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사라진 자리의 유머

[명숙의 무비,무브](3) <내 남자친구는 대머리>가 준 웃음

짧은 시간이지만 보는 내내 웃었던 영화가 있다. 웃으면 뇌하수체에서 엔돌핀이 나오고, 웃는 동안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긴장을 풀어서 면역력을 증가시킨다는 과학적 증거를 차치하더라도 웃고 나면 기분이 매우 상쾌해진 경험은 누구나 있을 거다.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많이 웃었을 뿐 아니라 웃음의 구조를 생각하게 한 영화가 있다. 바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본 <내 남자친구는 대머리>라는 영화다.

2010년 처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간 이후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나에게 쉼이었다. 상반기를 쭉 달리다보면 8월에는 내 마음과 몸에 기운이 쏙 빠진 듯한 느낌이 들 때쯤이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따사롭지만 뜨겁지 않은 햇살과 눈부신 햇빛에 감응하는 듯한 음악들을 제천 곳곳에서 들을 수 있어서 나무에 걸려있는 해먹에 누워있는 것처럼 긴장없이 즐길 수 있는 감미로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청풍호반의 아름다운 정경과 그곳에서 펼쳐지는 영화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힐링 그 자체였다. 재충전된 듯해서 다시 즐겁게 일상에 복귀할 수 있어서 3년째 꼬박꼬박 갔다. 올해도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반대운동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주말을 이용해 1박 2일 갔다 왔다.

<내 남자친구는 대머리>는 노르웨이 뮤지컬 단편영화이다. 뮤지컬, 음악이나 음악가를 소재로 다룬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다루는 ‘씨네심포니’라는 섹션에 단편영화중 하나이다. 사실 12분짜리 영화라 줄거리도 단순하고 음악도 단순하다. 줄거리를 소개하면 대략 이렇다.


거실에서 부부로 보이는 남녀 두 명이 심각한 얼굴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둘의 사이는 매우 좋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소년 한명이 문을 연다. 그리고는 고백할게 있다며 입을 뗀다. “내 남자친구는 대머리에요.”라고. 순간 부모인 남녀 모두의 얼굴은 경악한 표정으로 바뀐다.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소년은 계속 어젯밤에 함께한 대머리 남자친구와 나눈 키스와 손길의 부드러움에 대해 노래한다. 소년은 자신이 어젯밤에 나눈 사랑에 대해 노래를 부르며 거리로 나가고, 어머니와 이웃들은 대머리라는 점에 경악하고 어머니는 주위에 소문이 날까 두려워 전전긍긍한다. 소년은 계속 자신이 겪은 환희를 노래하고, 어머니와 아버지 이웃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그를 설득하러 쫓아간다. 그러다 어느 공원 네거리 앞에서 키 크고 얼굴이 잘 생긴 남자(대머리)가 목도리를 하고 서있다. 순간 소년은 무언가를 느낀 듯한 표정이고, 그 남자는 다가와 자기가 두른 목도리를 소년의 목에 감싸준다. 밤이라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사랑을 나눈 사람인 것을 감지한 것이다. 그러자 주위의 이웃들과 아버지는 놀란 표정으로 바뀐다. (이 부분이 반전이다. 관객들 대부분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대머리는 놀림감이지만 잘생긴 대머리남자친구는 부러움의 대상인 것이다.) 그가 간 후 동네 사람들을 소년에게 말한다. “왜 남자친구가 훤칠하다고 알려주지 않았냐?”고. 순간 아버지와 이웃사람들은 그를 매우 부러워하고 그의 사랑은 축복받는다. 주변의 인물들이 함께 “그의 남자친구는 훤칠한 대머리”라고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화해한다. 자기 아들이 자신의 사랑을 주변의 편견도 마다하고 당당하게 말한 것처럼 자신들도 연애할 때 사랑하던 그 감정을 떠올리자며 포옹한다. (아빠와 엄마의 화해는 좀 상투적이다.)

나는 왜 아직까지 웃는 걸까?

코미디에서 보통 웃음을 자아내는 장치는 독특한 신체적 특징이나 웃긴 몸동작, 흉내내기, 부조화나 불균형, 기대 밖의 결과, 반전, 과장. 착각 등이다. 드라마도 다르지 않다. 내가 이 짧은 영화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극의 구조에 웃음이 담겨있다. 소년이 대머리남자친구와 잤다는 고백을 부모에게 했을 때 부모는 예상 밖으로 남자와 잔 것을 문제 삼지 않고 대머리와 잔 것을 문제 삼는 반응(기대밖), 대머리라는 외모차별의 대상(신체적 특징)을 설정하였고, 뮤지컬의 특성상 동네 사람들이 대머리와 자서 어쩌냐라며 수근대는 모습들(과장), 그리고 마지막 대머리이기는 하나 잘생긴, 훤칠한 대머리로서 호감 가는 인물로 영화 속 인물들에게 충격을 준다.(반전) 게다가 뮤지컬이라 즐거운 노래가 반복될 뿐 아니라 흥겨운 리듬도 있고, 단순한 가사를을 부르는 배우들의 과장된 표정이 웃음을 유지시켜 준다.

