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가 빠지고 피해자끼리 상대적 가해자를 찾기 시작합니다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54) 투쟁 1000일 즈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심리치유상담

나 하나 죽으면 해결되지 않을까?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해졌어요. 다음은 내가 아닐까? 내가 힘드니까... 차라리 (돌아가신 걸)모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우리가 천일 동안 투쟁을 했지만,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잖아요. 하면 모하냐. 사람이 죽어가 는데... 수요일 날 천일 집회 때, 처음으로 평택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3차 버스(쌍용자동차 3차 포위 투쟁)때랑 천일집회 때 연대동지들이 많아 왔더라고요. 천일집회 때는 추운날씨에 시간을 끌어 미안했는데, 많이 와주어서 고맙더라고요. 뭔일이든 빠지면 안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죽을 마음을 가졌었어요. 나 하나 죽으면... 정문 앞에서 “나와라” 휘발유 뿌리고, 유서 쓰고... 나 하나 죽으면 해결되지 않을까? 지난 주엔 힘드니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저는 어느 한순간부터... 저번 주도 그렇고 아무 생각이 없어요. 3차 포위의 날에는 연대동지들이 도로를 걸어오는데, 설레더라고요. 그리고는 아무 생각이 없더라고요. 금속 위주로 한 희망버스였는데,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것 같고, 해고자들 바람만 넣고 가는 것 같더라고요. 예전에는 돌아가셨다는 얘기 들으면 가슴이 곽 막혔는데, 이제는 ‘1명 또 죽었구나...’ 이번에 가족여행을 갔다 왔는데, 가족들과 재밌게 노는 게 아니라 갔다 오면 한동안 와이프가 바가지 긁지 않겠구나... 제가 이상하게 변해가는 것 같아요. 그냥 가는 것 같아요.”


대상이 좁아지는 게 무서워요

쌍용자동차 투쟁 1,000일에서 며칠이 더 지난 주말 오전, 평택에 위치한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공간 ‘와락’에 갔다. 입구에는 어른 신발과 아이 신발이 한 가득이다. 아이들은 노는데 여념이 없고, 그 옆에 있는 주방에서는 가족대책위 회원들이 점심식사로 콩나물밥을 준비하고 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해고노동자들이 심리치유를 위한 상담을 한다. 집안일과 건강문제로 참여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작년 봄에 시작한 집단치유상담은 어느새 4기에 접어들었다. 오랜만에 갔지만, 여전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아파하고 있었고, 여전히 정혜신 박사의 근황을 묻는 질문으로 마음 열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요즘은 사람들 못하는 게 눈에 보여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은 그런 게 많이 보여요. 옆에 사람 못하는 거... 가끔 무서워요. 내가 진짜 살아가는 건지, 뭔 의미로 살아가는 건지... 사람들이 나눠져 있어요.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고, 안하는 사람은 안하고. 그게 화가 나요. 관두지도 못해요. 어디 가면 지부가 생각나서 다음날 와요...... 나도 안하는 동지들처럼 해도 되는데, 왜 하나? 집에 가버릴까?”

“이 얘기하는데, 왜 눈물이 나요?”
“요즘 사소한 얘기를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애요.”
“대상이 바뀌어요. 나쁜 놈이 사측 관리자에서 우리 쪽 대상으로 좁혀져요. 대상이 좁아지는 게 무서워요.”

“제가 설명을 드릴게요.”
해고 노동자들 이야기를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정혜신 박사가 조용히 말을 뗀다.


공유하고, 공감하는 게 중요합니다

“전부 그런 느낌이 있는데, 집단적으로 겪는 어려움이죠. 전쟁과 같은 폭력을 겪고 난 후에 여러분에게 나타나는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외부 국가나 공권력과 같이 대항할 수 없는 폭력은 집행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초토화시키고 빠져나가 버립니다. 분노가 생기겠죠. 국가, 이명박, 경찰청장, 특공대 죽일 놈, 이유일 나쁜 놈. 하지만, 국가는 힘은 막강하지만, 실체가 모호합니다. 화를 낼 대상이 모호해 지는 거죠. 이렇게 가해자가 빠지고, 여러분만 남으면서 피해자끼리 상대적 가해자를 찾기 시작하는 겁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는 거죠. 그렇게 주변 사람한테 원한을 품기 때문에 주변관계가 파괴되고, 그것 때문에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안보면 그만이지만, 동료나 자신을 이해 못하는 아내에게는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씨가 무섭다고 했는데, 그건 ○○씨 탓이 아닙니다. 내 문제가 아니라 집단이 겪는 문제인 거죠. 서로 비난하고 공격하면 같이 붕괴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이것이 공통으로 겪는 심리 현상이라는 걸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게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너무 정상입니다. 옆에 있는 또 다른 나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을 갖고, 가엽게 봐주어야 합니다. 본성과 다르게 되는 나를 탓하지 말고, 가엽게... ‘쟤도 그래서 그런 거구나.’ 가엽게 봐주면 좋겠습니다. “참아라, 인내해라”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끼리 공유하고, 공감하는 게 중요합니다.”

