서 희생될 수 있는 가여운 존재라는 점을 알게 되어서였을까? 나는 <9.11의 희생양>이라는 책 제목을 구성하는 “9.11”과 “희생양,” 이 두 단어 가운데, 후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이 책을 처음 발견하게 되었을 때, 9.11은 내게 어떠한 관심도 끌지 못했던 주제였다. 나는 오직 “희생양”이라는 말을 보고 <9.11의 희생양>의 표지를 넘겨보았던 것 같다.

이 책은 내가 모르고 있던 9.11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담고 있었다. 또한 이 책은 독자에게 어렵거나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역주나 용어해설의 지면을 통하여, 친절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9.11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잊힌 사건으로 남아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나도 물론 2001년에 발생한 9.11 사건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왔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웰치(Michael Welch)가 쓴 한국어판 서문을 보고서야, 나는 2011년 9월 11일이 9.11 사건의 10주기임을 알게 되었다. 거의 10년이 지난 사건을 다룬 책이 신작 도서 판매대에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 책이 분명, 내가 알고 있지 못한 중요한 사실들을 알려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았다. 이 책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에서 9.11의 희생양을 다루고 있었다. 이는 흥미로웠다. <9.11의 희생양>은 지형적으로나 정치경제적으로나 거대한 국가인 미국에서 발생한 9.11 사건으로 인해 미국 사회에 등장하게 된 희생양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스런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책이 말하는 9.11의 희생양은 사건 발생 당시, 쌍둥이 빌딩 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미국인들이나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화염 속으로 뛰어든 소방관들이 아니었다. 9.11 사건의 발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중동, 아랍계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려, 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이 책의 저자 웰치는 부시 행정부의 이 같은 행위를 증오범죄, 나아가 국가범죄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에서 발생한 이러한 증오, 국가범죄가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게 조금 더 친밀한, 즉 내가 살고 있고 일하고 있는 사회적 구조 내에서 등장했던 희생양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2년 전 내가 근무하고 있던 어린이집이 평가인증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교사는 평가인증 통과를 위해 필요한 문서들과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5개월 동안 야근은 물론이고 어린이집에서 숙식을 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전체 회의 시간에 원감은 일을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진행시키기 위해 평가인증지표의 6개의 영역을 한 사람당 한 영역씩 분배하였고 그 영역과 관련된 모든 문서와 교육환경을 책임지게 하였다. “내가 맡은 영역에서 부족한 점이 생겨 평가인증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으로 나는 맘고생이 심했다. 나는 그 책임으로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을 안고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원감이 계획했던 것과는 반대로, 평가인증을 위한 업무진행은 효율적이지도 신속하게 진행되지도 않았다. 원감은 너무 과도하게, 실현 불가능하리만큼 힘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원감의 이 같은 계획은 예전에 평가인증제도를 경험한 적이 없고 상대적으로 경력이 적은 교사들에게는 가혹한 것이었다. 원감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과대한 업무를 교사들에게 부과했다. 평가인증을 경험해 보았던 나조차도 일이 버겁게 느껴졌고, 손도 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업무 앞에서 앞이 캄캄해 보이는 순간을 자주 직면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인증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 허둥대는 교사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내게 그 들을 도와줄 시간과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난 생태였다. 매일 매일 모든 교사가 자신이 맡은 영역을 원감에게 확인 받아야 했고 정해진 기한에 자신이 맡은 영역에 정해진 분량을 다 하지 못했을 때는 “모든 교사 앞에서” 엄청난 비난과 모욕을 당해야 했다. 그 들은 내가 살고 있고 일하고 있는 사회적 구조 내에서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작 위기라 할 만한 사건은 평가인증을 이틀 남기고 발생하였다. 전 날 전체 회의 시간에 엄청난 비난과 모욕의 말을 들은 한 교사가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이다. 남은 교사들은 그만 둔 교사의 일을 하며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교사 대부분은 이 사건의 책임이 분명 원감의 잘못된 계획에 있었음에도 원감이 아닌 그만 둔 교사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어린이집은 평가인증을 통과하게 되었고 당시 일을 그만 둔 교사는 “책임감 없고 교사의 자질이 전혀 없는 무능한 죄인”으로 남게 되었다.

내가 2년 전에 경험했던 이 사건의 희생양과 9.11의 희생양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일련의 등식을 떠올리게 되었다. 예컨대 “원감≒부시,” “그만 둔 교사≒중동 아랍계 사람,” “원감의 잘못된 행정계획≒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남아있던 교사들은 무엇에 비유될 수 있을까? 우리는 한 동료교사가 한순간 무능 무책임이라는 “부정적 감정어”로 수식되고 한 공동체에서 추방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를 묵인하고 불만의 감정을 가졌다는 점에서 9.11 당시의 미국시민들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9.11의 희생양>은 내 삶의 한 부분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국가 단위의 분석을 시도하고 있음에도 이 책은 한 개인의 삶과 그 공동체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모두가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사회적 공간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있어 이 책은 우리들 삶의 모습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할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교훈을 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이뿐 아니라, 나는 이 책의 정의로움이 우리로 하여금 9.11을 넘어서, 우리들의 삶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희생양들에게 작은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당신도 9.11의 희생양을 넘어 우리들의 삶 속에서 존재하는 희생양에게 한 번쯤 손을 내밀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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