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53) 쌍용차 정리해고 철회 투쟁 1,000일 되던 날

보고 싶겠죠 천일이 훨씬 지난 후에라도 역시 그럴테죠
난 괜찮아요 당신이 내 곁에 있어줬잖아요.

그 천일동안 알고 있었나요 많이 웃고 또 많이 울던 당신을 항상
지켜주던 감사해 하던 너무 사랑했던 나를

보고 싶겠죠 천일이 훨씬 지난 후에라도 역시 그럴테죠
잊진 마요 우리 사랑 아름다운 이름들을

그 천일동안 힘들었었나요 혹시 내가 당신을 아프게 했었나요
용서해요 그랬다면 마지막일 거니까요

- <천일동안> 이승환 -



또다시 결의를 하고 있습니다

1,000일 만에 하루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서울역에서 새벽 5시 50분 기차를 타고 평택 쌍용자동차 앞에 갔다. 공장 정문 앞에서 아침 출근투쟁을 하기 위해 앰프 설치를 하고 있던 조합원들의 눈이 동그레진다. 공장 앞 쌍용자동차지부 거점에서 출근투쟁 준비를 마친 해고 노동자들이 한 명 두 명 나오기 시작한다. 각 문마다 인원을 나누어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홍보물을 배포 한다고 한다.

  평택 쌍용자동차

2월 15일 오전 7시 20분, 아침 출근 선전전이 시작된다. 정문 앞에 있는 조합원들이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쌍용자동차지부 홍보물을 나누어준다. 때로는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눈 인사만 건네기도 한다. 공장 앞에 통근버스가 도착하면 버스에서 내리는 노동자들에게 바로 배포하기도 한다. 2년 6개월 전까지 함께 일했던 이들인데, 누구는 공장으로 들어가고, 또 누구는 공장 밖에 남아야 한다.

77일 간의 투쟁이 끝난 후, 공장 안에서는 관리자들의 감시가 심해지고, 노동강도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한때, 해고노동자들이 아침에 선전물 배포를 하면 관리자가 입구에 휴지통을 갖다놓고 버리게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많은 노동자들이 선전물을 들고 출근을 하고 있다. 현장 상황은 악화되는데, 현실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없는 것에 대한 답답함 때문일 거다.


“오늘은 2009년 기술연구소에 근무했던 민○○ 동지의 발인이 있는 날입니다. 또, 해고에 맞서 함께 살기 위해 총파업을 선언한지 1,000일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1,000일을 맞이하며 답답하면서도 또다시 결의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평택을 떠나 구 한나라당사 앞에서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2,646명이 전국의 영업소와 관공서 앞에서 동시다발 1인시위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서울사무소가 있는 역삼동 풍림빌딩 앞에서 조합원과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많은 동지들이 모여 촛불문화제를 진행할 것입니다.”

마이크를 잡은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이 코감기에 걸렸는지 발언을 하는데, 숨쉬기가 힘든 모양이다. 두 달 전 한 조합원이 감기에 걸렸는데,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함께 투쟁하는 많은 조합원들이 옮아버렸다 한다.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이 힘들어하자 옆에 있던 조합원이 마이크를 이어 받는다.


무덤덤한 어느 하루의 일상처럼 쌍용자동차지부 투쟁 1,000일 차 아침이 시작되고, 해고 노동자들의 하루도 시작된다. 오늘은 2009년 강제 희망퇴직 후에 당뇨합병증으로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난 기술연구소 민○○ 씨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민○○ 씨는 강제 퇴직 후에 일을 하지 못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강제퇴직으로 인한 스트레스 속에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날은 20번째의 죽음을 막아보고자 해고노동자들이 공장 앞에 한겨울에 희망텐트촌을 설치한지 71일 차가 되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해고노동자들은 투쟁 998일 차가 되던 날 21번째 죽음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강제 희망퇴직 후, 쌍용자동차에 장비교육을 위해 계약직으로 고용되었다가 또 다시 해고당한 뒤 우울증으로 고통 받다가 심장마비로 강○○ 조합원이 사망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날이었다.

