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언제나 우리 곁에...사회전환의 주체도 그러했다

[신간안내] 진보평론, 51호(2012년 봄호, 메이데이)

이번 51호 특집은 ‘자본주의의 위기, 진보의 재구성에서 사회전환으로’라는 제목 아래 현재 목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의 위기의 양상과 근원을 따져보고 이 체제를 넘어설 정치적 주체에 대해서 살펴보는 글로 구성되어 있다. 언뜻 보기에 너무 식상한 주제로 보인다. 이미 사회주의 운동이 태동되기 시작했던 19세기부터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주장은 있어왔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위기’, ‘금융자본의 위기’, ‘화석연료체제의 위기’ 등이 일반화되면서, 위기는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렇듯 위기에 대한 담론들이 넘쳐나지만 뭔가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는 이야기들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있어왔던 이야기들을 반복하기 때문에 ‘위기’라는 단어만 보아도 ‘또 그렇고 그런 얘기겠군’이라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조건에 또 다시의 ‘위기’에 대한 특집을 잡은 것은 조금은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음을 밝히고 싶다.

체제전환 또는 사회전환의 주체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계급, 사회운동, 정당, 대항헤게모니 전략에 대한 무수한 ‘말’들이 있어왔지만 대부분 동어반복 또는 기존연구의 재조합 수준을 벗어나는 것은 실로 어려운 ‘도전’이다. 그러니 ‘위기’에 덧붙여 ‘전환’과 ‘주체’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는 과제는 버거울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진보평론이 또 한 번의 동어반복의 위험을 무릅쓰고 위기와 전환을 특집으로 삼은 이유는 이것이 비판적인 지식인이 내려놓을 수 없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막중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얻어맞고 비판받더라고, 새로운 것이 없다고 지탄받더라고 누군가는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주제인 것이다. 이는 우리 주장의 빈약함을 가리기 위한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변명이 아니라 진보평론이 여전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으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특집에 실린 글들은 논문의 형식을 갖춘 것도 있지만 조금 더 쉽게 읽힐 수 있는 에세이식의 글과 질의응답 형식의 글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특집주제인 ‘위기’, ‘운동’, ‘주체’에 대해 생각해보는 다소 긴 대담이 실려 있다.

먼저 김정주의 ‘신자유주의의 파산과 세계경제의 위기’는 자본의 축적 위기를 노동의 탄압에 기초한 기업의 이윤율 상승전략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경로와 파탄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체제는 수요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체제였다는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거품경제가 지탱될 수 있었던 것은 달러헤게모니와 이에 공조하는 중국, 일본, 한국 등의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이해관계의 일치였다는 것이 주장이다. 이제 이러한 체제의 바닥이 보이고 있다.

김정주의 논문은 일반논문으로 투고된 신희영의 ‘미국경제위기와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그리고 미국경제학계의 동향’과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신희영은 주류경제학의 현실설명에서의 무력함을 보여주고 마르크스주의-스라파적인 비판적 경제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스라파주의 또는 신리카도주의자들 사이의 기나긴 논쟁을 생각하면 이렇게 묶는 것에 대한 좀 더 신중한 이론적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더불어 ‘국제’란에 실린 문이얼의 ‘페르시아(아라비아)만에서의 미국과 이란간의 긴장고자’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핵개발을 둘러싼 갈등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긴장은 결국 달러-석유 체제를 방어하려는 미국과 이에 맞서는 유럽과 중국, 러시아 등의 이해관계의 갈등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문이얼의 핵심주장이다. 아마도 이번호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데이비드 맥낼리의 『글로벌 슬럼프』에 대한 서평인 ‘위기와 저항의 글로벌 정치경제 이야기’도 함께 묶어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이 네 개의 글을 묶어서 읽어보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위기의 큰 그림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특집에 실려 있는 두 번째 글은 김윤철의 ‘사회의 전환과 새로운 주체의 발견에 대한 단상’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해왔던 좌파전략의 틀을 뛰어넘는 주장을 하면서도 ‘비판’의 힘을 잃지 않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노동자계급과 정당에 기초한 전략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지만 계급과 정당을 중심에 놓는 전략의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사회전환의 주체는 재구성되기보다는 현재 존재하는 ‘인간의 위기’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아주 간단하지만,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정치의 정상화를 주장하는 일군의 사람들과 계급정치의 복원을 핵심과제로 생각하는 동지들과의 논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논쟁보다는 생산적인 논쟁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래본다.

서영표의 ‘사회주의, 생태주의, 민주주의’는 김윤철의 주장과 상당부분 공명하고 있다. 김윤철의 표현을 빌자면 사회전환의 주체는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영표의 글은 생태적 복지와 구체적 삶의 정치를 통해 새로운 운동의 주체를 논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간의 의견차이도 있다. 김윤철이 노동조합과 정당, 특히 정당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면 서영표는 여전히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사회전환의 주체가 ‘발견’되는 계기로서의 소비문제와 지역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여기에서 노동조합운동과 정당운동이 해야 할 몫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당정치의 정상화를 주장하거나 계급정치의 복원을 주장하는 입장과 비교하면 차이보다 공통분모가 커 보인다.

