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에서 ‘실재’로...아이돌을 통해 대중문화를 보라

[신간안내] 『아이돌』(이동연 엮음, 이매진, 2011)

20세기말 이후 한국의 대중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아이돌을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초창기 기획사의 전략적 상품으로서 기능했던 아이돌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진화함에 따라 사회를 읽고 분석하는 코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단순한 댄스그룹이나 우상의 차원이 아니라 일상을 규정하는 힘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20세기말 등장한 아이돌 1세대에서부터 현재의 수많은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재단해서는 곤란하다. 현재의 아이돌 현상은 새로운 문화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클리프 리차드 등을 우상으로 여겼던 60-70년대의 ‘빠순이’들, 같은 시기의 세시봉의 ‘오빠부대’들, 80년대 조용필 왕국 건설의 주역인 ‘오빠부대’들이 다름 아닌 현재의 팬덤을 생산한 원조들인 것이다. 이들의 후예들이 이제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으로 봉사 활동을 하고, 스타의 일용할 양식으로 조공을 건네며, 삼촌과 이모의 자리를 차지해 아이돌을 응원하고, 인터넷 방송국을 열고, 모금을 해 신문이나 버스 광고를 하는 등 하나의 문화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TV 예능 프로그램을 지배하고 우리들 일상의 습속을 속속들이 관할하는 이 실재하는 가상의 아이돌 왕국에서, 지금 우리는 모두 기꺼이 ‘신민’이 된다. 이 왕국의 탄생 신화와 영토 확장에 참여하는 우리는 모두 아이돌 왕국의 신민인 셈이다.

이 책은 ‘아이돌 팝 연구회’를 비롯해 13명의 젊은 문화 연구자가 모여 1년 8개월 동안 세미나와 월례 발표회를 거치며 아이돌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와 대중문화의 흐름을 살핀 공동 작업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아이돌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 가십성 연예 기사와 대중문화 비평을 넘어서는 새로운 아이돌 담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후일담의 소재가 되고 있는 1세대 아이돌의 가까운 과거부터 지금도 어디선가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아이돌의 다가올 미래까지, 그 위대한 탄생의 비밀 또는 비기를 살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아이돌은 가수여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새삼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 최초의 아이돌 문화 보고서

『아이돌』은 4부로 구성된다. 각각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 글들은 결국 서로 연결돼 한국 대중문화의 지형도를 그리는 한 편의 거대한 문화 보고서가 되고 있다. 1990년대에 등장한 아이돌을 1세대와 2세대로 나눠 비교·설명하고, 아이돌의 음악 스타일을 집중 탐구하는가 하면, 대중문화의 지형을 뒤흔든 오디션 열풍 속에 깃든 아이돌 성공 신화를 신자유주의 담론과 연결해 살피는 저자들의 시도는 그것 자체로 아이돌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사례다.
1부 ‘아이돌, 아이돌 팝, 아이돌 문화’는 아이돌, 아이돌 팝, 아이돌 문화란 무엇이며 어떤 문화적 함의를 지니는지 살펴본다. 아이돌의 현재적 의미와 아이돌 팝의 구성 요건, 아이돌이 하나의 문화로 소비되는 방식과 아이돌에 관한 수많은 순위 매기기 놀이들, 한일 아이돌 비교를 통한 문화 교류의 양상까지 아이돌을 둘러싼 담론을 폭넓게 분석했다.

2부 ‘아이돌의 음악 세계’는 아이돌의 음악을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한국 아이돌 그룹의 계보와 음악 스타일을 분석·정리하고, 아이돌 음악을 기점으로 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초국적화 현상을 살펴봤다. 또한 아이돌 그룹들이 지난 15년 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고 시기별로 어떤 문화적 차이를 드러냈는지를 한국 사회의 문화 변동과 관련해 짚은 뒤, 아이돌 그룹의 음악에 들어 있는 힙합, 테크노, 소울 같은 양식들이 어떤 특성을 보이고 어떤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내는지 분석했다. 케이 팝이 초국적 스타일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민족주의 담론의 대상이 되는지도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다.

