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가는 길

[조성웅의 식물성투쟁의지](5)

선유도 가는 길
- 하이닉스 직권조인 합의서 폐기를 위한 항의농성은 “돈이냐 깃발이냐”, 노동조합관료제에 대한 작지만 근본적인 질문이다.



토요일 오후

이제 노동운동도 주말에는 집회조차 잘 조직되지 않고
뭘 해도 되는 일 없는 나날들입니다
금속노조 상근간부들이 모두 퇴근하고 텅 빈
하이닉스 직권조인 합의서 폐기를 위한 금속노조 항의농성장
“더 이상 기만하지 마라 배신하지 마라”
이 외침 하나가, 이 작고 초라한 자리가
당장 거대한 물결을 이루리라 과신하지 않습니다

비록 희망에 지쳤으나 젖 먹던 힘을 다해 항의하고 저항하는 것
난 눈물 뒤의 독기 오른 눈빛들을 사랑했습니다
가쁜 호흡, 타는 심장은 내란의 총성을 닮아갑니다

“우리도 돈 몇 푼으로 원직복직 포기하고
민주노조 깃발을 내리란 말이냐“
하이텍 알씨디 코리아 지회 김혜진 동지와 정은주 동지가
지지 방문을 왔습니다

타는 심장 타는 분노
속속들이 빼닮은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같은 동지들입니다

저물녘 쪽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빛의 먼 곳까지 갔던 시간들이
저녁밥상 같은 풍성한 대화를 품고 오는 풍경을 보고 싶었습니다
하이텍 동지들과 함께 걷습니다
서로 다른 보폭들이 함께 어우러져 가는
선유도행입니다.

우리 비록 강철은 아니어도 동지가 있어 다 괜찮습니다
우울증을 수반한 만성 적응장애*의 나날들
타협했다면 얻지 못할 생애 가장 치열했던 투쟁의 기록입니다

저물녘은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자주빛 저녁노을처럼 조용히 손을 뻗어
내란의 총성을 알리는 가쁜 호흡, 타는 심장 소리를 들을 겁니다
지더라도 무릎 꿇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는 만성 적응장애 환자들입니다
우리는 노동조합 관료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만성 적응장애 환자들입니다
그래요 우리 비록 강철은 아니어도 동지가 있어 다 괜찮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같은 투사들, 봉기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같은 투사들, 혁명입니다 (2007년8월4일)


* 하이텍 알씨디 코리아 지회 간부와 13명의 조합원 동지들은 하이텍 자본의 잔인하고 무자비한 노조 탄압으로 인해 2005년 “우울증을 수반한 만성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 하이텍 동지들은 업무상 재해 인정을 위해, 해고자 원직 복직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노숙농성, 목숨을 건 집단단식 투쟁과 고공농성 투쟁을 조직했다. 비록 지금 당장 이기지 못했지만 지난 6년간 탄압과 병마와 고립 속에서도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투쟁해오고 있다. 하이텍 동지들은 하이닉스 직권조인 합의서 폐기투쟁에 가장 먼저 달려온 동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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