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그들이 대안이다

[신간안내] 『문화/과학』, 여름호(문화과학사, 2011)

『문화/과학』여름호의 특집은 ‘청년, 운동을 말하다’이다. ‘88만원 세대’, ‘IMF 세대’라 불리는 당대의 청년들은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 국면에서 계급모순과 세대모순이 한데 ‘응축’된 조건 속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 없이 당장의 생존을 위해 전쟁과도 같은 취업경쟁에 자신을 내던지는 고통스런 삶을 버텨가고 있다.

소위 ‘97년 체제’ 이후 대학에 진학한 이 세대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고용 없는 성장 정책으로 ‘고용 사다리’에서 내쳐졌고, 노동자계급 내부에서의 분화와 위계화가 가속화되면서 고용이 되더라도 비정규직이 정상상태가 되었다. 비단 고용지위와 소득격차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위기를 토건자본의 거품으로 봉합한 한국적 특수성으로 인해 윗세대와의 자산격차 또한 극심한 세대이기도 하다. 더 나쁜 것은 당장의 경제위기를 유예하기 위해 지출한 재정적자와 토건광풍이 남긴 복지축소와 생태위기의 폐해 또한 이들과 그 자녀세대에게 오롯이 돌아올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처럼 응축된 사회적 갈등과 계급모순을 한 세대가 집단적으로 공유하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집단적인 저항의 주・객관적 조건이 열악한 것이 바로 이들 세대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적 국면에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약화되면서 시장전제체제가 전면화되었고, 과거 공동체적 연대 감정과 정치적 실천의 준거점이 되었던 대학공동체는 붕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편화되고 고립된 불안한 개인들은 실효가 불투명한 가시적이고 집단적인 저항보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세대내 경쟁’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 친구들을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이 처절한 전쟁에 넌더리가 난 이들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루저’나 ‘잉여’가 되는 쪽을 택하고 있다.

편집위원회의 글 「‘청년운동’의 정치학」은 살인적인 스펙 쌓기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한국사회 청년의 실상을 이야기한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20%를 차지하는 20대 임금노동자 340여만 명 중 50%에 해당하는 170여만이 비정규직이다.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대학 신규졸업자의 절반 이상이 임시직이나 일용직으로 고용된 결과인데, 문제는 불안정 저임금 노동시장에 편입되어 가는 청년들 대다수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학생은 더 이상 문제제기와 해결의 주체라기보다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대학생은 더 이상 사회적 특권층이 아니라 지식노동자로서 잠재적 산업예비군으로 규정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학생운동은 이제 새로운 전환을 맞아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박가분은 「20대 정치적 주체성의 재구성―‘전위’의 이념과 자발적 대중운동」이라는 글에서 레닌의 전위 개념을 재설명하면서 폐허가 되어버린 학생운동에 전위 개념이 주요하고 긴급하게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레닌의 전위당 개념이 정치적으로 지도하고 장악할 정치적 주체들이 없는 희극적인 상황에서 생겨난 것처럼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도 바로 학생운동이 소멸했고 따라서 대변되어야 할 주체들과 그들을 대변할 조직 간의 단락이 전위 개념을 긴급하게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원은 「청년혁명사의 계보학: ‘동학’에서 ‘촛불’까지」에서 여섯 가지의 혁명 형태를 일별한다. 여기서 특히 ‘비등혁명’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이명원은 동학에서 촛불에 이르는 조선과 한국사회의 혁명을 국가환상에 의해 뜨겁게 달아오르지만 범람하지 않고 드라이아이스처럼 휘발되는 비등혁명으로 규정하고 혁명을 문 안쪽에 주저앉게 만들었던 비등혁명의 대안을 코뮌주의에서 찾는다. 지도자환상, 국가환상을 넘어서서 혁명이 흘러넘치려면 그것을 대체할 방안이 필요한데 공동환상의 횡적 연대에 기반을 둔 코뮌주의가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의 주체는 감정을 잃지 않고 팽팽한 상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청년이다.

이번 호 특집에는 또 온라인을 중심으로 급진적인 대학개혁운동을 펼치는 에듀–팩토리 집단의 메니페스토 「모든 교육을 자율교육에게로!」도 실려있다. 에듀–팩토리 집단은 글로벌 대학의 변형과 지식생산의 투쟁에 참여하는 지식 집단이다. 이들의 웹사이트(www.edu-factory.org)는 대학의 투쟁들과 관련된 이론적 고찰이나 보고서들을 모으고 서로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이 메니페스토가 주장하는 자율교육이란 당대 자본주의에서 일하는 인지적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의 형태로 등장했다. 그것은 동시에 지식생산과 공통적인 것의 구성을 둘러싼 갈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자율적 제도의 조직과 연루되어 있다. 에듀 팩토리는 그래서 투쟁들이 서로 연결되는 공간, 즉 저항과 조직적 실험들의 장소가 된다. 예를 들어 교원과 학생들의 투쟁의 상호 연계 같은 것이 그것이다.

