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교수들의 알리바이와 강사법

[칼럼] 없어져야 할 것은 재정지원제한 대학 아닌 교육현장 비정규직

이번 학기 폐강 과목이 생겨 본부를 찾았다. 정규직 교수들은 수강인원이 3-4명이라도 수업을 폐강시키지 않았지만 수강 인원이 적은 비정규직 교수들의 수업은 가차 없이 폐강시킨 것이다. 이런 식이다. 우여곡절 끝에 폐강 과목을 복구시켰지만 오늘날 한국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수들은 온갖 수모를 다 당한다. 상시적인 차별이 횡행하는 곳이 대학이다.

따지고 보면 비정규직 교수는 옛날부터 있었다. 그 때 당시에는 시간강사였을 뿐이고 그 시간강사가 비정규직 교수였는지 몰랐을 뿐이다. 같은 과에서 수업을 하는 다른 교수들을 비정규직 교수로 생각하지 않고 시간강사로 생각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학생이나 정규직 교수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교수는 시간강사로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유령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이 고등교육 현장인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수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세로 명찰을 달고 노동하는 동안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들은 시급노동자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민교협에 이어 교수노조가 인권 사각지대로 변한 대학 현장에 관심을 가졌지만 정규직 교수 절대 다수는 대학 현장에 비정규직 교수들이 넘쳐나는 동안 사실상 아무 관심도 없었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만시지탄도 이런 만시지탄이 있을 수 없다. 비정규직 교수가 죽어 나가야 반짝 관심이 생겨날 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결하는데 정규직 교수들이 발 벗고 나선 적이 없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 정규직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정규직 교수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알리바이를 숨기는 행위일 뿐이다.

교과부가 8월 31일 대학 개학에 맞추어 시간강사법이 담긴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시간강사도 법정교원이 된다. 하지만 서류상 법정 교원일 뿐 시간강사는 대학들의 법정교원확보율에 악용되는 셈이다. 법정교원확보율을 지켜야 교과부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앞으로 대학은 법정교원확보율을 채우려고 별의별 짓을 다할 것이다. 취업률 높이려고 천태만상의 희한한 풍경이 벌어지는 곳이 대학이니 교과부의 강사법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 말만 그럴싸하게 법정교원일 뿐 시간강사는 여전히 시간강사일 뿐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주당 9시간 이상을 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주당 5시간 수업 밖에 못하던 비정규직 교수는 두 손 들고 기뻐할 일이다. 4시간 이상을 더할 수 있고 돈을 더 벌 수 있으니 말이다. 시간 당 5만 원이면 한 달에 80만 원을 더 벌 수 있다. 신난다!

[출처: 뉴스민]

그런데 9시간 이상을 수업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교수들은 어찌 되나? 9시간 이상을 하지 못해 법정교원이 되지 못하니 대학을 떠나야 한다. 그 알량하게 주당 세 네 시간 하던 비정규직 교수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된다. 법정교원이 아닌데 대학이 더 이상 고용할 이유가 없다. 9시간 이상을 채우려면 광주로 서울로 원주로 강의를 뛰어야 한다. 비정규직 교수들이 개도 아니고 빈껍데기 법정교원이 되고자 날품팔이를 전전해야 한다. 예전에 자의적으로 먹고 살려고 전국을 일주했지만 이제는 강사법에 의해 강제적으로 돌아다녀야 한다.

한 학기 끝나고 비정규직 교수들은 학생들에 의한 평가 점수가 70점이 넘지 못하면 해당 대학에서 잘린다. 이 굴욕감. 앞으로 9시간 이상 강의를 두고 비정규직 교수들 사이에서 벌어질 비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인 관계가 판 칠 것이다. 가뜩이나 같은 교수지만 정규직 교수 앞에서 어깨 피지 못하며 살아온 수치심을 은폐하고 과 정규직 교수들에게 더 잘 보여야 한다는 자괴감. 내가 9시간 이상 수업을 배당 받으려면 같은 과 누군가는 수업 배당을 받지 못해 대학을 나가야 한다. 이 무슨 비정규직 교수들 간의 비역질인가! 비정규직 교수들의 인격과 품격에 이토록 똥칠을 하는 교과부가 과연 ‘교육’과학기술부일 수 있는가.

