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초된 ‘무상보육’과 뻔뻔스러운 ‘부동산시장 활성화’
9월 24일 두 가지 경제기사가 메인을 장식했습니다. “반쪽짜리가 된 부동산 세금감면”, “무상보육 폐기”. 얼핏 보면 다른 얘기인 듯 보이지만, 국가예산의 세입과 지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기사라 할 수 있습니다. 양도세와 취득세를 깎아준다는 부동산 경기부양책. 이것을 화려한 포장지에 싸 대단한 일인 양 마이크 잡던 기획재정부가 불과 2주밖에 안 되어 ‘무상보육’ 포기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보수경제언론들은 외칩니다. ‘표(票)퓰리즘’의 종말이라고! 그런데 좀 이상하군요. 다른 지면을 펼쳐보니 미분양 아파트 양도세 감면 혜택 대상이 9억 원 이하로 결정된 데 대해서 ‘반쪽짜리’, ‘시장혼란’이라는 문구가 난무합니다. 이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인가요?
포퓰리즘에 치를 떨던 현 정부와 집권여당이 작년 무상급식 논쟁에서 완패하자, 지난 총선 직전 급히 도입한 게 무상보육이라는 점은 다들 아시리라 봅니다. 그들의 진정성에 의심이 갔던 것도 사실이지만 정책은 추진되었지요. 그러다 지난 여름부터 여러 해 동안 재정난을 겪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더 이상 보육비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들고 일어섰습니다. 취득세 감면 등으로 지방세수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 보육비까지 분담하라고 하니 버틸 재간이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여기에 정부는 일정 정도 보전 약속을 하면서 달래었지만 결국 ‘무상보육’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2주 전 기획재정부는 ‘9.10경기부양책’을 선언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세수감소로 그토톡 반대하던 취득세 감면을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했었습니다. 지방세수의 25%를 차지하는 취득세를 감면하면서 재정난을 이유로 무상보육을 포기한다는 건 무상보육 시스템을 둘러싼 논쟁을 떠나, 앞뒤가 맞지 않는 황당한 연출입니다.
헉! 9억 원이라고, 경기부양과 건설회사 살리기를 혼동하는 정부
이렇게 문제가 많은 부동산 세금감면책은 애초부터 부자감세 논란과 세수감소에 따른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발로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9.10 경기부양책’의 핵심 조치라 스스로 자평하던 부동산 부양책은 반쪽이 되고 말았습니다.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의 적용 대상이 애초 '모든 미분양주택'에서 '9억 원 이하'로 축소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9월 10일 대책으로 발표한 내용에는 올해 말까지 미분양주택을 취득하면 5년간 양도소득세를 100% 감면해주는 방안을 담고 있었습니다.
또한 취득세도 지방세수 보전 문제와 얽히면서 민주당이 9억 원 초과주택의 경우 1% 포인트만 내리자고 수정 제안해 ‘절반으로 인하한다’는 원안통과가 역시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부동산 업계에서는 기대감만 부풀려 오히려 ‘역시나’하는 심리적 침체만을 조장한다며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중지란’, ‘진퇴양난’에 빠진 현 부동산 대책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죠.
근데 이들의 아우성을 보고 있자면 잠시 멘붕이 찾아왔다가 분노로 바뀝니다. 9억 원이 넘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에게 세금을 깎아 준다는 발상이나,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떼쓰는 모습이나 참으로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세간에 회자되었던 ‘떼법’이라는 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거겠죠?
이미 9억 원 이하면 강남을 제외한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는 모두 해당합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이들 건설사를 비롯한 부동산 부양론자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지 알 수가 없군요. 취득세 감소로 지방세수 보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고통은 그들 안중에 없나 봅니다. 경기부양책이 화려한 수식들을 붙였지만 결국 건설회사를 살리기 위한 기만극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실효성 논란으로 자멸하고 있습니다.
지나칠 수 없는 쟁점, 감세로 경기부양이 가능한가?
검증되지 않은 수사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마디 욕설만으로 끝내기엔 지나칠 수 없는 쟁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바로 감세를 통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주장입니다. 손쉽게 내세울 수 있는 대책이란 게 일단 세금 깎아주는 것이라 행정적으로 별 힘 안 들이고 시행할 순 있습니다. 세수감소로 인한 예산절감은 그다음에 하면 되니까요. 흔히 신자유주의적 ‘작은정부론’에 등장하는 경제정책의 핵심인 감세정책을 경기부양과 결합시킨 것입니다.