홍명교는 「대학의 위기와 대안적 학생운동의 전망」이라는 글에서 학생운동을 당사자운동으로 파악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노동자운동–학생운동의 연대와 대중운동의 복원을 주장한다. 올 초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에 학생운동이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을 노동자운동과 학생운동의 ‘연대’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학생운동을 노동자로 변한 청년세대의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했을 때 비로소 연대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교수노조, 정규직교수노조 혹은 일반노조, 학생노조, 청소노동자 노조가 상호 협력을 할 수 있을 때 연대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이다. 홍명교가 주장하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 바로 청년학생 자신이 처한 억압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토대로 했을 때 자유–평등–연대의 저항이데올로기가 비로소 만들어질 것이다.

이번 『문화/과학』 특집에는 청년세대가 처한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고 학생운동의 대안을 고민하기 위해 ‘싸우는 20대들의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좌담을 실었다. 각자가 직접 학생운동을 포함해 사회운동에 몸을 담고 있는 20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이 처한 불안정 저임금 노동의 현실을 드러내고 대안적 운동의 전망이나 비전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털어냈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요구, 기본소득 주장, 정당 중심의 운동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드러내고 있다.

문화현실분석 꼭지에서는 지난 2011년 3월 11일 세상을 타계한 우리 시대의 건축가이자 훌륭한 인문사회과학자이시기도 했던 정기용 선생을 회고했다. 강내희는 「공간의 시적 정의와 건축의 외부」라는 글에서 정기용 선생을 ‘공간의 시인’으로 명명하는 가운데 사회적 정의를 미적으로 표현한 시적 정의를 구현하고 시적 상상력의 사회화에 앞장선 위대한 공공건축가로 그를 규정한다. 심광현은 「시간을 설계하는 감응의 건축가」라는 글에서 자신의 저서인 <프랙탈>이나 <흥~한민국>에 끼친 정기용 선생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선생의 인문사회학적 식견과 통찰력을 회고한다.

사회운동 꼭지에는 두 편의 글이 실렸다. 유달승은 「아랍 민주화운동의 성격과 본질」에서 튀니지의 27살 청년 행상 모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로 폭발한 2011년 아랍 민주화 운동을 아랍세계에서 나타난 중요한 변화의 상징으로 평가한다. 올해는 또한 91년 5월 투쟁이 20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김정한은 「도래하지 않은 혁명의 유산들-1991년 5월 투쟁의 현재성」에서 새로운 혁명과 새로운 주체의 도래를 말하고 있다.

20대 청년들에 대한 비관적 전망만이 지배적인 오늘날, 한 세대에 대한 경제적, 생태적, 사회적 착취의 고리를 끊고, 분산되어 소모적인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개인들을 연대의 기치 아래 결합하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성을 구성해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우리는 과거 부문운동의 전통에서 나온 학생운동과 청년단체운동,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라는 이분법적 범주를 넘어 ‘노동운동/사회운동으로서의 청년학생운동’이라는 관점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상상과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목 차

특집
‘청년운동’의 정치학ㆍ편집위원회
20대 정치적 주체성의 재구성 ─‘전위’의 이념과 자발적 대중운동ㆍ박가분
청년혁명사의 계보학: ‘동학’에서 ‘촛불’까지ㆍ이명원
모든 권력을 자율교육에게로!: 에듀 팩토리 집단 선언문ㆍ이동연 역
대학의 위기와 대안적 학생운동의 전망ㆍ홍명교

특집 좌담: 싸우는 20대들의 운동이야기

문화현실분석_ <정기용 건축 읽기>
공간의 시적 정의와 건축의 외부ㆍ강내희
시간을 설계하는 감응의 건축가ㆍ심광현

정세
일본 안전신화 붕괴와 시민 주체성의 변화 /곽형덕
카이로에서 매디슨까지: 늙은 두더지가 초봄에 고개를 내밀다/로렌 골드너 글 /강내희 역

문화비평
‘진짜 노래’를 향한 이상한 여행 /최지선
혼종성의 함의: <킹스 스피치>와 <수상한 고객> / 이창우
차두리 신드롬의 윤리성, 혹은 문학의 정치 / 권정관

사회운동
도래하지 않은 혁명의 유산들 _1991년 5월 투쟁의 현재성ㆍ김정한
아랍 민주화 운동의 성격과 본질ㆍ유달승

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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