그런데 문제는, 교과부-대학-정규직 교수들의 더러운 커넥션이다. 교과부는 시간강사 보호한다며 시간강사를 내치는 정신분열자이고 대학은 법정교원확보율을 채워 교과부에게 돈이나 더 받으려는 파렴치한 장사꾼이라 치자. 분노를 넘어 온 몸이 치 떨리도록 더러운 것은 비정규직 교수들을 몸종 부리듯 하며 똥 폼 잡는 대학의 정규직 교수들, 대학 안에서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정규직 교수들이다. 이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교수 직함을 악용하여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폴리페서들이거나 우아하게 선거판에 관여하는 정규직 교수들이다.

그리고 소위 민주적이라 자칭하는 정규직 교수들마저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 문제에는 아무 관심을 갖지 않고 세미나네 콜로키움이네 하며 폼만 잡는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같은 교수가 교수의 비정규직화에 무감한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가 별 건가. 아무 감정이 없는 게 사이코패스라면 비정규직 교수들의 무너진 감정에 무감한 채 학교 밖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도 사이코패스들이 하는 짓일 게다.

좀 지나치나? 그렇지 않다. 결코. 대학 안에 넘쳐나는 비정규직 교수들 문제에 대해 정규직 교수들이 같이 시위하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관심을 표명한 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옆에서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교수들의 문제보다 저 멀리 있는 사회의 민주화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교수다운 행동일까? 이건 알리바이다. 비정규직 교수들이 파업하는 동안 정규직 교수들은 혹시 김상곤 교육감 같은 사람 나온 자리에서 교육 얘기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정신착란이다. 비정규직 교수들은 세상살이 더럽고 멘붕 상태인데 뭐가 교육인가. 그런 교수들이 박근혜 반대하고 무상급식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똥폼 잡는 것이다.

말이 좀 거칠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지금 비정규직 교수 문제는 우아하게 얘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저 머리에 든 것이라곤 어떻게 하면 돈 좀 덜 쓰고 시간강사 써먹을까 고군분투하는 이 장사치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수 문제에 무감하다면 그건 정규직 교수들도 커넥션의 공범자라는 뜻이다. 그 커넥션의 공범자들이 어떻게 교수일 수 있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강사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교수들을 정규직화해야 한다. 교과부는 대학의 장사를 도와줄 생각만 하지 말고 강사법 같은 편법으로 교원의 정규직화를 피해가선 안 된다. 그렇다면 정작 나는? 나 스스로 존재의 알리바이를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을 떠나야 할까? 학교를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불쑥 고개를 내민다. 영어에 이어 취업이 절대자로 등극하고 교육이 말살된 이 곳에서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들은 모두 사라졌다. 목구멍에 포도청 신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내 모습에 스스로 절망할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다니는 대학에 정규직 비정규직 교수노조를 만들어야 할까? 그러나 망망대해에 혼자 헤엄치는 세상에서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할 수 없으니 높아가는 하늘만 쳐다본다. 또 비정규직 교수들이 목숨을 버리겠구나. 맑은 하늘 쳐다보자니 살이 떨린다.

