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에는 이유가 없다1)

[식물성 투쟁의지](11)

점심을 먹고 있는데
울산과학대 교직원 노동조합 구사대들이 들이 닥쳤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는데
이놈의 새끼들은 밥그릇을 걷어차고
신문지 밥상을 완전히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우리 선이 동지 교직원 노동조합 구사대들에 의해
구두 뒷굽에 발등이 짓이겨지고
고통 보다 더 서럽게 악에 바쳐 싸우다가
그래도 입원 하루 만에 씩씩하게 농성장으로 돌아왔는데
울산연대노조 환갑 가까운 일명 ‘조 오빠야’ 동지가
농성장을 방문했다

‘우리 선이 싸우다가 다쳤는데 오빠야가 오늘 회 한 점 사주꾸마’
울산과학대 지하 농성장에 빙 둘러 앉아 회에다 술 한 잔 하다가
우리 선이 동지 고맙다고
내가 노조 하고 나서 조 오빠야 만나고
고맙다고 하다가
그만 북받쳤는데

울다가 웃다가
옆에 있던 순남 동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이 뻘게 졌는데
‘형아 니도 울어뿌라 마’
순남 동지 선이 동지를 따라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벌써부터 가슴 붉게 물든 순자 지부장 동지도 그예 울음을 터뜨리고
이심전심
연대해줘서 고맙고 고생시켜서 미안하고 또 그렇게 서럽다고
북받쳐 웃다가 울다가
눈물처럼 둥글고 짜고 따뜻한 그리고 독한
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눈물로 빚어진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한 때,
연대에는 이유가 없다 (2007년3월19일)


[출처: 울산노동뉴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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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대공장 사내하청 내부투쟁 과정에서 대화하는 법을 놓치고 웃음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난 맛나는 음식 속에 배여 있는 동지들에 대한 속 깊은 배려가 수다에 가까운 즐거운 대화와 깔깔깔 시냇물처럼 온 몸을 흐르는 웃음이 구사대들의 폭력 보다 강하다는 걸 울산과학대 미화원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처음 알았다.

그렇게 미화원 노동자들의 활력은 지침이 없어도 봄 쑥 돋아나듯 연대를 이끌고 그 신명 속에서 시와 노래와 몸짓이 투쟁 공간에서 바로 창작됐다. 순식간에 폭력은 우스꽝스러워졌다. 이 세상에 없었던 언어와 음계와 율동이 생산되고 웃음으로 향유했던 울산과학대 투쟁, 난 이 곳에서부터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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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학대 , 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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