그런데 이러한 웃음의 구조는 우리사회에 전제된 차별을 알기에 더 웃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소년이 자고 들어온 것을 쉽게 말하기 어려운 사회(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 한국의 현실), 동성애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있어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숨겨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소년이 남자와 자고 온 것을 문제 삼지 않고 대머리와 잤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 속 주변 인물들의 반응이 웃음을 주는 것이지 않겠는가. 또한 대머리라고 했을 때 우리 주변의 외모 차별적 시선이 있고, 그에 따른 상상을 하기에 영화 속 사람들은 수근 대는 것이 아닐까? (물론 마지막 반전에서 근대 인류에게 가장 끝까지 남을 차별이 외모차별이라는 사실을 짐작한다. 대머리는 싫지만 잘생긴 외모라면 괜찮다는 식이니....모든 차별이 사라져도 정녕 외모차별만은 사라지기 어려운 것인가. 카악!)

그리고 참으로 감동적이었던 점은 주인공인 성소수자 청소년이 영화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영화가 나올 수 있는, 이러한 발상을 할 수 있는 북유럽이 부럽기도 하고 영화를 만든 감독 마리아 북의 재기발랄함에 놀라기도 했다. 혐오가 사라진, 적어도 공공연한 동성애혐오가 없는 나라이기에 나올 수 있는 유머가 아닐까? (어쩌면 북유럽은 동성애차별보다 대머리차별이 더 심한 건 아닐까? 그래서 대머리라고 다 못생긴 건 아니라고 우회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대머리에 대한 차별의 정도를 조금이라도 낮추려는 의도는 아닐까? 후후)

한국 ‘막장’ 현실이 주는 씁쓸함

그에 비하면 한국은 이명박 정권이라는 보수기독교 정권이 들어선 이후 동성애 혐오나 차별이 심해지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동성애만 나오면 기겁을 하고 무조건 낙인찍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동성애 커플이 나온다고 ‘동성애를 퍼뜨리고 에이즈를 퍼트린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을 일간지에 광고 낼 정도의 비상식적인 단체들이 있다. 작년 서울학생인권조례에 학생들을 차별하지 않을 사유로 ‘성적지향과 임신출산’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던 이들이, 얼마 전 서울아동인권조례 제정 때도 ‘성적지향과 임신출산’을 빼라는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결국 두 차별사유가 포함된 원안대로 통과되기는 했지만 차별과 혐오를 당당하게 하는 그네들을 보면 답답하다. 그네들이 혐오발언을 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가 그러한 발언이 용납될 수 있을 정도로 혐오나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낮기 때문이 아닐까? 유권자의 표심에 흔들리는 선거철이라 그런지 박근혜 후보가 2007년 동성애에 대해 “동성연애자에 대한 생각은 각자의 취향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박사모 회원들의 질문에 답했다고 한다. 최소한 공식적으로 차별과 혐오를 말하지는 않은 셈이다. 물론 정책적으로 의지를 드러낸 것은 아니니 립서비스일 수 있다.

부러운 하룻밤의 사랑

소년이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 한 남자와 하룻밤을 자고 사랑에 충만해져 온 대목이 아직도 의아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소년은 하룻밤의 그의 손길만으로도 사랑에 충만해졌다. 영화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러한 설정은 남성(젠더)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섹슈얼리티 쾌락을 경험하려는 인간의 동기가 여성(젠더)에게는 억눌려 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닐까? 사회가 여성들의 성을 억압해 왔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먼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나서 섹스를 하는 경로에만 익숙해 있는 것은 아닐까? 연애관계가 이루어지는 경로는 다양하니 그 반대도 가능하고, 실제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 않은가.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서도 여성들이 몸에 우선권을 주는 순간 ‘정숙하지 못한 여자’, ‘밝히는 여자’로 되거나 ‘하룻밤의 상대’로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밝히는 여자’, ‘하룻밤의 상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거부하는 게 필요한 일일게다. 그래서일까? 나도 소년처럼 하룻밤의 잠자리를 먼저하고 나서 사랑에 충만해지는 ‘성적 실천’을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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