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채무위기 3년, 과연 누가 승리하였나?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2) 끝나지 않은 유럽채무위기

금주의 시사경제읽기 시간에는 얼마 전 국채교환프로그램을 완료한 그리스 채무위기를 중심으로 이후 유럽채무위기의 전망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주 민간채권단의 참여여부를 둘러싸고 한참 내홍을 겪었던 그리스 국채교환프로그램이 일단락 되었습니다. 무질서한 디폴트를 막고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이라고 할까요. 여러 기관들에서 디폴트 발생시 엄청난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더니만, 결국 2/3 이상의 동의로 나머지 국채보유자들을 강제로 교환프로그램에 참여도록 하는 조항까지 발동하여 급한 불은 껐습니다. 자발적 참여를 거부한 일부 민간채권단의 경우 일종의 채권보험금인 CDS 보상을 19일쯤 받게 될 듯한데, 그 규모는 대략 32억 달러 정도라 알려져 있습니다.

새로운 등장한 갈등과 지속되는 경고

그런데 이렇게 한고비 넘긴 그리스문제에 대한 합의 이후 새로운 갈등과 경고가 등장했습니다. 스페인이 GDP 대비 4.4%의 재정적자 비율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 선언하고, 5.8%로 높일 것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포르투갈의 경우 10년물 국채금리가 13%를 웃돌아 지속불가능한 상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유럽채무위기 문제는 선수만 바뀌었을 뿐, 네버엔딩 스토리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출처: 한국일보 기사 캡처]

사건 1
EU, 재정제재 잣대는 약소국에만 엄격 ‘빈축’ 이달 출범 신재정협약 스페인엔 예외 인정 특혜...경제규모 작은 헝가리엔 “계획 미흡” 밀어붙이기 (한국일보 2012.03.13)

사건 2
그리스 국채가격, 여전히 ‘심각’...국채 금리 여전히 11년 만기 18%, 30년 만기 13.4% 로 장단기 금리차 역전 (머니투데이 2012.03.13)

사건 3
“그리스 허리띠 더 졸라매라” 유로존, 구제금융 조건 추가 (경향신문 2012.02.12)
트로이카(IMF, EU, ECB) “그리스 추가 예산긴축 필요” (뉴스핌 2012.03.14)



하나씩 뜯어볼까요? 먼저 새로 교환된 그리스 국채에 대한 우려입니다.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다는 건 그만큼 그리스 채무위기에 대한 우려가 아직도 깊다는 걸 반증합니다. 이런 국채교환을 통해 시간을 번다 하더라도 그리스 자체의 지급불능의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이런 조치들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거죠. 그리스 3차 구제금융에 대한 논의가 벌써부터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스페인과 헝가리에 대한 차별적 대우입니다. 대마불사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스페인의 재정적자 비율 변경에 대해선 양보를 했던 EU가 약소국인 헝가리에 대해선 가차 없는 제제를 가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자 비율이 GDP의 3.6%이기에 그렇다는데 스페인이 5.8%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바와 비교하면 상당히 양호한 수치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소위 ‘3% 룰’이라는 것은 경제규모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한다는 말인가요? 이미 네덜란드 역시 GDP의 4.5% 로 유지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그토록 재정적자 비율 준수를 강조했던 독일 역시 작년 스스로 표방한 지출삼각 목표치의 42%에 그친 결과를 보인걸 보면, 이러한 재정협약이라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 없는 EU 중심국들만의 탁상공론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도 그리스에 대한 추가 긴축요구는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미 2월 중순 주권국가의 재정정책을 침범하는 제안마저도 나와 그리스 국민들의 감정이 폭발했었는데, 연금삭감, 최저임금 감축, 세금증액, 국유자산매각 등등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해서 긴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정부가 세금 증액과 국유 자산 매각을 빠르게 하지 못할 경우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요구했으며, 그리스에 빚 상환에만 쓰는 별도 계정을 마련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던 것이죠. 심지어 4월 그리스 총선에서 새로 집권하는 세력들이 이런 결정들을 뒤집지 못하도록 하게끔, 이들에게 서약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좌파세력들이 이런 긴축프로그램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힌 터라, 트로이카는 만약에 좌파가 집권할 경우를 대비해서, 이후 벌어질 모든 사태의 책임을 그리스 좌파와 민중들에게 전가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과연 재정적자 규정준수와 긴축재정만이 해답인가?

