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과 독일 등 서방이 긴급 경계 태세에 나섰지만 반이슬람 선동에 대한 아랍인들의 분노는 금요기도회를 기점으로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리비아 벵가지 미 영사관 폭격으로 대사 4명이 피살되고 이집트 대사관이 침탈된 이후, 미국뿐 아니라 아랍권 점령과 식민화에 책임이 있는 서방 국가들도 방어 태세를 높였다. 미국은 전 세계 미대사관 보안을 강화했고 특수부대와 함께 리비아 해안에 2척의 군함을 파견했다. 현재 벵가지 미 외교부 직원 모두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로 이동했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반미 시위를 낳은 반이슬람 영화는 미국과 관련이 없다며 거리를 두고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종교의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테러에는 반드시 이에 적합한 대응이 따른다며 추가적인 공격에 대해 사전 경고했다.
▲ 이집트인들이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알자지라방송 화면 캡처] |
영국, 독일도 긴급 경계 태세
영국 정부도 급히 중동 지역의 외교관과 가족들을 대피시켰다. 서방에 대한 아랍권의 반발이 고조된 상황에서 14일 영국 <가디언> 인터넷판은 영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다 빠른 철군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을 머릿기사로 전했다.
14일 독일 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베스터벨레 외무부 장관도 서둘러 “반이슬람 영화와 관련해 많은 무슬림들이 느끼는 분노를 이해하지만 이러한 분노는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자국 외교관청으로 시위가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독일은 미 외교관청 공격 이후 즉각 이집트, 튀니지, 예멘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대사관을 폐쇄했다.
아프간 카불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외교관 밀집지는 아예 폐쇄됐고 통제도 강화됐다.
나토를 내세워 리비아 반군 지원에 큰 역할을 했던 프랑스 정부의 입장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프랑스 인구의 다수를 구성하는 아랍인들도 대중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이슬람 비방 영화에 대한 반대 시위가 이어질 예정이다.
아랍권에서의 반미 시위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14일(현지시간) 오전까지 시위가 계속됐으며 220명이 부상당했다. 예멘 수도 사나에서는 미국 대사관 습격 시위 중 4명이 사망했으며 3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라크에서는 바그다드에서 시위가 벌어졌으며 제2의 도시 바스라까지 확산됐다. 이라크 이슬람지도자 중 한명은 “이슬람 비방 영화가 모든 미국인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밝혔다. 튀니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이란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이슬람 금요기도회로 반미시위 전면 확산 예정
확산된 반미시위는 이슬람에서 중요한 금요기도회를 계기로 더욱 치솟을 전망이다. 금요일은 이슬람 세계의 기념일이며 점심에 전통적인 금요기도회가 진행된다. 무슬림들은 이날 평화로운 “백만 인의 행진”을 제안하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14일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으며, 이슬람 비방 영화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워싱턴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도 금요일 시위가 예고됐다. 아프간 정부는 이슬람비방 영화가 유통되는 유투브 접근을 차단했고, 파키스탄에서도 일시적으로 유투브에 접근할 수 없었다. 모로코, 수단, 팔레스타인, 방글라데시, 아르메니아, 부룬디, 잠비아에서도 시위가 예상되며 시위가 금지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시위를 제안하는 트윗이 이어졌다.
카불의 한 독일 외교관은 “현재의 문제가 수 일 동안 지속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반이슬람 영화에 대한 소식이 아프간 사람들에게 전해지려면 며칠이 걸릴 것이고 이후 폭동이 증가할 것 같다”고 밝혔다.
시위에 나선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랍권 정부 수반들도 이번 영화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집트 무르시 대통령은 이번 폭력사건을 비난하면서도 미국에 이슬람 비방 영화에 대한 “진지한 조치”를 요구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다양한 종교 신자들 사이의 적의를 키우고, 사회를 분열시키며 미움을 선동한다며 이 영화를 ‘역겨운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란의 한 종교지도자는 서방세계에 대해 “엄중한 대응”을 경고하기도 했다.
리비아 영사관 습격, 의도된 공격...친미 명단 사라져
▲ 이슬람 창시자, 무하마드를 모욕하는 내용을 다루며 무슬림의 분노를 일으킨 문제의 영화 ‘무슬림의 순진함(Innocence of Muslims)’ 한 장면.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Ug0IrKqnkgM&feature=related 화면 캡처] |
한편 리비아 벵가지 미영사관 공격은 이슬람 비방 영화에 대한 반발과 별개로 특정한 의도 하에 계획됐다고 알려진다.
14일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폭격된 리비아 벵가지 영사관에서 사라진 문서들 중에는 미국인들과 작업한 리비아인들의 명단이 포함됐다. 기록 중 일부는 석유 계약자들이다. <인디펜던트>는 또 이번 리비아에서의 사건이 지난 6월 초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 2인자 아부 야히야 알 리미가 미군의 무인폭격기 공습으로 사망한 것의 복수라는 확신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이번 미 외교공관 침입에 대해 “서구의 지성들이나 이슬람 세계의 주류공동체는 정신적으로 불편하더라도 그것이 폭력으로 연결돼서는 안 된다는 큰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희수 교수는 그러나 “문제는 9.11 테러 11주년이라는 이 미묘한 시점에서 이슬람 혐오주의자들이 이슬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서 적대감을 고취시키려 하고 있고 또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은 이를 빌미로 평소의 정치적 야욕을 충족시키려 하는 극단적 양상이 심각한 사건”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