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희망버스, 내가 가진 건 사람의 마음 뿐

[기고] 김진숙 선배, 우리 행복의 나라로 가요!

집은 나온 지 한참 되었다. 6월 15일, 2차 희망의 버스 185대를 제안한 뒤 부터였다. 40여명에게 소환장을 보냈다는 소식이 들린 후라 조심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변의 걱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건 나만의 어떤 예식 같은 것이었다. 경건한 어떤 자리에 서기 전에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것처럼, 내 생활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 단 몇 시간도 버릴 수가 없었고, 편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스스로 어떤 비상상황, 농성 체제에 들어간 것이다. 그것이 나름 85호 크레인위에서 160일을 넘겨가고 있는 김진숙 선배와, 전국 185대라는 경이로움을 만들어주는 동료들,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 후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자주 몸에서 쉰내가 난다. 어떤 날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세수를 하게 되는 날도 있다. 몇 시간 자고 나면 나도 모르게 깨어나 다시 전화기를 붙들고, 컴퓨터를 켠다. 멍하니 있게 되는 시간들도 많았다. 저 큰 산을 뜰삽 하나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느낄 막막함 비슷한 게 몰려와 오히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는데, 무슨 일을 하더라도 충분치 않고, 소용이 없을 것 같은 체념 사이에서, 넋이 나가 있을 때도 있었다.

몇 십일의 긴장감에도 이렇게 사람이 녹초가 되는데, 오늘로 저 높은 허공에서 178일째인 김진숙 선배의 마음은 어떨까. 새벽 6시께야 간신히 잠들어 10시쯤 불현듯 깨어 검색을 해보니 다음과 같은 트윗 글들이 올라와 있다.

JINSUK_85 신경세포가 사시미 칼끝이다 마음을 찌르고 입속마저 찔러 양치질 하기도 힘들다 용역들이 금속탐지기로 샅샅이 훑어내는 밥을, 다 헐은 입이 거부하라 말한다. 전기가 끊긴 이후 겨우 한발짝 앞으로 갔다 두발짝 되돌아 오는 시간.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JINSUK_85 쇠파이프를 쥐고 잔 177일, 작은 소리에도 벌떡 일어난 177일, 육개월. 용역침탈, 강제집행, 집행부의 배신, 완전고립.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지던 시간들. 잠을 잃고, 산소통 같던 트윗마저 끊긴 깜깜한 망루에 앉아 여기가 이승인지 저승인지 까무룩해지던 밤들. 다시 밤.


어제도 부산에서는 계속 긴급한 소식들이 들려 왔다. 이번 주말이 최대의 위기가 될 것 같다고, 용역들이 소방 매트리스가 깔린 85호 크레인 아래로 다시 그물망을 치고 있다고, 벽에 철조망을 올리고, 펜스를 치던 정도를 넘어 이젠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담벼락 인도 부분마저 소방공사라는 이름으로 파헤치고 있다고, 강제 진압 초읽기에 들어간 것 같다고, 떨리는 목소리들이 전해 왔다. 그때마다 피끓는 분노가 솟기도 하고, 반대로 무엇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에 한없이 무력해지기도 했다.

이 처절한 상황 속에서 김진숙 선배의 마음은 어떨까. 모든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사시미 칼끝’이라고 한다. 그는 어떤 경우의 수들을 마음속에 떠올리고 있을까. 어떤 상상들을 하고 있을까. 그 마음의 끝자락 조금쯤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어쩌다보니 작년 나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기륭전자비정규투쟁 농성장이었다. 여기서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현장을 부수기 위해 들어 온 포클레인을 오히려 점거하고, 그 위에 참새마냥 올라가 있었다. 맨 꼭대기라야 4m쯤 되는 높이였다. 그런데도 올라 간 순간 수많은 긴장과 상상 속에 놓이게 되었다. 만약 공권력과 용역깡패들이 강제 진압에 들어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것이 최선의 선택인가. 나는 이 곳에서 무엇을 바칠 것인가. 만약 어떤 결단이 요구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럴 땐 과장해서 주변의 공기 한 톨 한 톨의 움직임마저 날카롭게 느껴지곤 했다.

바라지 않았지만, 결국 이틀째 되던 날 공권력이 들어왔다. 몇 시간 전부터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낯선 경찰간부들이 주변 지형을 확인하고 돌아가고, 해당 경찰서에서는 요식적인 퇴거 명령을 내리고 간다. 그때부터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사람들에게 작전이 시작될 것 같다고 문자를 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하나. 엄포인가, 사실인가. 달려 올 사람들에게 미안해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만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게 된다. 가슴이 부들거리고, 허둥대게 된다. 나의 경우 작전 시작 1시간 전에야 분명하게 작전의 개시를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건 사람의 마음뿐이었다. 사람의 말 뿐이었다. 얼마나 소리쳤던가. 이미 어디 몇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고 할 틈도 놓쳐버렸고, 이미 덧없었다. 이렇게 가는 건가, 하는 마음이었다. ‘잘 있거라, 아름답고 기뻤고 슬펐던 날들아’ 하는 마음이었다.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생에 한 번씩은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들이 올 것이며, 후회없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더 하고 싶은 일도,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만, 내가 또 이렇게 못다 굴리고 간 덩이를 누군가 다시 굴려주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 전부터 농성 콘테이너 옆에 갖다 놓은 LPG통 몇 개를 올려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착한 동지들에게 그 짐과 아픔을 지게 할 수도 없었다.

