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진달래가 만발한 시간에 미용실‘툴’에 간다

[식물성 투쟁의지](32)

난 진달래가 만발한 시간에 미용실 ‘툴’에 간다
루 선생은 인기가수 이효리의 머리까지 손 본 8년차 헤어디자이너다
하지만 그녀의 미용실엔 의자가 하나만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자리,
스스로를 가꿔 아름다워지기 위한 오직 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도구가 되겠다는 그녀
; 난 다수를 지도하려고만 했지 한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본 적이 있는가?
그녀는 날 다른 삶을 위한 자리에 때늦지 않게 초대하고 있었다

항상 스포츠머리에
현대중공업 작업복에 걸쳐 입은 하청노조 자주색조끼가 나의 패션이었다
적들은 노동자 풍의 범죄자 스타일, 전문시위꾼 리스트에 날 포함시켰지만
난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30대를 열사투쟁과 비정규직 투쟁의 거리에서 다 보냈다

머리를 기르고 파마를 하는 것은 참 어색한 일이었지만
루 선생은 한사코 날 격려해줬다
루선생이 디자인 한 매직볼륨은
내 표정을 한 결 부드럽게 했다
사십 무렵이었다

부드러운 것은 노사협조주의라고 착각한 때가 있었다
열사투쟁으로 열려진 비정규직 투쟁, 난 직선의 시간을 소망했다
어떻게든 투쟁을 직선으로 끌어올리려했지만
처음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부담스러운 것들은 순환 가능한 삶 쪽으로 열려지지 않았다
난 전투적이었지만 가부장적이었고
확고한 신념이 있었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힘이 없었다
어쩌면 난 그들을 대신해 싸웠는지도 모른다
뼈아픈 후회는 내장을 다 상하게 했다

사십 무렵,
난 스스로를 가꿔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이 다행스럽고
조금은 더 부드러워진 내 모습에 만족한다

직선의 시간은 자본의 시간이다
부드러워지지 않고서는 급진적일 수가 없었다
아름다워지지 않고서는 혁명적일 수가 없었다

난 내장이 다 상한 이후에야
한 사람의 자리를 마련할 줄 아는 그 마음이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이고
자신을 가꾸는 방법이라는 걸
차이 속에서 함께 춤추는 삶이 혁명의 뿌리라는 걸 안다
난 오늘도 진달래가 만발한 시간에 미용실 ‘툴’에 간다 (2012년8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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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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