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이다

[식물성 투쟁의지](27)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 1주년, 우리는 다른 세계를 꿈꾼다

짜른다 짜른다는 소리만 밥 먹듯이 들어 왔고
전화 한 통에 목숨이 날아갔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신차 나올 때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헐뜯고 싸웠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느 날 눈빛이 달라졌다

마주 잡은 동지들의 따뜻한 손이
새로운 생의 첫 시간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을 때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것들은 갑자기 사소해지기 시작했다

“노예계약서를 거부한다. 계약서를 체결하려면 정몽구가 직접 나서라”
가장 생활적인 것들이 가장 계급적인 요구였고
가장 계급적인 것들이 가장 대중적인 공감과 직접행동을 이끌었다
“지금 당장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
자본의 지불능력은 고려할 필요도 없었고 교섭의 절차나 기술은 아예 관심 밖이었다
인간적인 삶은 언제나 금지의 영토 속에서 자라는 대란 속에 있었다

아직도 가슴 떨리게 자랑스러웠던 일,
동성기업 노동자들은 신새벽 가차 없이 시트사업부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악몽처럼 불편했던 굴종과 체념을 뛰어넘자마자
이윤을 위한 생산이 중단되었고 명령이 중지되었다
“그래 한 번 제대로 붙어보자!
라인을 태워서라도 이번에 비정규직 인생 끝장내겠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들처럼 새로운 세계가 일어나고 있었다
동성기업 노동자들은 새벽 여명처럼 공장점거파업의 문을 열었다

우리는 현대자동차 1공장 CTS점거파업농성장에서 치떨리는 경쟁과 단절했다
CTS점거파업농성장 총회, 비거점파업농성장 총회는
한 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는 우리 자신의 정부였다
우리는 이 정부를 통해
명령의 시간을 인간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는 대화의 시간으로
통제가 지배했던 공간을 인간의 심장이 뛰는 협력과 합의의 공간으로 대체했다
누구나 손을 들어 발언했고 동지들의 발언은 짧고 명쾌했다
우리는 자본의 질서가 갑작스럽게 중단된 곳에서 군더더기 하나 없이 꿈의 방향을 이해했다
몸에 풀물 든 것처럼 우리 자신의 정부를 운영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당분간 이 힘들을 최대한 멀리 밀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언제나 투쟁의 파고가 정체되는 날이 위험하다
이 때 공포와 회유는 자본가계급의 가장 뛰어난 계획이 된다
;개량주의는 자본가계급의 가장 뛰어난 계획 중의 일부분이다
조합주의로는 조합주의를 비판할 수 없고 개량주의로는 개량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

자신의 투쟁을 대신할 줄 수 있는 것은 하늘 아래 어디에도 없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조금도 위계를 허용하지 않는 것
대화의 시간을 지속하면서 직접 결정하고 직접 행동하는 것
공장점거파업 속에서 등장한 자신의 정부를 굳건하게 사수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보다 직접적이고 더욱 결정적으로 자신을 새롭게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공장점거파업 속에서 태어났고 이 곳에서 다른 세계의 언어를 배운 새로운 사람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노동을 시작하는 일이고 웃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는 공장점거파업 속에서 태어났고 이 곳에서 다른 세계의 언어를 배운 새로운 사람들
우리는 공장점거파업 속에서 태어났고 이 곳에서 다른 세계의 언어를 배운 새로운 사람들 (2011년11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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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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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도 아닌 일개 작업장 점거에 뭔 신인간상에 노동자 정부까지... 비약이 심하시구만. 시라도 리얼리티가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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