3부 ‘아이돌 문화 현상 읽기’에서는 아이돌에 관련된 다양한 문화 현상에 눈길을 돌린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아이돌은 무척 힘겨운 육체적 노력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 더욱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이돌이 운명처럼 떠안은 강도 높은 ‘감정노동’이다. 걸그룹의 소녀 이미지가 제공하는 볼거리와 그것을 소비하는 방식도 아이돌 문화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팬덤 문화가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집단의 팬덤이 생겨났는데, 그 대표격인 ‘삼촌팬’ 현상은 팬덤 문화 일반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 세대, 젠더와 관련된 다양한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아이돌 고시라고 부를 정도로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는 청소년과 부모들의 욕망이 커졌는데, 이것이 과거와 다른 기준과 가치를 토대로 한 성공 신화의 새 유형이라는 점을 살펴보고 있다.

4부는 ‘아이돌을 위한 기록들’이다. H.O.T. 이후 어떤 아이돌 그룹이 데뷔했으며 그 그룹들의 대표적인 음반과 곡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한국 아이돌 백서’를 실었다. 대표 걸그룹인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멤버로 활동하는 나르샤를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월드 스타’ 비를 포함해 오랫동안 아이돌 그룹 제작에 직접 참여해온 JYP엔터테인먼트의 정욱 대표의 인터뷰를 실어 아이돌 그룹 제작 과정과 아이돌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책 끝에는 부록으로 아이돌 그룹을 둘러싼 여러 사항을 정리한 아이돌 계보도가 첨부돼 있다.

대중문화 연구의 서바이벌 오디션

『아이돌』은 아이돌에 관한 책이다. 또한 대중문화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서 살펴보고 있는 아이돌의 정의와 아이돌을 둘러싼 다양한 문화 현상, 재범 사건과 타블로 사건의 함의, 아이돌의 노동, 걸그룹과 삼촌팬, 아이돌 성공 신화, 그리고 아이돌의 음악은 온전히 대중문화의 영역을 포괄한다.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몫이 아주 큰데도 아이돌과 아이돌에서 파생한 문화는 가십성 연예 기사와 대중문화 비평의 수준을 넘어서 본격적인 연구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돌과 아이돌을 둘러싼 문화 현상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문화적 비평을 감행하고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려는 『아이돌』의 출간은 대중문화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는 셈이다.

우리 삶의 일부가 된 아이돌의 ‘진짜 리얼리티’를 찾아 떠나는 이 책의 여정은, 곧바로 팬과 대중, 대중문화 수용자와 생산자들을 포괄하는 다양한 논의와 평가의 장에 올라 냉정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돌 왕국의 리얼리티를 찾는 대중문화 연구의 서바이벌 오디션은 계속된다. 아이돌 왕국이 우리 삶의 일부이자 실재로 존재하는 그날까지.

목 차

1부 아이돌, 아이돌 팝, 아이돌 문화
1장_ 아이돌 팝이란 무엇인가 ― 징후적 독해
2장_ 우상의 황혼 —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은 어떻게 소비되는가
3장_ 아이돌 순위의 계보학 ― 객관성 논란에서 고객님들의 유희까지
4장_ ‘아이도루’와 ‘아이돌’ 사이에서 ― 아이돌을 통해 보는 한일 문화 교류

2부 아이돌의 음악 세계
1장_ 한국 아이돌 그룹의 역사와 계보, 1996~2010년
2장_ 아이돌 팝의 음악 스타일에 관한 짧은 소견서 ― 버블껌 팝에서 장르 음악으로
3장_ 박재범과 타블로, 그리고 유승준의 평행 이론 ― 한국 대중음악의 초국적화와 민족주의적 트러블

3부 아이돌 문화 현상 읽기
1장_ 리얼이라는 이름의 노동 ―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짜 가짜 리얼 일상
2장_ 걸그룹 전성시대에 당신이 상상하는 것들 ― 걸그룹의 성적 이미지 전략과 포섭된 남성 팬덤
3장_ ‘삼촌팬’의 탄생 ― 30대 남성 팬덤의 불/가능성에 관하여
4장_ JYJ 공화국 ― 선택을 강요받은 자들의 선택할 권리
5장_ 환상 속에 아이돌이 있다 ― 신자유주의와 아이돌의 성공 이데올로기

4부 아이돌을 위한 기록들
한국 아이돌 백서
인터뷰_ 브라운아이드걸스 나르샤를 만나다
인터뷰_ JYP엔터테인먼트 정욱 대표를 만나다
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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