내가 가진 건 마지막 남은 소리뿐이었다. 들어와 보라고 했다. 야 개새끼들아 빨리 들어와, 한판 해보자는 거지. 자신 있으면 빨리 들어와. 빨리빨리 준비 안 하고 뭐해 새끼들아. 너희들이 그렇게 용산에서 6명 죽였지. 그래 오늘은 여기서 한판 해보자. 어떤 새끼가 책임질 거야. 이번엔 이명박이 사인 확실히 받아왔지. 내일 아침에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 보자. 근 1시간 가까이 모든 적개심을 다 토해낸 듯하다. 그 사이 옆 공장에 숨어 준비하던 전투 병력이 들어오고, 소방차와 사다리차와 여경들이 바로 옆까지 들어오고, 1차, 2차, 3차 경고가 이어졌다. 3차 경고와 함께 나는 내 말들에 책임지기 위해 포클레인 붐대 맨 끝으로 올랐다. 하늘만 한번 쳐다보고 눈과 입을 조용히 다물었다. 아래에서 울고 있는 동지들 얼굴은 쳐다보지 않았다. 생의 인연으로 그만하면 충분했다. 나는 이 지구라는 별에 와서 무엇이었을까. 만났던 인연들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아래에서 사람들이 통곡하는 소리를 듣다보니 왜 내가 이렇게 미안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감은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어쩌다보니 김진숙 선배던 나던 이런 결심들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 무슨 자본가, 연예인들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충분히 존중도 받고, 그럭저럭 살 수도 있다. 이제 더 이상 무슨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무슨 투사라도 되는 양 인정받을 수도 있다. 오히려 버겁고 미안할 정도이다.


그런데 왜 나는, 김진숙 선배는 그런 결단을 하는가. 왜 8년 동안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살며, 그 차디찬 겨울 새벽 4시에 3시간동안 쇠톱으로 85호 크레인의 자물쇠를 잘라야 하나. 왜 하필 죽은 벗들의 원혼이 시퍼렇게 서린 곳으로 올라가는가. 왜 177일 동안 펜이 아닌 쇠파이프를 쥐고 자야 하는가, 좀 더 유명해지기 위해서, 좀 더 많은 팬을 갖기 위해서, 좀 더 높은 자리와 권력을 얻기 위해서 그런가. 그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런 것 아닐까. 끝끝내 사람이고 싶다는 그런 것 아닐까. 잊을 수 없는 어떤 기억들 때문이 아닐까. 어떤 분노들 때문이 아닐까.

그는 가난한 빈농의 딸로 태어나 열 다섯 살에 가출했다. 입학식 날 교복이 없는 아이였고, 육성회비를 못 내는 아이였다. 송아지가 아프면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였다. 가출해서는 ‘하얀 벽 위로 새카맣게 기어오르던 빈대에 물어뜯기는 기숙사에서 살았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기도 했다. 아침저녁으로 신문배달을 했고, 낮 시간에는 다방을 돌며 땅콩과 주간지를 팔기도 했다. 우유 배달, 샴푸, 세제 외판원도 했다.’ 타이밍을 삼키며 미싱을 밟기도 했고, 화진여객 버스안내양으로 배차주임과 기사들에게 삥땅을 빌미로 한 알몸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하나 있는 남동생은 노숙인이 되어 쪽방에서 소주병을 쌓아놓고 죽어갔고, 그 장례식장에서 1년 365일 가게문을 닫아본 적 없는 언니는 통곡을 하다말고 ‘와사비’ 가격을 물어보는 조카에게 ‘큰 거, 작은 거’, ‘작은 것은 820원’이라고 말하고 나서 다시 운다. 그게 그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 온 길이다.

