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주는 건 언제나 사람이다

[명숙의 무비,무브](5) <서칭 포 슈가맨>과 그/녀들

영화를 보고 행복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서칭포슈가맨>을 보고 그랬다.주변에서 추천해 본 영화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표지의 주인공 모습이 과장되게 보여 끌리지도 않았고, 홍보전단에 쓰인 '2장의 앨범만 남기고 사라진 전설의 가수'라는 문구도 그리 신선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빨아들여 호기심과 기대감, 그리고 감동에 젖게 만들었다. 단연코 올해의 최고 영화다.(내가 본 영화에 한해서 말이다.)

신화 속 미궁을 떠올리게 하는 탁월한 미스터리적 구성

영화의 첫 부분에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드라이브하는 자동차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노래는 관객을 매료한다. 곧 운전하던 남자는 자신은 음반가게를 하고 있고 이 노래의 주인공은 로드리게스라는 사람인데, 공연 중에 분신해서 소식을 모른다고 말한다. 이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삶을 추적하기로 했다고 이야기한다. 독재시절(민주화되었다고 하는 현재까지도) 절박한 노동, 정치, 사회현실을 고발하고 그에 저항하며 분신했던 한국의 역사를 알기에,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이며 절박한지를 알기에, 나는 '설마'라는 부정심리와 함께 '왜'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러한 미스터리한 구성은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관객을 흡인한다.


그 후 두 명의 팬(음악평론가와 음반가게 사장)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음반이 50만 장이나 팔린 로드리게스라는 유명 가수의 삶을 찾아 나선다. 그들이 찾아낸 그 가수는 70년대 반체제의 영혼을 그대로 담은 사람이자 훌륭한 음악가였다. 마치 그리스 신화 테세우스가 미궁에서 빠져나오려고 실을 풀어놓고 그 곳에서 나왔던 것과 같은 구성이다. 미궁이 고난의 여행과 죽음에서 재생을 상징하듯 실타래를 쫓아간 그들의 탐정여행은 힘들지만 '죽은' 로드리게스를 '살려'낸다. (이제부터 스포일러가 많으니 영화를 볼 예정인 사람은 읽기를 중단하거나 대충 읽고 영화를 본 후 읽어주세요.^^)

"모든 혁명은 노래를 가지고 있다"

미국으로 건너가 두 사람이 들은 이야기는 너무나 놀랍다. 남아공에서는 밥 딜런(그는 베트남 반전운동을 상징적으로 노래하며 68혁명운동의 기세를 이어갔다)보다 더 유명한 가수이자 70년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적 분리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거나 지지한 남아공 시민과 밴드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연히 정부는 그의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지만, 그의 음반과 노래는 퍼져갔다.

그런데 정작 그가 노래를 만들며 살았던 미국 디트로이트에선 대다수 사람이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가수였다. 그렇지만 그는 뛰어난 곡과 시적인 가사로 <콜드팩트>(cold fact, 차가운 현실이라는 제목조차 의미심장하다) 음반제작자를 단번에 반하게 할 만큼 재능있는 인물이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분위기에 관한 제작자의 묘사도 인상적이다. 그들은 말한다.

"그는 도시의 시인이었어요. 방황하는 영혼이었지요"

그가 미국에서 실패한 까닭

훌륭한 음반이었는데도 왜 실패했는지 모르겠다고 그들은 말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진술에서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그의 이름에서 풍기는 이방인 정체성, 아니 정확히 말해 미국인이 아닌 사람에 대해 관심을 두기 어려운 현실(로드리게스라는 이름은 미국인이 아니라 남미에서 이주한 사람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가 비판한 디트로이트 노동자가 처한 차가운 자본주의 현실에 사람들은 다가서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 그의 가사에는 "이것은 노래가 아니라 우울한 체제에 관한 노래다... 곧 젊은이들의 분노로 체제는 무너질 것이다"라고 격하게 쓰여있다. 결국 그의 노래는 다른 곳에서 꽃을 피웠다.

영웅 만들기에 그치지 않는 전설의 현재성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풍성해지고 행복해진 것은 단연코 로드리게스라는 멋진 인물 때문이다. 그는 70년대 음반을 만들 때도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음반이 실패했을 때도 다시 막노동하며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20년 뒤 남아공이 초청한 공연에 수만 명의 관객이 찾아올 정도로 다시 가수로서 자리를 찾았지만, 여전히 하수도를 수리하는 노동을 계속한다. 포스터에서 내가 느꼈던 젠체하거나 과장된 모습은 그의 삶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한결같았다. 노랫말에서 그가 말한 그대로 한결같이 세상에 대한 성실한 태도를 이어갔다.그에게 노동은 특별하거나 삶에서 떨어진 게 아니었다.

또한 그는 노래하지 않는, 정확히 말해 가수가 아닌 노동자로서 살면서도 디트로이트 시장에 여러 번 도전하는 등 세상을 바꾸는 자신만의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시장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 같았기 때문이란다. 이렇듯 그가 다시 가수에서 노동자로 돌아간 이유는 세상에 대한 그의 태도를 접거나 체제에 순응해서가 아니었다. 이는 제3세계 이민 세대인 자신의 자녀가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도록 노력했던 그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가난하더라도 누구나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그는 바란 것이다.

송전탑에서, 해군기지 사업단 앞에서 만난 그/녀들

로드리게스가 그랬던 거처럼 멀리 미국땅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이들이 많다. 영웅이 되고자 하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실천하는, 그러나 단호하게 부당한 현실에 맞서 일관되게 싸우는 그/녀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화하라고, 감전위험을 무릅쓰고 15만4천 볼트의 전기가 흐리는 철탑에서 농성을 벌이는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 씨와 천의봉 씨. 그리고 제주 강정해군기지에서 24시간 공사를 벌이는 해군, 그리고 대림과 삼성 등 건설사 때문에 잠도 못 자며 용역폭력과 경찰의 연행에도 온몸으로 맞서 싸우는 돌고래님을 비롯한 강정지킴이들.

그/녀들이 우리를 울린다. 고맙고 미안하고 또 고맙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노래를 부르는 일이 아닐까? 온몸으로 말이다. 시간이 되는대로 찾아가서 화답하자. 너희는 성공의 상징을 찾아가겠지만, 우리는 연대의 상징으로 꿈을 이뤄가겠다는 노래를 부르자. 노래를 만들자.

마지막 문장은 로드리게스의 노랫말에서 차용했다. 가사가 멋지다. 해당 부분만 인용하겠다. 이 영화는 노래가 정말 훌륭하다.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영화다.

"당신은 성공의 상징을 유지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난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할 거야. 당신은 시간과 일상을 지킬 수 있겠지. 그렇다면 난 내 흩어진 모든 꿈을 수리할 거야"