발언자들은 오늘 전국의 쌍용차 영업소와 관공서 앞에서 예정된 2,646명 1인시위에 대해 사측이 ‘불매운동’ 운운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것이 쌍용차지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분노가 자발적으로 모여 정리해고 철회와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내용도 설명한다.

쌍용자동차는 우리가 다녀야 정상화 될 거에요

쌍용자동차지부 입구에 있는 투쟁 날짜판에 ‘투쟁 1000일 차’를 붙인 조합원을 어렵게 찾았다. 조합원들은 오래전부터 있어온 날짜판에 날짜를 붙이는 이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다. 수백일 동안 하루하루 날짜를 바꾸어 온 이는 2009년 당시 15년 동안 근무해온 쌍용자동차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파업투쟁에 참여했던 김상구 씨였다. 나는 아쉽게도 그가 1,000일을 붙이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다. 그는 자정이 지나자마자 1,000일을 붙였다고 했다.


“잊어버릴 까봐요...”
김상구 조합원은 이미 한 달 전에 1,000일까지 출력을 해두었다고 했다. 그 전에 해결되면 좋겠지만, 1,000일은 상징적인 날이니까 일단 뽑아두었단다. 거점 안 화이트보드에 적혀있는 ‘쌍차투쟁 1000일 차’도 그가 적은 것이라 한다. 신기하게도 어느 사업장에 가든 김상구 씨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이들이 꼭 있다. 다른 조합원들 역시 바로 눈 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중한 일들을 하고 있을 거다.

“결국은 천일이 왔구나. 이제 3자리에서 4자리로 바뀌는구나.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죠 뭐...”
샤시 조립 일을 했다는 김상구 씨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2009년 당시, 직장에게 전화로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말을 듣고, 억울하고, 열도 받아 파업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하다보면 지치죠. 짜증도 나고... 그래도 하루하루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지금 공장 안에서도 힘드니까 우리가 잘 해서 들어가서 현장이 복원될 수 있도록 해야죠. 쌍용자동차는 우리가 다녀야 정상화 될 거에요.”

파업 당시 와보지도 못하고, 전화로 많은 걱정을 하던 전남 보성에 계신 부모님들은 내려와서 집근처 작은 회사라도 다니라고 하는데, 그는 더 버텨보고 싶다고 한다. 최근에는 ‘쌍용자동차 희망텐트촌 3차 포위투쟁’을 앞두고, 전국 순회투쟁에 참여하면서 영동 유성기업지회,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STX조선, 전북고속, 안산 시그네틱스 등의 사업장을 순회하며 자신들보다 더 힘든 투쟁사업장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함께 먹는 것도 투쟁

출근투쟁을 마치고 거점에 들어오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육개장이 준비되어 있다. 포위의 날 행사 때, 천인분의 곰탕과 김치찌개로 유명해진 ‘희망텐트촌 쉐프’ 신동기 조합원이 준비한 것이다. 3차 포위 행사 때 쓰고 남아있던 재료로 만들었다 하는데, 노란 양은 대접에 담긴 것이 여간 맛있어 보이는 게 아니다. 김치와 무채 반찬까지 곁들여지니 정말 황송한 아침식사다.


“사람한테 가장 중요한 게 의식주잖아요. 제가 그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는 셈이죠. 음식을 하면 동지들이 같이 먹을 수 있잖아요. 함께 먹는 것도 투쟁이라고 생각해요. 주요 메뉴요? 지역에서 희망김장을 해서 김치 3백포기가 왔어요. 그래서 김치를 활용할 수 있는 걸 주로 해요.”

