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 앞은 검은 옷을 입은 용역 깡패들이 막아서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난생 처음 보는 우리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과 폭언으로 공포감을 주었습니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는지 여성기숙사로 쳐들어간 용역들은 자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끌어내거나 감금했습니다. 욕설과 악다구니로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 사측 교섭대표가 있었습니다. 친한 동생은 지갑하나 없이 맨몸으로 기숙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새벽, 정문으로 들어선 대형 컨테이너 차량에는 600명의 용역들이 우리에게 뿌릴 소화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 저희들의 인생은 180도 바뀌어 버렸습니다. 뙤약볕 아래 한여름 더위와 모기와 싸우면서 정문 앞 천막에서 살았습니다. 회사는 물도 끊고, 전기도 끊고, 화장실도 사용 못하게 했습니다. 밤마다 용역들이 쳐들어올까 잠도 편히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 빨리 회사와 타결하여 현장으로 돌아가길 바랐지만 회사는 4개월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교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교섭거부는 직장폐쇄와 용역투입과 짝을 이룬 회사의 작전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회사도 언론도 모두 KEC지회의 파업을 타임오프제만 운운하며 불법파업으로 몰고 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 둘 동료들이 지쳐갔습니다. 그달 그달 나오던 월급이 4개월이나 끊기면서 당장 살림이 빠듯해졌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회사가 던진 “마지막 복귀시한”에 쫓겨 동료들이 현장으로 복귀하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힘겨웠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잠시 쉴 때면 많은 생각들이 나를 힘들고 우울하게 합니다. 회사는 끝없이 고통스런 상황으로 우리를 내몰았습니다. 회사를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만이 희망이었습니다. 함께하는 노동자가 힘이었습니다
‘영남권 노동자 대회’때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지만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었습니다. 풍선에 우리의 바람을 담아 회사로 띄워 보내며 연대의 힘을 받아 행복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되돌아가는 동지들을 보내며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눈물 흘리며 인사합니다.
사람들이 다녀간 자리엔 또 다시 외로움이 밀려옵니다. 우리의 투쟁 현장에 웃음과 눈물이 바다의 밀물과 썰물처럼 왔다갑니다. 그렇게 추석도 지나고 우리는 단 한 번도 교섭에 나서지 않는 회사와 교섭의 물꼬를 트기 위해 10월 21일 공장을 점거했습니다.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꽉 막힌 공간, 부족한 식량 탓에 하루에 1끼 식사량을 동료와 나눠 먹으며, 물로 허기를 채우며 교섭이 이루어지길 바랐습니다.
드디어 이신희 교섭대표와 지부장님이 만난 교섭 자리.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공장점거를 무력화시키려는 회사와 경찰의 각본이었습니다. 지부장님은 강제연행에 항의하며 분신했습니다. 우리는 또 한 번 회사에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사람 목숨을 개미새끼 목숨보다 못하게 취급하는 사측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공장 안은 순식간에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곁엔 불안, 공포, 절망, 공황 상태, 분노뿐이었습니다.
▲ 2010년 10월31일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중인 김준일 금속노조 구미지부장(전 KEC지회장) [출처: 금속노동자] |
우리가 무얼 그리 잘못했나요?? 죄라면 열심히 일하다 쫓겨난 것뿐인데... 점거 후 밤엔 잠도 2~3시간 밖에 자지 못합니다. 매일 밤마다 악몽을 꾸며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악몽같은, 절대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2010년 이었습니다.
2011년 5월 파업을 철회하고 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회사는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7주간의 교육을 강행했습니다. 묵언수행, 반성문, 점거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시험 답안엔 "다 나가라", "나가라 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곁엔 항상 용역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화장실을 갈 때도, 밥 먹으러 갈 때도... 이 모든 일이 금속노조 KEC지회를 없애겠다는 계획 하에 진행된 노조 말살 프로젝트였다는 걸 회사가 작성한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파업참가자를 모두 내쫓아 73억의 재원을 마련해 임원과 관리자들의 임금 인상을 하겠다는 겁니다. 설마 했지만 회사는 계획대로 166명의 정리해고를 통보했습니다. 2012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는 KEC 집단살육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린 지난 2년 동안 회사로 인해 잃은 게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도 회사는 우리에게 “100억 삭감할래? 정리해고 될래? 해고당하기 싫으면 임금삭감해라!”하고 협박합니다. KEC 역사상 유래가 없는 109명의 승진승급을 시켜 관리자의 연봉을 올려주면서 우리에게는 노동자의 생명줄과 같은 임금을 깎으라고 합니다.
치사하고 더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회사를 꼭 다녀야 하나 관두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멈춘다면 제2의 KEC, 제3의 KEC가 나타날 것입니다. KEC와 싸운 지난 3년은 악마와의 전쟁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피말리는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견딘 건 인간이길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과 폭력 앞에 우리들을 주눅들게 합니다. 자본의 횡포 앞에 무릎 꿇으라 합니다. 아니오. 우리는 용감하고 당당하게 맞서 승리하는 인간의 모습을 확인할 겁니다. 그게 상식이고 정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