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싸움의 자리가 치유의 자리일지니

[식물성 투쟁의지](25) 현대차 아산 성희롱 피해자 동지의 싸움을 지지하며

깔판을 깔고 거리에 앉아 보면 안다
애써 외면하려 해도 마음은 자꾸만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고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하나하나가 재난경보처럼 얼마나 가슴을 뛰게 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를!

“나는 억울하다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는 각오가
어떻게 끝내 거리를 베고 눕게 했는지를!

마음아 애타지 마라
                       서둘지도 마라

폭설 속에서도 현대자동차 경비들의 폭력에 타협하지 않았고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앞 비정규직의 핏빛으로 봄이 와도
인간이고 싶은 가장 소박하고 평등한 언어로 세상을 향해
첫 대화를 시작하였나니

난 그녀 곁에 오래도록 가만히 앉아주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곁에 있어주는 거지만
곁은 새로운 세계가 음악처럼 태어나는 시간이고
마침내 그녀의 여린 숨소리조차 들리도록 했다
그녀의 여린 숨소리를 따라 인간의 시간이 왔다

그녀가 베고 누운 이 거리는 때로
메실짱아찌, 군밤, 주먹밥, 부침, 배 한 조각이 곁들어진 따뜻한 밥상이기도 하다가
빙 둘러 안아 대안생리대를 만들면서 예쁜 천처럼 고운 공감을 뜨개질 하는 여성연대이기도 하다가
밤샘난장의 즐거움이기도 하다가 그녀 곁에 가만히 누워보는 철야농성장이기도 하다

철야농성장에서 가만히 누워 있으면
혹독한 일상의 내전을 거쳐 온 그녀의 굳은살 박인 손이
마침내 자신의 언어를 움켜쥐고 있다는 걸 피부는 느낀다
그녀의 언어는 참 많은 것들을 자신의 곁으로 초대하고 있었고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 도입되는 것은 없다 이미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그녀 곁은 꼭 작은 텃밭 같다
그 텃밭에서
여성노동자들과 여성주의가 뜨개질처럼 만나고
여성주의와 노동운동이 따뜻한 밥상처럼 어우러지고 있었다
위계와 차별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발랄하고 수다스런 대화가 싹트고 있었다

마음아 애타지 마라
                       회의하지도 마라

지금 이곳, 이 싸움의 거리가 치유의 자리일지니
함께 맞잡은 손과 손의 따뜻한 체온으로
우리는 지금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2011년9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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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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