그는 그 길에서 만나왔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무슨 타고난 투사여서가 아니고, 그가 무슨 단단한 이념으로 무장되어서가 아니다. 무슨 철의 조직이 뒷받침되어서가 아니다. 그는 그런 아픔과 눈물들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연대의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집에 편지를 쓴다고 화창한 일요일 기숙사 창문 아래 배를 깔고 엎드려 “어머니 아버지 보세요.” 한 줄만 써놓고는 편지지에 눈물 콧물 칠갑을 하면서’ 보내던 자신과 그렇게 비슷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겨울에도 연탄불을 못 피운 방에서, ‘이불 하나로 한 자락은 깔고 한 자락은 덮어가면서 살던’ 시절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딸년이 빨갱이가 되어 있다'는 기관원들의 엄포에 열 시간 넘게 아픈 다리를 끌고 부산을 찾아와 부산역 대합실에서 ‘다친 데는 없냐’, ‘밥 굶지 마라’ 딱 두 마디밖에 못하고 갔다가 얼마 뒤 쓰러져 돌아가신 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만원이 생기면 짝짝이 신발을 신고 다니던 동지의 운동화를 먼저 사고, 천원이 남으면 순대 한 봉지에 젓가락 여덟 개가 꽂히던’ 서러운 해고노동자 시절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새벽 출근투쟁을 나가다 너무나 배가 고파 어느 집 대문간에 내놓은 제삿밥을 몰래 주워 먹던 시절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와야 했던 우리 시대의 가족들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세월을 거치고도 눈물바람뿐인 이 땅의 정리해고자들과 900만 비정규직들의 삶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맨 앞에서 지켜야 할 민주노조운동의 퇴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일상에, 상황에, 절망에 자신마저 속화되어가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이 모두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는데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을 그냥 둘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니면 다시 하염없는 날들일지 모르는 백척간두에서, 지금 우리 모두를 위로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고 속삭여주고 있다. 당신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저 위에서 손을 흔들고 주고 있다.

이 싸움은 결코 물러 설 수 없는 싸움이다. 결코 질 수도, 져서도 안 되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김진숙만의, 한진 해고노동자들의 싸움만이 아니다. 나의 일이며, 결심이며, 우리의 삶이며 결단이어야 한다.

회사가 망한 것도 아니다. 회사는 오히려 수십 년 이들의 등골을 빼먹으며, 한국 재계 순위 9위가 되어 있는 대재벌이다. 공짜 밥 달라는 소리도 아니고, 열심히 일할테니 자르지만 말아달라는 싸움이다. 아무리 해도 안 될 거라는 체념이 아니라, 이 정도는 우리 모두의 힘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가 필요하다.


‘2차 희망의 버스’가 준비 중이다. 구속, 침탈 등 공권력 위협과 54억에 이르는 손배가압류, 추가 해고 등의 무기로 노조집행부를 위협해 도장찍게 만든 ‘노사합의서’가 나왔음에도, 1차 희망의 버스 건으로 총 104명에게 소환장을 보낸다고 위협함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전국에서 185대의 새로운 희망의 버스가 조직되고 있다. 놀랍고 눈물겹다. 대안학교 아이들이 새로운 ‘생태학습’에 나서고, 반값등록금 학생들이 오르고, 학부모단체들이 오른다. 장애인들이 나서고, 성소수자들이 나서고, 외국인이주민들이 나서고, 문화예술인들이 나서고, 법조인들이, 교수들이, 의료인들이, 그리고 전국의 노동자들이 이 버스에 오른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 결정적이어야 한다. 무려 7일이나 남았다. 김진숙 선배에게는 이 시간이 초 단위로 느껴질 수도 있다. 나중이라고 말하지 말자. 그날은 많이 가니 다음에 나는 가지라고 말하지 말자. 유명하고 잘난 사람들 많이 가니 나는 다음에 가겠다고 말하지 말자. 다른 싸움도 많다고, 그게 무슨 노동자투쟁이냐고 나는 싸움할 때 가겠다고 쉽게 말하지 말자. 185일이다. 난 고작 보름을 5m 높이에 있으면서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은 일상적 연대만이 아니라, 긴박하고 집중된 연대가 필요하다.

‘2차 희망의 버스’의 메인송은 ‘행복의 나라로’다. 거기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우린 아마도 7월 9일 밤 10경, 저 멀리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부산 영도다리를 건너며 이 노래를 그에게 불러주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다시 울 것이며, 누군가는 다시 위로 받을 것이다.

이 어둔 ‘장막을 걷’고, 우리 시대 모든 가난하고 아픈 삶들의 상징인 저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이 꼭 김주익 열사와 곽재규 열사의 원혼을 곱게 안고, 제 발로 그 절망의 계단을 걸어내려 올 수 있게 하자. 정말 우리 모두 ‘행복의 나라’로 가는 꿈을 꿔보자.

2차 희망버스 안내

[참가 하기]
- 참가 및 연대 게시판 : 다음 까페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검색hhttp://cafe.daum.net/happylaborworld
- 전화 : 02-363-0610(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 이메일 : hopebus@jinbo.net
- 법률 대응 관련 문의 : rainysun999@gmail.com
* 현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공동변호인단을 준비 중입니다. 관련 사항이 있을 시에는 위 메일로 알려주세요.
- 참가 단체나 개인은 7월 7일까지 버스 대수 확정을 위해 꼭 참가 확인을 해주셔야 합니다.
- 까페에 지역 희망의 버스 담당자님들 연락처 있습니다. 지역 개별 참가자분들은 확인 부탁드립니다.

[기타]
- 1박 2일 하늘을 덮고 자는 날입니다. 침낭 등을 준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9일 저녁 나눠먹을 음식들과 교환을 원하는 물품들도 가져 와주세요. ‘희망의 나눔장터’가 열립니다.
- ‘2차 희망의 버스’ 메인송은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입니다. 연습해 오시면 함께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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