신동기 조합원은 비해고자의 신분으로 77일 파업에 참여했다. 회사가 아무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파업에 참여했다. 신동기 조합원은 파업 이후, 폭력행위 가담 등의 사유로 2009년 12월에 해고되었다. 사측은 아내의 가족대책위원회 활동까지 들먹였다 한다. 그는 당시 열렸던 징계위원회를 ‘마녀사냥’이라고 표현했다. 부당해고 소송은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승소하고, 현재 고법에 계류중이다. 작년 이맘때쯤, 신 조합원은 생계를 위한 취업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떠나지 못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부모님께 돈을 빌리고, 아이들의 보험을 해약하면서 투쟁 대오에 남는 것이었다. 신동기 쉐프는 꾸준하게 관심 갖고 와주는 분들을 볼 때, 행복하다고 한다. 반면, 자신들이 아픈 것을 보면서도 무관심하거나 못 본 척 하는 사람들을 볼 때, 가슴이 아프고 괴롭단다. 육개장 국물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하다. 조합원들이 서로 밥을 챙겨주고, 이야기 나누며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장기투쟁을 안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전 11시에는 여의도 새누리당(구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쌍용자동차 문제에 대한 새누리당의 해법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기자회견 후에 대표단을 구성하여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면담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사전 면담 요청 공문 발송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의 출입 방해와 연행 위협 속에서 면담은 성사되지 못하고, 요구서한을 불태우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마무리 했다.


이날 저녁 7시 쌍용자동차 서울사무소가 있는 역삼동 풍림빌딩 앞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동자, 시민이 모여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염원하는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5월 22일 날 비올 때, 옥쇄파업 하러 남편이 배낭을 메고 들어가고, 천 번을 잤습니다. 그 사이 일상은 파괴되고, 관계는 너덜너널해졌습니다. 장기투쟁을 안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연애 1,000일은 기념하는 것이지만, 이런 절망스런 1,000일이란 말은 가슴이 아픕니다. 자고나면 똑같은 내일 1,001일, 1,002일이 안됐으면 좋겠습니다.”

  쌍용자동차 서울사무소 앞 천일 문화제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권지영 대표는 이 건물 안에 마힌드라가 있다고 하는데, 이제는 회사가 답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권대표는 2014년에 들어오게 할까 말까와 같은 말 하지 말고, 해고 노동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회사가 답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1,000일 동안 힘든 고생을 함께 해준 연대동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1,000일을 결의하는데, 할 게 없더라고요

“<천일동안> 노래라도 부르실 줄 알았는데...”
사회를 보던 쌍용자동차지부 고동민 조합원이 마이크를 넘겨 받으며 울먹인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울보’다. 시종일관 재치 있는 사회로 청중들을 즐겁게 해주던 고동민 씨의 눈에 오늘도 예외 없이 시시때때로 눈물이 고이곤 한다. 그는 투쟁 1,000일을 앞두고 삭발을 했다.

“1,000일을 결의하는데, 할 게 없더라고요... 현장으로 돌아가자고 하는데, 우린 할 게 없고... 무기력한 것 같고...”
내가 삭발한 고동민 씨의 삭발에 관심을 보이자 그는 옆에 있는 다른 조합원들이 마음이 쓰이는지 “제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나 봐요...” 하며 멋쩍어한다.

3주 전, 투쟁 1,500일을 맞이했던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지부장은 “투쟁 1,000일은 기념하거나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1,000일 안에 투쟁을 마무리 짓지 못해 또 다시 투쟁을 결의하는 첫걸음”이라고 이야기 했다. 쌍용자동차지부 김정우 지부장은 박준 가수와 함께 <맹박이의 공화국>을 불러 흥을 돋우기도 했다.


두 시간이 넘는 문화제가 끝난 후에 참가자들은 들고 있던 촛불로 ‘정리해고 철회’ 구호를 만들고, 조합원들을 따뜻한 포옹으로 격려했다. 이제 두 시간 후면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 김상구 조합원이 새로 뽑은 ‘투쟁 1,001일차’를 붙이러 나올 거다. 7시간이 더 지나면 해고노동자들이 눈을 비비며 정리해고 철회와 원직복직 요구가 담겨 있는 피켓을 들고 나와 투쟁 1,001일차를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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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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