서영표의 글은 부분적으로 농업문제, 유기농, 식품안전성을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은 정세란에 실린 장경호의 ‘먹거리 위기, 패러다임의 전환은 필수적이다’와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지역, 생태, 민주주의의 과제, 그리고 그것을 통한 거대자본에의 저항이 두 글의 공통주장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일반논문으로 게재된 윤수종의 ‘8.15 이후의 농민운동의 전개’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윤수종 논문 마지막 부분은 유기농업, 생활협동조합운동, 농촌마을공동체운동을 농민운동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는바 앞의 글들, 특히 장경호의 글과 공감하는 바가 커 보인다.

특집으로 묶인 세 개의 글에 담겨진 내용은 특집대담인 ‘자본주의위기와 격변하는 운동, 그리고 주체를 논하다’를 통해 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위기와 주체를 바라보는 계급주의적 관점과 탈계급주의적 관점, 그리고 이러한 두 개의 기둥 사이에서의 미묘한 차이들이 논쟁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쟁점은 드러났지만 그 쟁점으로부터 좀 더 진전된 전략구성의 문제까지는 나가지 못하는 지금까지의 한계를 아직은 넘어서지 못하지만 우리가 어떤 역사적 단계에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단계에 대해 우리는 어떤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데까지는 성공하고 있다. ‘차이의 확인’이 ‘차이의 고착’으로 머물지 않고 교감과 창조적 종합의 계기가 되리라 믿어 본다.

논의의 차원은 다르지만 특집에서 논의된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주의의 위기를 두 번째 일반논문인 이성민의 ‘맑스의 미학’과 결부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성민이 주장하는 부르주아적 숭고함이란 결국 화폐의 힘을 통해 추함을 추하지 않게 하는 논리인 것이다. 김윤철과 서영표가 지적했던 소비주의적 문화, 김정주가 분석했던 금융자본에 기댄 자본주의 체제는 곧 우리의 미학적 감각마저도 화폐라는 단일 기준으로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민이 맑스의 미학을 다시 끌어들이는 이유는 이러한 부르주아적 미적기준을 비판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일반논문은 윤삼호의 ‘한국 장애운동의 어제와 오늘’이다. 이 글은 한국 장애운동을 ‘장애-민중주의’와 ‘장애-당사자주의’로 구분해 살펴보고 있다. 윤삼호에 따르면 전자는 장애운동을 민중운동의 한 갈래로 생각하는 것이고 후자는 장애 문제에 대한 전문가의 개입에 저항하며 장애운동의 이론·실천·조직을 장애인 스스로 판단·결정·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애운동의 역사는 이 두 입장 사이에 대립으로 점철되어 있다. 저자는 이제는 양자 모두의 강점과 한계를 논하고 대립을 넘어선 종합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세란에는 앞에서 언급한 장경호의 글 이외에 두 개의 글이 실려 있다. 첫 번째는 재능교사노동자의 투쟁을 다루고 있는 엄진령의 ‘시선은 처음의 그곳에 두자. 그것이 방향을 밝히는 등불이다.’이다. 1,500일 넘는 재능교사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어떻게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자성’을 부정당해 왔는지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두 번째는 희망버스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 임천용의 ‘희망버스에서 희망발걸음까지’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김기원과 김세균을 주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좌파적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목 차

편집자의 글 자본주의의 위기와 인간의 위기, 그리고 사회적 이행의 필연성
특 집 자본주의 위기, 진보의 재구성에서 사회전환으로
* 신자유주의의 파산과 세계경제 위기김정주
* 사회의 ‘전환’과 새로운 주체의 ‘발견’에 관한 단상김윤철
* 사회주의, 생태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 삶의 정치로부터 사회주의정치로/ 서영표
대 담
* 자본주의 위기와 격변하는 운동, 그리고 주체를 논(論)하다/ 김정주 박승호 서영표 조정환 지주형
국 제 페르시아(아라비아)만에서의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 고조: 국제 통화 패권 다툼의 숨은 전장/ 문이얼
정 세
* 먹거리 위기, 패러다임의 전환은 필수적이다: 농업과 먹거리 정책의 방향전환/ 장경호
* 시선은 처음의 그 곳에 두자. 그것이 방향을 밝히는 등불이다: 재능교사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본 특수고용 노동권 투쟁의 의미와 과제/ 엄진령
* 희망버스에서 희망발걸음까지/ 임천용
일반논문
* 미국 경제 위기와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 그리고 미국 경제학계의 동향/ 신희영
* 맑스의 “미학”/ 이성민
* 8.15 이후 농민운동의 전개과정/ 윤수종
* 한국 장애운동의 어제와 오늘: 장애-민중주의와 장애-당사자주의를 중심으로/ 윤삼호

서 평 위기와 저항의 글로벌 정치경제 이야기(글로벌 슬럼프)/ 김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