2주 전 발표한 ‘부동산거래 활성화 대책’이나 ‘소비활성화 대책’도 각종 거래세를 줄여주면 구매가 활발해져서 경기를 살릴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MB정부 들어 ‘부자감세’ 논란의 한 축이었던 ‘법인세 감면’의 논리도 기업들 세금 깎아 주면 경쟁력이 높아져 투자가 늘고 경기가 살아나 결국 세수도 더 많이 걷힌다는 것입니다.
‘세금 깎아 주면 그 돈으로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 경기가 살아난다’ 이런 논리는 어찌 보면 단순 명쾌해 보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그 인과관계를 확인해 볼 수 없는 어설픈 주장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감세로 개인에게 남는 돈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는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투자부문으로 흘러간다는 것은 가설일 뿐이죠. 호황인 경우가 아니고서야 감세로 인한 소득 및 이윤 증가가 과연 소비와 투자로 흘러들어갔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는 저축하거나 빚을 갚는 데 사용하기 때문에 당장 실물부문의 부양효과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먼 훗날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 감세로 늘어났던 돈들이 소비와 투자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설문조사라도 해야 하나요? 헛웃음 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호황일 때 효과가 확인되는 감세부양책은 말 그대로 모순적인 대책입니다. 경기가 호황인데 굳이 부양책을 쓸 필요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2주 전 ‘9.10 경기부양책’에 포함된 자동차 개별소비세 감면의 경우를 봐도 그렇습니다. 2천만 원에 이르는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사람이 30~40만 원 수준의 세금 때문에 구매를 포기할까요? 반대로 감세로 30~40만 원이 생긴 사람이 갑자기 자동차 구매욕구가 용솟음칠까요? 어딜 봐도 이번 개별소비세 감면으로 소비가 증가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감세부분을 소비로 돌리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이 필수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필수재화들인 생필품, 통신비, 유류비 등등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없애는 것이 더 효과가 클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토록 감세정책을 옹호하면서도 정부는 많은 사람이 요구하는 이런 유류세 인하에는 왜 그리 불가입장을 밝히는지, 스스로 모순에 빠진 행동을 보이고 있죠. 부동산 거래세와 법인세 인하에만 몰두하는 정부의 대책을 보고 있자면 감세정책에서도 누굴 위한 감세냐를 둘러싸고 일종의 계급대립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들게 합니다. 스스로 ‘부자감세’ 논란을 자초하면서 이런 논박에 대해 포퓰리즘이라 치부하는 행동은 무지한 건지 뻔뻔스러운 건지 저를 헷갈리게 만드는군요.
대선주자들에게 고함, ‘감세부양론’의 함정을 어떻게 피해 갈 것인가?
그런데 이런 ‘감세부양론’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현실정치의 한계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증세하는 것보다 감세하는 것이 더 손쉽기 때문이죠. 올해 일본의 소비세 인상이나 프랑스 부유세 인상에서 보듯 어느 계층이든 자신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에 대해 극렬히 반대합니다. 일본은 소비세 인상사태로 민심이반과 함께 민주당 정권이 쪼개졌고, 프랑스 올랑드 정부는 얼마 전 대선에서 밝힌 부유세 공약으로 자산가들이 대거 나라를 떠나자 ‘2년 후 세율인하’로 부자 달래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좌파든 우파든 중도든, 집권 후 정치적 결단성과 통합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항상 지리멸렬한 갈등 끝에 어중간한 타협책으로 마무리되거나, 정치적 부담이 적은 ‘감세부양론’의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공동체 운영과 재분배를 위한 재정기초를 갈수록 망가뜨립니다. 현재 그리스의 국가채무위기와 재정난에서도 보듯, 이런 위기의 원인은 복지 때문이 아니라 바로 탈세 때문입니다. 시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세력이 주권적 조치의 재정기반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짓을 반복하고 방치한다면, 위기 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정권이 되는 것이죠.
이러니 새로운 정권을 책임지겠다는 대선주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그 함정에 빠지지 않을 지혜와 용기가 있냐고! 제발 아니한 만 못한 ‘감세부양론’에는 절대 빠지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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