정규직 교수들도 같이 나서서 장사판으로 변한 이 기막힌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 그 방법은 다 같이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이다. 파업이 그 한 방법이다. 민교협, 교수노조가 할 일이다. 후 폭풍 전략은 있어야 한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휴교한 경험이 있지 않았나. 대학의 민주화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고등교육 현장을 소수의 관료가 낭떠러지로 몰고 있는데 수세적인 집회만 반복하고 기자회견만 하고 있을 것인가? 교수들과 학생들이 손에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들어 비정규직이 판치는 세상을 교육 현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없애 비정규직 교수들을 퇴출시키고 강사 법으로 또 다시 수많은 가장들을 거리로 내몰 일이 아니다. 다 고용 문제다. 수많은 비정규직 교수들이 생계를 잃게 될 이 긴박한 시점에 대학 문제 해결한답시고 우아하게 공청회하고 세미나 할 때가 아니다. 중년에 이른 비정규직 교수들의 무너진 자존감이 회복되기는커녕 자꾸 먹칠만 되는데 도대체 무슨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그러나 절대 다수가 교육 현장의 비정규직화 쪽을 바라보지 않는다. 총장 직선제 등 교육 현장의 다양한 전선들이 있어서 문제는 복잡하지만 그것이 해법은 아니다. 총장 직선이 된다고 해서 교육 현장의 비정규직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교수, 비정규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투쟁에 정규직 교수, 학생이 동참하는 또 다른 투쟁은 영영 유토피아일 뿐인가. 이제껏 온갖 특권을 누려온 정규직 교수들이 그 특권을 내려 놓고 가장 적극적으로 반성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할 집단이지만 현장에서 할 일은 안 하고 대선후보 타령이니 갈 길이 멀어도 한참이나 아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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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 , 비정규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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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속이 다 시원하군요. 정규 교수들은 학교현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비민주적, 반인권적, 반노동적 행위들에 대해 눈감는다. 그리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이러쿵저러쿵..심저 선생 대우는 당연한 것이다. 다들 입쳐닫고 살길 바랄뿐이다.

  • 허허

    비정규직 교수를 전부 정규직화해야한다에서 할말을 잃었습니다. 대학에서 강의하신다는분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저렇게 비현실적이니 시간강사를 하신다는 말밖에 안나오는거군요. 시간강사는 강의말고 학교 행정업무, 연구 등 도 하시나요? 아니면 학생 지도업무, 취업상담 등 도 하시나요? 강의만 하시니 강의하신만큼 받으시는거지 않습니까? 조직생활, 사회생활 안해보시고 공부만 해보신분들이라 그런지 나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비정규교수

    '허허'님 글을 보고 한 말씀 드립니다.비정규직교수를 정규직화하는게 비현실적이라면 허허님은 비정규직철폐를 주장하시지 않는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법으로 정해놓은 정규직교수 수만 비정규직교수 중에서 뽑아 채워도 비정규직교수문제는 대부분 해결됩니다.최소 5만명 이상이 더 필요하니까요.비정규직교수 중 대다수는 시간강사지만 다른 이름을 가진분도 많습니다.비정규교수문제 해결은 이들까지 포함해서 사고해야 합니다.허허님은 잘 모르고 계셨나본데 대다수 시간강사도 연구합니다.저도 시간강사지만 작년 한해에만 정규직교수 학진등재지 평균 논문게재수 2배는 썼습니다.저는 대학행정조교도 했습니다만 정규직교수가 한다는 학교 행정업무량이 얼마되지 않는다는걸 잘 압니다.허허님은 정규직교수가 1주일에 몇 시간 행정업무 더 하고 연구비도 따로 받으면서 비정규직교수보다 임금을 5배에서 10배 더 받는게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정말 '허허'입니다.저는 조직생활, 사회생활 수십년 하면서 공부하고 있지만 허허님의 사고방식이 가진자의 것이고 허허님의 주장이 현장의 요구에 무지한 것으로 보입니다.그리고 이득재 선생님은 정규직교수입니다.마지막으로 허허님은 시간강사 비하하지 마십시오.시간강사라 비현실적 주장을 한다고 쓰다니... 뉘신지 모르겠으나 차라리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시는게 이 나라를 위해 좋을 듯 합니다.

  • 비정규강사

    저도 시간강사입니다.
    솔직히 제도 그 자체만 보면 너무 그럴싸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 제도에는 강사들의 월급계선은 전혀 없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닐까요?
    9시간씩 보장하고, 강의료도 적정수준으로 준다면 아주 좋은 제도이지만, 왜 제일 중요한 돈 이야기는 쏙 들어가는건가요? 그리고 이런 뉴스는 큰 신문에는 나지 않을까요?? 솔직히 다음 학기가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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