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세상을 전복하라!

[신간안내] 『문화는 정치다』(장 미셸 지앙, 목수정 역, 동녘, 2011).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로 인해 저임금 노동과 불안정노동이 일상화되면서 노동 패러다임에서 문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92년을 기점으로 서태지 현상으로 인해 문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지만 여전히 문화의 불모지대다. 그것은 문화가 정치에 예속되고 온통 화폐로 치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21세기 들어와서야 문화적 권리를 주장하고 찾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특히 올해 2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예술인들의 열악한 현실, 복지문제가 화두에 오르며 이른바 ‘최고은 법’까지 나오면서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배고픈 예술인들의 이야기는 금방 사라졌으며, 한 쪽에서는 여전히 미술전시회, 뮤지컬, 오페라 등을 보기 위해서 값비싼 표를 예매하며 사람들이 즐비하다. 이러한 문화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문화 예술가들의 위치는 어디이며, 그들과 문화를 누리는 시민들을 위해 정부, 공공기관, 활동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문화는 정치다』의 저자 장 미셸 지앙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문화정치’라는 개념 속에서 찾도록 도와준다. ‘문화정치’라 명명되는 정치적 정책결적인 결정은 인간해방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프랑스 땅에서 벌어진 첫 번째 혁명에서부터 문화적 권리는 모든 인간이 함께 누려야 할 자유, 평등, 박애와 더불어 천명되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언제나 자신의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도구를 지녀야 한다는, 문화를 창조하고 누리며 살아가는 인류로서의 당연한 권리에 대한 인식이었다.

신자유주의로 무너지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도 미테랑이 집권(1981-1995)을 마감하면서 문화예술가들이 꿈꿨던 문화정치가 신자유주의로 인해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미테랑은 프랑스에서 가장 문화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1981년 최고 권력에 오른 이후 프랑스의 문화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문화개발국이 창설됐고, 조형미술 창작진흥기금, 방송산업 지원 기금이 생겼으며 저작권법이 탄생하기도 했다. 미테랑 정권에서는 문화라는 이름이 부흥기를 맞이했고, 시민들에게 문화강국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미테랑 이후 문화정치의 개념은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사라졌고, 오직 그 관성적인 힘과 형식적인 정당성의 양상에서 유지되고 있다. 한국사회가 부러워했던 프랑스의 스크린쿼터는 할리우드의 침략에 무릎을 꿇으면서 오히려 프랑스가 한국의 스크린쿼터 투쟁을 부러워하기에 이르렀다. “세 가지의 무거운 책임이 문화정치 개념의 본질과 의미를 바꾸게 했다. 이러한 변화는 무역 부문에서 구조화된 세계화와 새로운 종교적 이데올로기나 국주수의에 점점 구속되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문화의 개념을 배타적으로 사회적인 기능에만 치우치게 만들어버리는 예술의 엘리트주의적 개념 등이 결합하여 형성한 압력 속에서(288쪽)” 이루어진 것이다.

문화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이제는 모든 것이 자본에 흡수 통합되는 시대이며, 문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 경제대통령의 정권 아래에서 돈이 되지 않는 문화는 소외되고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된다. 각종 예술상, 예술 지원도 모두 돈과 결부되어 있고, 심지어 ‘문화센터’에서도 재테크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와 문화가 잘 어우러진 정책이 필요해 졌는데, 이런 점에서 저자가 미테랑 정권의 문화정책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미테랑 시기의 문화실험들과 이 책 제4장 <문화예술에 생활에 대한 진단>에서 제시되는 각종 문화 분야의 정책들은 지금 한국사회에도 유용해 보인다. 예술가들을 위한 복지 제도, 민간극장에 대한 지원, 국가 문화재 관리 방식 등은 아직 국내에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에 대한 책임이 공공기관, 정부에 있다는 문제의식이 문화를 공유하게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각종 문화정책들은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정부의 문화 지원과, 가정에서의 문화 부문 지출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문화는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다. 또한 서울 중심의 문화, 자본 중심의 문화가 지방과 순수예술을 소외시키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음반과 영상이 책의 자리를 밀어내고 있고, 혼자 즐기는 개인화된 문화, 아파트 문화가 늘어나고 있다. 저자가 문화정치는 예술가의 보편적인 권리 보호와 예술 작품의 원활한 배급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문화적인 계급차를 줄이는 것에 더 많은 부분을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의 시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문화와 정치라는 생소한 결합이 한국 사회도 충분히 가능하며,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또한 문화정책에 관한 자료가 척박한 한국에서 문화정책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에게 중요한 사례를 제공할 것이다.

차 례

1장. 현대사회에서의 문화
문화, 변화하는 개념
프랑스인들의 문화 생활 변화
공공기관이 진흥시키는 독특한 경제
문화 정체성의 필요성
저명한 예술가

2장. 국가와 문화의 관계
문화적 권위의 기원으로서 왕정
문화정치의 탄생
드골주의 혹은 문화의 제도화
1980년대: 대량 소비 상품으로서의 문화

3장. 제 5공화정의 문화정치
문화 영역에서 프랑스의 대외 정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메세나에 대한 장려
문화산업에 대한 지원
예술교육

4장. 문화예술 생활에 대한 진단
음악과 무용
연극과 공연
문화재와 박물관
조형예술과 사진
영화와 영상, 오디오
책과 도서관

5장. 유럽과 문화
지성과 예술의 유럽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6장 문화정치로 가는 길
문화정치의 쟁점들

태그

문화정치 , 미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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