그러면 여기서 잠깐! 우리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봅시다. 과연 재정적자 규정준수만이 해답인가? 그리스는 빚을 갚기 위해 끊임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널리 퍼져있는 상식 중에 ‘자기가 진 빚은 자기가 갚는 것이다’ 라는 것이 있습니다. 남의 돈 끌어다 써놓고 못 갚겠다고 하는 건 뭔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자라는 것이 단순히 돈 빌려 줬으니 거기에 웃돈을 더 얹는 것이 아니라 못 갚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위험을 고려해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정말 못 갚을 사람이 돈 빌려달라고 하면 안빌려 주거나 아주 높은 이자를 쳐서 빌려주게 될 겁니다. 그러니 돈을 갚을 사람에게만 의무가 있는 게 아니라 빌려준 사람의 책임도 있는 것이죠. 더 나아가서 개인의 경우 파산을 하게 되면 법원에 의해 모든 부채를 탕감 받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들도 이러한데 하물며 국가는 어떻겠습니까? 국가가 빚을 낼 때 친한 친구한테 돈 좀 꿔달라 듯 친분을 매개로 그렇게 빌리지 않습니다. 채권시장을 통해서 적정이자율을 매겨서 자금을 조달합니다. 한쪽은 국가를 운영할 자금이 필요한 것이고, 한쪽은 돈을 불려보겠다는 투기적 동기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돈을 빌려주는 주체 역시 그 이자율을 보고 수익을 내기 위해 빌려준다는 것이죠. 이 둘의 밀고 당기는 조합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채권이자율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채권이자율에는 돈을 빌린 주체의 지급불능에 대한 리스크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미국 국채의 이자율이 가장 낮은 이유가 설명되는 것입니다. 채권보유자들 사이에 ‘설마 미국 정부가 망하겠어’ 라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죠. 반면에 채권이자율이 높은 것은 그 만큼 리스크가 크다는 것입니다. 높은 이자를 받는 대신 돈을 떼일 수도 있다는 거죠.

이제 눈치를 좀 채셨나요? 그리스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주체들은 그들이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적 ‘자산가치평가 모델’에 기반하여, 이미 높은 기대수익률과 그에 비례하는 리스크를 교환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예상치 못했던 그리스의 지급불능 사태에 대해서 그들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게 맞는 거죠. 이런 이들이 마치 선의로 돈을 빌려줬다 돈을 떼인 피해자인 양 불같은 화를 내는 것은 정말 보기 역겨운 가증스런 작태일 뿐입니다. 만약 탓할 것이라면 채권에 신용등급을 매겼던 신용평가사들을 탓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숫자놀음에 불과한 ‘자산가치평가 모델’ 자체를 탓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시장논리로 판매된 채권이니 그 실패를 시장의 실패로 돌려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왜 그리스 국민성이 그 책임의 핵심으로 제기되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므로 재정적자 준수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들먹이며, 사태 해결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긴축정책을 강요하는 것은 전혀 책임소재를 잘못 짚은 신자유주의적 이념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유럽채무위기 3년, 과연 누가 승리하였나?

2010년 5월 그리스 채무위기가 갑작스레 터진 이후 유럽채무위기는 국제면 기사를 장식하는 단골메뉴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항상 등장했던 것이 ‘S&P, 무디스, 피치’라는 3대 신용평가사들입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때 부실채권에 최상위등급을 남발하여 위기의 주범으로 꼽혔던 그들이죠. 언제부턴가 이들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국가들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며 신자유주의 금융질서의 새로운 수호신인 양 화려하게 컴백했습니다. 심지어 2011년 여름 미국의 신용등급마저도 강등시키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또 한번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이들의 그러한 행위의 적절성을 떠나서 이들이 노렸던 정치적 성과는 바로 금융질서를 살리기 위해 퍼부은 재정적자의 책임을 민중들에게 전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균형재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들의 신자유주의적 교리는 그들이 위험할 땐 잠시 꺼두었다가 위기가 걷히고 나니 다시 활활 타오르는 요상한 상황이 벌어진 거죠.

