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투쟁의지

[조성웅의 식물성 투쟁의지] (2)

- 김진숙 동지의 85크레인 고공농성 100일에 부쳐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묘역에서
오래도록 울고 오래도록 망설이고 오래도록 숙고한 참 맑은 결단
김진숙 동지는 겨울과 봄의 경계로 서서
아직 인간의 발자국이 닫지 않는 새로운 계절로 도약했다

인간의 새로운 계절
85크레인 아래에서 조용히 귀 기울인다
“저는 오늘 백일 기념으로 상추와 치커리와 방울토마토와 딸기를 심었습니다”
강철 위에 씨를 뿌리고 뿌리를 내려 온갖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텃밭을 가꾸었다니!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 정성을 다하면
세상의 모든 강철 같은 경계가 허물어져
부드러운 흙의 마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가능성!
김진숙 동지의 식물성 투쟁 의지는
수직의 명령이 아니라 수평의 대화를 생산하고 있었다

가장의 무거운 짐을 지고 등 보이며 돌아선 조합원들을 품는
김진숙 동지의 85크레인 고공농성 100일은
떠나간 조합원들이 다시 돌아오는 문 앞에
밤낮으로 켜진 정성스런 몸짓이었다
이 정성스런 몸짓을 통해 새로운 인간의 계절풍이 불 것이다

85크레인 고공농성 100일은
온통 자연적인 것들로 가득 찬 우리 삶의 새로운 언어다
85크레인 고공농성 100일은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는 도저히 가볼 수도 없는 새로운 전망이다
이것은 패배의 밑바닥에서 정성스럽게 길어 올리는 혁명에 가깝다

더 이상 나의 권리는 위임될 수 없고 위임되어서도 안된다
침묵은 배제를 낳고 명령을 낳는다
군사작전의 언어로 요약된 승리와 패배의 기록은 이제 너무 낡았다

이윤보다 풍요롭고 명령보다 무성한 비판의 뿌리,
김진숙 동지의 텃밭에서
어린 뿌리들이 위계 없이 어깨 걸고 자라고
난 강철조차 품는 어린 뿌리의 힘을 믿는다

높낮이도, 앞뒤도 없다
토론과 결정, 집행의 영속적인 자기결정 운동이 있을 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혁명의 날들이 온다

명령과 통제를 넘어 스스로 손을 들어 발언하고
비판과 토론의 연두빛 숲을 이뤄가는
어린 뿌리들의 협력,
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아름다운 몸짓들의 노래를
난 귀 기울여 듣는다
85크레인 고공농성 100일
김진숙 동지의 노래를 듣는다

(2011년4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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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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