정혜신 박사는 영문도 모르고, ‘간첩’으로 몰려 모진 고문을 당하고, 10~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던 ‘진실의 힘’ 회원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 분들에게 고문경찰이나 수사관, 공안검사보다 더 원한에 사무쳤던 대상이 자신의 아이를 돌보지 않았던 형수나 자신이 그렇게 되고나자 아는 체도 하지 않던 친구나 이웃이었다는 거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너 그 집 가면 빨갱이”라고 해서 피해 다닌 거였다고 한다. 해고노동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 속의 응어리 꺼내놓기를 계속 한다.

연대동지들이 더 반가운 이유와 심리적인 거리 조절

“집회나 문화제에 가면 연대동지들이 반가워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그런 건지, 내부문제를 탈피할 수 있어서인지... 연대동지들은 되게 반가운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하기도 싫어요. 연대동지는 고맙고 감사한데, 지부는 나쁜 점만 보여요. 기륭도 가고 재능도 가봤는데, 우린 배부른 투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재능은 여성동지들이 전기도 없고, 바람도 센데, 천막생활을 하잖아요. 그런 동지들을 보면 우린 회사 앞에 거점이 있으니 행복한 투쟁을 하는 게 아닌가...”

‘적보다 동지가 더 밉고, 힘들다’ 장기투쟁 하는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다. 여기서 말하는 ‘동지’는 같은 단위 사업장 노동조합에 속해있는 동료일 수도 있고, 상급단위 활동가일 수도 있다. 어디 투쟁 뿐이겠나.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비슷한 힘겨움이 있을 거다. 고단한 투쟁 속에 겪는 그런 힘겨움을 나라면 이겨내지 못했을 것 같다. 이들 해고노동자들이 그 힘겨움을 감수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 그저 자신들이 일하던 공장으로 돌아가는 소박한 것임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여기에 대해 정혜신 박사는 “연대동지들과는 좋은 것만 같이 공유해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연대동지는 반갑고 고맙기만 한데,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건 당연한 거에요. 그건 심리적 거리 때문에 그래요. 연대동지와의 관계는 좋은 점점에서만 만납니다. 하지만, (안에 있는) 동지들 간의 관계는 굉장히 가깝습니다. 대인관계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면 심리적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해요. 너무 가까우면 도리가 없어요. 투쟁을 오랫동안 마음 상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고 하려면 거리가 중요합니다. 거리조절 잘 하는 게 여러분들의 숙제입니다.”


훼손된 그 사람의 삶은 복원되지 않아요

정혜신 박사는 ‘배부른 투쟁’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조합원들의 ‘배부른 투쟁론’은 단순히 타 사업장과 비교했을 때, 자신들의 투쟁 조건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와 갈등에 대한 고민을 의미 하는 것이다.

“지금 노동운동 현장이 너무 험하고, 비정상적으로 열악한 곳이 많아요. 투쟁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자기를 훼손하지 않고 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기를 훼손하면 악다구니만 남아 복직해도 그 과정에서 훼손된 그 사람의 삶은 복원되지 않아요. 좋은 날이 와도 그것을 영위할 수도, 누릴 수도 없도록 다 망가지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뭐 때문에 투쟁을 합니까? 희망텐트, 한겨울에 나와서 자는 방식. 이걸 버틴 분이 있죠. 못 버틴 분은 죄책감을 갖고, 집에 가는 사람도 죄책감을 갖게 되죠. 또, 밖에서 자는 사람은 거점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분노하게 되고요.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여러분들이 럭셔리한 투쟁 하는 줄 알겠어요. 저는 거점에 와보고 가슴이 아팠어요. 그곳에 아이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의사들 농담에 이런 게 있어요. ‘수술은 잘 끝났는데, 환자는 죽었다’ 우리 투쟁이 이겨도 사람이 죽거나 파괴되면 의미가 없어요. 존중받고, 훼손당하지 않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런 게 아니면 떠나고 싶은 느낌만 남아요. 여러분은 사람이지, 투쟁하는 기계가 아니에요. 저는 여러분들이 존중받으면서 배부른 투쟁을 했으면 좋겠어요.”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은 고민이 많다. 방금 전에 쓴 물건을 찾지 못해 쩔쩔매거나 몇 번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한다. 정혜신 박사는 이 역시 해결되지 않은 스트레스 레벨이 전체적으로 높은 쌍용자동차지부의 집단적 문제라고 이야기 한다. 해소되지 않은 스트레스가 계속 누적되면서 정신적 에너지를 갉아먹고, 누수 되듯이 이들의 에너지가 계속 빠져나간다는 거다. 보통 사람이 10개의 정신 에너지로 기억하고 일을 하고 집중을 한다면, 이들의 경우 7개 정도가 어딘가로 누수 된다. 이들에게는 늘 해결되지 않은 스트레스가 안에 있기 때문에 3~4개의 에너지로 일상을 한다. 따라서, 집이나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실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적고, 집단갈등도 많이 발생한다는 거다. 정 박사는 서로에게 여백을 허용하면서 가는 구조가 되어야 사람이 훼손당하지 않고, 사람이 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정혜신 박사는 다른 때와 달리 많은 설명을 한다.

함께 살자고, 정리해고 철회하라고 외치며 투쟁을 시작한지 1,000일이 넘었다. 여기에 함께 하다가 거리로 쫓겨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아직도 많이 아프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아플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함께 살자’는 소박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투쟁하고, 주말에는 심리상담을 받으며 아픈 마음을 추스르고, 내일을 준비한다.

“여기에서는 그냥 떠오르는 말을 하면 됩니다. 중요한 말이 반드시 떠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편하게 다음 주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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