그러다 보니 그리스 채무위기에 대한 평가는 돈을 펑펑 갖다 쓴 그리스 국민들의 게으름으로 돌려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OECD 국가 중에서 한국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가장 긴 그리스 국민들이 게을러서 국가채무가 발생했다니요...! 더 나아가 남유럽 채무위기국가들의 복지병으로 그 책임을 몰고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보수언론에서도 이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면 안된다 라고 날마다 주창하고 있습니다.(OECD 국가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말이지요.) 심지어 월스트리트 저널 사설에서는 박재완 장관을 포퓰리즘에 취한 철없는 정치인들과 싸우는 장렬한 투사로 묘사하고도 있습니다. 별로 물적 교류가 없는 그리스의 채무위기문제를 두고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수장의 표정과 위상이 바뀌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심지어 그리스사태에 대해 별다른 정보나 생각이 없는 일반 국민들도 IMF위기 탈출시 우리가 했었던 금모으기운동을 그리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는 보수언론의 말에 적극 찬동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신용평가사들의 국가등급매기기의 공포로 인해, 유럽채무위기의 모든 책임은 그리스 민중의 어깨에 얹어졌고, 전 세계 매체들이 ‘세계경제회복에 민폐 좀 끼치지 말라’는 비아냥을 그리스 민중에게 퍼붓고 있는 형국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는 2012년 유럽채무위기로 깨끗하게 전이되었고, 위기의 책임도 금융헤게모니집단에서 채무위기국가의 ‘게으른’ 민중과 책임감 없는 정치인들로 전가되었습니다. 5년간 벌어진 위기국면에서 승리한 자는 바로 신용평가사들을 필두로 하는 금융헤게모니집단들입니다.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도 작금의 금융위기는 언제 어디선가 예상치 못하게 출몰할 근본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앞서 언급한 채권보유자들의 리스크라는 것은 긍극적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처: 뉴스핌 기사 캡처]

사건 4
IIF(국제금융연합회) 회장 “이탈리아, 그리스식 따라가선 안돼” (뉴스핌 2012.03.12)

사건 5
그리스 긴장시킨 ‘CDS 스와프 후폭풍’ (파이낼셜 뉴스 2012.03.11)



그리스의 국채교환프로그램이 훌륭히 수행한 날 다음 바로 언급된 주목할 뉴스는 국채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질서의 혼란과 규율에 대한 언급입니다. 부도난 채권에 대한 보험금인 ‘CDS 보험금’ 지급이 19일 쯤 이뤄질 것이라 앞서 언급했었는데, 바로 이 ‘CDS 보험금’을 둘러싼 갈등이 금융헤게모니 집단들의 이해관계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이죠. 2월초 그리스 국채교환에 대해서 ‘CDS 보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가, 3월 국채교환프로그램이 진행된 후 다시 자발적인 참여를 거부한 민간채권자들의 채권에 대해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오락가락 한 것은 그리스의 디폴트라는 급한 불은 꺼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마지막 보루인 채권시장의 금융질서를 무너뜨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CDS 보험증서’가 이런 지급불능의 상황에 직면해서 정작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야말로 채권시장의 대혼란이 예견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들도 채권시장의 불안정성과 리스크를 더욱 증대시킬 이런 결정을 할 순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강조하는 것은 이번 국채교환프로그램은 그리스만으로 끝내야 한다는 소망(?)입니다. 계속 국채금리가 치솟고 있는 포르투갈이나 장기침체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는 스페인, 엄청난 채권만기가 도래할 이탈리아의 상황을 볼 때, 채권보유자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채탕감과 같이 채권보유자들의 손실을 일으키는 방안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과연 그들을 소망대로 그렇게 될까요? 이미 채권을 들고 있는 것 자체가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신봉하는 ‘자산가치평가 모델’에 기반하여 정확히(?) 계산된 부도 수치인거죠. 더 이상 국채교환프로그램이 잘 수행되었느니, 구제금융이 승인되었느니 하는 뉴스에 우리의 시선을 빼앗겨선 안 됩니다. 위기의 본질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위기는 곧 계급투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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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 경제위기 , 국가채무 , 채무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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